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진짜야 진호야. 나 아까 너한테 너무 키스해 주고 싶었고, 받고 싶었어. 그래서 그래.”
내용도 내용이지만 남궁호의 말 어투에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말투와 목소리, 표정을 보며 처음으로 녀석이 정말 형 같고 어른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녀석이 조심스럽게 코를 마주해 왔다.
“나 키스 진짜 잘해, 진호야. 응? 곰돌아.”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나보다 남궁호의 다음 말이 더 빨랐다.
“네 온기가 필요해서 그래, 김진호. 지금 너무, 너무 네가 필요해.”
나는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이번엔 어이가 없어서도, 화가 나서도,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애절한 목소리가 맞닿은 코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내 목을 턱 막은 것 같았다.
“하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남궁호가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인 듯 내게 입을 맞추더니,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넣었다.
“…응….”
갑자기 들어온 혀에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너무 가까이 있는 녀석의 얼굴에 또 놀라 눈을 감아 버렸다. 남궁호의 혀는 들어오자마자 경직된 내 혀를 건드렸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그저 밀어내기만 했다. 그러자 입을 맞붙인 채로 조금 웃은 녀석이, 갑자기 내 입천장을 쓸었다.
“흐….”
입안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마자 녀석은 내 허리를 더 끌어당기며 고개를 틀었다. 나는 더 깊게 들어오는 혀에 놀라 고개를 빼려고 했지만 녀석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받치며 길을 막았다. 차례대로 볼 안쪽과 치아, 혀 밑까지 쓸며 자극하던 혀는 숨이 막힌 내가 그의 어깨를 치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녀석의 입과 내 입 사이엔 가느다란 은색 실 같은 것이 이어져 있었다. 녀석은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한 번씩 핥더니 씨익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키스 처음 해 봐? 숨은 코로 쉬어야지, 곰돌아.”
나는 그 말에 울컥했지만 처음이라고 말하기는 자존심이 상해 그냥 입술만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읏, 잠, 흐읏-.”
나는 귀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다급히 고개를 원위치 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남궁호는 비킬 생각을 안 했다. 녀석은 내 귓불을 깨물고 귓바퀴를 핥으며 내가 움찔대는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귀, 민감하네.”
“아, 아으….”
내 곰돌이는 안 민감한 데가 어디야? 하고 바람을 불며 묻는 말에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갔다. 녀석의 팔은 더 이상 나를 잡고 있지 않았지만, 이젠 내가 녀석의 품에서 벗어날 힘이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남궁호의 팔을 잡고 겨우 서 있었다.
남궁호도 내 상황을 눈치챘는지 작게 하하, 하고 웃더니 내 허리를 잡아채곤 한발 한발 걷기 시작했다. 녀석과 마주 보고 있던 나는 당연히 뒤로 걷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남궁호에게 온몸을 맡기고 인형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조심, 조심히.”
그렇게 말하며 남궁호는 정말 천천히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내 등에 푹신한 뭔가가 닿았을 때, 비로소 녀석이 나를 거실 소파로 데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나를 길게 눕히더니 내 위로 올라왔다. 조금 정신이 돌아온 나는 놈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일어나려고 했지만, 가슴을 누르는 팔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쉬-. 아직이야.”
녀석은 검지를 입에 가져다대며 비밀 얘기를 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면서 내 가슴을 누르던 손으로 잔뜩 간지럽혀졌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 손을 피해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소용없었다. 귀에서 떨어진 녀석의 손가락은 내 목선을 닿을 듯 말 듯 훑어 내려가며 또 다른 자극을 선사했다. 나는 그 애타는 느낌에 습관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진호야. 소리는 참는 거 아니야.”
그러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궁호가 내 입을 비집고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었다.
“아아, 으….”
그리고 아까 그의 혀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입천장과 볼 안쪽을 살살 긁으며 자극했다. 나는 입안에서 시작하여 온몸을 간지럽게 만드는 감각이 생소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까 유두를 자극 당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듯, 어딘가 모자라 애타는 듯한 그 감각은 나도 모르게 남궁호에게 더 매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했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마음에 애타는 감각만 안겨 주는 손가락을 혀로 감쌌다. 그리고 입에 힘을 주어 그 손가락을 빨며 입에 잔뜩 고인 타액을 삼켰다. 그러면서 남궁호를 올려다보니 씨익 웃는 것이 보였다.
“곰돌아, 기분 좋아?”
“으흣…!”
녀석은 그렇게 물으며 내 입천장을 살살 긁었다. 간지럼을 못 참고 남궁호의 손가락을 꾸욱 물어 버린 나는 그대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궁호가 목선과 귓불을 만지작대던 손으로 내 턱을 잡아 왔다.
“거짓말.”
녀석은 짓궂게 중얼거리더니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곰돌아, 깨물면 아파.”
나는 그 말에 순간 당황하여 얼른 입을 벌렸다.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을 빼낸 남궁호는 잘했다는 듯이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나는 녀석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느낌에 급하게 눈을 떴다.
“아…! 하아, 흐, 잠, 깐.”
목을 타고 쇄골까지 내려가는 야릇한 감각에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호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아릿한 통증에 나는 밀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가만있어.”
내가 저항하는 것에 심술이 났는지 남궁호가 쇄골 부근을 콱 물어 버렸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나는 얼어붙었다. 놈은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숨죽여 킥킥대더니 이내 자기가 깨문 곳을 부드럽게 빨아올렸다.
“흐아… 아!”
그에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자극을 느꼈다. 어느 새인지 몰라도 바지는 벗겨져 있었고, 녀석의 손이 속옷 위로 내 것을 한 손에 넣고 주물거리고 있었다.
“흣…. 앙애…. 으읏…, 아….”
나는 갑작스레 강렬해진 자극에 위험을 느끼고 녀석의 손을 밀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궁호의 손이 더 재빨랐다. 나의 양 손목은 녀석의 한 손에 너무도 쉽게 잡혀 버렸다. 손을 이리저리 비틀어 봤지만 커다란 손의 힘은 느슨해지지 않았다. 남궁호는 벌이라도 주듯 아까 물었던 곳을 다시 한번 더 세게 깨물었다.
“아으… 응, 아…!”
나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찌릿함과 쇄골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 자극이 잠깐 멈췄다. 나는 도리질 치던 고개를 멈추고 녀석을 찾았다.
남궁호는 내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내려가 보니 녀석이 손이 스스로의 바지를 벗겨 내고 있었다. 바지 위로도 불룩하니 서 있던 모양새는 속옷 차림이 되자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녀석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속옷을 내리다 말고 나를 봤다. 눈을 마주친 녀석이 씨익 웃으며 속옷을 마저 내렸다.
퉁, 튀어오르는 존재감을 본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씨… 씨발, 뀨! 뀨다! 멍멍 짹짹, 이 새끼야!”
남자의 자존심이고 뭐고, 내가 사는 게 먼저였다.
* * *
오늘은 민선우와 외출을 하기로 한 날이다. 주차장 나들이가 아니라, 쇼핑 말이다.
내 생에 처음으로 백화점 쇼핑을 해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신이 나서 아침부터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준비하고 나왔건만, 나는 지금 컴컴한 지하 주차장 안에서 안전벨트도 풀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이게 모두 빌어먹을 남궁호 그 자식 때문이다.
결단코 외칠 생각이 없던 세이프 워드를 외치게 했던 그날. 키스만 할 것처럼 꼬셔 놓고 아주 지 좆대로 하던 남궁호 새끼를 쫓아내고 샤워하다 화장실 거울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이놈의 자식이 아주 온데 쪽쪽대고 깨물거리더니 기어코 쇄골에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놈 나갈 때 뒤통수라도 갈겨줄걸,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며 검색창에 ‘키스 마크 빨리 없애는 법’을 입력해야 했다. 누군가 이게 뭐냐고 물어봤을 때 벌레에 물렸다고 하기엔 아주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위치와 생김새 때문이었다. 누가 슬쩍 본다면 이 새끼 뭐야, 생각할 정도로 크고 노골적이었다.
아, 진짜 남궁호 죽일까. 아냐, 참자 김진호. 내가 살기 위해 참자.
아무튼 검색을 했더니 나온 방법대로 냉찜질 같은 것도 해 보고, 멍 없애는 연고도 발라 봤지만 당연히 몇 시간 만에 없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창고를 붙이고 밖에 나갈 때 입으려고 목 티를 찾아서 꺼내 놨었다.
근데 김진호 이 바보 똥멍청이가 오랜만에 좋은 데 간다고 아주 신이 나서 아껴 뒀던 티셔츠를 꺼내 입었지 뭐야? 게다가 그 티셔츠가 하필이면 넉넉한 라운드 넥이어서 까딱 잘못하면 목이 다 드러나기까지 하네?
신나서 이것저것 떠들며 도착한 백화점 지하 주차장.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옷을 잘못 골라 입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스무스하게 주차를 하는 민선우를 보며 미리 안전벨트를 푸는데 벨트가 살짝 꼬였었는지 안으로 잘 안 들어갔다. 그래서 몇 번 당겼다가 놓는데, 순간 가죽 벨트가 휘리릭 빨려 들어가면서 턱에 쓰라림이 느껴졌다.
‘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마자 옆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민선우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고, 나는 상처가 생겼을까 싶어 냉큼 턱을 들고 민선우에게 보였다.
근데 어디 한번 보자며 내 턱을 잡아 올린 민선우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뭐야, 생각보다 많이 쓸렸나? 왜 저래? 싶었던 나는 턱이 한껏 올라간 덕분에 차 천장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내리며 혹시 피도 나냐고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아주 싸늘하고 차분한 톤의 질문이었다.
‘이게 뭘까, 나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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