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진호를 찾은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새빈이 사 놓은 집들에 모두 사람을 붙여 드나드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정말 그 사람들만 사는 것이 맞는지 확인한 결과 일부는 정말 사람이 사는 집이었고, 또 일부는 빈집이었다. 그중에 몇 군데 의심이 되는 곳은 호와 후가 쉬는 날 직접 찾아가 깽판도 부려봤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사람 하나 찾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 생각하지 않은 쌍둥이들은 잔뜩 짜증이 나 점점 예민해져 갔다. 병원 내에서 항상 평판이 좋았던 그들을 대상으로 슬슬 안 좋은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였다.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의 누나가 직접 전화를 걸어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지를 때쯤에서야, 정말 유력한 집 두 개로 좁혀졌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었다.
둘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벼르다가 겨우 맞춘 휴가 첫날, 문을 부술 연장들과 확성기를 들고 첫 번째 집을 찾아갔다.
“야! 나와! 이 또라이 새끼야! 나오라고!”
처음엔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던 그들은 점차 소리를 지르고 확성기를 쓰면서 행패를 부렸다.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자 이번엔 준비해 온 망치를 들고 문고리와 문을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특별히 준비해 놓은 전기톱까지 꺼내 전원을 켜자마자 옆집 문이 열리더니, 어떤 남자가 대경실색하며 신발도 신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그만, 그만 하세요! 이러시면 안 된다고요!”
후가 들고 있던 전기톱을 집어넣을 때까지 숨넘어갈 듯 굴던 남자는 쌍둥이의 추궁에도 계속 그냥 옆집 사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뗐다. 옆집 사는 사람이 단순히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게 아니고 집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모양새가 영 수상했던 그들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호가 보고에 따르면 이따금 불이 켜지는 게 보였다던데 그럼 그건 뭐냐고 물으며 다시 망치로 문고리를 내려치려고 하기 직전, 남자는 안된다며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여기 옆집은 어떤 음악 하는 사람 작업실인데, 자기는 그걸 가끔 청소하고 관리해주는 사람이라고. 근데 작업실의 주인이 오지 않은 지 정말 몇 달이나 되었다고 울먹이면서 하는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후와 호는 그 남자에게 수리비로 지폐 다발을 건네고 서둘러 다음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찾은 진호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어...? 형들이 여긴 왜?”
멍하니 서서 중얼거리는 진호의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눈 밑은 다크서클이 퀭하게 내려와 있었다. 원래 조금 어두운 톤이었던 진호의 피부는 약간 하얘져 있었고, 평범했던 체격이 다소 왜소해져 있었다. 실제로는 평범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어두운 방 배경에 초췌한 몰골이 더해지니, 옷도 목 늘어난 티셔츠에 구멍 난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쌍둥이는 진호의 뒤에 뻔뻔한 얼굴을 하고 그들을 보고 있는 새빈을 향해 표정을 굳혔다. 저 새끼가 진짜. 커튼을 걷고 햇빛에 비춰본 진호의 꼴은 더 가관이었다.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보이는 모든 곳에 남아있는 흔적은 진한 것도, 흐린 것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정신 못 차리는 진호를 보는 쌍둥이의 마음속에 뭔가 울컥 치솟았다.
그래서 비틀대는 녀석을 끌고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갑작스럽게 충격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5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진호에게 현실 감각을 깨워주었다. 멍하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듦과 동시에, 진호는 매우 당황한 듯 안절부절 머리를 짚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미쳤, 아니, 나 뭐한, 15일?!”
손톱을 깨물던 진호가 급기야 문가에 있던 호를 밀치고 나갔을 때, 후와 호는 이를 악물었다. 다양한 서류를 읽고 대충 상황 파악을 마친 그들로선 이 상황에서도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진호의 말도 짜증이 나고, 머리는 빌어먹게 좋은 새빈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도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것에 열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화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스르르 주저앉는 진호를 보고 터지려다가, 한없이 공허한 눈동자를 마주 보고 흩어졌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기도, 끝없는 절망에 빠진 것 같기도 한 얼굴의 진호를 보고 순간 할 말을 잃은 쌍둥이의 정신을 깨워준 것은 ‘이 상태의 진호가 나아 보이냐’는 새빈의 물음이었다.
새빈은 비겁했다. 또라이긴 했지만 귀찮음이 많아 딱히 반목할 일이 없었던 녀석이라 쌍둥이로서도 처음 마주하는 모습이었다. 그들 모두가 각자 다른 종류긴 하지만 정의로움이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진호를 보내고 싶지 않아 발악하는 새빈은 매우 얄밉고 비겁했다.
“애초에 이 모든 상황 자체가 김진호의 회피적 성향에 기대고 있다는 거, 너도 알면서 왜 위선이야, 후야.”
솔직히 그 속삭임을 듣고 후는 말문이 턱 막혔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 더 분했다. 그래, 우리들은 현재 진호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섯 명이 돌아가며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제 와서 진호의 정신 건강의 안녕을 바란다고 말하기엔 이 만남은 시작되지 말았어야 한다. 서로 진심으로 싸워 쟁취하기엔 그렇게까지 갖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순순히 누군가에게 넘겨주기엔 흥미로웠기에 시작한 이 상식 밖의 관계는, 조금만 강하게 밀어붙이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점을 이용한 것이 맞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이 관계는 이제 누구도 먼저 깰 수 없을 만큼 팽팽한 실이 되어 그들을 역으로 조르고 있었다. 진호는 모르는 것 같지만, 이걸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진호밖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왜, 왜 그저 흥미로운 대상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 거지. 언제부터?
문득 떠오른 의문에 안 그래도 복잡하던 머릿속에 엉망진창이 되려던 때, 뒤에서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가벼운 어조의 말이 들렸다. 호였다.
진호가 보지 못하게 밑으로 내린 손은 잔뜩 겁에 질린 진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호의 고개가 돌아간 새 호는 더 대담하게 손짓했다. ‘그만해.’ 허공을 가로로 긋는 손짓을 알아들은 새빈이 똑같이 가벼운 어조로 말을 받아쳤다. 하얗게 질렸던 진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황당으로 물들었다. 후는 천천히 걸어오며 뒤로 빠지라고 손짓하는 호를 보며 새빈의 목을 조르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바톤 터치 후 새빈에게서 멀어지자마자 뇌에 공기가 들어차며 꽉 막혔던 생각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새빈의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진호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좋은 남자도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사람인 적 없었고,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 했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했으며, 딱히 도덕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느끼지도 않았다.
호의 인생에 패배는 괴물 같은 혈육에게 진 것 한 번으로 족했고, 후의 인생에 있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 흥미로 시작했으면 어떻고, 지금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상대의 약점 조금 이용하는 것이 뭐 어떤가. 감정이라는 것은 작았다가도 커지고, 이것 같다가도 또 다른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것이었으므로, 지금 당장 어떤 정의를 내릴 필요 없이 ‘같이 있고 싶다. 예뻐해 주고 싶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약점을 이용한 것도, 그걸 모를 만큼 잘해 주면 될 일이었다.
우선 지금은 그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진호가 겁에 질렸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다행히 그 점에 대해선 새빈도 같은 입장인지 자연스럽게 손발을 맞춰왔다.
쌍둥이의 이미지를 깎아서 그에게 머물게 하려던 새빈은 이번엔 동정을 유발하려고 눈물을 흘려댔다. 어쩐지 장단을 맞춰 준다 싶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다정하게 달래는 모습에 홀린 듯 우리를 따라오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더니 겨우 옮겨진 몇 발짝을 금세 되돌아갔다. 아, 진짜 죽여버릴까, 저 새끼. 진호가 저에게로 오는 것을 보자마자 더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수법은 웬만하면 안 쓰는 건데,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그러나 그건 우리 알 바가 아니지. 후와 호는 서로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진호의 눈을 가리자마자 세상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눈물을 흘리던 새빈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리고 진호에게 새빈의 눈물이 가짜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쌍둥이를 향해 입을 움직였다.
‘꺼져.’
‘싫은데.’
호도 똑같이 입 모양만으로 뜻을 전하며 씩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걸 시리도록 무표정하게 보던 새빈이 소리 지르며 후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는 진호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같이 있던 새 무슨 유대감이라도 생긴 건지, 새빈의 눈물을 본 진호는 마치 제가 슬픈 일을 당한 양 더 흥분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관찰하던 새빈의 눈꼬리가 조금 밑으로 쳐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친 새끼. 새빈을 경계하던 쌍둥이가 동시에 쌍욕을 중얼거렸다. 새빈의 그런 미소를 처음 본 둘로서는 진호가 듣지 못하게 소리를 삼키는 것이 한계였다. 저거 뭐야. 연기인 줄도 모르고 진심으로 저를 생각해주는 진호가 안타깝고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는 정새빈이라니, 또라이가 드디어 완전히 미쳐버린 건가.
그 생각을 하면서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새빈은 그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짜증을 뱉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완전히 수습한 뒤 쌍둥이에게 눈짓했다. 어디서 명령질이야.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닦기 시작한 새빈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 미소를 보여주느니 이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진호의 눈을 가린 손을 치운 후는, 진호의 황망한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혀를 찼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