소설리스트

진호 이야기 (181)화 (181/234)
  • 181화

    “...호야. 진호야.”

    아빠. 누군가가 나를 조심스레 흔드는 느낌이 들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번쩍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엎드린 기억이 없는 것을 보아 버티고 버티다 기절하듯 잠에 든 모양이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확인한 것은 당연히 아빠의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어제 내내 감겨있던 눈과 마주했다. 아빠는 깨어있었다. 감격과 안도가 섞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빠.”

    놀라서 반쯤 일어난 몸에서 힘이 빠졌다. 털썩 소리를 내며 보조 의자에 주저앉아 멍하니 아빠의 얼굴을 봤다. 또렷한 초점과 산소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미소는 꿈만 같았다.

    “불… 편하게. 왜, 그… 러고 자.”

    아주 작은 소리에 숨을 몰아쉬느라 매끄럽지 못했지만, 특유의 밝은 어조는 그대로였다. 아아, 진짜 깨어났구나. 그제야 그게 실감이 나서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코를 세게 비비면서 하하, 소리 내서 웃었다.

    “그냥, 핸드폰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봐요.”

    “그… 러면 안, 좋다… 고 아, 빠가 말… 했잖아.”

    침대 어디서도 내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야가 제한된 아빠가 그걸 알 리는 없었다. 아니, 날 깨운 것은 아빠였으니 내가 자면서도 그의 손을 얼마나 간절히 잡고 있었는지 다 알 게 분명했다. 그저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 것일 테다.

    나는 이 와중에도 잔소리를 하는 아빠에게 이제 안 그러겠다고 중얼거리듯 말하며, 아빠의 마른 손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왜 이렇게 오래 주무셨어요. 걱정했잖아요.”

    이대로 다시는 못 일어나는 걸까 봐. 그 쓴 말을 힘겹게 삼켰다. 아빠의 눈동자가 조금 비켜 가는 듯하더니 볼에 닿아있던 손가락이 아주 미약하게 움직였다.

    “미, 안해. 잠이 많, 이 부족… 했나, 봐.”

    볼을 쓰는 손길에 나는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푹 주무셨어요?”

    “응. 개운, 해.”

    아빠는 눈이 휘어질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일어나 너스콜을 눌렀고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체크 한 후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갔다.

    그동안 우리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제 내가 뭘 먹었는지, 푹 자고 일어났더니 뭐가 먹고 싶다든지. 어제 날씨는 어땠고, 오늘 날씨는 어때 보이는지. 내일이 월요일이라 벌써 아쉽다는 이야기를 할 때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제보다 훨씬 좋으시네요. 산소호흡기만 코에 삽입하는 형으로 바꿔드리면 될 것 같아요. 잘 이겨내셨습니다.”

    어제 내게 고비를 말했던 의사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하는 말에 나는 남몰래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하는 건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아졌다니까. 나는 한껏 기분 좋아진 마음 그대로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그러자 아니라면서 손을 내저은 의사 선생님이 웃는 얼굴 그대로 인사하며 병실을 나가셨다. 간호사 선생님은 산소 줄을 바꿔주면서 목소리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킥킥 웃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빠와 나를 향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거 들으셨어요? 오늘 로비에서 음악 연주회 있는 거. 매달 오시는 봉사자님들이신데, 다들 유명한 오케스트라 소속 연주자분들이셔서 그런지 다른 병동에서도 구경 오는 연주회니까 이따 한 번 나와보세요. 줄 불편하시면 문만 열고 계셔도 되고요.”

    그분들께서 복도를 다 돌면서 연주하시거든요. 침대 정리까지 해주고 짐을 챙기면서 하는 말에 아까보다 숨이 덜 가쁜 아빠가 겸연쩍게 웃었다.

    “오케스트라면. 클래식, 인가요? 제가 그런, 건 좀, 잘 몰라서요.”

    “어? 아니에요. 물론 클래식 곡도 몇 곡 연주해주시는데, 옛날 가요라던가 최신 가요도 편곡해서 하시곤 해서 재밌으실 거예요. 아마 아드님도 좋아하실걸요?”

    간호사 선생님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동의를 구하는 말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그런 내 반응을 보더니 눈을 깜박였다. 그럼 가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들렸다. 간호사 선생님은 그럼 이따 뵙겠다면서 병실을 나가셨다.

    다시 아빠와 둘만 남은 병실. 문득 일어나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빠의 요구에 따라 창밖을 볼 수 있도록 침대 등받이를 올려주고 얼른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초췌한 얼굴은 양치하고 씻고 나니 그제야 조금 사람다워졌다.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우울과 피곤을 떨쳐내기 위해 표정 연습까지 했다.

    그러고 나간 병실에서 아빠는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위태로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성급히 그를 불렀다.

    “아빠.”

    아빠의 얼굴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게 왜 불렀냐 묻는 표정이었다. 평소의 아빠였다. 나는 그냥 불렀다고 말하면서 실없이 웃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면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더니 내가 침대에 앉자마자 손을 뻗어왔다. 천천히 다가오는 손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자니 이내 이마가 간지러워졌다.

    아빠는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호야. 어제. 누가, 오지는 않, 았어?”

    바로 고개를 저으려고 했으나 그만두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웃는 것을 보니 이미 다 알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추측이 맞았는지, 아빠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야기해 봐. 만나 봐, 진호야.”

    “...할아버지였어요.”

    “응. 알아. 괜찮아. 좋은, 일이야. 그럴 거야.”

    혹여나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단 생각에 할아버지임을 밝혔지만, 아빠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코를 찡긋거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어제 할아버지가 했던 말, 아빠가 부탁했다던 그 말이 진짜인 것 같았다.

    뭘까. 뭘 부탁했길래.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엔 불안이 스며들었다. 모르는 것은 무서웠다. 타고난 행운이라곤 없기에 더 그랬다. 뭐가 됐든 불행으로 작용할 확률이 높은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분위기에 아빠를 붙잡고 뭔지 말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눈을 피하면서 말을 돌렸다.

    “근데 관심법 쓰는 것도 아니고 어제 누가 왔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하루종일 잠만 주무셨으면서.”

    그 말에 아빠의 손이 떨어지더니 툭, 어깨에 무게가 실렸다.

    “들렸거든. 우리 진호, 목소리, 가 얼마나 좋은지. 자는, 데도. 들리더라.”

    그 말에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할아버지가 한 말은 들어서 좋을 것이 하등 없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빠는 잠결이라 모두 명확하게 들리진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드문드문 끊겨 들은 것이 기억난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살짝 깼다가 잠들기를 반복한 것 같았다.

    나는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 아빠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젠 아빠 주무실 때도 흉보면 안 되겠네.”

    “응. 아빠는 다 듣, 고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뒤 우리는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 작은 음악회가 열릴 때까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전에 했던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들부터 내일과 다음 주의 이야기를 하고,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를 했다. 오래 이야기하면 호흡이 벅차 힘겨워하는 탓에 장난은 많이 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린 장난도 섞어 가면서 아빠를 찾아오고 나서 보낸 우리의 평범한 날들처럼 소소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음악회는 문을 뚫고 들어오는 연주 소리에 자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휠체어를 가지고 오려고 했으나 아빠가 고개를 젓더니 문만 열어달라고 했다. 아빠도 나처럼 클래식 음악은 1분이 한계라고, 연주해주는 분들 앞에서 잠들면 너무 죄송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그 긴 곡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눈은 또랑또랑했다. 서로 누가 더 빨리 하품을 할까 내기를 했던 것은 소용이 없어졌다. 두 곡이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 말씀처럼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들렸다. 곡이 바뀔 때마다 소리가 가까워진다 싶었는데, 네 곡쯤 끝나고 바이올린과 플롯, 첼로를 든 연주자분들이 우리 병실에 들어오셨다.

    나는 아빠와 간호사 선생님, 연주자분들의 부추김에 못 이겨 연주에 맞춰 노래를 몇 소절 불러야 했다.

    “아, 하하하- 하하!”

    아빠는 자꾸 삑사리를 내고 가사를 얼버무리는 나를 보면서 정말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서 나는 싫다는 말도 못 하고 붉어진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한 곡만 더 하고 다음 병실에 가야 한다면서 아빠를 향해 물었다.

    “혹시 신청곡 있으세요?”

    한참을 고민하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혹시 성시경의 ‘두 사람’이라는 곡 아시나요?”

    “어… 알긴 아는데. 연주는....”

    “악보가 있었나? 인터넷에 있지 않아? 가만있어봐.”

    “나 알아! 저도 그 곡 좋아해요.”

    세 분 중 바이올린을 연주하시는 분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핸드폰으로 찾고 계시던 첼리스트분이 잘됐다면서 찾는 것을 멈췄다. 아빠는 바이올린 연주자분께 쑥스럽게 웃으며 부탁했다.

    “그럼 저, 조금만 천, 천히 연주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노래 부, 르는 걸 좋, 아하는데. 오랜만에 한, 번 불러보고 싶어서요.”

    “아, 그럼요! 그럼 시작할게요. 하나, 둘, 셋-”

    아빠는 숨이 가빠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도 내 손을 잡고 끝까지 완창했다. 아빠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을 때부터 놀라 입만 벌리고 있던 나는, 아빠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가사가 너무 예쁘고 좋아서 바보같이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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