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털썩-
두 명의 남자들이 들고 있던 무언가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당황스러운 상황 때문에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아주 미약하지만 틀림없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으… 살, 살려 주….”
손이 비자마자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남자가 뭔가에 답하는 것처럼 내 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본인이 던진 물체에 손을 뻗은 그는 그대로 뭔가를 틀어쥐더니 팔을 들어 올렸다. 소매를 걷어 올려져 있어 드러난 팔에 힘줄이 도드라지는 것을 멍하니 보던 나는 째지는 비명을 듣고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아악- 살려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아려올 만큼 머리채가 잡힌 물체, 아니, 사람은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빌었다. 아프고 간절해서 그런지 군데군데 휑한 치열이 다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쳤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있는 데다 멍과 상처로 뒤덮인 얼굴로 미루어볼 때, 맞다가 이가 몇 개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점점 가빠져 오는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고 아래로 쓸어내렸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내린 시선에 포착된 사람의 하반신을 보고 그런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는 사람은 양다리에 모두 깁스를 하고 있었으나, 그 깁스는 온통 피범벅에 이리저리 금이 가 있었다.
“김진호. 숨. 숨 쉬어.”
“...허억-”
아,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나 보다. 급격히 들어오는 산소에 머리가 띵하면서도 살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턱을 잡아챈 팔을 쥐었다. 형, 형.
“이게, 이게 뭐, 저게 무슨.”
손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는 끝내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뇌가 기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머리채가 잡혀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시감에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목 대신 눈동자만 굴려 관찰했다. 아는 사람들을 순차적으로 떠올리며 눈앞의 사람과 대조해봤지만, 상태가 상태인지라 그 누구와도 매치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를 한 번 꽉 물었다가 힘을 뺀 내가 머뭇거리며 최태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줄곧 살려달라고 외치던 사람의 입에서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김, 김진, 진호! 김진호!”
눈꺼풀에 묻혀 있던 눈이 아주 조금 커지더니 마주 비벼지던 손 중 하나가 나를 향했다. 그 사람의 검지는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고,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간절하게 불려지는 것은 분명 내 이름이었다.
내 눈에 익숙하고, 나를 아는 사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가득 들어찼던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당황이 스며들어서인지 몸의 떨림이 점차 가라앉았다.
“나야, 나, 나 상, 아아악!”
머리채를 잡고 일으킨 후에 미동도 없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손을 이리저리 세게 흔들었다. 가슴을 팡팡 치며 자기 이름을 말하려던 사람이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떨며 몸이 움직일 때마다 무력하게 딸려가는 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다시 가빠져 오는 숨을 몰아쉬면서 비명으로 끝났던 단어를 되뇌었다.
반말. 나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 나이가 많거나 동갑인, 내 이름을 아는 사람. 상으로 시작하는.... 상. 설마.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외면하기 위해 더욱더 생각에 몰두하던 머릿속으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상혁. 박상혁.”
“잘, 잘못했어요, 살려, 어억, 살려주세요.”
막상 떠올리고 나서 보니 부었어도 얼굴엔 어렴풋이 박상혁의 생김새가 남아 있었고, 잔뜩 쉬긴 했으나 목소리 역시 박상혁이었다. 항상 우두머리처럼 다른 동급생들을 거느리며 다니던 녀석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내 눈앞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발길질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놈이 맞았다.
나는 당황과 의문에 휩싸인 채 일방적인 폭력을 보다가 나를 보고 손을 뻗는 박상혁의 모습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내 눈높이까지 상체를 기울인 최태혁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널 위해 여기까지 가져온 거니 잘 봐야지, 김진호.”
왜. 왜. 오늘 아침까진 안 그랬는데. 방금 전에 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나한테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박상혁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얼마간 망설이다가 무릎에 놓인 손을 마주 잡으며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왜, 왜요. 왜, 왜 나 보라, 보라고.”
내가 간단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들은 최태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고작 이 정도로 숨도 못 쉴 만큼 무서워할 거면서 왜 자꾸 말을 안 들을까. 응?”
고저 없던 어조에 안타까움이 실렸다. 표정도 풀렸으려나. 아까처럼 소름 끼치는 무표정은 아닐 것 같은데. 힐긋 곁눈질로 확인하려다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황급하게 눈을 내리깔았고, 녀석은 곧 굽혔던 상체를 피면서 말을 이었다.
“저 지저분한 걸 여기까지 가지고 온 건 보여주기 위해서야. 백번 말하는 것보단 한 번 보여주는 쪽이 네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뭘 알아들어야 했기에 이런 광경을 봐야 하는 걸까. 의문이 담긴 눈으로 녀석을 올려다보자, 녀석은 내내 나를 보고 있었던 건지 바로 또 눈이 마주쳤다.
“진호야.”
나직하게 불리는 내 이름.
“...네.”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조그맣게 대답했다. 내 짧은 대답을 듣자마자 피식 웃은 녀석이 내 볼을 주욱 잡아 늘였다. 손속이 제법 매웠지만, 나는 눈치를 보느라 아프단 말을 하지 못하고 입 안쪽 살을 깍 깨물었다.
“내 강아지는 가끔 멍청한 척을 하긴 해도 정말 멍청하진 않으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를....”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는 말에 볼을 꼬집던 손가락이 미간으로 향했다. 눈 가까이에 쑥 다가온 덕분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자 미간을 힘주어 꾹꾹 문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 말을 듣고 흡,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대놓고 있었으나 녀석은 굳이 입에 담지 않고, 나는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던 유리 벽 하나가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얘기하는 거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최태혁은 긴장으로 몸을 굳히고 자기를 올려다보는 나를 그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어렴풋이 추측만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고민하며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최태혁 몰래 주먹을 한번 쥐었다 피며 최대한 순수하고 멍청해 보이도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몰, 몰라요. 저는 그런 건 생각 해본 적 없, 없고. 그래서 몰라요.”
작게 도리질까지 치는 나를 보는 최태혁의 입술이 희미하게 곡선을 그렸다. 알 수 없는 눈빛이 파들거리는 입가에 와서 꽂혔다.
“모른다, 라....”
“형은, 형은 회사 팀장님이잖아요. 그냥 그것만 알아요. 그냥 큰 회사 팀장님인 것만-”
최태혁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쓸데없이 말을 주절거리는 내 말을 끊었다.
“회사. 그래, 회사를 다니고 있긴 해. 술, 도박, 약, 사람, 장기 안 파는 게 없는 회사. 그래서 여기저기서 영 성가시게 하고, 좋은 말로 하면 들어먹질 않아서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 그런 업계.”
다 들었다. 듣고 말았다. 아무리 못 알아들은 척을 하려 해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설명이 마치 함정같이 느껴졌다.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 날 감금하겠다는데 내가 뭘 어쩔 거야. 저런 사람이 내 눈앞에 넝마가 된 동창을 갖다 놨는데 여기서 내가 뭘 어쩌겠어.
박상혁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보여주기 위해서.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 의도가 뭘까. 내가 도망가면 저렇게 만들어버리겠다는 경고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기서 더 말대꾸를 하기만 해도 저렇게 만들 거라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도망갈 구멍도, 아까까진 가능할 것도 같았던 설득도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당황이 내리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영역을 넓혀갔다. 나는 몇 번 입을 어물거리다가 고막을 강타하는 커다란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살려달라고! 김진, 어억, 호! 제발, 제발!”
고개를 돌린 곳에 보이는 박상혁은 입과 코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트림과 동시에 나는 다급하게 최태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