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아빠 한 입만 더 드셔보세요. 네?”
“미안, 진호야. 진짜 배불러서 그래.”
나는 아빠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버섯볶음을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 두 입.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닦달하다시피 물어봐서 겨우 얻어낸 대답이었는데, 그마저도 아빠는 두 입만 먹더니 젓가락을 물렸다. 당장 삼 일 전과 비교해봐도 깊게 파인 것이 보이는 양 볼이 가슴을 후벼팠다.
아빠는 최근 식욕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했고, 실제로 먹지 못했다. 그게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운 나머지 병원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로 떼를 써서 먹여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먹이면 기어코 토해내고 말았다. 아픈 몸으로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 괴로워 보여 나는 그 이후로 억지로 먹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내가 속상해하는 것을 보면서 아빠도 어떻게 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먹는 것만은 정말 못하겠는지 매번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나는 아빠가 그렇게 말하도록 행동한 내가 미워서 더 이를 악물고 화를 삭였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스로 감정을 내리누르고 나서 힘없이 기대있는 아빠에게 웃어 보였다. 그럼 아빠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주 웃어오는 것이, 최근 우리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나는 손댄 흔적도 없는 밥상을 치우면서 일부러 더 밝은 톤으로 말했다.
“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려고요.”
“진짜? 그래도 돼?”
“그건 제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고 가도 되냐고?”
아, 그런가.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면서 하는 말에 진짜 웃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된다고 말하면서 신나 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아빠는 중년인데도 왜 그렇게 귀여워요?”
“어? 내가?”
“네. 가끔 보면 진짜 애 같아요.”
순수함을 잃지 않아서 그런가. 엉덩이를 움직여 침대 한쪽에 내 자리를 만들어주다가 나를 올려다보는 눈을 보면서 손에 턱을 괴었다. 일부러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아빠를 관찰하듯 주시하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해하던 아빠의 얼굴에도 장난기가 서렸다.
“아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진호만 하겠어? 아직까지도 고등학생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돈데. 얼마 전에 새로 온 간호사 선생님도 교복 입은 진호 보고-”
“와아아악! 그만! 제가 잘못했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막기 위해 뻗었던 손으로 허공을 가로저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왁왁대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얄밉게 웃는 아빠를 보면서 혹시 밖에 들리진 않았을까 문을 힐끔거렸다.
얼마 전에 아빠가 갑작스레 내 교복 차림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지나가듯 말한 것을 기억하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집에 갔었다. 오랫동안 비워진 집 안은 스산할 정도로 썰렁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 겨우 현관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집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알자마자 급하게 들이마신 공기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향이 났다. 집이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둘러본 집은 나가기 전에 대청소를 한 덕분인지 겉보기엔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했으나, 햇빛에 비친 곳은 먼지가 하얗게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미련 없이 내 방으로 향했다. 방 한쪽에 허물어져 있는 풍선을 보고, 꽁꽁 숨겨 둔 젤이 들어있는 상자가 여전히 잘 숨겨져 있는지 확인한 후, 옷장 가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오래된 옷들 사이로 잘 접혀있는 교복이 보였다.
나는 위에 덮은 옷들을 헤집고 교복만 달랑 챙긴 후에 다시 서랍을 닫고 일어섰다. 그렇게 또 미련 없이 방을 빠져나가려다가 순간 생각나는 물건에 걸음을 멈췄다.
우두커니 선 채 잠시 고민하다가 교복을 침대 위에 놓고 부엌으로 가서 쇼핑백을 하나 챙겨왔다. 쇼핑백에는 챙겨둔 교복과 엄마 방 책장에 꽂혀있던 앨범, 남궁후와 최태혁이 준 앨범을 넣었다. 물론 이상한 사진은 모조리 빼서 최태혁이 준 상자에 넣어 숨겨두었다. 그렇게 챙긴 짐은 당연히 병원에 들고 갔다.
아빠가 방금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날의 해프닝이었다. 앨범들을 아빠에게 넘기고 화장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막 나왔을 때, 아빠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 선생님과 딱 마주쳐버린 것이다. 그래도 거기까진 조금 창피하기만 했는데, 그날 막 새로 발령받아 와서 나를 처음 본 간호사 선생님이 아주 기특하다는 말투로 날 칭찬했던 것이 문제였다.
‘어머- 이 학생이 은수 님이 그렇게 자랑했던 아드님이세요? 학생이었구나! 고등학생? 기특하네, 학교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시간인데 아빠 보려고 끝나자마자 온 거야? 어우, 은수 님 너무 뿌듯하시겠다! 이렇게 착하고 훈훈한 아들 두셔서!’
‘풉, 크큭, 그, 그렇죠? 제 아들이지만 얼마나 애가 잘 커 줬는데요. 심지어 공부도 잘해서 요기 옆에 있는 대학 가는 것도 정해졌다니까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녀가 내 어깨를 팡팡 두드리고 아빠를 향해 걸어갈 때까지도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는 한술 더 떠서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부추기는 말을 했다.
‘진짜요? 요기 옆이라면, 어머, 어머!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잖아요! 진짜 잘 컸다, 증말! 어휴 우리 아들은 지금 중학생인데도 벌써부터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근데 잠깐. 대학이 이미 정해졌다고요? 그럼 지금 고3이에요? 얘 너 진짜 동안이다! 누가 널 고3으로 보니!’
나는 그 말에 참지 못하고 이마를 탁 쳤다. 이 나이에. 그것도 병원에서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남이 봤다는 것 자체도 창피한데 또 고등학생으로 오해받아 온갖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오해 뒤에 동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은수 님을 닮아 애가 피부 하난 정말 타고난 것 같다면서 수다를 멈출 기색이 없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맞장구치는 아빠가 아주 신나 보이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놀렸다고 생각한 아빠가 사실은 내 아들 이미 대학도 졸업한 상태라고 말할 때까지 나는 옆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매우 외향적인 성격의 간호사 선생님은 사실을 알고 나자마자 피부 관리 어떻게 하냐면서 볼까지 꼬집고 나서야 나갔다.
그 뒤로 아빠는 툭하면 나를 고딩이라고 불리며 놀리고, 그때 간호사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 하면서 날 칭찬 지옥에 가뒀다.
“아빠 중간에라도 아프면 저 깨우세요. 알겠죠?”
“응, 응.”
나는 회상을 끝내고 평평해진 침대에 누운 아빠의 자세를 정리해주면서 언제나 하는 말을 했다. 근데 돌아오는 대답이 영 건성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처럼 그냥 저 보고만 있지 마시고요!”
“알겠어, 알겠어.”
대답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잔뜩 어려있다. 농담이 아니라, 저번에 중간에 깼을 때 날 내려다보는 눈이랑 마주쳐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나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나는 뭔지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빠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직 이른 저녁이지만 최근 아빠가 잠드는 시간이 다 되었다. 이젠 잘 먹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 아빠의 체력이 회복되는 길은 충분한 수면밖에 없었다.
익숙하게 한쪽에 놓인 무드등을 켠 후 병실 불을 껐다. 그리고 날 위해 비워진 자리에 옆으로 누워 통증 때문에 옆으로 돌아눕지 못하는 아빠의 몸에 팔을 둘렀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불렀다.
“진호야.”
“네.”
“사랑해.”
매일 몇 번이고 하는 말이었음에도 계속 뭉클한 고백이었다. 행복했다. 내가 이 말을 이렇게 단언하게 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당황스럽게도 정말 그랬다.
습관적으로 불평을 하긴 하지만 나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직장이 있었고, 핸드폰을 울리는 연락들이 있었다. 나와 소소한 장난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있었고, 자기들 나름의 방식대로 나를 챙겨주는 다섯 놈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먼 길을 돌아 겨우 만난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그 뒤에 습관적으로 몰려오는 불안을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충만한 행복. 나는 가슴에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똑같이 마음을 고백했다.
“저도요. 사랑해요, 아빠.”
아빠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작게 키득거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잘자, 진호야.”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잠든 사람은 둘이었지만, 다음 날 깨어난 것은 나 하나였다.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는 아빠를 깨우고 싶었다. 그러나 손을 대면 그대로 바스러져버릴까 봐 차마 흔들지도 못했다. 자꾸 터지려는 눈물만 겨우 참으며 연속으로 너스콜을 누르고 간호사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평소 조용하던 병실에서 울리는 호출에 놀랐는지, 다급하게 뛰어온 간호사 선생님은 아빠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의사 선생님을 불러 주었다.
그러나 생명 연장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해버린 아빠에게 취해진 조치는 산소호흡기가 전부였다. 잊고 있었던 할아버지가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