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게 가족이 뭐냐고 생각하냐는 질문이랑 도대체 뭔 상관인가, 싶지 않아?”
“네?”
“답답해서 재촉할 법도 한데 참 잘 들어주네. 집중해서.”
당연한 거 아닌가.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집중해서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남궁호가 이야기를 지루하게 하거나 요점 없이 반복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알아듣기에 어렵지 않고 재밌게 말하는 편이어서 더 그랬다. 말의 저의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걸 보고 피식 웃은 남궁호가 아니야, 하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되게... 사람이 좀 기본적으로 동그란 것 같아. 동글동글, 푹신푹신, 말랑말랑. 이런 것들처럼 공격성이 단 1도 없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너는.”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뉘앙스상 좋은 말이라고 해준 것 같은데, 어떻게 좋아해야 할지 당최 감이 오지 않는 이상한 말에 절로 미간이 모였다. 그러나 남궁호는 그에 대해 더 설명해줄 마음이 없었는지, 그저 손을 뻗어 내 미간을 살살 문지를 뿐이었다.
“아무튼 그 뒤로 나는 누나를 괴물이라고 불렀고, 오랫동안 괴물은 괴물이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집안 어른들이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결혼하시는 바람에 우리가 태어날 줄 몰라서 입양한 거다, 머리가 비상한 애라 집안에 도움이 되라고 입양한 거다, 했던 말들이 맞을 거라고 아집을 부리면서.”
나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이 괴로워 입 안쪽 살을 꽉 깨물었다. 똑똑하기 때문에 먼저 입양을 갈 수 있었던 아이들. 그 외에도 예뻐서, 얌전해서, 혹은 닮아서 그곳을 나갈 수 있었던 아이들 중 한둘은 반드시 돌아오곤 했다. 파양의 이유 또한 매우 다양했고, 그중에는 친자식이 태어나 더 이상 필요 없어져서 돌아온 아이들도 물론 있었다.
순간 미간을 문지르는 손에 가려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분명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원래도 그렇게 살가운 남매도 아니었던 터라 부모님도 모르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냈어. 후랑 괴물은 알았겠지만, 후야 저 재밌으면 되는 놈이라 별 상관 안 했고. 괴물은 병원에서 모습은 싹 사라지고 원래 독불장군 큰누나 모습만 보여주더라.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아니.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그날도 그냥 여느 날과 다를 바가 없이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갔던 것뿐이었거든. 그때까지도 별생각 없이 막 씻고 나왔는데 괴물이 밥 먹으라면서 내 문을 막 두드리는 거야, 평소처럼. 그래서 나는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면서 부엌으로 내려갔지. 평소처럼.”
한참을 미간에 머물던 남궁호의 손가락이 눈썹 위를 꾹 눌러 쓸더니 떨어졌다.
“내려가서도 평소랑 다를 것 없는 모습들이 보였어. 진짜 그냥 일상적인 풍경. 근데 이상하게 내 기분이 좀 다르더라. 뭔가, 설명이 딱 안 되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어. 갑자기 뭔가 되게 덧없어지고, 기운 빠지고,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그 순간 그냥 납득했어. 이게 가족인가 보다. 우린 가족인가 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가족. 그 단어와 함께 남궁호가 오랜만에 어른스럽게 웃었다.
“내심 친남매가 아니라서 죽이고 싶거나 미친 듯이 짜증 나는 줄 알았거든. 그리고 괴물이라고 부르면서까지 지는 게 인정이 안 되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친누나 있는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남들도 다 똑같다는 거 알고 나선 또 얼마나 허무했는지.”
녀석은 한숨을 푹 쉬면서 민망하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뗐다.
“그 뒤로는 쉽게 생각하기로 했어. 피가 이어졌어도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고, 전혀 생판 남이어도 가족보다 가까운 남도 있는 마당에.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이 내 가족이다 싶으면 그게 바로 가족 아니겠냐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나는.”
“...누나분. 그 누나분은 알아요? 형 생각이 바뀐 거.”
“으음.... 아마도? 괴물은 진짜 눈치도 괴물같이 빠르거든. 굳이 직접 얘기한 적은 없지만 알 거야, 대충.”
나는 녀석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 볼을 만지작거리느라 시선이 비껴간 덕분에 민망함 없이 천천히 얼굴을 관찰할 수 있었다. 평온하고 아무렇지 않은, 장난기가 섞였지만 그래도 확실히 어른의 얼굴이었다.
“길어진 말을 요약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그냥 가족인 사람이야. 모든 건 내 기준에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기에 가족인 사람.”
남궁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눈을 내리깔았다. 누나분에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지나간 자리에 녀석이 말한 가족의 정의가 계속 반짝거렸다. 가족. 가족인 사람.
“무슨 생각해?”
내가 아래를 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어서 그랬는지 남궁호의 손가락이 내 눈 밑을 문지르며 주의를 끌었다. 손가락이 눈을 찌를까 봐 본능적으로 한쪽 눈을 찡그린 나는 녀석의 의도대로 조금 위에 있는 얼굴을 향해 눈을 치떴다.
“실례되는 생각이요.”
“어?”
“좀...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고요.”
말주변 없는 내 대꾸에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별생각 안 했다고 해야 했는데,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얘기하다니.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없었다. 이대로 모른 척 다른 얘기로 넘어가면 넘어가 주려나. 눈을 도르륵 굴리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그새 점점 더 휘는 눈썹을 봐선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나는 한숨을 삼키면서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러니까 입양아를. 아니, 가족을. 흠흠. 가족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되게 뭔가 더 극적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막 운명처럼 마음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서 눈물의 반성 타임이라든가 기쁨의 눈물 타임이라든가 뭐 그런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나는 일부러 마지막 말을 아주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다시 목소리를 키웠다.
“근데 형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그렇구나- 했다는 거잖아요. 거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도 따로 누나분한테 말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저냥 암묵적으로 알고 넘어갔다고 하니까. 생각보다 되게, 뭔가 엄청....”
이 뒤는 정말 주제 넘는 발언이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을 끌면서 계속 힐끔힐끔 멈출 타이밍을 봤지만 남궁호는 계속 표정으로 나를 재촉했다.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비슷한 단어, 그나마 좀 덜 안 좋게 들릴 단어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도중에 꽉 볼이 잡혔다.
“뭔데 그래? 그냥 말해, 괜찮으니까.”
“...하아. 그... 좀... 허무하기도 하고, 그런 거구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고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남궁호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가 겪은 일을 아주 세세히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지나간 일에 대해선 일부러 가볍고 간단하게 줄여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정말 괜찮아져서, 혹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흐릿해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로 깊게 말하기엔 아직도 너무 많은 감정이 배어 있는 일이라거나, 듣는 이를 배려하여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도 남궁호 본인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하더라도 실제 그 마음은 어떨지 모르고, 또 괜찮다 하더라도 타인이 함부로 허무하다 아니다 말할 내용이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나는 생각할수록 너무 무례했던 것 같아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죄송해요. 형이 기껏 좋은 얘기 해주셨는데 이런 생각 해서. 근데 그게 나빠 보인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냥, 그냥 생각했던 거랑 달라서 그렇지 저는 형 얘기 엄청 좋았어요. 감동적이었고, 또, 어, 더 현실적이어서. 맞아요. 더 현실적이어서 좋았어요.”
진짜예요.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는 끝에 가선 거의 웅얼거림이 되었다. 너무 하찮은 변명이란 생각이 들어 말을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몸에도 드러나 고개도 자연스레 수그러졌다.
“흐음.... 그런가? 근데 그건 아마 내 성격 때문일 거야.”
그러나 기분 나빠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남궁호의 목소리는 밝고 산뜻했다.
“내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거나 감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말한 것처럼 그 순간 자체도 되게 운명적이고 의미 있게 기억하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괴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막 드러내놓고 표현하고 굳이 말로 하고 이런 성격이 아니라서 그랬지, 반대였으면 눈물 타임 같은 것도 있었을 수도?”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내 뒤통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하고 말투에 화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녀석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른 거야. 가족처럼 그 상황을, 아니면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너한테 달렸어, 진호야.”
남궁호는 눈이 휠 정도로 활짝 웃으며, 내 안에 있는 고민이 뭔지 마치 다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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