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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41화 (41/234)

41화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까놓고 얘기해서, 마지막 문장밖에 못 알아들었다.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서 해석해 보니, 정새빈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다른 네 놈도 저놈만큼 이상한 놈들이고,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기보단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이 그렇게 보일 거라는 말이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과 화를 내는 방법이 달라서라고? 술버릇처럼, 화낼 때 이상한 버릇이라도 있나?

눈치를 봐선 제 딴엔 정말 열심히 설명해준 것 같은데 미안한 얘기지만 들을수록 더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이다. 나는 말을 마친 뒤부터 슬금슬금 가까워지는 얼굴을 꾹 밀어냈다. 이 자식이 틈만 나면 스킨십질이야. 거리가 넉넉하게 멀어진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화를 어떻게 내길래 그러는데요?”

“응?”

“화내는 방법이 달라서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할 거라면서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날 노려보다 포기했는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바르게 누운 정새빈은 또 침묵했다.

“말 안 해줄 거예요?”

깊게 한숨을 내뱉고 팔을 툭 치며 물어보는데 망할 놈은 미동도 안 했다. 또 자는 척이냐. 그대로 일 분, 이 분, 십 분…. 아까는 다행히 잠깐으로 끝났지만 이번엔 꽤 길게 끈다.

진짜 자는 건가? 그런 생각에 옆으로 돌아누웠는데 웬걸. 놈은 말똥말똥 눈을 뜨고 곁눈질로 날 보고 있었다. 놀림 받는 듯한 기분에 좀 불퉁한 표정을 지었더니 놈이 눈을 빙글 돌렸다.

“쫑쫑이 피 좋아해?”

“아뇨.”

“그럼 사람은?”

“…모르겠어요.”

“으음, 그럼 가족은?”

그 뒤에도 형제는? 친구는? 아픈 건? 공부는? 참는 건? 하고, 이유를 말해 달라니까 그거랑 전혀 상관없는 것만 계속 물어 댔다.

이건 또 뭘 위한 전초전이냐 싶었지만 대부분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사실 성심이고 뭐고 할 것 없는 단답형 질문이긴 했지만. 몇 번 티키타카 하던 정새빈이 질문을 멈추고 흐음- 하는 콧소리를 냈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보니 정새빈도 나를 보고 있었다. 드물게 무표정인 녀석은 나를 관찰하듯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엔 관심이 없어.”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도 그런 편인데….”

그게 잘못된 건가 싶어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으니 정새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정말 아무 관심이 없어. 그리고 좋아하는 건 정말 좋아하지.”

다시 들어도 여전히 모든 사람이 그런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말이었다. 뭐가 다르고 틀리다는 거야. 그 생각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났는지 나를 보고 있던 정새빈이 푸흐- 하고 한숨 쉬듯 웃었다.

“그러니까 선우는, 원하지 않아. 단순히 좋아하는 거야.”

“네?”

“보통 사람은 뭔가를 좋아하면 그걸 원하게 되잖아. 그런데 아니야. 선우는 원해 본 적이 없어.”

“왜요?”

“애초에 원할 필요가 없거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에.”

그건 좀 이상한 사고방식이긴 하다. 좋아하는 순간 자기 거라고 여긴다니. 좋아하는 걸 못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다소 오만하고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사고긴 하지만 그래도 소시오패스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었다.

“보통 사람들이랑 좀 다르긴 한데, 그렇다고 소시오패스라고 부를 정도인가요?”

“관심이 없어서 그래.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나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정새빈은 검지로 내 코를 톡 하고 쳤다.

“쫑쫑이의 코가 좋은 선우는, 너에게 잘해줄 거야. 매일 네 코를 볼 수 있게끔 만들겠지. 그러다 운이 좋으면 코 옆에 있는 점이 좋아질 수도 있고, 코와 함께 시야에 잡히는 눈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어. 드물지만.”

나는 괜히 간지러워진 코끝을 긁었다. 정새빈은 그걸 보고도 코를 긁은 손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한번 내 코를 약하게 쳤다. 나는 다시 간지러워진 코끝을 뭉개듯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고방식이 좀… 다르다는 건 알겠어요. 근데 아직도 소시오패스로 모는 건 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선우는 만약 네가 더 이상 코를 보여주지 않겠다 하면 어떤 수를 써서든 네 코만 가져가 버릴 거야. 너한테 잘해주는 건 단지, 이왕이면 살아 움직이는 쪽이 코의 여러 가지 면을 볼 수 있어서고. 그러니까 쫑쫑이가 절벽에 매달려서 선우에게 살려 달라 그러면, 걘 웃으면서 네 코만 예쁘게 도려내 갈걸?”

이번엔 소름 끼칠 정도로 확실히 와 닿았다. 내 코가 예가 되서 그런 건지 몰라도 순간 오싹해졌다. 나도 모르게 코가 잘 붙어 있는지 더듬더듬 확인해볼 만큼, 등골이 서늘했다.

우와, 그렇구나. 난 또, 맨날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해주길래 착한 놈인 줄 알았는데. 가끔 들었던 위화감이 진짜였던 거야. 문득 나한테 다정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저 예시가 묘하게 현실성 있게 느껴졌다.

민선우한테 내 얘기를 듣고 온 거 같은데, 저거 진심 아니야? 앞으로 민선우랑은 절대 등산 같은 건 가지 말아야겠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도 무섭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을 텐데 그 상황에서 코까지 도려내진다면 분명 죽을 만큼 아플 거다.

나는 굳게 다짐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정새빈을 쳐다봤다. 놈은 베개 모서리로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거 느낌 좋다. 나 이거 주라.”

“안 돼요. 그거 하나밖에 없는 거란 말이에요. 빨리 얘기나 계속 해줘요.”

“치. 저기 베개 또 있으면서. 거짓말쟁이.”

나는 또 이상한 데로 빠지려는 녀석을 흘겨보면서 재촉했다.

“다른 형들은 뭐가 다른데요?”

정새빈은 시위하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꼴이 매우 얄미웠던 나는 꿀밤 때리듯 검지와 엄지를 말아 그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정새빈은 자기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후랑 호는 사실 장난치는 거 귀찮아 해.”

손에 눌려서 발음이 뭉개진 덕분에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내용은 흥미로웠다. 늘 장난만 치는 녀석들이 사실 그걸 싫어한다고?

“가볍고 쿨한 척하면서, 걔넨 지는 걸 엄청 싫어해. 자존심 센 녀석들은 너무 빨리 알아 버렸어.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을. 똑똑해서 눈치가 빨랐던 거지.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고, 연기를 하게 된 거야. 심심해서 재밌는 걸 찾고, 설사 재밌지 않아도 재밌는 척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지.”

“그래서 가식덩어리구나. 그건 진짜 의외긴 하네요. 형들이 항상 웃고 있어서 진짜 재밌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땡! 틀렸습니다! 그건 선우지. 선우는 자기 좋아하는 것만 보고 사니까 대부분 재밌어하거든. 맨날 웃고 있어서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걔는 그게 진짜야.”

“그거참, 되게 부러운 사고방식이네요. 좋아하는 것만 보고 산다니.”

“후랑 호는 모든 게 다 연기야. 걔네는 남들 앞에서, 특히 사람들이 많을 땐 꼭 연기를 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람들만 있는 자리가 아니면 걔네가 짓는 표정은 다 연기야. 걔네가 그걸 얼마나 연습했는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 전부 만들어진 거야. 옛날에 들은 적 있어. 자연스레 대화하면서도 다음 상황을 대처할 수 있게 단어마다 자기들만 아는 키워드를 숨겨 놓는다고.”

할 말을 잃었다. 머리가 좋으면 별 쓸데없는 짓거리도 하는구나.

대단하다는 마음과 함께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가 궁금했지만 그냥 조용히 있었다. 지금도 멘붕인데 이 이상 파고 들었단 복구가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대신 나는 쌍둥이들과 있던 때를 떠올리며 놈들의 표정을 기억해 내기 위해 애썼다. 허, 그 생동감 넘치던 모습들이 다 연기란 말이야? 그러고 보면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다. 만화가가 작정하고 그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비슷하게 행동하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쌍둥이로 태어나면 다 그런가? 그건 아닌 것 같던데…. 나는 생각할수록 이유가 궁금해져서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정새빈은 말하면서도 그러더니 아직도 베개 귀퉁이의 촉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저거 나도 잘 때 가끔 만지는 덴데, 천 해지면 어쩌지. 그건 안 돼! 휙, 다소 매정한 손길로 베개를 빼앗아 저쪽으로 던져 버리고 다시 반듯이 누웠다.

정새빈이 옆에서 징징댔지만 내 거니까 별로 미안하지도 않았다. 난 놈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얘기나 계속 해줘요. 태혁이 형은 왜 인간 말종이에요?”

“이어 나. 할타허링다.”

“악! 놨는데 왜 핥아요!”

나는 놈의 옷에 손바닥을 꾹꾹 눌러 문지르며 웩웩거렸다. 나 진짜 비위 약한데.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녀석이 얄미워서 코라도 꽉 꼬집어볼까 하다 참았다.

나는 입을 씰룩거리며 피부가 쓰릴 때까지 벅벅 닦고 놈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자각하지 못한 새에 어깨는 물론이요, 팔과 허벅지까지 딱 붙이고 누워 있었다.

하여간 방심하기만 하면….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들어 혹시 냄새가 날까 킁킁대고 있는데 정새빈이 여상한 말투로 얘길 이었다.

“태혁이는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사람을 죽였거든.”

내용은 전혀 여상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단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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