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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167)화 (167/234)

167화

그날은 하늘이 참 파란 날이었다. 나는 어딘가의 펜션 앞마당에서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는 말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드디어 저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바로 이어서 보이는 한 사람.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엄마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민영아!’

깜짝 놀라 올려다본 엄마는 환한 얼굴로 빈손을 번쩍 들어 흔들고 있었다. 엄마의 활짝 웃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보다가 인기척을 느끼고서야 퍼뜩 고개를 돌렸다.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여자인 엄마와 체격이 비슷할 정도로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몸을 흔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희, 기어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분노가 아니라 실망과 절망, 슬픔 등에 못 이겨 일그러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그는 잡히지 않은 손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때리는데도 흔들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닌 그의 몸이었다.

‘민영아, 진정해. 너 이러다 또 쓰러져!’

‘이민영!’

엄마와 아버지는 그런 그를 보면서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몸이 제힘에 못 이겨 휘청거리자 아버지는 그의 어깨를 잡았고, 엄마는 뒤에서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묻었다.

‘어디까지 하려고 이래. 어떻게 하려고.’

도대체 무슨 벌을 받으려고 그래. 참담함을 가득 담은 어조로 말하며 그가 흐느꼈다. 그의 몸은 앞뒤로 지탱하고 있는 아버지와 엄마가 아니면 이미 바닥에 쓰러졌을 것 같이 축 처져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이대로 기절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그때, 내 이름이 불렸다.

‘민영아, 인사. 인사부터 해. 응? 우리 아이, 진호야. 김진호.’

서 있던 자리에서 몸을 움츠린 채 숨을 죽이고 있던 나는 엄마의 눈짓을 따라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뭔가를 참는 모양새였다. 눈치가 없지는 않지만 빠르지도 않았던 나는 가까이 오라는 것 이상의 눈짓은 알아듣지 못했다. 뭘 하라는 걸까. 내가 뭔가를 말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린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로 젖은 창백한 얼굴. 그는 아랫입술을 콱 깨물더니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숨 같은 날숨을 길게 내쉬더니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놔.’

‘인사 먼저 하고-’

‘알겠으니까 놓으라고.’

단호한 그의 말에 아버지와 엄마는 머뭇거리면서도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쓰러질까 걱정이 되어 그러는지 아버지의 팔은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마른세수로 대충 눈물 자국을 훔쳐내더니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미안해. 아저씨가, 아저씨가 조금 일이 있어서. 놀랐지?’

미안해. 그 사과를 받고 나는 반사적으로 엄마를 힐긋 확인했다. 그를 보고 있던 엄마는 순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게 눈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엄마를 따라 그를 향해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눈매가 또 일그러진다 싶더니 손이 눈을 가려버렸다. 그는 눈을 가린 채 입술을 깨물고 얼마간 있다가 손을 내렸다. 그리고 느릿느릿 힘겹게 입꼬리가 곡선을 그렸다.

‘안녕, 진... 호야. 나는. 아저씨는. 진호 아빠랑 엄마랑 친구인 아저씨야.’

제법 자연스러워 보이는 미소와 달리 그의 눈은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 뒤 내가 어떻게 했더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그런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악수를 했던가. 아니면 그저 허리 숙여 인사를 했던가.

뭐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렸던 나는 단지 아버지와 더 친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아버지 친구’라고 부르기로 결정했고, 그건 내가 그의 진짜 위치를 알고 나서도 변함없었다.

최태혁은,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생각보다 더 노골적으로 붙어 경호하는 사람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일을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다시 감금하려고 할까 봐 정시에 딱 맞춰 퇴근하고 얼른 집에 가서 녀석에게 전화하기를 며칠. 오늘은 퇴근 시간이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진호 씨, 나 먼저 들어가요. 내일 봐요!”

“네, 들어가세요. 내일 봬-”

요. 마지막까지 같이 있던 과장님까지 내 배웅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나섰다. 큰 사업을 하나 끝내고 잠깐 여유 있는 시기가 온 사무실은 드물게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경호원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책상을 향해 앉았다. 꺼져있는 노트북 화면에 착잡한 표정의 내가 보였다.

‘찾았다.’

최태혁의 그 말이 오늘 하루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녀석은 자세한 것은 문자로 보내겠다며 오늘은 일찍 들어올 필요 없단 말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나는 곧이어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고 그대로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호스피스 병동 1203호]

그 앞에 적혀 있는 병원 이름은 분명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사람은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때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든 것은 의문이었다.

[김은수]

뒤에 따라오는 이름이 생소했다. 한 번도 부를 일은 없었지만, 나는 분명 그의 이름을 알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그를 부를 때는 꼭 이름을 불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민영. 이민영. 알고 있는 이름과는 한 글자도 겹치는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적혀 있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해소되지 않는 그 의문이 지금까지 나를 사무실에 붙들어 놓았다.

나는 십 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을 켜 연락처 목록을 살폈다. ‘아버지’ 위에서 맴돌던 엄지는 조금 있다 ‘엄마’ 위에서 머물렀다. 얼마간 망설이던 나는 이번에도 전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다시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무너지듯 팔 위로 엎드렸다. 기껏 찾아줬는데 아버지와 엄마한테 연락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쥐었다.

최태혁이 그 사람이 맞다고, 다섯 번이나 확인해줬잖아. 맞기는 할 거야. 근데 문제는 이대로 그냥 찾아가도 되냐는 건데.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름까지 바꾸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불쑥 찾아가도 되는 걸까? 먼저 연락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심지어 우려했던 대로 내가 알고 있던 번호와 최태혁이 보내준 그의 번호는 전혀 다른 번호였다. 나는 기계적으로 자리를 정리하며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나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도 그였지만, 내 존재에 대해 가장 괴로워하던 사람도 그였다. 유일하게 내 처지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어쩔 줄 모르던 사람. 그런 그에게도 나는 잊고 싶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었을 텐데. 너무 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퍼 올린 가방을 품에 안고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 번호가 김진호 씨 번호가 맞나요?]

회귀 전 받았던 메시지. 팍팍한 삶을 살고 있던 나는 모르는 번호라는 것을 알자마자 보이스피싱일 거란 생각에 벼룩의 간을 빼먹을 새끼들이라고 욕을 했었던 것 같다. 답장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똑같은 번호로 한 통의 메시지가 더 왔었다.

[이민영 씨와 관련하여 연락드립니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김진호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혹시 만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연락드리오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답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 문자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내가 뭘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고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고민은 끝났다.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향해 걸었다. 어쩐지 매일 하는 행동인데 하나하나 지나치게 의식되었다. 맨 가방을 한 번 더 추스르고 사무실을 벗어나니 바로 앞에 경호원 세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짧은 목인사 후 한 명만 제외하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고 생각하며 날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남자에게 머뭇머뭇 가방을 건넸다. 그리고 받아 든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메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오늘 혹시, 들으셨는지.....”

“중간에 어디 들리신다는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이라 도보로 이동할 거라고 들었는데, 필요하시면 차를 대기시키라 할까요?”

사무적인 투로 말하는 내용에 나는 고개와 양손을 좌우로 저었다. 차는 무슨. 다른 건물이라 조금 멀긴 해도 같은 병원 부지 내에 있는 곳인데 뭘.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면 훨씬 빠르고 편할 수야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라도 걸어가고 싶었다. 내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은 내 옆에, 나머지 두 분은 거리를 좀 두고 내 앞과 뒤에 서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땀이 흥건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가자. 이번엔 늦지 말자. 속으로 그렇게 외우며 병원 내 지도를 보고 미리 외워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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