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일어났어?”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눈이 떠지기도 전에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정새빈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는지 깜깜한 곳에서도 보일 만큼 가까이 붙어 있는 얼굴도 정새빈이 맞았다. 나는 부담스럽게 들이밀어진 녀석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여기 어디예요?”
“대기실.”
무슨 대기실인데. 상황을 이해시켜 주려는 의지가 1도 없어보이는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데 형이 왜 여기 있어요?”
“너 때문에.”
“...아니, 그 여기 말고, 여어기 왜 있냐는.... 하아, 됐어요.”
나는 큰 원을 그려가면서까지 의도를 전달하려던 것을 멈추고 머리를 짚었다. 쓰러졌던 것의 여파인지 두통이 일었다. 어차피 어떻게 물어도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답은 얻어내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두통이 가라앉으면 일어나서 직접 둘러볼 생각으로 잠시 머리를 감싸고 있는데, 있는지도 몰랐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김진호!”
엄마. 히스테릭한 모습은 보였어도 화를 낸 적은 없던 엄마가 분노가 잔뜩 담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꽉 닫힌 문 덕분에 다시 어두워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온 엄마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네가, 네가 어떻게 이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심정으로 지금껏 버텨왔는데! 네가 뭔데 그걸 망쳐!”
“엄...마?”
“내가 뭘 했다고 거기서 쓰러져. 왜 내가 널 학대했다는 수군거림을 듣게 만들어! 왜 그 망할 노인네한테 쓸모없는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목에 핏대가 섰을 것 같을 정도로 소리치는 엄마의 눈이 흉흉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얼굴도 회귀 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잘해줬잖아. 잘해왔잖아! 왜 하필이면 오늘이야. 이제 거의 다 끝났다고, 그 노인네가 김태훈한테 약속한 날이 이제 곧인데 오늘만 잘 넘기면 더 일찍 받을 수도 있었다고! 그러면 네가 보내준 돈도 갚고, 드디어 자유가 되는 거라고 내가 얼마나 참고 또 참았는데. 그걸 감히, 감히 네가!”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너무 놀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멍한 귀로 마구 쏟아지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아팠어야지. 열이라도 났어야지. 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안 하던 짓까지 하다가 쓰러져. 왜 누가 때리기라도 한 것마냥 벌벌 떨다가 쓰러져, 왜!”
“엄, 엄마. 그게 아니라....”
“일어나. 너 지금 멀쩡하잖아. 얼른 일어나서 가. 가서 설명해. 아니라고, 그 빌어먹을 것들이 수군대는 것처럼 내가 학대해서 그런 거 아니라고. 기생충답게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한다고 빈정대는 노인네한테 가서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 어서!”
엄마가 부정하기 위해 내젓던 손을 잡아채더니 거칠게 끌어당겼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방심하고 있던 나는 균형을 잃고 누워있던 곳에서 상체부터 떨어졌다. 바닥에 코를 박을 뻔한 것은 손을 짚어 겨우 면했으나, 계속 몸을 당기는 힘에 의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이 쓸렸다.
“엄마 잠깐, 잠깐만. 갈게! 갈 테니까 잠깐!”
아프고 무서워서 엄마를 향해 외쳐봤지만 흥분해서 그런지 안 들리는 것 같았다. 회장 안의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게 얼마나 부당하고 화가 났는지 소리 지르던 엄마를 멈춘 것은, 존재조차 까먹고 있던 정새빈이었다.
“아프잖아.”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목을 강하게 억죄고 있던 손을 떼어내 버렸다. 누가 있었단 것에 놀란 건지, 아니면 손이 쳐내진 것에 놀란 건지. 엄마는 소리치던 것을 멈추곤 당황한 눈빛으로 정새빈을 응시했다.
“기다려.”
나는 정새빈이 엄마를 향해 뱉은 단호한 경고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자세로 휘둘린 몸이 뻐근했다. 아무렇게나 쓸린 곳도 따끔거렸다. 그러나 그것보단 엄마를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너. 너 아까 진호 안아 들고 나갔던 놈이지.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모르는 인간한테 쓰러진 애 들려 보냈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나한테...!”
엄마는 정신이 들자마자 이번엔 정새빈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나서준 녀석에게 비난이 쏟아지게 두면 안 될 것 같아, 다급하게 손을 뻗어 엄마의 어깨 부근을 잡고 나를 보도록 돌려세웠다.
“엄마! 엄마, 가자. 가자며. 가서 내가 할 거 있다며.”
다행히 내가 가서 상황을 해명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인지 엄마의 비난이 멈췄다. 잠깐의 정적 뒤로 엄마의 짤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따라와.”
나는 엄마가 자기 어깨에 놓인 내 손을 벌레 쫓듯 털어내는 것을 보며,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실루엣만 보이는 등을 쫓아 걷다가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정새빈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뒤를 돌았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빛에 비친 녀석은 지독히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입 모양 만으로만 말하려 했던 나는 문이 다 닫힐 때까지 내 쪽을 보지 않는 정새빈으로 인해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엄마를 뒤쫓아 가야 했다.
“병원을 데려가야지, 여긴 왜 또 데려왔어.”
회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문가에 나와 있던 아버지였다.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는지 손을 올렸던 아버지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리며 피하는 나를 보고 손을 물렸다.
“괜찮대. 괜찮아 보이는 거 안 보여? 비켜. 들어가서 애 멀쩡한 거 보여 줄 거야.”
아버지는 주먹 쥔 손을 부들거리며 말하는 엄마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면서 뒤따라 들어가는 내게 힘들면 적당히 하고 나오라고 속삭였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엄마의 손짓을 따라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이쪽을 보고 웅성거렸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야, 너 어디 아픈 거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익숙한 친척들과 얼굴만 아는 먼 친척들, 그리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 속에 다행히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비슷한 차림새의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며 안도하는 것도 잠시, 재촉하듯 내 팔을 잡고 흔드는 엄마를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최근 무서운 영화를 봐서 그랬던 것 같다는 빈약한 이유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으나 점점 표정이 안 좋아지는 엄마를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던 나는 결국 내 다른 상처를 꺼내 들었다. 학교 다닐 때 학교폭력을 당했었다고,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이용하게 될 줄 몰랐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번엔 납득을 할 만했는지 사람들은 그제서야 엄마를 향했던 의심을 거두고 나에게 하나둘 위로의 말을 던졌다. 그 일련의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내 등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해 주어 고맙다고, 아들의 아픈 기억이라 말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 앞에 가서는 그 변명으로도 모자라 엄마가 옆에 있어 줘서 다행이었다고, 마찬가지로 진실이었지만 지금만은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주절거려야 했다.
나는 끔찍한 기분을 내리누르며 부들거리는 입꼬리에 한껏 힘을 주고 버텼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다시 홉떠진 눈에는 못마땅함과 미약한 연민이 서려 있었다.
“피곤해 보이니 넌 이만 가서 쉬어라.”
그 말에 내 팔을 잡고 있던 엄마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 풀려났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풀려났다.
“그래, 이제 얼른 집에 가서 좀 쉬고 있어. 엄마도 금방 갈게.”
엄마의 걱정 어린 권유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끝이 찡해지고 목 안쪽이 울렁거렸다. 더는 무리였다.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고개만 푹 숙여 인사한 뒤 빠른 걸음으로 회장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건물 내부와 주변엔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봐 정처 없이 걷고, 걷다가 쓰레기만 가득히 쌓여있는 곳에 다다르고 나서야 멈춰 섰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눈물.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혼자 숨죽여 울었다. 눈물과 콧물로 온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차마 닦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졸도할 것처럼 울어댔다. 그러다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때 즈음엔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 바닥에 널부러진 채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검정 구두가 점점 다가왔지만, 나에겐 올려다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단정한 구두가 내 바로 앞에 가지런히 설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내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쫑쫑아.”
정새빈은 멍하니 바닥만 보고 있는 내 앞에 쭈그려 앉더니 천천히 속삭였다.
“내가 잊게 해줄게. 아픈 거, 힘든 거, 슬픈 거. 모두 잊게 해줄게.”
그러니까 나랑 가자, 진호야.
나른한 듯, 해탈한 듯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녀석은 늘어져 있던 나를 품에 안았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아픈데,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아픈데도 그 따뜻함이 좋았다. 필요했다.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또 흐르기 시작했다. 정새빈은 그 상태로 얼마간 가만히 있더니 그대로 손을 움직여 나를 안아 들었다. 힘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나는 눈을 감고 그 품에 기댔다. 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어떻게 해준다면 뭐든 좋았다. 뭐라도 좋으니 나를 혼자 두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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