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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172)화 (172/234)
  • 172화

    “나도 모르게, 그런 분에 넘치는.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힘들었나 봐. 마음이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몸 살리겠다고 별짓을 다 하고 있던 나에게 진호 너는, 네 그 활짝 웃는 얼굴은 마치 산들바람 같았어. 시원하고 청량해서, 모든 걸 다 잊고 잠시나마 웃게 되는 그런, 그런 존재였어.”

    어쩌면 성취감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매일 아파야 하고, 그런 아픔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하게 해야 하는 그가, 누군가를 웃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숨통을 틔워주었다고 말했다. 아, 나도 조금은 쓸모가 있구나. 이 아이에겐 이런 나라도 필요할 수 있겠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한 생각인가 싶지만, 그때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을 기점으로 그는 나와 만나는 날을 늘리기 시작했다. 만나는 날이 늘어가고, 나와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는 더욱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즈음 그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멋대로 가족이라고 생각했어. 실제론 네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그래야 마땅한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 참 이기적이었지. 내가 그럴수록 너는 더 혼란스러웠을 텐데, 근데도 나는 너를 만나고 싶었어. 그래도 네게 해가 되는 것보다 도움이 되는 점이 더 많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했어.”

    그러다 놀이공원 사건이 터졌다. 그는 손등으로 턱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본인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려는 신의 경고 같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 둘은, 하고 무슨 말을 시작하려다 삼키고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다물어버리던 그는, 긴 한숨 뒤에 그 둘에게 원래 그런 면이 있다고 말했다. 워낙 독립적으로 커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나이의 아이가 돈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날의 일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기중심적인 어른들의 판단에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에 대한 공감은, ‘미안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정도에서 그쳤다.

    우물쭈물 망설이며 꺼낸 말들에 엄마와 아버지가 지었을 표정이 오버랩되어 그려졌다. 그래서 피식, 코웃음이 나와버렸다. 다음 날 예령이네 집에 있던 나를 데리러 와서 날 끌어안고 했던 엄마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미안해, 아들. 근데 엄마가 너무 바빴어.’

    늘씬한 정장 차림이었던 엄마의 품은 좋은 향기가 났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미안해. 그날 철없이 내가 더 신나는 바람에. 그래서 내가 관리를 못 했어. 그래서, 그래서 네게 너무 큰 잘못을 했어. 내가 진호 널 다시 만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땐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있어서, 괜히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걸까 봐. 그래서 그때 사과도 못 했어.”

    미안해. 그는 참담한 얼굴을 하고 작게 몇 번 더 사과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손을 마주 잡은 채 엄지로 손을 쓸면서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적극적으로 치료받기 시작했어. 똑같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 그건 정말 네게 못 할 짓이라고 생각했어. 여러모로 내가 나아지는 게 그나마 네게 도움이 될 거 같았어. 한심하게, 그걸 내 나름의 속죄라고 여겼어.”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에 답을 해주듯 그의 몸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계속해서 어딘가에서 새롭게 발견되던 암세포 소식은 멈췄고, 새롭게 시작한 약이 잘 맞았는지 원래 있던 암세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 덕분인 것 같다고 의사가 그러더라면서 그가 입을 일자로 만들었다가 간신히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었어. 네가.... 음. 나와 같다는 이야기.”

    그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내가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서 얘기했다.

    그때만큼은 그의 공허하던 눈이 또렷했다. 그저 힘든 길인 걸 알고, 어떤 시선을 받는 길임을 알기에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초점은 다시 흐려졌다.

    “나라는 존재로 인해 어린 네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면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결론에 다다랐을까. 내 이기심으로 나 자신을 위해 외면하던 사실을 그제야 인정했어. 네겐 여전히 제대로 된 가정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었지.”

    네 엄마는 그런 가정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었다는 걸. 엄마가, 아버지에게 품은 마음을. 알고 있었구나. 다행히 아버지도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기만 숨을 죽이고 있다 보면. 어쩌면 정말로 그 둘이 아주 조금은 정상적인 부모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면서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가 더 작아 보였다.

    “다행히 내 몸 상태도 좋아서 둘을 설득하기도 어렵지 않았어. 아픈 것도 점점 나아지는 중이라 혼자 생활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고. 둘도 잘, 지내는 것 같았어. 둘 다 나에겐 별말이 없었거든. 그래서 마음을 놨던 것 같아. 방심했던 거야.”

    방심의 결과는 암세포 전이로 나타났다고 그가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도 그 소식이 처음은 아니라서 그는 별로 놀라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암 환자에게 암세포 전이는 흔한 일이었다. 그런 걸로 큰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는 횟수를 줄여가던 병원 방문이 점점 늘어나고, 진료 결과가 계속 좋지 않은 와중에도 친구들에겐 침묵했다.

    그러다 결국 쓰러진 그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그의 시력에 문제가 생겨 있었다.

    “그 상태로 널 만날 수가 없었어. 내가 또 너에게 못 할 짓을 했고,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네 앞에 설 수가 없었어. 알게 하고 싶지 않았어. 우.... 흠. 큼.”

    그는 습관처럼 우, 하는 소리를 냈다가 얼은 듯 멈추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잔뜩 일그러진 미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진호 네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너는 참 어른스럽고, 착한. 예쁜 아이라서. 알면 안 될 것 같았어. 근데 또 그 와중에도 너를, 널 볼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어서. 잠깐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은 너를 보러 갔지만.”

    아, 그랬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서 나를 피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아니, 어떻게 보면 미안해서 피한 것은 맞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훨씬 나를 위한. 나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

    이상했다. 이상하게 코끝이 아렸다. 나는 그 아린 느낌을 없애기 위해 손등으로 강하게 코를 비볐다. 그런데 이번엔 눈이 뜨거웠다. 그러더니 목이 칼칼했다. 나를 묘하게 비켜 갔던 시선은 내가 보기 싫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아서였구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묘하게 차오르는 안도감이, 있는지도 몰랐던 불안이 가시는 이 느낌이 영 이상하고 어색했다.

    나는 속에서 꿀렁이는 무언가를 침과 함께 꿀꺽 삼키고 더듬더듬 질문했다.

    “지금은. 지금도 설마 잘 안 보이세요?”

    “...아니. 일부긴 하지만 시력은 돌아왔어. 물어봐 줘서 고마워. 근데 눈은 이제 정말 괜찮아.”

    날 향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거짓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코를 찡긋하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람 몸이란 참 신기하지? 지금은 나도 그래, 눈이 안 보일 때도 있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잘 보이는 거 보면.”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눈을 기점으로 온갖 증상들이 다 찾아왔다고,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종내엔 잠시도 병원을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그렇게 그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 연락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의 존재는 나에게 혼란만 줄 거라는 생각에 직접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 얼굴 비추던 사람이 없어지는 것에 마음 쓸까 봐, 혹시 내가 그에 대해 물으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달라 부탁했었다고. 내가 그에 대해 물으면. 나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연락을요. 연락을 드리고 싶었, 는데. 근데 제가 해도 되는지 고민을 하다가요. 그러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요. 그러다 어른이. 어른이 됐는데. 그래서 염치가 없어서요. 결국 못했어요. 제가 아집을요, 고집을 부리다가 늦어버려서.”

    나는 매번 늦었다. 내가 그 집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가 없어지고 나서야 깨달았고, 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다는 것도 그가 영영 떠나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바라던 애정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또한.

    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가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가만히 듣더니 내게 그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약간 어그러지긴 했지만 얼굴엔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가 띄워진 채였다. 그의 행동에 말을 멈춘 나는 한동안 눈만 깜박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춤주춤 망설임을 담은 발걸음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한참을 걸려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그의 침대 옆. 그의 손이 툭툭 친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내게 그가 팔을 벌리더니 내 목을 감싸 당겼다.

    “괜찮아, 진호야.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걸까. 그 질문을 하려고 벌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 괜찮아. 늦지 않았고, 네가 염치없을 일은 하나도 없었어. 고민해줘서 고마워.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 이렇게 번듯한 어른이 되어 찾아와줘서, 무사히 어른이 되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속삭여오는 소리가 너무 아프고 따뜻해서,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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