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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73화 (73/234)

73화

‘진호 너 정말 놀이공원 한 번도 안 가 봤어?’

나는 두 배로 커진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예령이도 안 가봤다 그랬는데.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저 반응을 보니 한 번쯤은 가 봤어야 하는 곳인가 싶었다.

‘야! 너는 아빠라는 사람이 이때까지 뭐 했어? 애 놀이공원도 한번 안 데려가고!’

약했지만 어쨌든 꿀밤을 맞으면서도 가만히 있는 아버지를 보며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꼭 가야 했던 곳이었구나.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만날 땐 놀이공원 가자.’

남들 하는 일은 한 번씩 해 보는 것이 평범해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형, 이건 진짜 아니에요. 진짜 욕먹어요!”

“아니! 이거야. 완전 이거밖에 없어.”

남궁후가 미친 것 같다. 교복을 입은 것도 쪽팔려 죽겠는데 이젠 곰 모양 귀가 달린 머리띠까지 씌우고 자기 혼자 박수 치면서 박장대소하고 앉아 있다. 온갖 아기자기한 것을 파는 가판대를 보자마자 홀린 듯이 갈 때 버텨야 했는데 끌려온 것이 잘못이었다.

싫다면서 이리저리 피하는 나한테 기어코 이것저것 씌워 보더니 제 맘에 드는 거 찾았다고 저 난리였다. 목소리를 낮추든가 빌어먹을 박수라도 좀 멈춰 줬으면 좋겠는데 온 세상 주목을 다 받고 싶은 사람처럼 녀석은 거리낌이 없었다. 진짜 이 자식들은 하나같이 수치심이란 걸 어디다 처박아 두고 다니나 보다. 덕분에 내 수치심이 쟤네들이 느껴야 할 것까지 두 배로 고생하는 중이었다.

“그럼 형은 왜 안 쓰는데요.”

“난 안 어울리니까.”

이를 악물고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답이 남궁후답게 참 산뜻했다. 진짜 길 가다 새똥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얄미운 것은 덤이었다.

이게 뭐라고 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돈을 주고 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내가 부들대는 사이 녀석은 신나게 결제를 마친 참이었다. 돈을 내긴 했으니 차마 버리지도 못하겠고, 벗는 족족 다시 씌우는 녀석이랑 실랑이하는 것도 지쳤다.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남궁후는 내가 체념하는 뉘앙스를 풍기자마자 벗으면 다시 씌워 주기 위해 계속 마주 보고 있던 것을 그만두고 다시 내 손을 얽어 잡더니 길을 나섰다.

“원래 놀이공원 오면 이런 거 한 번씩 해 보는 거야. 교복도 입은 마당에 뭘 그렇게 눈치를 봐. 그냥 즐겨!”

지는 안 어울린다고 안 쓴 주제에 말은 아주 잘해. 거기다 남궁후는 안에 티셔츠를 입고 왔다고 단추 다 풀고 편하게 입어서 다소 캐주얼한 상태가 된 반면에, 나는 안에 아무것도 안 입어서 수도승처럼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까지 그대로 한 상태였다.

물품 보관함에 쇼핑백을 넣을 때 넥타이 벗어서 넣는 게 싸하다 했어. 나는 억울한 마음에 녀석 몰래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가 얼른 내렸다.

“어렸을 때 해 보고 싶었던 거 없어?”

“해 보고 싶었던 거요?”

“왜, 머리띠같이 아무 쓸데는 없지만 기분 내기 좋은 것 중에 갖고 싶은 게 있었다거나 먹고 싶은 군것질거리가 있었다거나.”

짓궂게 웃는 것을 보니 저 쓸데없다는 말에 또 울컥하는 걸 보고 싶은 모양이다. 내가 바보냐? 원하는 대로 해 주게. 일부러 녀석과 눈을 맞추며 생긋 웃어 주니 녀석이 제법이라는 듯 피식 웃었다. 가볍게 한 방 먹여 주려던 거였는데 썩 그렇게 이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갖고 싶었던 거라….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 반짝거리는 데긴 하지 여기가.

먼 기억이긴 하지만 있긴 있었다. 별로 물욕이 없던 내 눈에 유독 탐나 보이던, 쓸데없지만 기분 내기 좋은 물건. 나는 마침 까르르 웃으며 뛰어가는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을 보며 녀석에게 답했다.

“풍선이요.”

“풍선?”

“네. 아주 어렸을 때긴 한데, 둥둥 떠다니는 풍선 갖고 싶었던 기억이 있어요. 군것질거리는 음, 구슬 아이스크림?”

반걸음 정도 앞서 걸어가던 녀석은 나를 한번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별거 없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내가 가지고 싶었던 풍선 모양이 정확히 뭐였더라. 떠올려 보려고 머리를 굴려 봐도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 기억도 안 날 거, 왜 그땐 그 풍선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기분만 싱숭생숭해진 나는 녀석의 등을 보며 슬쩍 손에 힘을 주었다. 반사적인 건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같이 더 세게 마주 잡아 오는 힘에 과거를 떠올리며 올라간 심박수가 잦아들었다.

“찾았다.”

“아.”

다시 기분이 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맞잡은 손만 보고 걷다가 이마를 등에 부딪쳤다. 아프진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부딪친 곳을 문지르고 있는데, 한쪽 허리에 손을 올린 녀석이 빙글 돌아섰다.

아, 저거 아닌데. 녀석은 나를 기념품 가게에 끌고 갔을 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뭘 하려고 신이 났을까 불안한 것도 잠시, 나는 녀석이 당당하게 외친 말을 듣고 입을 벌렸다.

“여기서 사진 찍자!”

“별….”

“뭐?”

진짜 별짓을 다 하려고 한다고 새끼야. 나는 녀석이 아까 두리번거리면서 뭔가 찾는 것 같길래 타고 싶은 놀이기구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거였나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는 어느새 번쩍거리는 회전목마 앞에 서 있었다. 사진 찍자는 녀석의 말에 어떤 걸 얘기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배경이었다. 내가 녀석에게 액정을 들이대며 보여 줬던, 커플이 달달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장소. 벌써 몇몇 커플들은 삼각대까지 펼쳐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 아니에요. 사진은 갑자기 왜요. 설마 저 사람들처럼 하자는 건 아니죠?”

“맞는데? 어떻게 할래. 마주 보고 뽀뽀해? 아니면 내가 너 들어 줄까?”

이 새끼 정말 진심인가 보다. 눈이 즐거움으로 반짝거렸다. 아니, 나도 내가 게이인 것을 창피해하지 않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낼 생각은 차마 못 했는데 얘는 어쩌려고 이러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여기서 뽀뽀를 하겠다고? 그리고 나를 들어? 나 키 178인데?

“삼각대는 귀찮아서 안 가져왔어. 저기 있는 사람들 다 찍고 나면 우리 좀 찍어 달라고 하자.”

“미쳤… 아니, 형. 그냥 셀카 찍어요, 우리. 뭘 또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해요!”

야 이 미친놈아 너 오늘 내 첫사랑이 되어 준다면서. 대체 세상 어느 첫사랑이 이러냐고. 아니, 사람 취향은 다양한 거니까 누군가의 첫사랑이 이런 사람일 수는 있어도 나는 아니다.

첫사랑이란 거 좀 풋풋하고 은근 설레고 수줍고 이런 거 아니었어? 적어도 이렇게 대놓고 설쳐서 사람 쪽팔리게 하는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였나? 내가 교복도 입고 머리띠도 하고 있는 와중에 너한테 들려서 뽀뽀하는 사진을 남한테 찍혀야겠냐고!

나는 시끄러워운 속사정을 차마 뱉어내지는 못하고 셀카로 합의 보기 위해 다급히 녀석의 팔을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쩌렁쩌렁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 그러지는 못하고 녀석에게 들릴 정도로만 소리쳤다. 그러나 신은 아무래도 오늘도 내 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당장이라도 부탁하러 가려던 녀석을 간신히 잡아 두니까 이번엔 뒤편에서 여고생 무리가 말을 걸어 왔다.

“저어, 사진 찍으시려는 거면 저희가 찍어 드릴 테니까 저희도 한 번만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희는 괜찮… 읍읍!”

“네!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먼저 찍어 드릴까요?”

낯가리는 성격이고 뭐고 생존 본능을 따라 바로 거절하려고 손까지 내젓는데 뒤에서 쑥 나온 손이 내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반대편엔 뭔가를 받으려는 듯 펴진 손이 뻗어져 나왔다. 왜인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여고생들은 자기들끼리 쑥덕대더니 그중 한 명의 핸드폰을 펼쳐진 손에 공손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점찍어 둔 자리가 있었는지 곧장 우르르 몰려가는 동안 그 핸드폰은 내 손에 쥐어졌다.

“뭐요.”

“네가 찍어.”

“저 사진 별로 찍어 본 적 없어서 잘 못 찍어요. 형이 받았으니까 형이 찍어요.”

자기가 찍을 것처럼 받아 놓고 왜 나한테 넘기는지 모르겠다. 나는 짜증 나는 마음에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다시 녀석의 손에 핸드폰을 넘기려고 했지만 녀석은 그걸 받기는커녕 내 목을 껴안았다.

“싫어. 나는 너 안고 있느라 손이 없으니까 네가 해. 뒤에서 내가 각도 봐줄게.”

그러더니 날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 내 얼굴 바로 옆에 얼굴을 갖다 댔다. 나는 너무 친밀한 포즈에 당황해서 녀석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어느새 포즈를 잡고 우리를 빤히 보는 여고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쉬고 액정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일단 모든 사람 얼굴이 나오면서 회전목마가 보이면 되는 거겠지?

“아니지. 좀 더 내려서 기울여. 그래야 다리 길어 보여.”

속삭이는 소리에 귓가가 간지러웠지만 꾹 참고 녀석이 말한 대로 각도를 조절했다. 확실히 비율이 더 좋게 나왔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았대. 그 뒤로도 녀석이 코치해 주는 것을 따라 이런저런 각도로 찍고 나서야 겨우 백 허그와 사진사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귀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네.

“와, 진짜 잘 나왔어! 감사합니다!”

“이번엔 저희가 찍어 드릴게요!”

반응을 보아하니 다행히 결과물은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는 남궁후를 힐끔 올려다봤다. 녀석은 나를 보고 있었다. 뭐야, 내 핸드폰을 주라는 건가? 나는 주머니에 꽂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녀석의 팔을 보고 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손에 잡힌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그중에 유독 키가 크고 예쁜 여자애가 우리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애의 시선은 정확히 남궁후를 향해 있었다.

“저… 혹시 대학생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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