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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83화 (83/234)

83화

“야! 네가 여길 왜 와! 그건 또 뭐고!”

“와, 어쩐지 다 팔렸다고 하는 데가 많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너였냐?”

나는 내 앞에 서서 서로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쌍둥이를 번갈아 봤다.

“협약은 폼이야? 풍선은 또 어디서 주워듣고 사 왔냐? 너 설마 곰돌이 핸드폰에 도청 어플 다운받아 놨냐?”

“지랄하네. 예령이한테 듣고 온 거거든, 병신아. 도청 좋아하는 건 너면서 어디다 뒤집어씌우려고.”

남궁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소리를 질렀고 남궁호는 막 달려와서 그런지 상기된 얼굴을 하곤 한껏 빈정댔다.

다 큰 어른 둘이 한 명은 교복을 입고, 한 명은 볼이 새빨개선 각자 양손에 풍선 줄 뭉치를 바리바리 들고 투닥대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움에 방금 전까지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정신이 없어졌다. 이게 뭐지, 싶은 마음으로 녀석들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자니 내 눈길이 느껴졌는지, 녀석들이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진호, 얘 건 받지 마! 내 것만 받아! 그리고 말도 섞지 마!”

“쟤 말 듣지 마, 김진호. 무시해버려. 오늘 쟤 장단 맞추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리 가서 맛있는 거나 먹을까?”

나는 올곧이 마주쳐오는 생기 넘치는 눈동자들을 보다가 문득, 그 너머로 초점을 옮겼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대답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보단 아이가 먼저 보였다. 웅성거리며 몰린 사람들 사이로 서 있는, 아까 내 앞을 지나쳤던 아이. 그 아이의 시선은 뭉게뭉게 떠 있는 풍선들에 향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커다란 그림자가 질 정도로 잔뜩 떠 있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많이 사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정말 놀이공원에서 파는 걸 다 싹쓸이해 온 듯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안엔 분명 내가 갖고 싶었던 모양의 풍선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갖지 못했던,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결국 내가 혼자가 되게 만든.

“하, 하하….”

“어…?”

“야…!”

나는 왠지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이게 뭐야, 진짜. 쪽팔려 죽겠네.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그런 건지 몸에 열이 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추워서 몸이 떨릴 정도였는데 이젠 더웠다. 그리고 안도감이 차올랐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버려졌을까 봐 무서워했던 그 날의 어린아이의 모습이 점차 흐려졌다.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쌍둥이를 올려다봤다. 내가 뭐라고 오늘 하루 종일 내 눈치를 보며 나를 지켜준 남궁후와 채예령이 무슨 말을 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를 만나겠다고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남궁호. 나는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쿵쾅대는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이상했다. 이 둘은 아버지와 그가 아니었고, 내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둘로 인해 나는 오늘 가장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이 장소에서 드디어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게 못내 슬프고 기뻤다. 시간이 어긋났고 사람이 달라졌지만, 어린 날의 아픔이 조금은 어루만져진 것 같아 눈물이 나면서 웃음이 났다.

“야 너 휴지 있어?”

“있겠냐?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가서 좀 얻어오든가 해라, 불청객아.”

“둘 다 그만 해요, 쪽팔리니까.”

나는 손이 꽉 차서인지 발로 툭툭대며 싸우는 녀석들 사이를 비집고 섰다. 마땅히 닦을 데가 없어서 그냥 넥타이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닦았다. 그래도 얼굴에 물기가 가득해서 조금 찝찝하길래 남궁후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들어 전체적으로 한 번 닦아주니 그제야 좀 깔끔해진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양을 보고 있었던 녀석에게 말끔해진 얼굴로 씩 웃어주니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게 웃겨서 혼자 키득대는데 뒤에서 남궁호가 궁시렁댔다.

“너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고미야, 옷은 여기도 있는데 너 왜 사람 차별해.”

“별걸 다 질투하네. 애야? 콧물 다 묻었는데 이걸 부러워하게?”

“그러게 말이에요. 그럼 형은 이거 줄게요.”

자기 배를 내밀며 입고 있는 옷을 어필하는 남궁호의 주머니에 친히 콧물 범벅 넥타이를 넣어 주었더니 녀석의 표정도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그것도 너무 웃겨서 혼자 배를 잡고 웃고 있자니 양쪽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힐긋 본 얼굴에 미소가 띄워져 있는 것을 보니 화가 나거나 진심으로 기분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웃음이 그칠 때까지 실컷 웃었다. 그리고 진정이 된 후, 못 말리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둘에게 지나가다 멈칫거리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우리 그거 나눠줘요. 다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집에 가져가기도 힘든 양이잖아요. 형들이 나 사 준 거니까 다 주는 건 좀 그렇고, 각자 뭉치에서 하나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람들 나눠줍시다. 어때요?”

녀석들은 내 말에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이견이 없어 보이는 행동에 나는 마침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녀석들이 들고 있던 풍선 중에 하나를 빼려고 손을 뻗는데, 녀석들의 손이 쑥 뒤로 빠졌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헛손질을 한 손을 허공에 그대로 두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야, 싫다는 거였어?

“순서가 틀렸잖아.”

“네?”

대뜸 남궁후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더니 호가 자세를 삐딱하게 하며 물었다.

“너, 지금 이거 다 나눠주고 남는 거 아무거나 두 개 가지려고 했지.”

“어…네.”

내 대답에 두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타이밍이 신기할 정도로 딱딱 맞았다. 새삼 저 녀석들이 한 명은 교복, 한 명은 평상복을 입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이 같이 있으면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네 거부터 골라. 그게 먼저야. 다 주고 남은 게 아니라, 네 거부터 고르고 남은 걸 남 줘.”

남궁후가 한 말에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게 뭐가 다른가 싶었으나 사준 사람이 한 말이니까 그냥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왠지 몰라도 풍선을 고르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많은 것들 사이에 내가 먼저,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가 고르기 편하게 손을 내려서 풍선을 가까이해 준 녀석들 덕분에 나는 손쉽게 모든 풍선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고른 풍선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냥 내 허리에 묶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내가 부른 아이 뒤로 죽 늘어선 줄을 보며 녀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점점 줄어드는 풍선들과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특히 내가 시기했던 아이가 내 앞에 섰을 땐, 몸이 간질거릴 정도여서 건네주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했다.

내게 새로운 풍선을 받아든 아이는 그때와 같이 다정하게 서 있는 부부에게 달려갔다. 나는 일부러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을 살폈다. 똑같은 모습을 보는데 놀랄 만큼 달랐다. 아무렇지 않았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다를까. 잘 모르겠으나 아무도 없었던 그때와 달리 내 양옆에는 묵묵히 풍선을 건네주는 쌍둥이가 있었고, 허리에는 내가 고른, 오로지 나만 생각해서 가장 먼저 고른 내 것이 있다는 건 알았다.

그게 절벽에서 매달려 있던 나를 끌어올려 주는 것 같았다. 내 능력이 아니었으므로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씁쓸함은 남아있었지만 그럼에도 차오르는 이 이름 모를 감정은 자꾸 나를 웃게 만들었다.

“아저씨, 저도 하나만 주세요.”

“이거 내 거 아니야. 저 형한테 가서 달라고 부탁해봐.”

녀석들은 자기한테 와서 달라고 하는 아이에겐 꼭 저렇게 말하며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내 허리에 묶인 풍선을 원하는 아이에겐 먼저 나서서 설득했다.

“이건 이 형 거야. 형들이 이 형한테 준 거라 너 못 주니까 다른 거 골라.”

양심 없이 자기를 형이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것을 사수하려고 나서주는 모습이 뭔가 따뜻해서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나 혼자 주는 바람에 시간은 늦어졌지만, 큰 소란 없이 모두 나눠줄 수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빈손이 된 것을 보니 조금은 허전하고, 많이 뿌듯했다. 나는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다시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났다. 빈손을 들어 얼른 눈물을 훔쳐내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하고 있는 쌍둥이에게 한 발짝 다가가 손을 뻗었다.

양손 가득 잡히는 커다란 손. 나는 반사적인지 바로 마주 잡아 오는 손들을 더 꽉 쥐며 앞을 보고 말했다.

“가요!”

다시 혼자가 되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그 일은 과거임을 나도, 내 안에 있는 아이도 안다는 것이었다. 함께 왔으나 홀로 지하철을 타야 했던 그 밤과는 전혀 달랐다. 오늘 밤 나는 양쪽에서 나보다 더 세게 내 손을 쥐고 있는 두 사람과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린 패스권 있어서 이쪽으로 갈 거거든? 너는 저리로 꺼지면 돼.”

“이거 타러 온 거 아닌데? 여기 식당에서 밥 먹으려고 온 건데?”

귀가 아프게 시끄러운 것은 덤이었다. 혼자 있을 땐 제법 형같이 굴던 녀석들이 둘이 같이 있으니까 아주 애가 된 것처럼 군다. 나는 코로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녀석들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만큼 가볍지도 않은 남궁후와 호라서, 내가 지금 웃을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언쟁을 벌이는 녀석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둘은 그 말에 따로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꾹 힘이 들어간 손이 나의 중얼거림을 들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 뒤로 남궁호가 박박 우겨서 녀석이 가리킨 곳에 들어가 밥을 실컷 먹고, 남궁후가 박박 우겨서 또 쉬는 시간도 없이 놀이기구를 탔다. 결국 지쳐버린 내가 지나가던 직원한테 볼펜을 빌려서 남은 패스권 동그라미에 죄다 엑스를 친 다음 띠를 찢어버리고 나서야 우린 집에 갈 수 있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서도 자연스레 내 양쪽에는 녀석들이 있었고, 손은 꼭 마주 잡은 채였다.

나는 차에 도착할 때쯤엔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서 남궁후가 협약 운운하며 호를 몰아붙이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녀석이 이끄는 대로 같이 뒷좌석에 탔다. 운전하는 남궁호를 별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눈이 슬슬 감겼다. 자연스레 몸이 기울여지는 것을 봤는지 남궁후가 내 몸을 당겨 자기 무릎에 눕혔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생각보다 깊게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기분 좋은 온기에 볼을 비비며 일어났다.

“…온기? 어? 잠, 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번쩍 뜬 내가 본 것은, 상의를 탈의한 남궁후와 상하의를 모두 탈의한 내 몸.

“으음…왜 그래, 뭔데 그래.”

“...예?!”

그리고 마찬가지로 상의를 탈의한 남궁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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