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을 쥐고 얼은 듯이 한 곳만 보고 있었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라도 가루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 눈도 깜박이지 못했다. 움직일 땐 좀 덜 해 보였는데, 이렇게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으니 지방이 없어 축 늘어진 피부가 더 도드라졌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아니었다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또 새겼다.
오늘 하루종일 나는 그러고 있었다. 그사이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 몇 차례 들어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나갔으나, 그때도 나는 넋을 놓은 사람처럼 그저 아빠만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겐 익숙한 광경이라 그런 건지 그들이 뭐라고 하든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다음엔 발소리, 그다음엔 아빠를 확인하고, 링거줄을 조정하면 다시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그러나 예상과 다른. 아니,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놓는다고 안 죽는다.”
눈을 깜박였다. 내가 방금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내 눈앞에 있는 아빠와 방금 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빠가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경로를 들었음에도, 같은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마침내 망부석 같았던 몸을 돌렸다. 뒤돌아 확인한 곳에는 정말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지팡이를 짚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아빠를 주시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그래, 네가 요즘 여길 매일 드나들었다지?”
마치 질문인 것처럼 어미가 올라갔으나 그건 할아버지의 말버릇일 뿐, 정말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그새 아빠가 눈을 뜨진 않았을까 뒤를 돌아 여전히 감겨있는 눈꺼풀을 확인하고, 다시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본 새 많이 건방져졌어. 어린놈이 어른이 왔는데 인사는커녕 대답도 하지 않으니, 원.”
그렇게 말한 사람치고 할아버지의 얼굴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를 잠깐 가늠하다가,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전을 제외하곤 말을 하지 않았기에 꽉 잠긴 목소리였다. 말을 뱉고 몇 번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푸는 동안 할아버지가 몇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놈은 그래도 말년에 자식 복은 있어 뵈는구만. 남의 자식 인생은 그렇게 망쳐놓고선 말이야.”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침대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걸어오신 할아버지는 대뜸 혀부터 차더니 날 선 말을 뱉었다. 당연히 그 말이 기껍지 않았던 나는 여전히 아빠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신경 쓰며 반박했다. 울컥한 것을 내리누르면서 말하느라 저절로 말에 힘이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허! 이젠 말대꾸까지! 이놈이 그새 너까지 망쳐놨나 보구나.”
두서없이 아빠를 비난하는 말에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지 마시라고요.”
그에 계속 무표정이었던 할아버지가 확 인상을 찌푸리더니 지팡이를 세게 말아쥐고 바닥을 쳤다.
“누구 앞이라고 눈을 그렇게 떠! 왜, 더 하면 끌어내기라도 하려고? 그래, 어디 한번 해 보거라! 이놈이 여태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게 누구 덕이고 이 병실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또 누구 덕일 것 같으냐? 모든 걸 들어놓고도 네 아비 덕 같더냐?”
말을 이을수록 화기가 더 오르는지, 할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그 소리에 혹여나 아빠가 깼을까 힐긋 확인해봤지만 감긴 눈은 여전히 굳건했다. 깨어나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아빠가 저 말을 듣지 않아도 돼서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내용은 내 마음에도 불을 지펴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계속 못된 말을 퍼부을 것처럼 굴던 할아버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있는 게다.”
또 무슨 망발을 하시려나 이를 악물고 각오한 것이 무색하게 별 타격 없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 차라리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덕분에 조금 진정할 수 있었던 나는 숨을 고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이 대치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다. 용건만 말하고 얼른 가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물음을 들은 할아버지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더니 나를 한 번, 아빠를 한 번 노려보다 홱 돌아서며 말했다.
“따라오거라.”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것이 꽤 힘겨워 보였다. 방금까지 노발대발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이었다면 바로 손을 뻗어 부축해드렸겠지만, 오늘은 나에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병실 문과 가까워지는 것까지만 확인한 후 아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얼마 후 뒤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게냐! 빨리빨리 오지 않고!”
나는 손을 뻗어 아빠의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못 가요.”
“...뭐?”
“못 간다고요. 아빠가 일어나기 전까진 저 여기 못 나가요. 아니, 안 나가요.”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상대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을 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갈비뼈가 도드라진 가슴 위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응, 아직 살아계셔. 따뜻한 온기가 애틋해서 그렇게 조금 더 귀를 대고 있다가 뗐다.
그리고 문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아직도 뒤에 계실 할아버지를 향해 한 번 더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적어도 오늘은 안 돼요.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서요. 오늘 제가 있을 예정이었어서 간병인 선생님도 쉬시라고 해서 안 계세요. 제가 있어야 해요. 급하신 용건이면 그냥 여기서 말하세요.”
말하면서도 뒤돌아보지 않는 내 등 뒤로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커다란 한숨 뒤에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건 저놈을 닮고, 고집은 지 애비를 닮았어. 네 애미를 닮지 않아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구만.”
“할아버지, 제발 좀!”
오늘따라 더 심하게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건방지다면서 또 갖은소리를 퍼부으시면 이젠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할아버지도 만만치 않은 살벌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대치하기를 몇 분. 예상외로 길어지는 줄다리기에 시간이 갈수록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한숨 같은 콧김을 뿜으며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이 날 붙드는 것이 더 먼저였다.
“이민영이가 부탁한 거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입에서 아빠의 이름이 온전히 불린 순간이었다. 나는 참 생소하게 들리는 이름과 내용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다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저놈, 이민영이가 지 목숨 담보로 걸어가면서 얻어낸 건데 들어보지도 않으려고?”
할아버지의 턱 끝이 아빠가 있는 방향을 향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빠가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고? 뭘 얻어내기 위해서? 근데 그걸 내가 들어야 하는 거라고? 왜? 얻어낸 것이 뭐길래.
오로지 아빠의 상태로만 가득 차 있던 머릿속으로 다른 복잡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 순간, 힘 풀린 손에서 뭔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흠칫 놀라 뒤돌아보니 손에 힘이 풀리면서 쥐고 있던 아빠의 손을 놓친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 덩그러니 놓인 손을 잠시간 쳐다보다가 그 자세 그대로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들을게요.”
“그래, 그럼 어서 따-”
“근데 지금은 진짜 안 돼요. 하루만. 적어도 하루 정도는 계속 옆에 있고 싶어요. 아닐 걸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의사 선생님께 들은 게 있어서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그럼 제가 내일 거기로 갈게요.”
기껏 회사에 구애받지 않고 아빠를 지켜볼 수 있는 주말에 그것도 지금 이 상태인 아빠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일 오후까지만이라도 아빠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그 시간 동안 괜찮아지시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면 더더욱 옆에 있어야 했다.
나는 입술에 꾹 힘을 주며 놓친 아빠의 손을 다시 잡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잡고 있고 싶어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안는 나를 보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올 때 저 밖에 있는 것들은 떼어 놓고 와라. 뭐 하는 놈들인지 아주 막 굴러먹은 냄새가 코를 찔러 못 견디겠으니.”
할아버지의 그 말을 끝으로 문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시끄러웠던 병실은 다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