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으, 으응.”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더라. 나는 쾌감에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침대 시트를 쥐어짜며 멍하니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주저앉았는데, 정새빈이 왔고, 잊게 해주겠다는 유혹에 혹해 녀석을 따라 어딘가로 왔고, 그리고....
“자꾸”
“아, 안, 히잇...!”
“딴생각을 하네, 응?”
“아냐, 안, 히익, 안 해, 안 하니까앗.”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새빈은 갑자기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고 조금만 자극해도 몸이 떨릴 정도로 기분 좋은 곳을 용서 없이 짓눌러버렸다. 견딜 수 없는 쾌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허리를 젖혔지만, 따라온 손가락이 벌이라도 주듯 계속해서 자극하고 또 자극했다. 결국 내 힘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새빈의 손목을 잡고 애원했다.
“자, 으응, 잠깐, 만, 흐읏, 멈, 멈추.”
“쉬면 뇌가 돌아가서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며 자꾸 느끼는 곳을 꾹꾹 눌러대는 녀석의 손가락에 속절없이 신음만 뱉었다. 온몸이 들썩이도록 전기가 흐르는 감각은 녀석이 약하게 누르면 애타게, 강하게 누르면 눈앞이 번쩍일 정도로 진하게 찾아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다.
“쫑쫑아, 기분 좋아?”
“흐, 아니, 안 조옷...!”
귓바퀴를 깨물며 짓궂게 묻는 말에 울컥해서 도리질하자마자 녀석은 또다시 짓이겨 버릴 듯이 눌러버렸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강한 자극에 입을 한껏 벌리고 몸을 떨어대었다.
“뭐?”
“좋, 좋아! 좋으, 흐아앗. 아!”
녀석의 손가락은 조금만 더 그 상태로 있으면 바보가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더듬더듬 원하는 대답을 해준 뒤에야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리고 잠시 쾌감이 멈춘 틈을 타 시트에 얼굴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데, 녀석이 옆으로 누워서 손가락을 받아내던 내 몸을 바로 눕혔다. 곧바로 허리 밑으로 베개를 넣고, 다리를 벌리기까지 하는 정새빈을 넋 놓고 지켜보던 나는 녀석의 손이 엉덩이를 잡아 벌릴 때가 되어서야 다급하게 질문했다.
“또 뭘, 뭘 하려고....”
“이제 넣어야지, 쫑쫑아.”
녀석은 말리려고 녀석의 손목을 붙잡은 내 손을 힐긋 보기만 하고 콘돔이 씌워진 울퉁불퉁 흉악한 자신의 것을 내 엉덩이 사이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잠, 아아, 아아아!”
저번에 한 번 느껴봤던 애널이 한계까지 벌어지는 이상한 감각과 함께 찢어질 거라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나는 힉힉 숨을 들이쉬면서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최태혁에게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어깨를 발로 차고 밀어 봤지만, 정새빈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천천히 자기 것을 밀어 넣는 데 집중했다. 허리 밑에 베개가 받혀진 채 엉덩이가 들려서 그런지, 이번에도 내 안으로 조금씩 먹혀들어 가는 녀석의 것이 너무 잘 보였다. 길이는 최태혁의 것이 더 길었지만, 구슬이 박혀있는 울퉁불퉁 외양과 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인지 더 무섭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아, 안될, 흐아, 아”
“돼. 봐, 피 안나.”
정새빈은 혀로 입술을 쓸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상기된 얼굴로 고양이가 그릉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애원한다고 봐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생리적으로 나오는 콧물을 훌쩍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묵직한 것이 내부를 빠듯하게 벌리며 들어오는 감각은 정말이지 너무 이상하고, 생경했다. 그렇게 눈까지 질끈 감고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몇 번 얕은 추삽질을 반복하던 정새빈이 움직이던 것을 멈추더니 허벅지를 콱 틀어쥐었다.
“무, 뭘, 하, 아으으읏!”
끝까지 자기 걸 뺀 녀석은 내 안을 뚫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강하고 깊게 박아버렸다. 손가락 정도의 두께로 눌려도 눈앞을 번쩍이게 만들었던 지점을 빈틈없이 짓누르는 감각에 나는 허리를 허공에 띄우며 고개를 젖혔다, 세상이 온통 하얗고,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온몸의 신경이 타 없어지는 것 같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 도망가야 해.
“힛, 싯, 흐이, 시어.”
“응? 뭐라구?”
싫어, 이거 싫어. 녀석이 박아 넣는 대로 신음을 뱉느라 제대로 다물리지도 않은 입은 단어 하나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삼키지 못해 타액이 흐르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입을 다물려고 해도 녀석의 움직임 한 번이면 다 소용이 없어졌다.
“쫑쫑아, 기분 좋아?”
“아, 아흐, 읏.”
“진호야, 아직도 슬퍼?”
“으흣, 힉, 흐아아.”
뇌를 쾅쾅 때리는 듯한 쾌감에 생각을 하긴커녕 초점마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 정새빈은 자꾸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 말소리는 분명 들리는데, 내용이 뇌까지 도달하지 않아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몰라, 그런 거 몰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를 태워버릴 듯한 전기가 너무 위험할 정도로 기분 좋다는 것과, 너무 좋아서 그만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안돼, 도망 못 가.”
“흐으, 응, 응.”
“하얗게 만들어줄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하얗게 또 하얗게.”
“으흣, 잠, 안, 안대엣...!”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던 정새빈이 예고도 없이 내 것을 손에 쥐었을 때, 이 이상의 감각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안 그래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아득히 넘어버린 쾌감에 마치 요의와도 닮은 아찔한 쾌감까지 얹어지니, 눈을 깜박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자극이 온몸을 강타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 앞을 쥐고 있는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이었지만 필사적으로 내 것을 쥐고 위아래로 피스톤질을 하는 것을 긁어내렸다.
“아, 아대, 히잇, 나아, 나하앗.”
나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내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열심히 빌었다. 이 이상은 안 된다고, 미쳐 버릴 거라고, 나온다고, 나올 것 같으니 제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가해지는 쾌감은 조금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를 자극하는 사람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결국 한계에 도달한 나는 엉덩이를 한껏 조이며 앞섶을 한껏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절묘하게 선단을 눌러 막아버리는 손에 의해 나는 분출하지 못했다. 미칠 듯이 애탄 감각에 몇 번 허리를 들썩이며 떨쳐 내보려고 해도 기둥까지 강하게 틀어쥔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흐아, 왜, 흐읍, 왜에.”
나는 당황과 서러움에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의미 없는 질문을 반복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새빈의 몸을 밀어내려고도 해봤지만 녀석은 밀려나긴커녕 오히려 상체를 숙여 더 가깝게 다가왔다.
“빨리 지치는 건 싫잖아.”
지쳐 잠들 때까지, 아니, 잠들고 나서도 할래, 쫑쫑아.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선단을 막은 채 둥글리고 있던 손으로 유두를 세게 집어 올렸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도리질했다.
“나아, 훌쩍, 힘들어어....”
“알아. 아는데,”
“흐아아아...!”
정새빈은 반쯤 빠져 있던 그의 것을 다시 깊숙이 밀어 넣으며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직이야, 쫑쫑아.”
“으흐으, 응, 흣.”
다시 시작된 피스톤질에 나는 몸을 돌려 시트를 그러쥐었다. 뒤에서 쿡쿡대며 박아오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골반을 앞으로 빼 보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새빈은 내 상체가 옆으로 돌아간 것을 틈타 허공에 떠 있는 다리 하나를 자기 어깨에 올린 후 아예 옆으로 눕혀놓고 박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극당했던 곳에서 미묘하게 벗어나 애타면서도 또 이리저리 찔러대며 잔뜩 민감해진 내벽을 쉬지 않고 괴롭히는 녀석에 의해 나는 그저 느끼고, 느끼고 또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번 분출할 뻔했던 이후로 앞을 만져주지 않아 아플 정도로 꼿꼿이 서 있기만 하던 내 것은, 녀석이 나를 뒤집은 채 내려찍듯이 박아넣을 때가 되어서야 시트에 문질러져 겨우 내보낼 수 있었다.
“쌌, 으니까아, 잠, 힛, 힉, 잠깐마안!”
잔뜩 싼 후에 잠깐 찾아왔던 해방감은 곧이어 용서 없이 내벽을 때리는 정새빈에 의해 죽을 것만 같은 쾌감으로 덮여버렸다. 결국 또다시 눈물을 터트리며 제발 잠깐만 쉬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빌었고, 당연히도 녀석은 내 목덜미에 달콤한 입맞춤을 내릴지언정 박아대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다.
희미한 주황색 조명 아래,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의 쾌감에 잠식되어 신음을 뱉다 지쳐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다가도 귀신처럼 내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알아채고 더 강하게 나를 자극하는 정새빈의 손길에 다시금 소리를 치며 느끼는 것을 반복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 삼키지 못해 흘러내린 타액으로 엉망이었고, 온몸은 땀으로 축축했으며 연속으로 쏟아내 끈적한 앞섶과 쾌감으로 인해 애액이 잔뜩 분비된 엉덩이는 미끌거렸다.
“흐, 으응, 흐으....”
나중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축 늘어져 쾌감이 느껴질 때마다 감전된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움찔거리고만 있는데, 정새빈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잊게 해줄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기분 좋게 해줄게.”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정새빈 특유의 느릿한 어투는 마치 자장가 같았다. 멍한 정신과 백치가 되어버린 뇌는 그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에 담긴 선율은 따뜻했고, 달콤했다. 머리부터 시작해 목덜미, 등허리를 은근하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나는 뜨거운 숨을 길게 내뱉으며 생각했다. 그만, 힘들어. 이젠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그게 그날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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