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허리까지 오는 웨이브 진 긴 머리에 짙은 눈매, 빨간 입술, 단정하면서 고급스러운 원피스와 앞코가 뾰족한 가느다란 굽의 구두. 나와 눈높이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키 크고 아름다운 미인의 여성은,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셨어요?”
나는 학습된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맞이했다.
“응. 후우.... 피곤하다.”
눈동자만 움직여 내 얼굴을 힐긋 확인한 그녀는 목이 뻐근한지 뒷목을 주무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문을 닫다 말고 입 안쪽을 깨물었다. 내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인 세련된 구두가 눈에 밟혔다. 나는 우두커니 신발장에 서 있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문을 잠근 후 거실로 갔다.
“진호야, 물 좀 줄래?”
“얼음물로 줄까?”
“아무거나, 유리잔에.”
소파에 앉아 목을 뒤로 젖히는 모습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나는 깨끗이 닦아 놓은 유리잔에 얼음 몇 조각을 넣고 생수를 부으며 거실을 향해 외쳤다.
“얼마 전에 일이 좀 생겨서 열쇠 바꿨어. 새 열쇠 한 쌍 화장대에 넣어놨으니까, 전에 건 버리고 그거 가져가.”
물이 시원해지도록 수저로 몇 번 휘휘 저으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려니 으응, 하는 아주 가느다란 대답이 들렸다. 나는 적당히 차가워진 물과 미리 꺼내놨던 코스터를 챙겨 거실로 나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척을 느꼈는지 엄마는 감았던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내게 잔을 받으면서 지나가듯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어?”
“그냥 그럭저럭. 엄마는?”
“나도 그냥 그랬지, 뭐. 아. 요전번에 돈 더 보내준 거 잘 썼어. 진짜 맞춰 줄 수 있을 거라곤 기대 안 하고 말했던 건데, 진호 너 취직했니?”
탁자 위의 코스터에 컵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소파에 기대 눈을 감는 엄마를 보면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정작 질문한 당사자는 정말 궁금했다기보단 그저 생각나는 대로 던졌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언제나 그랬듯 대화가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내 쪽이었으니까.
나는 엄마가 흥미를 잃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냥 취직을 했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을 하는 것까지 얘기할까. 이왕이면 월급 빵빵한 곳에 취직했으니 혹시 돈이 더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까지 하고 싶었는데. 그걸 말하려면 어떤 일인지 얼마를 받는지도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 얼마를 받는지 말하는 것보단, 무슨 일을 하게 되었는지 알리는 쪽이 문제였다.
열심히 고민하던 나는 그냥 솔직히 말해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슨 일이건 일단 정규직으로 취업을 한 것이었으므로 크게 실망하고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좋아해 줄지도 몰라. 나는 테이블 너머 엄마 맞은편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응, 나 취직....”
“진호야.”
“어?”
왠지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데 중간에 말이 잘렸다. 놀라서 올려다본 엄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너 어릴 때부터 엄마가 누누이 말한 거 기억하지? 진호 넌 번듯한 일 해야 해. 남들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일. 어쭙잖은 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시간 낭비니까.”
“....아.”
“네 아빠 쪽 사람들 등쌀 알잖아. 1년에 한 번 보는데도 매번 사람 질리게 구는 거 듣고만 있는 게 벌써 몇 년째야. 변호사, 의사는 물 건너갔으니 대기업이라도 들어가 주라. 이 짓도 이제 끝이 보이니까, 많이는 안 바라고 딱 한 번. 한 번쯤은 엄마도 기 좀 펴보고 싶어서 그래.”
너 그래도 일류 대학 나왔으니까 그 정돈 할 수 있잖아. 한숨이 섞여 나온 말이 가슴에 박혀 들었다. ‘끝이 보이는 짓.’ 그 말이 내 목구멍에 콱 틀어 막힌 것 같았다. 부러 침을 꿀꺽 몇 번을 삼켜도 불편함은 가시지 않고 더 심해졌다. 나는 티셔츠의 목 부근을 늘어트리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다른 생각 하자, 다른 생각. 엄마가 또 뭐라고 그랬더라. 번듯한, 자랑할 만한 일.
그 순간 머릿속에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하지 말라는 엄포를 듣고 나서도 몰래 요리를 배우던 것을 들켰을 때, 집안의 모든 조리도구를 갖다 버리고 한동안 예령이네 집 근처에도 못 가게 했던 일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래, 요리도 결국 남 시중드는 일이라며 못하게 했던 엄마에게, 아무리 대우가 좋은 정규직이라 한들 하우스 키퍼 역시도 그저 남 시중들어주는 사람일 뿐일 것이다. 무슨 좋은 소리 듣자고 그걸 홀랑 말하려고 한 거야, 멍청아. 나는 스스로를 타박 한 후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 채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취직은 아니고, 예령이가 소개시켜줘서 취직 준비하면서 할 수 있는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구했어. 그래서 요즘 좀 넉넉해졌어, 여러모로.”
“아아, 아르바이트였구나. 하긴, 좋은 데 취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괜히 기대했네.”
엄마는 화려하게 장식된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시급이 높아도 아르바이트에 너무 기대지 말고 취업 준비도 제대로 하면서 해, 하고 덧붙이는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이고 약간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애써 밝게 웃으며 주제를 살짝 틀었다.
“근데 엄마, 이번 일 시급이 정말 높아서 나 웬만한 회사원보다 더 벌 거든? 그러니까 혹시 저번처럼 돈 더 필요하고 그러면 편하게 말해도 돼. 나 틈틈이 모아둔 돈도 좀 있으니까. 엄마가 필요한 만큼 줄 수 있어, 나.”
엄마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같이 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까지 한참을 웃다가, 긴 한숨과 함께 소파에 쓰러지듯 눕더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필요한 만큼 줄 수 있다는 말도 하고. 많이 컸네, 우리 진호.”
방금 전까지 까르르거리던 사람이 말했다고 보기엔 퍽 자조적인 어조였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손톱으로 바닥에 원을 그리는 엄마를 보며,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몇 년을 같이 살면서 다른 것들엔 얼추 적응했으나 저 변덕스럽고 엉뚱한 감정의 흐름만큼은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아까 바로 옆을 스쳐 갈 때 술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오늘은 마시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맨정신인 것 치곤 오늘따라 유독 더 대화 주제든 감정이든 이리저리 분별없이 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문득 드는 걱정에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보려고 좀 더 가까이 다가앉는 순간, 엎드려있던 엄마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예령이가 널 잘 챙겨서 다행이야. 둘이 친구 맺어준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 전에 말했지? 엄마가 입양기관에서 스치듯 봤던 예령이 엄마를 딱 알아본 덕분에, 예령이랑 친구 시키자고 말할 수 있었다고.”
엄마는 평소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소녀같이 밝고 통통 튀면서도 어딘가 무심하고 심드렁한 느낌이 섞인, 특이하고 엄마다운 말투. 그에 나는 안심하며 맞장구를 쳤다.
“응, 기억해. 엄마가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와선 내 손 꼭 잡고 너 이제 혼자 아니라고, 누구보다 날 이해해줄 수 있을 친구를 엄마가 구해왔다고 그러면서 말해 줬잖아.”
그걸 어떻게 잊겠어. 잘됐다면서 나보다 더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처음으로 정말 엄마 같다고, 엄마라고 느꼈던 날인데.
“내가 그랬었나? 나도 참, 아무리 뿌듯해도 그렇지 너무 흥분했었네. 근데 그것도 이제 엄청 옛날 일이 되어버렸어. 세월 정말 빠르다. 어쩐지 주름이 확확 느는 것 같더라니. 진호야, 엄마 나이 들었지?”
나는 금세 또 다른 주제로 튀어버리는 엄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나도 안 들어 보여. 엄마는 여전히 너무 예뻐.”
가장 좋아하는 말을 들은 엄마는 쑥스러운 듯이 한 손을 볼에 올려놓고 수줍게 미소했다. 그리고 그녀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최근에 어떤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부과 시술과 스킨케어 루틴 등 온통 관심 없는 것들이었지만, 말하는 이가 엄마였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맞장구를 쳤다. 잘못해서 흐름이 끊기면 흥미를 잃은 엄마가 미련도 없이 방으로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노력 덕분인지 대화는 생각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여전히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여러 가지 시술 및 수술들과 명품들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듣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점점 멀어지는 등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밖엔 할 수 없었던 회귀 전보다 이쪽이 백배 천배 나았다. 기본적으로 뭐든 금방 흥미를 잃고 심드렁해하는 엄마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나보다 엄마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인해 금방 끝이 나버렸다.
“응, 자기야. 응. 도착해서 쉬고 있었어.”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과 한창 얘기 중이었다는 것은 엄마에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더해진 목소리로 답하며 방으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반 정도가 비워진 물컵과 코스터를 집어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몇 년간 안 오던 집에 오늘은 왜 온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더 큰 돈이 필요해진 이유가 있었는지,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하나도 묻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엄마에게 내가 아직까진 ‘우리 진호’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방에 들어간 엄마는 예상대로 그다음 날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생신 잔치에 가기 위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 즈음이 되어서야 나온 엄마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혹시 몰라 미리 드라이해서 걸어놨던 차분한 남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옅은 눈 화장과 연분홍색 입술까지 더하니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는 그게 영 불만스러운지 고운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안 그래도 다운된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아무 말 하지 않고 먼저 현관으로 가 신발장을 열었다. 그리고 어제 엄마가 벗어두었던 것과는 대조되는 밝은 색의 낮은 굽의 구두를 꺼내 내려놓았다.
“나 앞에 있을게. 천천히 나와.”
나는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엄마를 향해 말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좁은 현관에 계속 서 있으면 엄마가 신발을 신기에 불편할 것 같았다. 내가 꺼내놓은 신발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는 엄마를 힐긋 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대중교통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엄마와 어딘가 이동할 때는 무조건 택시를 불러야 했다. 나는 어플을 켜서 일단 우리 집 주소를 입력한 다음 도착지를 확정하기 전, 확인을 받기 위해 엄마에게 호텔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나오던 엄마가 퉁명스레 말했다.
“택시 부를 필요 없어. 네 아빠가 데리러 온다 했으니까.”
엄마는 요 앞의 큰길에서 픽업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앞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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