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악! 아, 형! 기척 좀 내고 다녀요!”
놀라서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에이 씨, 젓가락 떨어트려서 바닥에 기름 묻었잖아. 나는 가까이 있는 녀석에게 휘휘 손을 내저어 좀 거리를 만든 다음에 허리를 숙여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바닥은 이따 닦아야지. 다시 일어서니 아까 나를 놀라게 했던 사진이 다시 눈앞으로 쑥 나타났다. 사진 속엔 어정쩡하게 브이 포즈를 하고 있는 어린 내가 있었다.
“이건 또 어디서 찾았어요? 초등학교… 몇 학년이더라? 4학년인가, 5학년인가 그럴걸요.”
“진짜? 1학년 아니고?”
“저 키 크기 시작한 게 중3 때였거든요. 그 전엔 많이 작았어요.”
“응. 콩알만 하다. 진짜 귀여웠네, 곰돌이.”
콩알만 하다는 소리에 좀 울컥했지만 고개를 흔들며 요리에 집중했다. 태우지 않으면서 불 맛을 내려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거기다 한때 콩알, 키 번호 1번, 땅딸보 등등 키가 작다고 놀리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익숙하기도 했다.
나는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프라이팬을 움직이며 환풍기를 켰다. 위우우웅- 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보니 환풍기가 고장 난 걸 깜빡했다. 소리에 비해 미미한 효과를 상기하며 창문을 열어 달라고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니 남궁호는 여전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형! 저기 창문 좀 열어 주세요.”
그 말에 창문을 힐끗 확인한 녀석은 다시 사진을 보면서 걸어가 창문을 연다. 아니, 저 사진이 저렇게 눈을 못 뗄 정도인가? 뭐야, 왜 저래.
“진호야. 너… 때… 어?”
“예?”
시끄러운 환풍기 소리와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 창문 밖의 소음에 묻혀 녀석의 말이 잘 안 들렸다.
뭐라는 거야. 때 어쩌고 하는 거 같은데. 때로 시작하는 게 뭐가 있지? …설마 나 때 밀었냐고 물어보는 건가? 근데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지? 요리 하는 사람의 청결도 체크, 뭐 그런 건가.
나는 뜬금없고 이상한 질문에 뭐지 싶었지만 다시 물어보기엔 귀찮고, 아무튼 대답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환풍기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문제는, 하필 그때 남궁호가 환풍기를 껐다는 사실이다.
“저 어제 밀었어요, 때!”
“너 어렸을 때 어떤 애였…?”
갑자기 조용해진 부엌과, 그 부엌에 울려 퍼진 내 목소리와, 나 때문에 도중에 끊긴 남궁호의 질문.
“어…. 시원… 했겠다…?”
망했다. 나는 남궁호의 얼떨떨한 얼굴을 보며 내 입을 매우 치고 싶었다. 제발 내 자신아…. 모를 땐 조용히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데, 나는 왜 가만있는 것도 못 해서 툭하면 흑역사를 생성하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어떤 애였는지 물어봤는데 때 밀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과연 나 말고 또 있을까?
나는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 남궁호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오늘 쟤한테 놀릴 거리를 몇 개나 주는 거야, 진짜.
“푸하하하-!”
나는 결국 또 박장대소를 하는 남궁호를 뒤로하고 밥상을 마저 차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만 웃고 얼른 앉아요, 이제. 밥 먹게.”
나는 이제 거의 쓰러져서 웃고 있는 남궁호를 가볍게 다그쳤다. 녀석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식탁으로 걸어왔다. 너무 얄미운 행태였지만 콧바람을 한 번 크게 내쉬며 녀석에게 경고했다.
“그만 안 하면, 어릴 때 얘기고 뭐고 밥도 못 먹을 줄 알아요.”
남궁호는 웃음기 없는 내 말투에 알았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얼른 주제를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에 아까 녀석이 했던 질문을 되새겼다. 어린 시절이라. 어쩌다 떠오를 때가 아니면 굳이 돌이켜보지 않았던 그 시절을 일부러 회상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작은 아이였다. 작고 존재감이 없지만, 한번 입을 열면 목소리가 커서 시끄러운 아이.
어느 땐 같이 어울려 다니는 무리가 있기도 했고, 또 어느 땐 가벼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고. 그냥저냥 특별할 것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예령이네가 옆집으로 이사 오고 난 후 어떤 특별한 이유로 우리 부모님과 예령이네 부모님이 매우 친하게 지내시면서 자연스레 예령이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나의 삶은 많이 변하게 되었다.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변화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대답할 만한 변화. 아주 근원적인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은 좋았지만, 그 친구가 너무 빛이 나서 그의 그림자에 내가 가려져 버린 것은 힘들었다.
근데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런 게 궁금한 건 아니겠지. 뭐라고 해야 하려나. 이런 게 정말 어렵다. 내 인생에서 적당히 재밌고 공감을 살 만한 에피소드를 찾아 얘기하는 거.
나는 밥을 먹으면서 내가 말하길 기다리는 남궁호를 한 번 보고 눈을 굴렸다. 적당한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는지 말해줄 수 있는 적당한 이야기가….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아무거나 얘기해 봐!”
“어…. 일단 작았어요. 별로 특별할 거 없었고…. 음….”
“예령이랑은 언제부터 친했어? 아까 보니까 예령이 어렸을 때로 보이는 사진도 있던데.”
…아, 맞네. 얘 남궁호였지? 고민할 것도 없이 채예령 치트키 쓰면 되는 걸 나 왜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냐. 확실히 나 혼자 겪은 에피소드보단 채예령이랑 겪은 일이 대외적으로 말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실소를 참으며 왜인지 갑자기 느껴지는 허기에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채예령이랑 있었던 일이라…. 가만있자, 아까 봤다 그랬으니까 앨범에서 찾아보지는 않았을 거고. 거실에 있는 그 사진이려나.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말하는 거죠?”
“응.”
“예령이랑은 6학년 때부터 친했어요. 그때 즈음 예령이네가 저희 옆집으로 이사 오고, 부모님들끼리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둘이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 사진은 부모님들이 친하게 지내라고 서로 소개해 준 날 찍은 거예요. 어깨동무도 하라고 그래서 한 거고. 자세히 보면 둘 다 표정 엄청 어색할걸요?”
어색한 건 모르겠고, 되게 귀엽더라. 그렇게 말하는 남궁호의 눈이 반짝였다. 확실히 채예령은 그때 당시에도 완성형 이목구비를 가진 매우 귀여운 아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령이가 좀 귀엽긴 했죠. 귀여운 얼굴에, 저랑 비슷할 정도로 몸집도 작아서 어른들한테 특히 귀여움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 또 애가 작다고 기죽지도 않고 애들 사이에서 반장 노릇을 톡톡히 했거든요. 그래서 남자애들도 많이 따르고, 여자애들한테는 맨날 고백 받고 그랬어요.”
사람은 저마다 리즈 시절이 한 번씩은 온다는데, 곁에서 지켜본 결과 채예령은 리즈가 아닐 때가 없었다. 그건 내가 녀석과 친구가 되기 전부터 그랬었다.
“쉬는 시간마다 애들한테 둘러싸여 있을 정도로 유명해서 학교에선 모르는 애가 없었다니까요? 아마 부모님들이 억지로 붙여준 거 아니었음 전 예령이랑 말 섞을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녀석의 존재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의 소개 전엔 말 한마디 못 걸어 봤었다.
“왜?”
“네?”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 가려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딱히 의문을 가질 내용이 있었던 것이 아닌데 되묻는 말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말 섞을 엄두도 못 냈을 거라며.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내가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걸 눈치챘는지 남궁호는 내가 말한 것을 되짚어 주며 다시 질문을 해 왔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내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를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 주기로 했다. 별로 숨길 것도 없는 평범, 혹은 평범보다 조금 사교성이 떨어지는 나의 성격에 대해 말하는 데 거리낌은 없었다.
“음…. 전 어렸을 때부터 사람 많은 데 섞이고 그러는 걸 잘 못 했거든요. 제 버릇 중에 하나가, 어색하면 말이 많아지는 거거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색할수록 상대방을 웃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이것저것 떠들게 되더라고요.”
말하다 보니 떠오르는 과거의 내 행각들이 괜히 민망해서 나는 혼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궁호가 한쪽 눈썹을 조금 찌푸리며 왜 그러냐는 듯 고갯짓을 했지만 자세한 에피소드까지 말해 줄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꼭 한 번씩 말실수를 했어요. 그래서 친해지기도 전에 미움 받기도 하고, 가끔 이상한 애란 소리도 듣고. 차라리 일 대 일이면 대충 수습이라도 하겠는데 다수랑 있으면 그게 안 되니까, 어느 순간부턴 무리 지어 노는 애들한텐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근데 그런 제가 채예령한테 말을 건다? 어후-. 절대 못 하죠.”
나는 능청스럽게 손을 저었다. 실제로 과거의 나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 또한 채예령한테 먼저 가서 친구를 하자고 할 만한 성격이 못되었다. 심지어 지금도 나는 그 애가 친구들이랑 있을 땐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채예령은 항상 주변에 사람으로 둥글게 원을 만드는 애였어요. 걔한테 말을 건다는 건 그 많은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 일인데, 저는 그런 거 못해요.”
“흐음-. 예령이는 어렸을 때부터 인기가 많았구나. 뭐, 그럴 거 같긴 했어.”
그렇게 말하는 남궁호는 매우 뿌듯해 보였다. 자기가 호감 있는 사람이 인기 있었다는 말에 뿌듯한 건지, 아니면 자기 예상이 맞은 게 그런 건지는 몰라도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암튼 저는 그런 성격 때문에 어울리는 애들하고만 어울려 다녀서, 존재감이 진짜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예령이랑 같이 다니니까 애들이 엄청 놀라고 신기해하고 그랬죠. 거기다 부모님 부탁도 받았겠다, 같은 점이 있는 것도 알았겠다. 채예령 특유의 책임감이 폭발해서 장난 아니었어요.”
그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제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질타, 부러움을 샀던 때의 기억은 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운 추억이었다.
“걔가 사람이 또 엄청 착하잖아요. 절 별로 안 좋아하는 애들하고 싸워가면서까지 절 엄청 챙기기 시작했는데-. 어후. 그러고 보면 대학 때 동아리도 선배들은 예령이만 불렀는데 걔가 저도 데리고 가고 싶다 그런 거였죠? 걔 그거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그렇게 나는 열심히 먹으면서 남궁호에게 그때 즈음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운동을 잘 못했던 나를 위해서 체육 시험 종목을 같이 연습해 주었던 이야기,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를 위해 자기가 정리한 노트를 빌려 주었던 이야기,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나를 위해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고군분투했던 이야기까지.
실컷 떠들고 나니 목이 말라 물컵을 찾기 위해 식탁을 보는데 슬슬 바닥을 보이는 내 밥그릇과 달리 아직 반이 넘게 남아 있는 녀석의 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맛없었나?
“왜 이렇게 안 먹었어요? 맛없어요?
“아니, 얘기 듣느라 먹는 것도 까먹고 있었어. 이제 먹을게.”
그렇게 얘기하며 숟가락을 집어 드는 호의 표정은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맛없는 게 있으면 억지로 먹을 게 아니라 말을 해 주지. 나는 입을 비죽이며 맛 체크를 위해 반찬을 한 번씩 다 집어먹어 보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다시 고개를 들어 녀석의 표정을 보니 여전히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얼굴이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가. 나는 왕년에 최태혁을 간호했던 것을 떠올리며 맛이 없을 수 없는 제육볶음을 집어 들어 녀석의 밥 위에 놓아 주었다.
먹을 거 앞에 두고 똥 씹은 표정할 시간에 이거나 먹어라 이 녀석아! 하는 마음으로 준 건데 젓가락을 들던 녀석이 과도하게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진호야.”
“네?”
순간 이상한 긴장감이 흘렀다.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의 남궁호는 언제 봐도 낯설다.
너무 정면에서 봐 오는 바람에 눈을 피할 생각도 못하고 같이 마주 보고 있자니 눈동자가 한 곳으로 몰릴 것 같았다. 오른쪽 눈을 봐야 되는 거야, 왼쪽을 봐야 하는 거야.
길어지는 침묵 속에 호흡 한 번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의식해서 하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녀석이 말을 꺼냈다.
“뽀뽀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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