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엄마가 오는 건 알았으나 아버지가 올 줄은 몰랐던 나는 놀라서 자리에 얼어붙었다. 왜 가만히 서 있냐는 엄마의 재촉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발을 옮겼다. 회귀 전에는 집 상태를 보고 나가버린 엄마를 당일 호텔 근처 카페에서 만났고, 아버지는 이미 회장 안에 있었다. 이번에 엄마를 붙잡아 둘 수 있더라도 아버지와는 똑같이 회장 안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데리러 오다니. 둘이 계속 연락하고 있었구나.
나는 내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는 외식 자리에서 애인과의 동거를 선언한 엄마와 맞받아치듯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집중하고 싶다고 선언한 아버지였기에 자연히 둘의 연락이 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 두 가지 모두 둘이 연락을 끊을 이유가 되어주진 못했다. 그냥 내가 그러니까, 나와는 연락의 빈도수가 확 줄었으니까 그 둘도 그럴 것이라고 어림짐작을 했던것이다.
나는 마음 한구석에 안도감과 약간의 서운함이 스미는 것을 느끼며 큰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보고 있는 엄마 옆으로 갔다. 나오는 시간까지 미리 맞춘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차가 우리 앞으로 와서 섰다. 창문을 내려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준 것도 아닌데, 엄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익숙하게 조수석 문을 열어 타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에 서둘러 뒷좌석 문을 열었다.
"진호는 오랜만이구나."
아버지는 내가 차 문을 닫자마자 백미러로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물었다. 진호'는'이라는 것을 봐선 두 분은 최근에 만난 적이 있나 보다. 연락만 한 것이 아니라 둘이 만나기까지 했다는 것을 듣고 있자니 그래도 둘 사이가 평탄하다는 것에 대해 느꼈던 안도마저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므로 나는 활짝 웃으며 같이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는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잇기 어려운 반응에 또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조용히 있을까 고민하며 눈을 굴리고 있자니, 타자마자 눈인사를 끝으로 창밖을 보고 있던 엄마가 턱을 괴며 물었다.
"민영이는 좀 어때?"
저번에 봤을 때보단 좀 나아졌어?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무미건조했다. 아니, 아니다. 창문에 어렴풋이 비치는 엄마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아랫입술을 짓이기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미건조하게 표현된 것일 뿐, 엄마는 그가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봐 초조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엄마는 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물기 어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거기까지 보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창밖을 주시했다. 그에 대한 일은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아무도 숨기지 않지만 설명해주지도 않는 이야기에 대하여 내가 선택한 대처는 외면이었다. 나는 그의 최근 상태에 대해 짤막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부모님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면서 처음 셋이 외식하러 나갔던 날을 떠올렸다.
집에 오고 며칠 되지 않았던 날, 나는 말로만 듣던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한 손엔 엄마의, 다른 손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갔다. 매번 스치듯 보던 아버지와 처음으로 같이 식사하는 자리였고, 매일 허공에만 외쳤던 엄마와 아빠를 직접 부를 수 있게 된 날이었으므로 굉장히 설레었던 기억이 뚜렷했다. 거기서 나는 아이가 듣기엔 지나치게 진솔한 고백을 마주했다.
'진호야, 엄마가 너를 낳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나 가족이 된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어. 우리 가족은 서로 너무너무 필요해서 만난 거야. 엄마에겐 아빠가, 아빠에겐 엄마가.'
진호에겐 우리가, 우리에겐 진호가.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울 것처럼 웃고 있었다. 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껏 쪼그려 앉은 엄마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맛있게 먹은 스테이크 고기가 역류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침을 삼켜 구토감을 억누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안아주는 그 품이 너무 따뜻하고 아늑해서, 정상적이진 않더라도 이제서야 겨우 생긴 부모라는 존재를 내 손으로 놓을 수가 없어서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손톱이 너무 화려한 거 같은데."
"몰라, 지울 시간 없었어. 예쁘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네가 괜찮다면 그런 거겠지."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엄마와 아빠의 아들로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배웠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만났기에 서로를 위해 해줘야 하는 역할들이 있었다. 먼저 엄마와 아버지는 내게 환경을 제공했다. 살 수 있는 집과 생활비, 병원비 등을 부담하고 학부모가 참여해야 하는 학교 행사나 모임에 참여하는 등 ‘부모’가 해야하는 필수적인 일들을 해주었다. 다만 원체 바쁜 분들이었기에 모든 일에 함께하지는 못했고, 나 또한 피곤해 보이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짐이 되기는 싫으므로 최대한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버릇을 들였다.
내가 아들로서 가장 먼저 적응해야 했던 것은 아버지가 처한 상황에 맞게 두 집을 오가며 사는 것이었다. 그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 아버지는 평소엔 내가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그와 둘이 지냈다. 내가 어려서 부모의 역할을 비교적 많이 해야 할 때는 평범한 부부로 보이기 위해 한 달 중 보름 정도는 우리 집에 머물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빈도수는 급격히 줄어 나중에는 거의 오지 않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엄마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을 때이므로 미성년인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었던 둘은 나를 번갈아 가며 돌보기로 합의했다. 일주일에 얼마간은 ‘엄마 집’으로 부르게 된 우리 집에, 또 얼마간은 그가 있는 아버지의 집에 머물렀다. 아버지와 있는 날엔 자연스레 그와도 함께했는데, 그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나 같이 보낸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사실 나를 긴장하게 한 일들은 대부분 엄마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울음을 삼키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가족’이라는 허울을 끝내지 않기 위해서 내가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일들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나는 엄마를 위해 가족이 모이는 자리엔 반드시 참석하여 사랑으로 맺어진 집에 입양된 행복한 남자아이를 연기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만큼은 진짜 부부처럼 행동하면서 나에게 더 집중해주는 것이 좋아서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 헛된 신기루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은 한 명을 위한 연극임을 깨닫기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거짓말이고 내 꿈일 뿐이라는 공허함이 매 순간 덮쳐왔다.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엄마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고, 우리는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했다.
"진호야, 네가 보기에도 너무 화려하니? 어른들이 한마디 할 것 같은 정도야?"
엄마는 어른들 앞에선 최대한 수수하고 청순하며 순종적인 아내를 자처했다. 할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원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배 째라는 듯이 말해놓고도 손가락을 접어 손톱을 이리저리 한참 둘러보던 엄마는 결국 뒤를 돌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초조함과 찝찝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얼굴을 흘끔 본 뒤, 나는 큐빅이 점점이 박혀있는 벚꽃색의 손톱을 유심이 뜯어봤다. 평소 가족 모임에 갈 때 했던 스타일보단 살짝 화려하긴 했으나 요란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거기다 가면 엄마 보통 무릎 위에 손 모으고 있잖아. 잘 안 보일 거야."
"그래? 그럼 다행이구. 어후, 긴장했잖아, 김태훈!"
긴장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던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아버지의 팔을 찰싹 내리쳤다. 오랜만에 소리로 내뱉어진 아버지의 이름이 생소했다. 장난기 섞인 호들갑에 아버지는 미간을 설핏 찌푸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민영이나 너나 툭하면 사람 때리는 손버릇 좀 고쳐야 돼."
"우리가 손버릇이 있는 게 아니라, 네가 툭하면 맞을 짓을 하는 거야. 그치, 진호야?"
갑작스러운 지목에 나는 어색하게 하하, 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대답하기엔 아버지가 맞을 짓을 하는 성격인지 어쩐지 잘 모르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농담을 거들 만큼 스스럼없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 애매한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그가 공유했던 추억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 엄마와 그가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아버지가 해결했던 사건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전해졌다. 간간이 뒤돌아 나를 보며 말하는 엄마에게 마주 웃어주던 나는 엄마의 시선이 완전히 아버지에게 고정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도 아버지도 모를, 내가 엄마를 위해 했던 두 가지 일. 하나는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모른 척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친구라서 차마 미워하지 못했던 그를 엄마 대신 미워하며 배척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구석에 혼자 앉아있던 내 손을 잡아 가족으로 만들어준 엄마를 위해 했던, 어린 날의 치기 어린 결심이었다.
"태훈이 왔구나.”
1년 만에 보는 할아버지는 1년이 아니라 10년은 넘게 더 노쇠해진 모습을 하고 회장 앞쪽 중앙에 앉아계셨다. 평범한 가족 모임이라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이 화려한 장소에 모여있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어색하고 무서웠다. 거기다 언젠가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진 양복 입은 사람들이 대거 있는 장소 한가운데 있자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가운데 앉아 눈을 부릅뜨고 모두를 둘러보는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날카롭고 냉정한 눈.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시험하듯 봤다. 누군가를 가늠할 때 나오는 얇은 눈을 하고 나를 가만히 관찰할 때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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