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진호가 없어졌다.
친할아버지의 생신 연회에 참석했다가 정새빈을 만나고, 그 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당연히 새빈은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않고 있었다.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태혁이었으나, 현재 업무차 해외 출장 중이었다. 현장을 직접 지휘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쌍둥이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진호와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다른 날 몸을 갈아가며 더욱 바쁘게 일하던 그들은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분노해 진호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아, 이 새끼 진짜. 집 왜 이렇게 많이 사놨어. 모아 놓으면 작은 건물 두세 개는 될 것 같은데? 얘 뭐 음악 한다더니 월세 장사하고 있던 거야?”
후는 당직실에 들어서면서 테이블에 앉아 있는 호에게 보고 있던 서류들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태블릿 화면을 보고 있던 호가 뻐근해진 눈 위를 문지르며 고개를 젖혔다.
“정새빈 개인 비서도 연락 두절이고, 집 주소도 다른 데 적어놨더라. 그냥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방법밖엔 없는 거 같아. 그래도 서울 안에 있을 것 같긴 한데, 워낙 또라이라 혹시 몰라서 다른 지역에 있는 집까지 애들 보내놨어.”
호가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는 후를 향해 말하자 짜증 섞인 한숨이 답으로 돌아왔다. 그게 전염이 된 건지 호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피곤에 찌든 서로를 보고 있자니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침묵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호였다.
“그나저나 뭐야. 뭔데 애가 그 꼴을 당했던 거래?”
진호가 없어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호텔에 요청해서 받았던 CCTV를 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 영상이 끝나고 어두워진 스크린에 비친 그들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생신 연회에서 누군가를 보고 발작하듯 놀라 기절을 한 것도 이상하고, 그런 애를 누구도 병원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정새빈한테 안겨 보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건 기절한 장소를 꾸역꾸역 찾아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김진호였다. 그 뒤에 무언가에 홀린 듯 빠른 걸음으로 호텔을 벗어나는 것이 마지막 행적이라는 점까지, 이 모든 일련의 흐름이 영상만 봐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겠는데 상식적으로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하도 맞아서 너덜너덜해진 최태혁네 부하를 빼내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면밀히 조사했다. 당사자에게 듣는 것만큼 자세하진 않았지만, 대략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모이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입양은 공개입양이었나 보더라. 아니, 공개될 수밖에 없는 입양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하나? 둘이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여자가 자궁에 문제가 좀 있어서 애를 못 갖는다는 소문이 있었대.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다 큰 남자애를 아들이라고 데리고 다녔다고.”
“...이상하네.”
자기가 설명하는 부분이 적힌 서류를 내미는 후를 보며 호가 한쪽 눈썹을 휘었다. 자궁에 문제가 생겼다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가 결혼 초에 소문이 나나? 부부 사이에 오랫동안 아이가 안 생길 때나 날 수 있는 소문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났다. 그것도 신랑이나 신부 모두 20대 중반 정도의 아주 건강한 나이인데, 굳이 콕 집어 자궁 문제라니. 결혼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는 김에 산부인과 방면으로도 검사를 받았다고 치더라도, 그 결과를 누군가 일부러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게 아니고서야 그런 소문이 날 확률은 지극히 낮을 터였다.
“그 와중에 보란 듯이 큰 애를 입양했다라....”
“당시 진호는 이미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사고 친 애라고 둘러대기에도 맞지 않았어. 뭐, 애초에 그런 시도조차 없었긴 했지만.”
“왜 그런 것 같은데?”
호의 질문에 후는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몇 장을 옆으로 치우고 나서야 사진이 클립으로 끼워져 있는 종이가 보였다. 그걸 집어 반대편으로 쓱 밀어내고서는, 후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테이블 위로 두 발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남잔데, 둘이 유독 친했다나 봐. 게이 소문이 있을 만큼. 동창들 사이에선 둘이 키스를 했네 마네, 호텔을 드나들었네 마네 하는 목격담도 있었을 정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둘이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희한하게 대학 가선 그 소문이 싹 없어져.”
“어떻게?”
“그 남자랑 진호네 그 여자는 소꿉친구였던 모양이라 고등학교 때부턴 셋이서도 잘 놀았나 봐. 그래도 대학 가기 전까진 그 여자랑 진호 아버지랑은 별로 그런 소문이 없었단 말이지? 근데 대학에선 둘이 유명한 CC였대. 둘 연애 스토리가 워낙 로맨틱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더라.”
그렇게 세기의 연애 3년 하다가 졸업 1년 뒤에 결혼. 후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동료들이 걸어 들어왔다. 어깨 근육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팔을 돌리던 맨 앞의 사람은 앉아 있는 쌍둥이를 보더니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어, 너, 너네 왜 둘 다 여기 있냐?”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은 사이에서 쌍둥이가 유복자란 사실은 거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모든 병원 사람들이 이런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질문한 사람은 몇 년을 같은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묘하게 쌍둥이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
후는 다리를 내리고 남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얘가 놔두고 간 자료가 있어서요. 그거 좀 가져다주느라고요.”
“아아, 그래?”
“아니, 양 선생은 쟤가 여기 있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가던 길까지 막고 그래요. 야! 너 요즘 몸 안사리고 일한다며? 적당히 해, 적당히. 누가 보면 당장 병원 물려받으려고 그러는 줄 알겠어!”
뒤이어 들어오는 얼굴은 쌍둥이와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다. 장난기 어린 농담에 약간 어색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풀렸다. 후는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은 쟤가 이어받을 거니까 저는 그냥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일하는 걸로 해주세요. 저 교수님 콜 와서 일어납니다. 냉장고에 커피 채워놨으니까 드세요.”
“어어? 아주 선언한 거야? 병원 부정 세습, 뭐 이런 걸로 신고 넣어?”
그의 등 뒤로 윙크하는 선배를 향해 웃으며 목례를 한 후는 전화를 받으며 당직실을 나섰다. 호는 여전히 자신의 눈치를 보며 멀찍이 떨어져 앉는 남자와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올라가는 남자를 보면서 그새 한군데로 모아 정리한 서류를 뒤집어 놓았다. 후는 눈이 아프다고 종이로 보는 것을 선호했지만 그는 태블릿으로 보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사람들 눈이 있는 곳에서 괜히 저 서류들을 뒤적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타이밍 좋게 태블릿의 화면이 켜지면서 자료는 메일로 보내놨다는 메시지가 중앙에 떴다. 벌써 코를 골고 있는 선배와 핸드폰을 하고 있는 선배를 번갈아 확인한 호는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후의 설명과 서류의 내용을 곱씹던 호는 곧이어 나오는 사진에 손가락을 떼고 고개를 기울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로 예쁘게 생긴 남학생이 참 해사하게도 웃고 있었다. 진호의 아버지는 누가 봐도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으므로 이 남자랑 다녔다면 정말 오해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남자는 성인일 때 찍은 사진에서도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성인이 되고 나서 더 왜소해진 것 같았다. 얼굴에도 조금씩 그늘이 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뭘까.
호는 다음 장이 서류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전의 페이지로 돌아가 사진을 유심히 관찰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눈에 익지. 어딘가에서 마주친 적이라도 있나 머리를 굴리던 호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사람,
“어딘가 진호 닮았네.”
“...뭐?”
“네? 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요.”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린 덕분에 핸드폰을 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 호를 쳐다봤다. 답지 않은 행동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능청스레 관심을 흐트러트린 호는 교복 입은 사진부터 천천히 옆으로 넘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김새가 닮은 건 아닌데, 사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닮았다. 부모의 사진을 봤을 때 생김새와 분위기가 너무 달라 서류를 보기도 전에 입양된 것을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차라리 이 남자가 진호의 아버지라고 했다면 엄마보다 아빠를 닮았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이 비슷했다. 해맑으면서 우울하고, 울보일 것 같으면서도 강한 그런 묘한 느낌. 호는 이 남자랑 진호가 접점이 있었나 싶어 서류가 있는 다음 장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남자의 정보가 적힌 서류는 단출했다. 같이 어울려 다녔다던 진호의 부모는 서울의 손꼽히는 대학 경제학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커플이었다던데, 정민영이라는 남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흔적이 없었다. 보통은 같이 공부하지 않나? 정말 알면 알수록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장으로 넘긴 호가 잠시 멈칫했다. 태블릿 화면 위에 잠시 굳어있던 손이 이윽고 연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몇 장에 걸쳐 있는 병원 진료 기록들. 그 기록들은 남자가 지금까지 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래서 대학을 안 간 건가. 이 정도로 아프면 대학에 다니기엔 무리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 휴학을 병행한다면 어떻게든 다닐 수는 있었겠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을 약을 사용했던 것을 보면 학비에 병원비까지, 돈이 많이 들었을 테다. 그러고 보니 앞의 서류에서 보기로는 그는 무직이었는데. 병원비를 부모가 대고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의 가족에 대한 정보가 적힌 페이지가 나왔다.
부와 모 이름 옆에 쓰여 있는 두 글자, 사망. 부모의 생전 직업을 보아 남겨진 유산도 거의 없을 듯했다. 그럼 누가 그 돈을 댄 거야. ...아.
“하하하.... 뭐야, 그 소문이 맞았나 보네.”
“아까부터 뭘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거야, 남궁 선생.”
“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선배 편히 쉬세요. 저도 일이 있어서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보는 남자를 향해 너털웃음을 짓던 얼굴 그대로 목례를 했다. 엎어 두었던 서류와 태블릿을 들고나온 호는 복도를 걸으면서 남은 페이지들을 대충 읽어 넘겼다.
그래, 이것들 때문에 진호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된 거구나. 호는 이를 으득 갈며 코웃음을 뱉었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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