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호 이야기-146화 (146/234)
  • 146화

    “진호 씨, 이거 관련된 뉴스 기사랑 프로그램들 뭐 있는지 좀 조사해서 2시까지 줄 수 있어요?”

    “네. 이것만 끝내고 바로 해서 2시 전에 드릴게요.”

    어제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 잠들고 일어났을 때 침대엔 나 혼자였다. 잠결에 이리저리 뒤척거리는 내가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있었던 것을 보면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집엔 아무도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갑작스러운 호출로 불려 나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호출 때문에 오늘은 먼저 가 본다는 메시지와 문 앞에 기사 대기시켜 놨으니 꼭 그 기사를 따라가 차를 타고 가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둘은 같이 가지 못하는 경우엔 항상 이렇게 사람을 보내곤 했다. 그들이 은연중에 경계하는 것처럼 내가 도망을 갈까 봐 그런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나? 아무튼 정리해야 할 생각이 많은 나로선 퍽 달가운 상황이었다.

    나는 밥을 먹을 때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차로 이동을 하는 시간에도 계속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일하느라 읽은 서류 내용 중 눈에 띈 ‘대학교’라는 글자를 보고 문득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대학에서 나는 주로 혼자 밥을 먹었다. 보통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과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지만, 그날따라 유독 붐비던 탓인지 기다란 테이블이 꽉 차 있었고, 나는 무리 지어 먹고 있던 다른 학생들 바로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풋풋한 신입생들이었는지 이야기의 절반은 앞으로의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 나머지 절반은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상형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이상형을 말하자마자 나머지 애들이 온갖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야! 그런 사람이 어딨냐? 잘생기고, 몸매 좋고, 돈 많고, 차가운 성격인데 너한테만 배려심 넘치고, 질투는 하는데 집착은 안 하고. 저 잘난 줄은 알면서 네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지는 사람이 도대체 어딨냐고!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이 지구상에는 없어!’

    ‘그래! 무슨 소설에나 나올법한 사람을 꿈꾸고 있어!’

    높아지는 언성에도 꿈꾸는 표정을 풀지 않고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다는 당사자에게 바로 옆에 앉은 친구가 혀를 차며 대꾸했다.

    ‘야, 네가 애인이 없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너, 이상의 기준이 너-무 높아. 아주 그냥, 하늘을 뚫고 저 우주로 솟아버릴 만큼 높아서 애인이 없는 거였어, 너.’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말이었다. 그 학생이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면 연애하지 않을 거라며 친구들에게 당당히 선전포고를 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또 속으로만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뭐 하나 갖기 힘든 이 각박한 세상에서 기준이 너무 높으면 그에 부합하는 것을 손에 넣기 힘든 법인데, 그걸 모르다니 참 어리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은 나도 그러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건방지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제 남궁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오전 내내 고민한 결과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아니라 바라왔던 것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욕심쟁이였던 건지 몰라도, 오랜 기간 상상과 바람이 덧대진 ‘이상적인 가족’을 갈망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 날의 나는 더욱더 그랬다. 엄마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을지언정 밝고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아버지는 과묵하고 표현하지 않지만 내심 그래도 나를 아낄 거라고 기대했다. 집안이 지나치게 적막하고 개인적인 것은 분명 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지면 자연히 엄마의 히스테리도 줄고 아버지는 더 다정해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사건은 내가 엄마에게 게이라고 말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막 성장하던 시기 남자아이들은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여자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얼마 후 성비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키 큰 남자 선배와 손을 잡고 축구를 해야 했던 날 이후 알았다.

    이게 다른 애들이 말했던 두근거림이구나. 아버지와 그의 관계를 접해서 그런가 나는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 공통점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들뜬 고백을 듣고 아버지를 불러야겠다며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와 처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봤을 땐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 뒤로 엄마는 나의 정서적 안정과 지지를 핑계 삼아 아버지를 우리 집에 더 오랜 기간 묶어두었고, 그 역시 그걸 권장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히스테리가 줄어들었고, 나를 위해 머무르는 만큼 아버지는 전보다 더 나에게 신경을 기울였다. 나는 그게 좋아서 게이인 것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슬프지 않았음에도 이따금씩 일부러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꿈꾸던 가족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아니, 행복할 뻔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철이 없었고 아버지는 고지식했다.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아버지에게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투정을 부렸다. 눈치는 보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해버리고 마는 엄마를 보며 아버지는 항상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오래 있을수록 사사건건 부딪치기만 하는 둘은 부부로서는커녕 동거인으로서도 최악의 조합이었다. 거기다 어떻게든 애정을 얻어보려고 노력하는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애초에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도 아닌 사람답게, 엄마를 전혀 이성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 어린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그가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었기에 당연히 바로 대처하지 못했고, 그는 아버지와 엄마 외엔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음 날 저녁, 연락이 없는 그를 걱정해 들른 아버지에게 창백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중간중간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119에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으러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없어, 그저 그 자리에서 나아지기만을 기도하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그에게로 돌아갔고, 그를 방치한 것에 대한 속죄라도 하듯 그 이후로 우리 집에 오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잠시나마 희망을 가진 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는 더 무뚝뚝해진 아버지와 히스테릭해진 엄마, 죄책감에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그를 얻은 것이다.

    나는 그를 적대시했다. 엄마와 아버지가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은 사이에 그가 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가린 엄마를 보지 못하고, 엄마는 그런 그들 때문에 상처받아 나를 보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에게 가장 다정했던 그에게 가장 버릇없게 굴었다. 만들어진 가정이자 보여주기 위한 연극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괜한 고집을 부렸다.

    일련의 사건이 지나고 그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가 없다 하더라도 내가 꿈꾸던 화목한 가족이 되지 못할 것을 깨닫고 나서야 그에 대한 배척을 멈췄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죄책감으로 인해 그는 나를 피하고 있었고, 나에게는 나를 피하는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하지 못하고 연락이 끊겼다.

    “진호 씨.”

    “으헙, 흠흠. 네?!”

    깜짝이야. 기계적으로 일을 하면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놀라 소리 지를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의자를 돌렸다. 어느새 퇴근 준비를 마친 대리님이 서 계셨다.

    “퇴근 시간 한참 지났는데 안 가서요. 많이 급한 거 아니면 내일하고 얼른 퇴근해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대리님 뒤로 노을이 지는 것이 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네, 가야죠. 저도 이제 막 가려고 했어요.”

    “그래요. 오늘 저녁 재밌게 보내고 내일 봐요!”

    퇴근하는 직장인답게 매우 밝은 인사를 남긴 대리님은 마주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쌩하니 사무실을 벗어났다. 나는 다시 의자를 돌려 켜져 있는 컴퓨터를 잠시 바라보다가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와 함께 손을 움직였다. 자료를 저장한 뒤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정리한 나는 수첩을 가방에 넣으면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가방을 메고 여유로워진 손으로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니, 오늘은 후가 나와 같이 퇴근할 거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 이거 5시에 보냈었네. 큰일 났다, 지금 7신데. 나는 급하게 서둘러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렸다. 마침 우리 층에 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참이었다. 점점 좁아지는 틈으로 사람이 타 있는 것을 본 나는 급한 마음에 잔뜩 소리치며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통화버튼을 찾아 누르느라 내 눈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잠, 잠시만요! 저 타요! 탈 거예요!”

    다행히 내 외침을 들은 사람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는지, 내가 탈 때까지 문은 열려있었다. 나는 그거 잠깐 뛰었다고 가빠진 숨을 고르면서 지하층을 눌렀다. 그리고 남궁후에게 전화 거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섰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뒤에 있던 사람을 확인한 후 말문이 막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응. 오늘 퇴근이 좀 늦었네? 바빴어?

    “오랜만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전화 너머의 남궁후의 목소리와 최태혁의 인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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