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지금까지 거쳐왔던 병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데스크와 조용한 병동 안.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간호사 선생님의 밝은 웃음으로 환영받은 나는 일반 입원실보다 커다란 문 앞에서 섰다.
[김은수]
참 어색한 이름이었다. 본관에서 먼 병동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걸어오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이름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이름으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그러나 도착한 병실 옆 투명한 플라스틱 이름표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가 알고 있는 이름, 이민영 대신 서류에 적혀있던 ‘김은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후....”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아주 가늘게 내뱉으며 긴장을 떨쳐내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정말 만에 하나 최태혁이 틀려서 안에 있는 김은수 씨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땐 정중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다.
주먹 쥔 손 안쪽에 땀이 흥건해서 괜히 엄지로 손바닥을 몇 번 쓸고 나서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드디어 꽉 주먹 쥔 손을 문 앞으로 가져다 댔다.
똑똑.
맑게 울리는 노크 소리가 병동 전체에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는 바람에 귓가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없지. 한 번 더 해야 하는 건가? 안에서 혹시 자고 있나? 그럼 노크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떡하지?
눈 몇 번 깜박이는 게 전부였을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선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세요? 들어오세요.”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말았다 하던 나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 문이 두꺼운 건지, 안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만큼 가느다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목소리가 매우 희미하게 들렸다. 기억 속의 목소리와 비교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나약하고 힘없는 그런 목소리. 목소리를 들으면 알아보지 않을까 내심 자신하던 내가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은색 홈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미닫이 식인 것 같아 잡고 옆으로 밀자마자 스르르, 아주 부드럽게 틈이 생겼다. 안에서 확 풍겨오는 따뜻한 온기. 여기까지 찾아와 놓고, 문까지 제 손으로 열어 놓고도 뭐가 그렇게 망설여지는지 나는 바닥을 보고 있던 시선을 채 올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실... 례합니다.”
그렇게 뱉은 인사말의 어미가 조금 떨리긴 했지만, 다행히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나머지 말을 이었다.
“여기에 혹시 이... 민영 씨라는 분이 계실까요.”
따뜻한 색으로 인테리어 된 넓은 병실과 그 안에 있는 커다란 침대,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까만 밤. 그와 대조되는 환한 불빛과 은은한 약 냄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침대 위 깡마른 한 사람.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며 모든 풍경을 눈에 담았다. 손끝이 떨리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고요한 정적이 일고, 창가를 보던 고개가 나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잘못 찾아오셨습....”
얼굴이 채 나를 향하기도 전에 한숨처럼 나오던 말은 휘둥그레지는 눈과 함께 멈춰 버렸다. 그리고 서서히 당황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스며드는 얼굴을 마주한 나도 마찬가지로 멈춰 버렸다.
그렇게 얼마간을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 누군가 가만히 서 있던 나를 지나쳐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침묵 속에서 마주하고 있던 시선은 동시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을 향해 꽂혔다.
“실례합니다. 잠깐 내부를 좀 확인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 네. 그러세요.”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백팩을 맨 남자가 정중히 묻는 말에 병실의 주인이 얼떨떨한 허가를 건넸다. 남자는 간결한 목인사 뒤에 병실 안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에 잠깐 멈칫하더니, 주머니를 뒤적여 손수건을 꺼내 어떤 물건 위에 덮었다.
“카메라는 보안용으로 설치하셨나요?”
“...네?”
“보안용이라면 김진호 씨가 여기 머무시는 동안 저희가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깡마른 손이 이마를 짚었다. 스륵 흘러내린 환자복 사이로 드러난 손목은 아이가 쥐어도 부러질 것 같을 만큼 가느다랬다. ...카메라. 한숨과 같이 흘러나온 중얼거림엔 자조가 섞여 있었다. 본인이 한 발언에 사람이 놀라거나 말거나 짧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차린 남자는 나에게 걸어와 물었다.
“내부 확인 마쳤습니다. 위험 요소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만 카메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도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치를 원하십니까?”
그 말에 병실 주인은 이불을 쥐고 있던 손까지 들어 양손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애써 눈을 떼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경호팀장님에게 얼이 빠진 사람처럼 답했다.
“조치라면....”
“인원을 투입하여 찾는 방법과 다른 기기를 사용하여 찾는 방법, 도청기의 유무보단 그저 혹시 모를 예방만 하고 싶-”
“아뇨! 아뇨. 저, 아니요. 괜찮아요. 조치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상황 이해가 가지 않아 말꼬리를 잡아 한 질문에 우다다 쏟아지는 설명이 퍽 당황스러웠던 나는, 얼른 손을 내저으며 경호팀장님의 말을 잘랐다. 본인이 질문해놓고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법한 행동에도 경호팀장님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이 괜찮으시다면 내부에서까지 저희가 동행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희는 밖에서 대기할까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팀장님도 그걸 예상한 눈치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한 번 더 병실 안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더니, 아주 미세한 턱짓으로 침대를 가리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모르니 ‘사람’으로부터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허공을 보고 있는 그 사람을 힐긋 곁눈질했다. 경호팀장님은 내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들어올 때처럼 성큼성큼 병실을 벗어났다.
드륵, 탁. 상체만 뒤로 해 그 뒷모습을 보다가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천천히 어깨를 돌렸다. 다시 그 사람을 향한 시선. 그는 그 시선을 기다렸다는 듯이 꼿꼿하게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하, 정신이 하나도 없네.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털털하고 장난기가 섞인 말투였다. 내 기억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당황한 시선을 감출 수 없었다. 최태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내가 찾던 그가 아닐 수도 있다고 외치던 희망 위로 백 톤짜리 추가 쾅, 떨어진 느낌이었다.
“어.... 일단. 큼. 일단 인사를 해야겠지?”
그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서는 볼을 긁으며 말했다. 인사. 무슨 인사?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오고,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밖에 적혀있던 이름과 다른 사람을 찾는 질문을 했을 뿐 서로를 향한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마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놀라 경황이 없었을 테고, 나는. 나는.... 생각이 멈췄다. 목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진짜 이러지 마, 김진호.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우는 건 진짜 하지 말자. 스스로를 억제하기 위해 손톱이 손바닥을 아프게 누를 정도로 꽉 주먹을 쥐었다. 인사가 뭐 별거라고. 그저 인사를 하자는 것뿐인데. 그냥 안녕하세요, 만 하면 되잖아. 그게 아니면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잘 지내셨어요? 아니, 이건 다른 인사를 한 다음에 물어봐야 하는 건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오늘 내내 뇌가 잘 안 굴러간다 싶더니, 이 병실에 들어오고 나서부턴 유독 사고회로가 더뎠다. 내가 쓸데없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새 그는 어느새 침대에서 벗어나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땀에 절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아주 천천히, 누가 보면 느릿느릿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던 그는 자리에 서자마자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진호야.”
언뜻 봐도 푸석한 피부, 움푹 패여 들어간 볼과, 하얀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생기 없는 입술에 피곤이 가득 어린 눈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키가 더 작아진 것 같은 그는, 그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쓰러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런 주제에 날 향해 옛날처럼 웃고 있었다. 말투는 또 왜 그때처럼 산뜻한 바람 같은지. 미소와 말투만 보면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앙상한 체구에 차마 말문이 막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