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호 이야기-140화 (140/234)

140화

나는 오늘 회사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첫날 이후론 잠들면 건들지 않더니, 어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기절하듯 잠들었다 깰 때마다 누군가는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행위는 결국 내가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이제 그만하자고 빌고 나서야 멈춰 주었다.

그러고 나서 서러움이 터진 내가 어린아이처럼 녀석들의 품에 번갈아 안기며 어리광을 부리다가, 토닥이는 손길에 새벽녘에야 겨우 제대로 된 잠에 들 수 있었다.

“허리 아파....”

덕분에 나는 침대를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욱신거렸다. 일어났을 때 이미 해가 중천이라 허둥지둥 일어나려다 호되게 넘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부딪힌 팔엔 아무래도 멍이 들 것 같았다. 나는 그 뒤로 화장실을 갈 때만 갓 태어난 사슴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녀오고,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재밌는 영상을 보다가 메시지가 오면 확인 후 답장을 하는 식이었다.

[진호 너 아직 밥 안 먹었지? 얼른 먹어.]

[곰돌이 어서 밥 먹어!]

[김진호 너 그래서 연락할 거야 말 거야.]

[곧 갈 거다.]

[드디어 출장도 거의 끝나가요. 금방 데리러 갈게요.]

[야 너 게임...]

[어제 그거 재밌...]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여러 번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알림 목차를 밑으로 내렸다. 죽 늘어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들이 다양했다. 예전 같았으면 채예령 거 한두 개 뜨는 게 다였을 텐데, 참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읽고 제일 먼저 채예령이 보낸 메시지를 눌러 대화창을 켰다. 이전 대화에는 일터에서 할아버지를 만났고, 명함과 함께 연락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말과 평소 잘 쓰지 않는 욕까지 섞어가며 할아버지를 맹비난하는 채예령의 메시지가 번갈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연락을 할지 말지에 대해 묻는 채예령의 메시지는 음성지원이 될 정도로 채예령다운 메시지였다.

[몰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 끝에 그렇게 답장하고 쌍둥이에겐 대충 먹긴 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아직 안 먹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계속 먹으라고 성화일 것 같았다. 일단 그렇게 보내놓고 이따 먹을 계획이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한테 온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고, 최태혁과 민선우에게 마지막까지 조심히 안전히 오라는 말을 끝으로 메시지 어플을 끄고 아까 보던 영상을 켰다. 그러나 막 재생을 누르려는 순간, 남궁후의 메시지 알림이 화면 중앙에 뜨는 것을 보고 다시 메시지 어플로 돌아가야 했다.

[거짓말. 의자에 앉아 있는 게 힘들 것 같으면 죽 끓여놨으니까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해서 침대에서 먹어.]

왜 이렇게 날 먹이는 데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방 천장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 집에 들어오고 처음엔 쌍둥이들이 감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걔네는 출근했고, 나는 집에 있는데 전화가 오거나 메시지가 오는 내용과 타이밍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려고 할 때마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사용해도 된다고 말해주거나, 하지 않은 걸 했을 때 거짓말인 걸 알아챈다거나, 말하지 않고 집을 나가려고 했을 때 마침 전화가 와서 뭐 하냐고 물었다. 지금 이 메시지처럼 너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숨길 생각도 없는 것처럼 계속 티를 냈다. 그래서 모를 수가 없었다. 쌍둥이는 항상 나를 보고 있었다.

점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녀석들이 기분 좋은 틈을 타 눈치를 보며 물어봤을 때, 녀석들은 당황한 기색도 하나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카메라가 어디까지 있는 거냐고 묻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서 달래듯 입을 맞춰왔다. 둘의 입술을 피하면서 그런 거 싫다고, 불편하다고 소리를 빽 지른 나를 달래며 녀석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진호 심통 났어? 근데 정말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진호야. 형들이 알아서 할게.’

‘그래, 우리 진호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있으면 돼. 착하지, 우리 진호?’

항상 섞여 있던 장난기는 어디 가고 한없이 어른 같은 낯을 한 채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은 전에 없이 다정했으나, 이상하게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여기서 더 따지고 들면 지금까지 모습은 다 거짓말이었던 양, 녀석들의 무서운 모습을 볼 것만 같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미약하게 떨리는 손을 꾹 쥐었다. 녀석들은 그런 나를 한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진호가 추운가 보다며 닭살이 돋은 내 팔을 문질러 주면서 속삭였다.

‘왜 이렇게 떨어? 우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직. 진호야. 우리 진호한테는 형아들 안 무서운 사람들이야. 형아들이 진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응?’

‘진호가 형아들이 너-무 걱정되는 행동을 하면 혼을 낼 수도 있지만, 우리 진호는 그러지 않을 거잖아.’

그러면서 내 눈을 마주하는 녀석들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요 며칠간 친구처럼 지내면서 다소 만만해 보였던 녀석들이 아니었다. 특히 혼을 낼 수도 있다고 말할 땐 잡힌 팔이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앞에 있는 두 녀석을 곁눈질했다. 이런 걸 예상하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따지고 들면 녀석들이 당황하면서 다 없애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쌍둥이는 오히려 본색을 드러냈다. 그게 숨이 막힐 듯 무섭고, 소름 끼쳐 숨이 가빠올 지경이었다.

내가 그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생존전략은,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랍지만, 애교였다. 절대 내가 생각해낸 것은 아니고, 평소 녀석들이 내게 장난스럽게 요구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미쳤냐고, 그런 말은 절대 안 할 거라고 호언장담했었으나, 강아지를 가장하고 있던 늑대 두 마리를 앞에 둔 초식동물의 심정이 된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혀, 형아. 진...호 안아…주세요.’

그 뒤로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별안간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내 몸이 붕 들렸다. 눈을 떠보니 남궁호는 날 안은 채 고개를 젖히고 웃고 있었고, 남궁후는 바닥을 구르며 웃고 있었다.

‘푸흡, 응, 진호야. 형아가 안아줄게. 우리 진호가 많이 무서웠구나?’

‘괜찮아, 괜찮아. 형아들 화 안 났어, 진호야. 이번엔 형아가 안아줄까? 이리 와봐. 응?’

놀리는 듯 진심으로 귀여워하는 듯 녀석들은 한참을 그렇게 형아, 형아 거리면서 나를 번갈아서 안아 들었다. 거기다 경쟁하듯 내 온 얼굴에 입을 맞춰댔다.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다시 돌아온 녀석들의 분위기에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후 그대로 침대로 끌려가 또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둘을 받아내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섣불리 도망을 시도하지 않았다. 녀석들이 말한 녀석들을 너-무 걱정시킬 만한 짓이 ‘이 집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는 그래도 문자를 보내는 걸로 끝내는 녀석들이 내가 현관 근처에만 가도 전화를 하거나, 하다못해 누군가를 시켜서 전화를 하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나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벗어났다. 천천히 걸어간 부엌에는 남궁후가 말한 대로 죽과 반찬 몇 개가 차려져 있었다. 아픈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지 제법 호화로워 보이는 매콤한 죽이었다. 매운 건 또 못 참지. 진짜 별생각 없었는데 얼큰한 향을 맡자마자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테이블에 기대 영상을 보면서 기다리는데, 다 데워졌다는 전자레인지의 삐- 소리와 동시에 화면에 채예령의 이름이 떴다.

나는 거실 천장을 한 번 휘 둘러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전화를 받아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채예령을 향해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놓고 죽을 가지러 갔다.

- 해야 하는 게 어딨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

뜨거운 그릇을 행주로 감싸 들고 조심조심 테이블로 온 나는 핸드폰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채예령다웠다.

“야, 너 일개 인턴이 업무 중에 막 전화하고 그래도 되는 거야?”

- 말 돌리지 말고, 김진호.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너.

에이, 안 넘어가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숟가락으로 저으면서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명함 받은 지 이제 하루 지났다.”

- 하루나 지난 거겠지.

무슨 일이 닥치면 속전속결로 단호하게 처리하는 채예령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반박해왔다. 그러면서 이럴 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 만나자고 말하는 녀석에게 그건 안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괜히 눈치가 보여 천장을 한 번 둘러봤다.

아닌가. 녀석들이 채예령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려 그 채예령인데 얜 만나게 해주려나. 문득 든 생각에 될 수도 있겠다고 입을 열려는 순간, 화면 상단에 메시지가 하나 떴다.

[나 오늘 일찍 퇴근해! :D 우리 진호 얌전히 잘 있지?]

남궁호였다. 응, 안된다는 거구나. 근데 아무리 스피커폰이라지만 이 높은 천장에 달린 카메라에 소리가 들어가나? 혹시 뭐, 도청기도 설치되어 있는 거 아닌가 싶어 먹던 숟가락을 죽에 꽂아 넣고, 테이블 밑을 샅샅이 살펴봐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러는 새 혼자 막 열변을 토하고 있던 채예령이 내가 흘려듣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언성을 높여 내 이름을 불렀다.

- 야! 김진호!

“왜, 왜. 듣고 있어. 말해.”

나는 도청기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죽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핸드폰 화면을 주시했다. 듣고 있다니까 무슨 생각인지 잠시 정적을 지키던 채예령은, 내가 세 숟가락을 먹을 때쯤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 네가 무슨 마음일지 아마 내가 제일 잘 알아. 너랑 나랑은 성격이 워낙 달라서 항상 다른 선택을 해왔지만, 그 선택을 하게 한 근본적인 이유는 같았으니까. 그래서 이 말을 할까, 말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아. 나라도, 아니. 내가 이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아.

채예령은 비장했다. 평소에도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이렇게 비장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나에게는 나이 차이 나는 형이나 부모인 듯 굴었기 때문에 다소 다그치는 말투일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차분했다.

머리가 좀 복잡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른한 기분으로 죽을 먹고 있던 나까지 덩달아 차분해졌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테이블에 엎드리면서 물었다.

“뭔데. 뭐길래 또 이렇게 분위기 잡고 말하는 건데.”

- 진호야. 나는.... 나는 네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 진호야.

그렇게 말하는 채예령의 목소리는 마치 울고 있는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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