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호 이야기 (174)화 (174/234)

174화

최근 들어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로웠다. 처음에 최태혁에게 감금당했을 뻔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갔다. 성실하게 일을 다니고, 중간중간 친한 사람들과 연락하고, 나를 보러 온 쌍둥이 형들과 경호팀장님을 사이에 두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런 나의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단연코 지금이었다.

“아니, 진짜 그 놀이공원에 있던 풍선을 모조리 사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났다니까요.”

“그랬어? 하하,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 우리 진호 되게 좋았겠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일이 끝나면 바로 아빠의 병실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하느라 어영부영 보냈으나,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긴장이 풀리자 금세 시끌벅적하게 웃을 수 있었다. 원체 밝은 성격이었던 아빠에게 전염이라도 되듯, 나 또한 이 시간만큼은 쉽게 웃음이 나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 우리들의 주된 주제는 쑥스럽지만 나였다.

‘아, 빠는. 진호가 궁금해. 우리 진호가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장 궁금해.’

처음으로 아빠라고 본인을 지칭하면서 수줍게 꺼낸 말이었다. 그래서 별거 없는 데다 그렇게 재밌는 삶이 아니었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언정, 이미 너무나도 약해져 있는 그에게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심지어 이런저런 일이 워낙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허풍도 쳤다. 그 말에 안도와 호기심이 섞인 미소를 짓는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머리를 맹렬히 굴려야 했지만, 우울한 얼굴을 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때 주신 라이언킹 비디오요. 저 지금도 가지고 있는 거 아세요?’

처음엔 그와의 추억 이야기부터 꺼내 들었다. 그가 나에게 말해 주었던 그의 기억들 위로 내가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이 덧씌워지면서 우리들은 많이 웃고, 울고, 욕했다. 욕은 당연히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처음엔 내 앞에서 그래도 나의 부모님인 둘을 흉본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던 그도 나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더 열을 내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나한테는-! ...아오, 이것들을 진짜!’

아빠는 그렇게 못 참고 화를 냈다가도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키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가 생각했을 때 내게 말해 주는 편이 덜 상처가 될 거라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선 기꺼이 기억을 수정하고 보태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엇갈려있었고,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가슴에 온기를 쌓아갔다.

‘그럼 진호야, 대학 생활은? 대학 생활은 어땠어? 우리 진호가 진짜 좋은 대학 갔다는 얘기 듣고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워낙 똑똑했으니까 잘 갈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싶고. 내가 다 뿌듯하더라니까!’

‘대, 대학이요?’

‘응. 나는 그, 아무래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사정이 아니었잖아. 그렇다 보니까 조금 로망이 있었거든. 우리 진호가 어떤 대학생이었는지도 궁금하고.’

창백했던 두 볼이 상기될 정도로 기대하는 아빠를 마주하고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했던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떠올리는 나의 대학 생활은 아르바이트와 휴학이 전부였다. 남들이 말하는 로망이라는 것에 들어맞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한때 주목의 대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친구 따라서 갔던 여행에서 게이인 걸 밝히고 한동안 유명인이었다- 라는 것은 자랑도 뭣도 아니었다.

또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예령이 옆에 붙어서 경험했던 것들을 미화하고 각색해서 말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 대학교에 진짜 유명한 동아리가 하나 있거든요. 지금도 아마 전설로 남아있을 만큼 동아리 회원들 한명 한명 다 장난 아닌 사람들이었는데요, 거기 있던 형이 어느 날 저한테 찾아온 거 있죠?’

은 개뿔. 쌍둥이가 찾아간 것은 예령이었지만, 나는 반짝이는 눈을 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를 향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미안하다, 채예령. 짧은 사과로 아픈 양심을 달래고 그 외에도 다양한 동아리 소속 선배들에게 연락받은 이야기, 조별 과제 하다 다른 과 학생들과 친해진 이야기, 한 학기에 대외활동 4개를 병행했던 이야기 등등을 말했다. 말하면서 새삼 채예령 진짜 알차게 살았구나 싶을 만큼 녀석의 에피소드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이야기들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같은 동아리였고, 채예령에게 특별히 잘해주었던 다섯 놈들이었다.

사실 채예령 입장에서 봤을 땐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고학년이었던 녀석들과 군대를 다녀와야 했던 채예령이 같이 대학에 다닌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사람이 참 세속적인 것이, 은근히 멋있고 잘난 다섯 놈들이라서 그런지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더 오래 남았었다. 거기다 회귀를 하고 나선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했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그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려면 또 얼마나 긴지,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나지가 않았다. 친구의 얘기를 마치 내가 겪은 이야기인 양 떠드는 내내 씁쓸함이 쓴 물처럼 올라왔지만, 그래도 웃을 수는 있었다.

“그럼 지금 진호 친구들은 예령이랑 하민이랑 은...수. 하하, 저기 있는 이름이랑 똑같네. 아무튼 그 셋이랑, 또 그 형들까지 아직도 다 연락하고 지내는 거야? 소꿉친구에 중고등학교 친구랑 대학교 선배들까지 다 있네! 우리 진호가 사람들이랑 엄청 잘 지내나 보다.”

“그럼요. 친구가 많지는 않은데, 다 저를 엄청 좋아하는 찐친들이에요.”

내가 정말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 속 진호가 드디어 회귀 후의 시간과 맞닿게 되는 지점부터였다. 그 이야기들 또한 그대로 말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령이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최태혁이 칼 맞은 사건은 가출한 사건으로 바꾸어 우당탕탕 동거생활로 각색해서 말하고, 민선우네 가정부 사건은 미약 부분을 편집하고, 쌍둥이가 둘에게 잡혀 온 것은 카메라와 도청기만 빼고 말했다. 정새빈은 그냥 오케스트라 보러 갔다가 침 흘린 것만 얘기했더니, 어쩜 그런 것도 나랑 똑같냐면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나는 놀이공원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았어?”

쌍둥이 중 한 명과 최근에 놀이공원에 다녀왔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그는 그렇게 물어왔다. 그날 이후 놀이공원이 내게 어떤 곳이었는지 알고 있는 듯한 질문에,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도 막히지 않았던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는 내 얼굴을 보더니 쓰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살짝 따끔할 정도로 거칠한 피부였지만 따뜻한 손.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면서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고, 아주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전 진짜 26살에 교복 입고 놀이공원 갈 줄은 상상도 못 했잖아요.”

그러면서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핸드폰을 켜 갤러리에 들어갔다. 순간 사진이 너무 없어도 걱정하시려나- 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막상 들어간 갤러리엔 ‘언제 이렇게 찍었지?’ 싶을 정도로 사진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보고하느라 찍은 밥 사진들, 내가 좋아서 찍은 하늘 사진들, 너무 웃겨서 찍은 깜찍한 손수건 들고 있는 최태혁 사진들과 쌍둥이 들이 사진 찍는 법 알려준다며 찍어댄 내 사진, 지네 사진, 같이 찍은 사진들. 그리고 누가 봐도 정새빈이 나 잘 때 몰래 찍어둔 것 같은 코 고는 동영상과, 카메라를 전환하지 않고 뭘 잘못 눌러 찍힌 것 같은 정새빈 사진이랑 짧은 동영상.

한참 내린 후에야 교복을 입고 활짝 웃는 내 사진이 나왔다. 이상하게 울컥 뭔지 모를 감정이 치솟았다. 나는 진정하기 위해 옆에서 같이 들여다보는 아빠 몰래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 눈썰미 좋게 뽀뽀하는 사진을 찾아내 이건 뭐냐고 묻는 아빠의 질문에 세상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많은 풍선은 다 어떻게 했어?”

“아, 나눠줬어요. 지나가는 애기들한테.”

“진짜? 그걸 다? 에이, 그냥 가지지! 왜 그랬어.”

아빠는 정말 아쉽다는 듯이 주먹으로 무릎을 콩콩 쳤다. 어렸을 때 잘 참았으니까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면서, 자꾸 그렇게 남 주고 그러지 말고 좋은 거 다 가지라고 성을 내는 모습에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그렇게 열 내주는 사람이 있어서일까. 괜히 더 겸양을 떨었다.

“양손에 들면 날아가겠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가져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줬어요. 그냥 그렇게 버려지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기분 좋아지면 좋잖아요.”

“아휴, 우리 진호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좌우로 저어지는 고개와는 달리 입가엔 미소가 가득한 얼굴을 보며 나는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늦어진 시간.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점점 침대 등받이에 몸을 눕다시피 기대고 있었다. 조금 피로해 보이는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고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등받이를 따라 아빠의 몸이 눕혀졌다. 나는 이불을 정리해주며 여전히 날 칭찬하기 바쁜 아빠에게 가볍게 물었다.

“화장실 안 가셔도 돼요?”

“응. 괜찮아. 지금은 안 가고 싶어.”

항상 똑같은 답변이지만 그래도 나는 물었고, 그는 답했다. 나는 그에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묻고, 그는 더 이상 내겐 그 어떤 힘든 일도 주기 싫다면서 답했다. 할아버지가 고용했다는 간병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에게 기대주면 좋으련만. 그는 고집스레 내게 어른으로 존재하고 싶어 했다.

나는 내 마음을 헤아리듯 뻗어 오는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대며 잠시 눈을 감았다. 사락거리는 머리카락 소리와 피부를 스치는 손가락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나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눈을 마주했다.

“내일 또 올게요.”

그에 아빠는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눈물이 그렁한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 또한 어제와 같은 고민,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해서 웃게 해드려야 하나 생각하며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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