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다시 다리를 오므리기 위해 힘을 줘봐도 최태혁의 손에 눌린 다리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 가볍게 누르고 있는 것 같은데 미동도 없는 모습에 허탈함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는 수 없이 자유로운 다른 쪽 다리를 들어 녀석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젤 통을 집어던진 손에 잡혀 녀석의 어깨에 종아리를 걸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안 풀어두면 아픈 건 너다, 똥강아지.”
“그러니까 이걸 꼭 해야만 하아으, 으, 으응.”
본인의 어깨에 걸쳐 얼굴 옆에 자리하게 된 내 무릎에 입을 맞춘 최태혁은 예고도 없이 쑥, 내 뒤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투덜거림을 참지 못한 나는 몇 번을 겪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이물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젤을 아낌없이 부어버린 녀석 덕분에 고통 없이 너무도 손쉽게 들어온 손가락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벽에 젤을 바르면서 내부를 넓혀갔다. 그리고 하나였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났을 때, 구멍 안쪽이 심상치 않게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뜻, 뜨거, 또오, 흐아, 아.”
“하, 여전히 겁이 많구나. 인체에는 무해하니 걱정 마라.”
아냐, 이게 무해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뜨겁기만 한 게 아니라, 간지럽다고. 나는 고개 숙여 허벅지 안쪽에 다정히 입을 맞추며 말하는 최태혁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다른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게 올라오는 열감과 함께 미약했던 간질거림이 점점 더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지고 있었다.
“아, 아아 왜, 왜!”
“가만.”
간지러운 부위를 긁고 싶은 마음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엉덩이 쪽으로 뻗은 두 손은 뭘 해보기도 전에 최태혁에게 잡혀버렸다. 엉덩이를 긁으려고 하는 순간 잡힌 덕인지 아쉬운 마음에 몸은 안달이 났지만, 이미 녀석의 손에 양 손목이 잡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애타는 마음에 볼을 시트에 세게 비비면서 제발 뭐라도 해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심정을 토로했다.
“간지, 흐으, 러워, 요. 흐윽, 안에 가아.”
“그래.”
씨발, 씨발, 씨발. 눈물이 고였는지 흐릿한 시야에 잡힌 최태혁은 타액을 넘길 정신도 없이 괴로워하는 나와 달리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뭐라도 해보려고 허리를 들썩이며 몸부림을 치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며 천천히 내벽을 넓히는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서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괴로운데 왜 지켜만 보는 거야. 왜, 안 도와줘. 손가락만, 그것만 조금 더 빨리 더 세게 움직여만 줘도. 안쪽에서 시작된 간지러움이 이젠 온몸으로 퍼져 나가다 못해 이젠 몸속과 뇌까지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괴로움에 못 이겨 이 상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유일한 상대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 어떻, 흐윽 어떻게 좀, 으응.”
이성이고 뭐고 간질거림을 해소하고 싶어 허리를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빨리 안쪽이 긁혀 나가는 느낌이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최태혁은 내가 입으로 애원하면서 그의 손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허릿짓을 하는 것을 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이다. 조금만 더 참아.”
“아냐, 아, 못해에. 흡, 못한, 힉, 다굿!”
없던 자존심까지 다 버리고 애원했건만, 냉정하게 고개를 젓는 최태혁을 보며 나는 기어코 울음이 터져버렸다. 녀석은 쉬- 하고 나를 달래며 천천히 몸을 숙여 내 위로 엎드리더니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안이 충분히 넓혀졌다고 생각했는지 손가락을 동시에 두 개나 더 욱여넣는 힘엔 자비가 없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입구에 반사적으로 흠칫 몸을 굳혔던 나는 내벽을 긁어내리는 자극에 목을 젖히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아아, 안, 그읏, 만.”
“쉬- 착하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돼.”
그 뒤로 녀석은 내가 싼지도 모르고 사정한 뒤 다시 단단해질 때까지 내벽을 긁어내렸다. 자극당할 때마다 찌릿한 쾌감이 간지러움을 멈춰주었지만, 최태혁은 나를 약 올리듯 자극과 자극 사이에 충분한 텀을 두었다. 몸이 경직될 정도의 강한 쾌감 뒤 녀석이 또다시 그저 내벽을 벌리기만 할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더듬더듬 녀석의 머리카락을 잡고 애처럼 훌쩍거렸다.
“제발 혀, 하으, 혀엉. 제발요. 응?”
너무 괴로워요. 섞여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겨우 말을 끝내고 올려다본 최태혁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내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쾌감이 멈췄다고 그새 간지러워지는 몸을 시트에 비비며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 녀석을 재촉했다.
“빨리, 어떻게 좀, 하아, 해줘요. 빨리.”
“가만히.”
최태혁은 꽉 찬 젤 통을 내 입구에 꽂은 채 한 번 힘을 주어 짜내더니 빼고 내 다리를 활짝 벌렸다. 입에 물고 있던 콘돔을 뜯는 것까지 본 나는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감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멍한 정신이 순간적으로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다급해 잊고 있었던 그것. 눈물 콧물 쏙 뺄 만큼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최태혁의 것이 내 구멍을 비집어 여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찢, 아윽, 찢어, 져엇.”
“그만큼 풀었는데도 좁군.”
간지러움이고 뭐고 신체 일부가 찢어질 것처럼 벌어지는 감각은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왔다. 보이진 않지만 느껴지는 대로라면 입구를 통과하지도, 그 이상 들어오지도 못할 것 같은데 뜨겁고 두꺼운 것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최태혁은 내 오금에 손을 집어넣고 다리를 활짝 벌리며 힉힉, 얕은 숨만 겨우 들이쉬고 있는 내게 거의 다 끝났다 거짓을 속삭였다.
“안, 허억, 안돼. 이건, 아, 그윽, 마학.”
“힘, 후우. 풀어. 다친다.”
끝도 없이 들어오는 몽둥이에 헛구역질까지 나올 지경이었으나 끔찍하게도 녀석은 아직 더 들어올 게 남았다는 양 내 골반을 당기고 있었다. 망가질 거야. 이건, 진짜 나를 망가트릴 거야. 뒤로 두 개를 받아들였을 때보다 더한 위기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찢어질 거라는 두려움과 내벽이 늘어나는 압박감은 그때가 더 심했지만, 이렇게 들어와선 안 될 곳까지 무언가가 들어차는 압박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입으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압박감에 얕게나마 쉬고 있던 숨까지 턱 막혀 끅끅대기 시작할 즈음이 돼서야 최태혁이 만족감 어린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다 들어갔어. 잘 참았다, 내 강아지.”
“잇, 끄흑, 이제 빼줏, 세요.”
나는 내 머리를 쓸어올리며 칭찬하는 최태혁의 팔을 잡고 말했다. 숨이 모자라 아주 작은 목소리밖에 내지 못했지만 내가 내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방이기에 충분히 들릴만한 정도였다. 예상대로 녀석은 내 말을 들었는지 설핏 미간을 찌푸리며 볼록해졌을 것만 같은 내 배를 아주 살살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많이 괴로운가? 응?”
“느, 네에. 헉, 네. 힘드흡, 러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녀석의 것이 들어차 있는 내장이 찢어질 것 같아 무서웠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내 배를 쓰다듬는 손은 놔두고 내 다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잡고 끌어당겼더니 생각보다 더 순순히 끌려와 주었다. 녀석의 몸이 내 쪽으로 더 굽어져 더 깊숙이 박힌 것에 헛구역질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고, 나는 커다란 손에 볼을 기대고 속삭였다.
“혀엉. 강, 흐윽, 강아지이. 힘들, 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엔 귀엽지도 않은 사내 녀석이 해서 얼마나 먹히겠나 싶었으나, 지금 당장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나를 강아지로 보는 것 같으니 그것을 이용하여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나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끼잉거리는 강아지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비슷해 보이기 위해 나는 부러 더 울먹이며 녀석의 손에 볼을 비볐다.
“하. 김진호, 너.”
눈물이야 이미 넘치도록 흐르고 있어 따로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로 애처로우면 한 번쯤은 더 봐주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주지 않을까.
조그맣게 솟아나는 희망을 안고 생각에 잠긴 듯한 최태혁의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그러자 마법같이 장까지 침범한 것 같았던 녀석의 것이 들어온 것보다 더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눈을 빛내며 최태혁의 얼굴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마, 흐, 고마워요. 형. 제가 참아보려고 했는, 으응, 데.”
들어올 때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처럼 나갈 때도 녀석의 것은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빠져나갔다. 나는 행여나 최태혁의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하며 내 볼에 닿아있던 녀석의 손을 붙잡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녀석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손을 조물조물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입구를 더 벌리는 녀석의 끄트머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형 거, 후, 는 너무, 커서. 아, 잠, 안...!”
그리고 방심한 새 뚫어버릴 듯이 짓쳐 들어오는 커다란 페니스로 인해 나는 허리를 있는 힘껏 휘며 강제로 눈을 떠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