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왜 혼자 있어. 민영이는.’
내 예상대로 전화는 금방 끝났다. 아버지는 주위를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서 그의 행방을 물었다. 나는 긴장을 한 채로 말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주먹을 한번 쥐었다 폈다.
‘풍, 선을요. 풍선을 사준다고 하셨는데 아까 본 모양이 없어서요. 사 온다고 저는 여기 있으라고 하셨어요.’
약간 더듬기도 하고, 이상하게 숨이 가빠 말을 먹으면서 했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고집은…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금방 오신다고 그랬어요! 얼른 다녀온다고...’
미간이 모아지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급하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고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키가 무척 커서 그런지 보폭이 컸다. 나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뛰듯이 걸어야 했고, 금방 숨이 차올랐다. 그러다 숨소리가 색색거리는 소리로 변한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 이상 달리면 오늘의 외출은 끝이었다. 나는 아버지 차 트렁크에 있는 커다란 기계를 떠올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진정해, 진정해. 아버지의 등을 놓치지 않도록 눈으로 좇으면서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다행히 듣기 싫은 쇳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계속 멀어질 것만 같던 넓은 등도 멈췄다. 내가 따라오지 않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죄송해요. 쫓아가다 보니까 조금 숨이 차서 진정시키느라요. 숨이 찰 때 뛰면 안 된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셔서, 그래서 잠깐만 섰다가 숨소리 돌아오면 바로 가려고 했어요.’
‘지금은.’
내 볼이 상기되어 있었는지 아버지는 열을 재보려는 것처럼 내 볼에 손등을 대었다. 나는 그 손길에 희미하게 웃었던 것 같다. 나에게 집중된 눈에 서린 미약한 우려가 너무 달가웠다.
‘괜찮아요! 다시 가도 돼요!’
나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밝게 말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손등은 나의 반대쪽 볼과 이마를 거쳐 목에 닿아 나의 숨소리까지 체크한 뒤에야 떨어졌다.
아버지는 정말 괜찮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다시 아까 걷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내 손을 잡은 채였다. 여전히 나에게는 조금 빠르게 느껴지는 속도였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느렸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아픈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 앉아.’
도착한 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위치한 벤치였다. 아마도 그를 좀 더 빨리 만나기 위해 그가 지나올만한 곳에 온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가리킨 의자에 앉으면서 조심스레 옆자리를 두드렸다. 나름 용기를 내서 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별말 없이 내가 두드린 자리에 앉아주었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앞만 보고 있기를 몇 분. 모처럼 아버지와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뭐든 말을 걸고 싶기도 했고, 또 붙임성 있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던 나는 필사적으로 대화 주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들을 생각하고, 입 안에서 어물거리다가 별로인 것 같아 포기하고 또 생각하고를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네? 아, 저 괜찮아요! 별로 안 고파요.’
‘꼬르륵 소리 들린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젓던 손도 다시 내려놨다. 안 그래도 몇 번은 좀 소리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한테 들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창피하기도 하고, 이것도 거짓말에 속하는 건가 걱정이 되었다.
야속한 배를 문지르면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 거짓말이었나보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잘못했다고 빌려는 찰나에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밥은 기다렸다가 민영이 오면 먹고, 간단히 군것질거리를 할까 하는데.’
‘좋아요! 저 간식 먹는 거 좋아해요. 다 좋아해요. 아, 아버지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됐다.’
‘음…그럼 어…아이스, 아이스크림이요.’
사실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냥 가장 먼저 보이는 음식을 말했었다. 아버지는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처음 보는 구슬 아이스크림이란 것이 궁금했지만 옆에 적힌 가격을 보고 그것을 가리키려던 손가락을 오므렸다. 아버지가 돈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비싼 것을 사달라고 해도 되는 건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결국 내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메뉴판 가장 위에 있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내 손을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과, 아버지가 건네는 나를 위한 아이스크림이 좋았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쥐고 다시 벤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나눠 먹자고 할 생각이었으나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이어진 놀란 얼굴과 바로 가겠다며 장소를 묻는 소리. 전화를 끊고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몸을 틀던 아버지는 그를 쫓아 같이 뛰려고 자세를 잡던 나를 돌아보았다.
‘진호 넌 뛰면 안 되니까 여기서 기다려. 아이스크림 다 먹을 때까진 돌아오마.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급하게 말을 쏟아낸 아버지는 내가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를 때쯤이 되어서야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가 사준 아이스크림. 이대로 두면 다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아 급하게 입을 벌렸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콘이 조금 남았을 때 먹는 것을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키가 큰 아버지도, 목소리가 큰 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조금 남은 콘을 들고 허전하고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다가온 것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애기야, 너 왜 혼자 있니?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길 잃어버렸어?’
나는 고개를 젓고 그런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어른의 표정이 조금 더 곤란하다는 듯 찌푸려졌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몰랐겠지만 나는 그 표정이 어떤 뜻인지 알았다.
순간 덜컹,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불안함이 덮쳐왔다. 너무 오래 쥐고 있어 눅눅해진 아이스크림콘을 꽉 쥐고 금방 오신다고 했다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올려다보고만 있는 나에게 그녀가 내민 것은 핸드폰이었다. 부모님의 번호를 알면 전화를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으면서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나는 망설였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러면 어떡하지. 겁이 나서 차마 아무 번호도 누르지 못하고 있던 그때, 언젠가 들었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서 너밖에 안 보이더라, 날 닮아있어서.’ 나는 머뭇거리던 손을 움직여 아버지도, 그의 번호도 아닌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길어지고,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고 싶어질 때쯤 여보세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 엄마!’
‘어머, 진호?’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것을 꾹 참고 왜 전화하게 되었는지 더듬더듬 설명했다. 자꾸 뭉개지려는 발음을 다시 고치면서 최대한 또박또박 전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한숨이었다.
‘하아…못 간다고 말했는데, 네 아빠 결국 안 갔니? 아직도 병원인가 보네, 그럼. 진호야, 미안한데 엄마가 지금 바빠서 데리러 갈 수가 없어. 너 지하철 탈 줄 알지? 돈은 있니?’
복받치던 눈물이 들어갔다. 나는 갑자기 추워지는 것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래전에 그에게서 받았던 만 원 한 장이 만져졌다. 혹시 급하게 써야 할 때를 대비해서 어딜 가든 비상금으로 가지고 다니라면서 줬던 돈이었다.
나는 추워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납작하게 접혀있는 지폐를 꽉 쥐었다. 그리고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내어 지하철 탈 수 있다고, 돈도 있다고 답했다. 엄마는 다행이라면서 전화하게 해준 어른에게 잘 인사하고 집에 조심히 가라고 말하더니 먼저 전화를 끊었다.
‘너 혼자 오라니? 아니, 이렇게 어린 애를… 하아, 얘. 너 정말 지하철 타고 가려고? 여기서 역 어떻게 가는지 알아? 아줌마가 거기까진 데려다줄 수 있긴 한데…….’
집이 어딘지도 알고, 지하철도 탈 줄 알았다. 문제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 할지 엄마의 집으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아버지는 어딘가의 병원에, 엄마는 밖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아까 아버지와 했던 대화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네가 데리고 있는 날이잖아.’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닌 것에 좋아해야 할지, 오늘 당장 갈 곳이 없다는 것에 슬퍼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걸 눈앞의 어른에게 말한다고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 도달한 것은 한 군데였다. 나는 어른에게 혹시 전화 한 번만 더 해도 되냐고 물어 핸드폰을 받았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니 짧은 연결음 뒤에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이상하게도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추웠던 몸이 따뜻해졌다.
‘아주머니, 저 진호예요.’
‘진호? 진호야, 너 우니? 잠깐만, 이거 모르는 번호잖아! 진호야 어디야, 너 지금 누구랑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왜인지 그 온기가 너무 서러워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전화기 너머로 당황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엉엉 울면서 오늘 혹시 놀러 가도 되냐고, 하루 자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던 아주머니는 내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계속 똑같은 말만 하자 잠깐 침묵하시더니 말했다.
‘그럼~ 진호야.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언제든 와도 되지. 옆에서 예령이도 물어볼 시간에 얼른 오라고 소리 지르는 거 들리지? 어후, 채예령! 엄마 귀 떨어지겠다!’
진호도 들었다니까 그만하라고, 그렇게 호통치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닦고 지금 좀 멀리 있어서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데리러 온다고, 어디냐고 자꾸 장소를 묻는 아주머니에게 혼자 갈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나는 어른에게 핸드폰을 건네고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묘한 표정의 그녀는 내 등을 토닥이더니 손을 잡고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고, 괜찮다는데도 표를 사서 쥐여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난 후에 나는 기나긴 지하철 여행을 하고 나서야 익숙한 동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드린 예령이네 집 문을 열어준 것은 아주머니와 예령이, 막 퇴근한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김진호! 너 오면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투덜거리면서 내 등을 밀어 집안으로 밀어 넣은 예령이는 밥을 다 먹자마자 나를 데리고 방에 가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추궁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아주머니 아저씨에게도 비밀이라고 말하며 있었던 일을 말했다.
모든 자초지종을 들은 녀석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너는 드라마나 만화책도 안 보냐고, 우리 같은 애들이 가장 많이 생기는 데가 거기인 거 모르냐면서. 바보같이 그런 델 왜 쫓아갔냐면서 밖의 부모님이 들을까 봐 소리 죽여 울면서도 잔소리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웃겼다. 엉엉 우느라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이 너무 웃겼다.
나는 내 손을 부서져라 잡고 있는 녀석의 손을 보며 속닥거렸다.
‘사실은 나 너무 무서웠어. 무서웠어, 예령아.’
예령이는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안다고 답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불안감을 가슴 속에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면서,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자기였어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면서 힘없이 속삭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기 위해서 더 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더 열심히 살면, 그래서 다른 애들보다 잘나지면, 완벽한 아이가 되면 이런 불안 따위 없어질 거라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놨던 다 눅눅해진 아이스크림콘을 입에 넣었다. 식감도 이상하고, 콧물 맛이 났지만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그 뒤로 나는 놀이공원을 싫어하게 되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단 그 장소를 떠올리면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고, 그 속에 있으면 계속해서 혼자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었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고작 하루 있었던 일 하나를 극복하지 못해서 놀이공원에 갈 때는 누군가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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