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똑.
욕실 천장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욕조 한가득 받아져 있던 물에 잔잔히 파동이 일었다.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오늘이 무슨 요일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내 허리에 감겨있던 손이 움직였다.
“흣, 너...!”
“무슨 생각해?”
갑자기 젖꼭지를 집어 올리는 손가락을 따라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뒤를 향해 눈을 흘기자, 정새빈이 은근한 어투로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생각을 하냐는, 정말 지겹도록 들었던 질문. 내가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바람에 물 밖으로 노출된 젖꼭지를 빙글빙글 돌리는 탓에 대답은 하지 못했다. 원래도 예민했던 몸이 쉴 새 없이 자극받아서 그런지 이미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기에,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나는 그저 눈을 질끈 감고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응, 흣”
“생각은 아파, 쫑쫑아. 아픈 건 싫어.”
아프면 안 돼. 정새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목덜미와 어깨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한 손을 내려 어느새 서 있는 내 것을 잡더니, 뿌리 쪽을 꾸욱 눌렀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나는 파드득 몸을 떨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헉, 안, 이제 안, 나와. 못해.”
“아냐. 얜 아니래.”
안 된다고, 세차게 고개를 젓는데도 나머지 한 손까지 내려 엄지로 선단을 문지르며 슬슬 피스톤질을 시작하는 정새빈의 행동에 겁에 질린 나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지나친 쾌감은 고통과 같다는 점과, 체력적으로 몰리면 섹스를 하다가 정말 기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따뜻한 물에 담겨 이제야 천천히 피로를 풀고 있던 몸이 다시 잔뜩 경직되고,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내 볼은 머리카락에서 흐르는 물과 눈물이 섞여 벌써 온통 축축해졌다.
“하으, 큿, 콜록, 헉.”
“흐음, 안 되겠네.”
조금이라도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 때마다 욕조의 물이 요동치 벌어진 입으로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물을 먹게 되어 자꾸 캑캑댔더니 정새빈이 만지작거리는 것을 멈추고 내 골반을 잡았다.
나는 갑자기 끊긴 자극에 안심하면서도 묘하게 아쉬운 기분을 내리누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쉽다니, 변태 다 됐네, 김진호. 이 행위를 반복할수록 적응하고 변화하는 몸의 반응이 당황스러워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데, 잡혔던 골반이 위로 휙 들렸다. 아무 예고도 없이 들린 하체로 인해 자연스레 상체는 그대로 물에 처박혀버렸다. 순식간에 머리부터 물에 빠진 나는 상황 파악도 할 새도 없이 미친 듯이 허우적대다가 머리카락을 당기는 힘에 이끌려 나왔다.
“쫑쫑아, 수영은 다음에 해.”
“푸하, 컥, 콜록, 너, 콜록, 때문이잖아!”
훅 들어오는 산소에 급하게 숨을 마시려고 했다가 물까지 기도에 들어가 버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잔뜩 매워진 코로 계속 물을 뿜으며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뻔뻔한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지가 빠트려놓고, 뭐? 수영? 씨발, 그리고 머리채를 잡아서 꺼내는 놈이 어딨냐고. 진짜 이 또라이 새끼!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턱과 목을 감싸 상체를 지탱해주고 있는 녀석의 손에 기댄 채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대충 닦아냈다. 물 때문에 뜨지 못했던 눈을 뜨고 기침이 좀 잦아들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던 정새빈은, 욕실히 점차 고요해지자 뒷목에 가만히 대고 있던 볼을 떼고 내 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큭, 너...!”
힘만 존나 쎈 새끼, 진짜. 목을 아래서 받치던 자세 그대로 손에 힘을 주더니 내 몸을 일으켜 세운 덕분에 순간 목에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얼결에 일어서 녀석이 이끄는 대로 서긴 했지만 물먹고 기침하느라 아렸던 목을 조르듯이 일으켜 세운 녀석을 있는 힘껏 째려봤다.
“아프다고! 콜록, 아파! 내가 씨발, 사람 몸 다룰 땐 살살 다루라고 했잖아!”
나는 팔을 뒤로 힘없이 날리며 욕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으면서 어느샌가부터 녀석이 마음대로 구는 것만큼 나도 녀석에게 마음대로 굴게 되었다. 정말 본능으로 움직이는 짐승들처럼 우리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먹고, 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변한 데에는 자기한테 소리를 지르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흐뭇한 얼굴을 하는 저 또라이 새끼의 영향이 지대했다.
“응. 예쁘다, 쫑쫑아.”
녀석은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마다 아주 좋은 행동을 한 것마냥 칭찬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한 번에 말하거나, 춥다고 불평하거나, 덥다고 투덜대도 그랬다. ‘너’라고 부르고 ‘야’라고 부르고, 가끔은 참지 못하고 또라이라든가 미친놈이라고 부르면 더욱더 기쁜 얼굴을 하는 모습이 정말 미쳐버린 것 같았다.
거기다 이렇게 행위 도중에, 혹은 쉬고 있을 때도 나의 반응을 시험하듯 일부러 내 몸을 함부로 다루고 가만히 지켜봤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눈치를 보거나 참고 넘기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러면 안 된다면서 집요하게 괴롭혀댔다. ‘자꾸 그러면 네가 힘든 거야, 이렇게.’ 그런 비슷한 말을 하면서 유두가 퉁퉁 부을 때까지 빨아대고, 온몸이 울긋불긋해질 때까지 물고 빨고, 차라리 넣어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걸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처음엔 참지 못하고 혼잣말하듯 하던 말들을 이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냥 뱉어버리게 되었다. 막상 뱉고 나서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 고민 또한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힛, 잠, 흐익.”
이렇게 내가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마다 녀석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얼굴을 닦아내느라 방심한 틈을 타 엉덩이를 벌리고 혀를 들이미는 녀석으로 인해 다급하게 하체를 앞으로 빼며 신음했다. 엉덩이에 힘을 주어 피하려고 했으나 정새빈의 거센 악력을 거스르기엔 많이 부족했다.
“쯧. 진호야, 가만.”
“응, 안, 으응.”
자꾸 앞으로 도망가려는 게 영 거슬렸는지 녀석은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엉덩이를 가볍게 내려쳤다. 반쪽 엉덩이가 불이 난 듯 화끈해지는 감각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쫑쫑이가 아니라 이름이 불렸을 때, 녀석이 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 거칠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새빈은 그런 나에게 잘했다는 듯이 빨개졌을 엉덩이에 쪽, 입을 맞추며 자세를 조정했다. 욕조에 손을 짚고, 한쪽 무릎을 거러쳐 다리를 벌린 채 녀석의 손에 엉덩이가 양쪽으로 활짝 벌려져 너무 수치스러웠지만, 은밀한 곳을 파고드는 촉촉한 감촉에 금새 또 생각은 날아가 버렸다.
“흣, 응, 으응!”
애널 주변을 살살 쓸던 녀석의 혀는 안으로 들어가선 정성스레 내벽을 휘젓고 자극했다. 그것만으로도 간질거리는 감각에 몸이 떨렸는데,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고환을 주물럭거리는 손길에 나는 결국 무릎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급하게 팔로 지탱하고 다시금 무릎에 힘을 주어 버텨 벽에 이마를 박는 일은 없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팔에 힘이 빠져 머리를 박든 물에 빠지든 할 것 같았다. 마침 몸에 묻은 물기 때문에 서늘해지던 참이기도 해서, 나는 내 자세가 흐트러지자 잠시 멈춰준 정새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힘들어. 침대로 가자. 침대가 좋아.”
아직도 내 엉덩이를 잡고있는 녀석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애써 무시하고 고집스레 눈만 쳐다봤다. 정새빈은 멍한 표정으로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임과 동시에 씩 입꼬리를 올렸다. 또, 또 그 표정이었다. 나를 칭찬하는 그 미소.
“흣, 야!”
“응. 가자.”
녀석은 내가 보고 있는데도 내 엉덩이에 얼굴을 묻고 애널에 입을 맞추더니 해맑게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욱하고 치미는 부끄러움에 확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안 무겁냐?”
“음, 무거워.”
그럼 내려주면 안 되겠냐. 일어난 직후에는 허리도 아프고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대충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새빈은 고집스레 나를 안아서 옮겼다. 이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녀석의 주장이었다. 고민도, 생각도, 걷는 것도, 요리도. 그냥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계속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작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저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아프지 말고, 힘들지 말라고. 끝없는 쾌락으로 눈물이 흐르게 하는 것도 저면서 흐릿한 미소를 지은 채 슬퍼하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반은 정신이 없어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고, 나머지 반은 못 들은 척했지만, 그 말들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갔다. 아프지 말고, 힘들지 말고, 슬퍼하지 말자. 그걸 위해선 정새빈이 주는 쾌락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푹신한 침대와 맛있는 음식과 쾌적한 온도, 어두운 곳을 은은히 비춰주는 따뜻한 주황빛과 시간을 모르겠을 만큼 느긋하게 흘러가는 공기는 덤이었다.
“쫑쫑아, 다리.”
“싫어.”
“푸흐. 응, 그래.”
침대에 날 내려놓자마자 다리를 벌리라고 무릎을 톡톡 치는 녀석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싫다는 매몰찬 거절에도 뭐가 좋은지 녀석은 새치름한 눈으로 저를 흘겨보는 나를 향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손은 착실히 나를 돌아 눕히고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춘 채 허벅지 안쪽을 천천히, 진득하게 핥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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