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너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후의 목소리는 살벌했다. 급박한 상황 덕에 잠시 무슨 일을 했었는지 잊었던 호는 대강 대꾸했다.
평소라면 죽도록 약 올렸겠지만 지금 호는 김진호의 건강 문제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호전돼 가고 있단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저놈의 눈물만 좀 멈추면 더 빨리 낫겠건만. 아까부터 진호는 계속 울다 웃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목 닦고 기다려라. 나 지금 집 앞이니까.
“시끄러워.”
호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다시 숟가락으로 미음을 젓기 시작했다. 진호의 꼴을 봐선 죽도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만든 것이었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세상에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병원에 가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은데 저렇게 싫어하니…. 호는 스마트폰을 힐끗대며 사진과 같은지 확인했다. 일단 모양새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맛을 보니 간도 밍밍한 게 완성인 듯싶다. 이제 곰돌이를 깨워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빙글 몸을 돌리자마자 검은 물체가 얼굴 쪽을 향해 날아왔다.
당황해서 고개를 기울여 피하고 나니 옆으로 뻗어진 팔의 주인이 보였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 후였다.
“넌 규칙을 어겼어.”
“싸우는 데 규칙이 어딨냐?”
후는 비죽 비웃음을 걸친 호의 얼굴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 없었다.
진짜 죽일 거야. 후는 잠에서 깬 후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고 했던 결심을 다시금 곱씹으며 한쪽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나 미처 다리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호는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후는 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에 얼떨결에 그 뒤를 따라갔다. 빌어먹을 동생을 따라 도착한 곳은 침실이었다.
이 자식들 나 없는 새 벌써 진도 나간 거야? 하는 불안한 생각도 잠시, 후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진호를 힐끔거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말에 호는 답답하다는 듯 본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아플 뿐이야.”
“근데 왜 울고 있는 건데.”
“몰라. 열이 올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꿈이라도 꾸나 봐. 아까부터 웃다가 울다가 그래.”
후는 열이라는 소리에 황급히 진호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나아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
“몇 도야?”
“37도.”
진지한 물음에 호 역시 진지하게 답했다.
확 가라앉은 분위기 속 후의 냉랭한 눈빛이 호에게 향했다.
“넌 의사라는 놈이 지금까지 여기서 뭐한 거야. 당장 병원부터 갔어야지!”
정색하고 내뱉은 말엔 비난이 잔뜩 서려 있었다.
“데려가려고 했어. 당연히 그러려고 했는데, 병원 얘길 꺼낼 때마다 더 크게 울면서 병원 가기 싫다고 비는 애를 어떻게 억지로 끌고 가냐. 계속 서럽게 우는 거 달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그래도 일단 체온은 떨어트려야 한다는 생각에 별 생쇼를 다 해서 39도였던 거 여기까지 겨우 내린 거야.”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그리 당당한 어조는 아니었다. 해열제는 먹였냐는 질문에도 중얼거리듯 먹였다고 했을 뿐이다.
후는 그런 호의 태도가 열 받아서 결국 이게 괜찮아 보이냐고 다시 한번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얼른 병원에 데려가자고 하려는데 순간, 침대 쪽을 향해 있던 호의 눈이 커졌다. 진호가 팅팅 부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깼어? 진호야, 깬 거야?”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는 진호에게 후가 반색을 하고 달려드는 걸 본 호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까지 풍기던 분위기랑 너무 다른 거 아니냐? 하는 불평이 절로 나왔다.
진호는 그런 후와 호를 천천히 살피더니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언제 왔는지 물었다. 그것도 후에게 호라고 부르면서.
호는 어쩜 저렇게 당당히 틀리냐 싶으면서도 저도 나름 구분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잘못 불린 후는 잘못 불렸단 사실보다 제가 호보다 늦게 온 걸 모른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 활짝 웃었다.
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 후를 내버려 두고 진호가 원하는 답을 해 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간호는 저가 다 했는데 숟가락 얹으려는 후가 얄미워 정강이를 툭 차고 죽 얘기를 꺼냈다.
후가 눈치 빠르게 부엌에 가서 미음을 가져오는 새 머리를 쓸어 보니 아까 후와 말다툼을 하는 새 열이 더 내렸는지 손에 느껴지는 체온은 이제 꽤 안정권이었다.
미간에 잡힌 주름을 손으로 펴줄까 하는데 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호는 앉을 힘도 없을 진호를 배려해 손수 일으켜 세워준 건 물론이요 스스로 등받이를 자처해 침대 등받이와 진호 사이를 파고들었다. 후는 그 얍삽한 꼴을 보고 눈을 흘기더니 자기도 곧 씩 웃으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호가 간호를 했으니 이 정도는 봐줘야지. 후는 자기가 생각해도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하며 호가 만든 미음을 마치 자기가 한 것인 양 정성스레 먹여주기 시작했다. 진호의 당연한 질문이 침실 안에 울리기 전까진 말이다.
“도대체 제가 왜 알몸인 거예요?!”
* * *
일어나자마자 알몸이라니. 알몸인 채로 이 악마들과 한 공간에 있다니. 나는 지금 악몽을 꾸는 중임이 확실하다.
볼품없는 내 몸 본다고 짐승이 되진 않겠지만 놀림거리로 만들 게 분명한 둘 앞에서 도무지 당당해질 수 없어 계속 몸을 움츠렸다. 하체를 가리고 있는 이불을 들어 상체까지 가리지 못하는 이유는 뒤에 있는 놈이 들어 올릴 때 생기는 틈으로 빈약한 내 거시길 볼까 봐 그러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아 진짜, 형!”
저 새끼가 이불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단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아니 이 씨불놈은 왜, 내가 왜 알몸이냐고 물어보자마자 이불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거야? 미친 건가?
힘은 또 얼마나 센지 그나마 있는 힘껏 이불을 잡아당겨 하체도 겨우 가렸다. 아니, 과거형이 아니지. 가리고 있다. 지금도 난 이불의 끝자락, 저 사이코는 이불의 중간쯤을 잡고 실랑이 중이다.
잠깐. 이 새끼 보시게?
“형도 손 좀 가만히 있죠?!”
설상가상 내 허릴 두르고 있던 손도 당최 가만히 있질 않는다. 이 자식들 왜 이래 진짜! 나 아픈 사람이라고!
“야, 네 거 얼마나 큰지만 보자. 어?”
“아니,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하냐고요!”
“전에 영상으로 봤을 때 꼭 실물을 봐야지, 하고 결심했거든. 그치, 호?”
잠깐. 뭘 봐? 뭐를 보고 결심해? 나는 동의를 구하는 듯 호를 향해 눈짓하는 후를 빤히 보며 굉장히 거슬리는 단어에 대해 질문했다.
“영상… 이요?”
“응. 니가 민선우한테 펠라 해 줬을 때 거실에 있던 카메라 통해서 실시….”
나는 이 새끼들이 내가 얼마나 만만하면 이젠 아주 당당하게 이딴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싶은 마음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 내 표정을 정면으로 본 후는 말끝을 흐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물론 그거 다 지웠어. 응! 딱 한 번만 보고 진짜 다 지웠어.”
말인지 똥인지 모를 개소리를 변명하듯 덧붙인 녀석에게 나는 뭐라고 해 줘야 할까. 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내 인생에 대한 현타가 와서 차마 얼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현타에 빠지든 말든 이 말도 안 되게 뻔뻔한 녀석들은 지들이 원하는 바를 꼭 이루고 싶었나 보다. 나는 갑자기 휑해진 아랫도리를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구명줄처럼 잡고 있던 이불이 내 옆으로 뻗어져 나와 있는 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
“풋-. …너….”
얼음. 석고상. 동상. 조각…, 은 아니고. 어쨌든 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굳혔다. 내 눈앞에서 눈치를 보던 후 새끼는 아래를 보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이불을 뺏어간 호 새끼는 웃음을 터트렸다.
…알아. 나도 알아. 그러니까 제발 닥쳐줘. 부탁….
“푸하하하하! 쬐끄매에에에에!”
“으하하하하! 쬐끄맣대! 푸하하하하!”
자존심이 뭉개졌다. 마음이 꺾여 버렸다. 나는 아직도 처웃어 대는 쌍둥이들을 무기력하게 쳐다보며 먼지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개새끼들. 진짜 못돼 처먹은 놈들. 남의 콤플렉스를 이렇게 후벼 파다니. 나는 팔로 무릎을 감싸 안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한참을 웃어대던 놈들은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숨 막혀 죽어버려라. 조심스레 저주를 퍼부어 보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 날 향해 되도 않는 위로를 날렸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두 얼굴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괜찮고 뭐가 그럴 수도 있다는 거냐, 이 악마보다 몇 천배 사악한 새끼들아!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쬐… 쬐끄…. 에이, 씹!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거든요?!”
“그럼 세워보자.”
“잠… 잠깐…!”
나는 당연스럽게 다가오는 손을 피해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는 호가 버티고 있었고, 앞에는 후가 매우 가까이 있었기에 조금 바르작거린 것이 다였다. 그렇게 내 거시기는 후의 손에 붙잡혀 버렸다.
“야! 그걸 왜 네가 해?!”
그래! 그걸 왜 네가 해! 나는 동조하며 반박한 쪽을 응원했지만 여기에 내 편은 없었다.
“뭐야. 내가 먼저 잡았으니까 내가 할 거야.”
“그런 게 어딨어! 공평하게 가위바위보 해!”
“싫어. 이미 내가 잡은 걸, 왜 굳이 그런 불확실한 내기에 걸어야 하냐?”
나한테 달려 있는 내 거거든? 누가 먼저 잡았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건 태초부터 나의 부속물인 거라고!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다 이상하다. 똑같이 머리가 돌아 버린 것 같다. 고집스레 내 걸 잡고 놓지 않는 후와 그런 후의 손목을 꽉 잡고 귀 따갑게 소리 지르는 호. 내가 볼 땐 둘 다 미친 것 같았다.
더욱 빈정상하는 건 이 자식들, 내가 두 손을 번갈아 찰싹찰싹 때려 대도 나한테는 관심 한 자락 주지 않는다는 거다.
둘은 계속 실랑이를 하다 결국 이대론 결론이 안 나겠다며 획기적인 합의점을 찾아냈다. 소중한 그곳의 해방감에 기뻐하기도 잠시, 나는 어깨를 구속해 오는 손길과 내 두 다리 위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당황스러워 입을 떡 벌렸다.
“그럼 한 개 달려있는 거 말고 두 개 달려있는 걸 반씩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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