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진호가 없어진 사이 쌍둥이와 태혁, 선우는 전에 한 번도 하지 않은 화상통화를 했다. 주제는 당연하게도 진호였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진호의 안전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태혁은 조직을 물려받으려고 하면서 그가 키운 사람들을 중요 보직에 심어 넣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잡음이 나는 것은 그 세계의 규칙대로 힘을 사용해 찍어누르고 있었는데, 약을 주로 맡아 유통하고 있던 큰아버지 쪽 조직에서 거센 반발이 생긴 터였다. 안 그래도 동생이 자기 위에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큰아버지는 조카까지 자기 위에 서려고 하자 조직을 먹기로 마음을 먹고 태혁을 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패로 끝나고, 반란은 제압되고 말았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 것 같으니 평소 거래를 하면서 관계가 두터웠던 일본 야쿠자의 힘을 빌려 독립이라도 하려고 했다. 약이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큰 수입원임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태혁은 당연히 그걸 막으려고 급하게 일본 출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큰아버지 쪽은 그가 없는 틈을 노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태혁은 그에게 다른 약점이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그들이 노리는 대상은 진호일 거라고 말했다.
「네놈들이 남자애가 날 돌보고 있다는 정보만 넘기지 않았어도 그놈들의 생각이 그쪽으로 넘어갈 일은 없었을 텐데.」
“개소리하지 마. 네가 되지도 않는 과보호를 하면서 계속 네 측근들 붙이니까 당연히 다들 알게 된 거 아니고?”
「...셋 다 그냥 멍청한 건데 그걸 왜 모를까.」
선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셋은 동시에 웃고 있는 그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변태는 왜 불렀냐?”
“그러게. 왜 불렀을까? 한국에도 없어서 쓸모도 없는 놈인데.”
「내가 안 불렀다.」
이를 악물고 말하던 태혁이 한숨을 쉬며 다시 이마를 짚었다. 호는 호출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후를 한 번 보고,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야, 이럴 시간 없어 우리. 어쨌든 이번에 없어진 건 정새빈 짓이 확실하니까 그건 됐고. 민선우 너도 지금 프랑스 출장 중이라 뭐 어떻게 못 하잖아. 진호 찾으면 일단 우리가 데리고 있을게. 불만 없지?”
「...후우. 어쩔 수 없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이네.」
어떻게 보면 새빈이 진호를 데리고 칩거를 해서 본의 아니게 더 안전한 상태가 된 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괘씸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호는 착잡한 표정의 태혁과 선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 * *
후와 호는 실랑이 끝에 겨우 데리고 나온 진호가 조수석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것을 보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은근히 겁 많은 진호에게 이런 뒷사정을 말해 봤자 속만 시끄럽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로 인해 적잖은 상처를 받은 모양인지,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서 더 그랬다. 그냥 언제나 그랬듯 둘이 제멋대로인 것으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셋이 함께 지내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워낙 바쁜 둘이기에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진호를 지키는 것보단 다 같이 지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셋이 지낼 집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진호를 위해 그를 홀릴 만큼 맛있는 요리 레시피들을 달달 외우기까지 한 쌍둥이는 우여곡절을 거쳐 한동안 진호와 지낼 집에 입성했다.
바로 어제 대청소를 한 집은 마치 모델 하우스처럼 깨끗했다. 인턴 시절 병원에 살다시피 했을 때 사뒀던 집은 요 몇 년간 누나가 가끔 며칠간 머물 때만 사용했던 터라 사람의 온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요리 재료는 바구니에 나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는 하우스키퍼의 문자를 확인한 후는 미동도 없이 창밖의 야경을 보고 있는 진호에게 다가갔다.
진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엔 그가 다녔던 대학과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이 있었다. 추억이라도 되새기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후는 창에 비친 진호의 얼굴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조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누가 봐도 학습된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호를 들어 올렸다.
원래 오자마자 새빈의 흔적부터 씻어 없앨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우울감을 없애주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았다. 부름에 답하며 들어온 호도 힐긋 진호의 표정을 보더니 별 저항 없이 요리에 동참했다. 중간에 해프닝이 있긴 했으나 그래도 진호를 웃게 만드는 것엔 성공한 둘은 뿌듯함을 느끼며 청소를 했다. 그동안 배가 너무 부르다며 숨을 몰아쉬는 진호를 밖으로 보냈다.
진호가 이 집에 적응을 하는 며칠간은 하우스키퍼도 오지 않을 예정이기에 둘은 구석구석 열심히 청소했다. 청소기를 끄고 나니 저 멀리서 진호의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적휘적 걸어가 욕조를 확인한 후가 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후가 집 어딘가에 있는 진호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한 번에 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때아닌 숨바꼭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던 둘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진호의 반응에 역시 재밌는 애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거실에는 없었고, 후의 방에도 호의 방에도 없었다. 진호에게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던 집 안에 설치된 CCTV 모니터들이 있는 방엔 어차피 자물쇠가 잠겨있으니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남은 곳은 괴물이 사용하던 방뿐이었다.
일부러 쿵쾅대면서 걷던 쌍둥이들은 놀라는 진호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으로 발소리를 죽였다. 그러자 저쪽에서 뭔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의 방으로 다가갈수록 그 덜컹거림은 커졌고, 아주 작은 목소리도 들렸다.
“꺼, 꺼내 주, 나, 나 여기 있, 어요!”
방 안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들리는 소리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진호의 목소리였다. 옛날에 괴물의 옷 속에 바퀴벌레를 숨겨놨던 일 이후로 괴물은 자기가 사용하는 모든 옷장에 오토락을 달아놨다. 당연히 이 방의 옷장도 똑같은 장치를 달아둔 건데, 그걸 알 리 없는 진호가 숨어보겠다고 들어갔다가 갇힌 모양이었다.
쌍둥이는 급하게 옷장을 가장한 금고 문 위쪽에 있는 번호 키로 손을 뻗었다. 조금 더 빨랐던 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한발 늦은 호가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리다가 바로 문을 열었다. 문에 기대고 있었던 모양인지 쏟아지듯 나온 진호는 그들을 올려다보며 잠시 상황을 파악하듯 눈을 껌벅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후와 호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무서운 것도, 서러운 것도 많은 우리 곰돌이. 우리 진호. 낮에 차까지 안아서 옮겨줄 땐 그렇게 엉거주춤 어색하게 안겨있을 수가 없더니, 이번엔 안아 올리자마자 찰싹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살 달래며 욕조로 향한 남궁 형제는 아주 성공적으로 진호를 발라 먹었다. 탐해도 탐해도 모자라는 맛있는 진호의 눈가가 눈물로 짓무를 정도로 취하던 둘은, 진호가 두 번째로 기절한 후에야 입맛을 다시며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몸을 씻기면서 새빈이 남겼던 흔적 위로 다시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둘만 아는 사실이었다.
후와 호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새벽에 눈을 떴다. 바쁘게 일을 하고 겨우 얻은 휴일은 끝났고, 오늘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침대에서 진호는 아주 깊게 자고 있었다. 아무런 얘기 없이 혼자 눈을 뜨면 애정결핍이 있는 진호가 행여나 서러워할까 봐, 둘은 잠깐이라도 깨우기로 하고 마침 몸을 뒤척이는 진호에게 다가갔다.
푹신한 침대와 그들의 흔적을 잔뜩 달고 있는 진호. 당장이라도 같이 눕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부드럽게 흔들어 깨운 진호는 깜짝 놀라 깬 것 같다가도 금방 비몽사몽 한 눈으로 돌아갔다. 대답도 겨우 하는 것 같은데, 기억하려나.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지으며 후와 호는 서로에게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래도 똑같은 내용을 문자로도 넣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든 진호의 머리를 토닥이고 쌍둥이는 침실을 벗어났다.
며칠간은 별문제 없이 흘러갔다. 진호가 외로워하거나 심심하지 않도록 둘은 최대한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고, 진호가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체크 했으며, 체력이 회복된 것 같으면 달려들어 아주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 진호도 집 안에서 뒹굴거리는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생활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었다. 진호가 밖에 나갈 일을 교묘하게 차단하던 쌍둥이는 돌직구 질문을 듣고 말았다.
“저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왜요?”
같이 밥을 먹다가 툭 던져진 질문에 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걸 쓸 차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둘은 눈빛만으로 대강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진호, 심심하면 아르바이트할래?”
“네?”
“병원 사회공헌팀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는데, 사람이 영 안 구해진대. 그냥 간단한 업무하는 일이야. 자료 정리하고, 서류 복사하고 뭐 그런 거. 할래?”
물론 거짓말이다. 병원 사회공헌팀에 그런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진호가 집에만 있지 않으려고 할 경우를 대비해 그들의 눈에 보이는 곳으로 진호를 데리고 다닐 요량으로 미리 그런 자리를 만들어 놨다. 그 팀은 그들의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보조할 수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 티오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티오는 쌍둥이의 조작 하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진호는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에 일자리 제안을 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어… 갑자기요?”
“응. 아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 우리도 너랑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알아보니까 마침 딱 그런 자리가 있더라고.”
“시급도 꽤 괜찮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도 어렵지 않을 거고. 해볼래?”
출퇴근도 우리랑 같이하면 되니까 편할 거야. 후는 활짝 웃으면서 허공에 멈춰있는 숟가락을 빼앗아 들고 벌어진 진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입에 밥이 들어찬 것을 확인하자마자 호가 반찬을 집어 먹여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얼떨떨한 얼굴로 입에 가득 찬 음식들을 천천히 씹으면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후와 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꿀꺽, 밥을 삼키고 나서 나온 진호의 답은 다행히 그들이 원하던 대로였다.
“좋아요. 할 수 있으면 할래요, 그거.”
어디에 지원하면 돼요? 그렇게 묻는 진호에게 그들은 미리 만들어 둔 공고 페이지를 알려주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