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둘 중에 뭐요?”
“요거.”
똑같이 생겨선 취향은 미묘하게 다르다. 내가 보기엔 이거나 저거나 똑같구만, 둘은 전혀 다르단다. 그렇게 이것저것 취향 맞춰 곱게 먹여줬으면 닥치고 먹기나 할 것이지 이 새끼들은 꼭 한 마디씩 툭툭 싸워서 사람 정신 사납게 군다. 바로 지금처럼.
“칸쵸가 훨씬 맛있는데 모자란 새끼. 너 그래서 의사 어떻게 해 먹냐?”
“지랄한다. 과자 취향과 지적 수준의 관계성을 내가 납득할 만한 논리적 근거를 대서 설명한 뒤에나 그런 소릴 해라, 이 또라이야.”
의사들은 원래 이런가? 대체 과자 맛에 대해 얘기하는데 논리가 왜 필요해?
더 가관인 건 칸쵸를 받아먹던 놈이 정말 이것저것 이유를 갖다 대며 내가 듣기엔 뭔가 억지 같으면서도 맞는 것 같은 그런 묘한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었다. 물론 홈런볼을 받아먹던 놈은 그걸 비웃음으로 일관했다.
나는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놈에겐 칸쵸를, 내 목을 감싸 안고 있는 놈에겐 홈런볼을 열심히 나르며 이걸 다 먹으면 이 새끼들이 가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바람은 그저 바람이었을 뿐. 자꾸 허리 살을 꼬집는 손과 볼에 얼굴을 비비는 이마를 피한 죄로 관심은 다시 나에게 집중되었다.
“가만 안 있어? 토론 중이잖아.”
“그래. 자꾸 움찔거리지 마. 집중 안 돼.”
너희 둘이야말로 내가 움직거리는 게 왜 너희들 토론하는 거에 영향을 주는지, 내가 납득할 만한 논리적인 근거를 대서 설명해 봐라 이 사이코놈들아.
자꾸 살을 꼬집으니까 간지럽고 아파서 움찔거리는 거고, 볼에 이마를 있는 힘껏 비비니까 자연히 얼굴이 밀려서 옆으로 갔던 건데 왜 나한테 지랄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몸뚱어리 내가 움직이겠다는데 왜 둘이 나서서 난리냐고!
내 피부가 의외로 부드럽다고 자꾸 지 몸 어딘가를 내 몸 어딘가에 비비적대는 놈 하나, 내 살이 말랑말랑하다며 여기 저기 살이 있는 곳마다 꼬집어대는 놈 하나. 두 기둥이 내 양 옆으로 찰싹 붙어서 정신적으로 피로를 안겨주는 걸로도 모자라 육체적으로도 힘들게 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렇게 중요한 얘기면 좀 떨어져서 하면 되잖아요!”
“안 돼.”
“싫어.”
“왜요!”
“넌 우리의 곰탱이니까!”
이거다, 이거. 이 말도 안 되는 이유!
부드럽고 말랑한 게 지네들이 어렸을 때부터 껴안고 자는 곰 인형을 닮았다며 나보고 곰탱이란다. 이 새끼들이 날 부를 때 쓰는 호칭은 야, 너, 가 아니면 곰탱이였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너 새끼들의 곰탱이님은 혈압 올라 돌아가실 거 같다!
“전 김진호라고요!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요!”
“너도 우리 누가 누군지 모르잖아.”
“맞아. 너 묘하게 우리 호칭 생략하고 말하잖아.”
예리한 놈들. 사람 할 말 없게 만들기는. 나는 얼른 두 사람 입에 각각 좋아하는 과자를 쳐 넣었다.
덤으로 이마에 볼을 갖다 대줬고 손은 다시 허리에 갖다 대줬다. 그러자 쌍둥이들이 키득거리며 다시 얌전히 과자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일주일가량 지난 지금도 쌍둥이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일란성이라도 가까이서 보거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고 하던데, 난 이렇게 밀착해 있는 상태에서도 잘 모르겠다.
하루는 형 쪽이 코 평수가 넓은 거 같으면 다음 날은 동생 쪽이 더 그런 것도 같고. 한 쪽이 눈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기억해 놓으면 다음 날엔 둘 다 올라가 있는 것 같고. 나는 곧 인정해야 했다. 내가 눈썰미가 더럽게 없다는 것을.
어제 예령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령이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쿨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응? 그냥 보면 다르던데?’
주연이 돈 많이 받는 이유가 있다.
“못난이 곰탱이. 멍청한 거까지 곰탱이 같아.”
입막음용 과자가 다 떨어져 더 이상 쑤셔 넣어 줄 게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눈썰미가 없는 것뿐인데 두 사람은 날 천하의 바보 멍청이로 몰아가고 있다. 애기 손톱 밑의 때만큼 있던 미안한 마음까지 싹 사라지며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나는 최대한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고 경고하듯 읊조렸다.
“집에 안 가세요?”
그러나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지 지나치게 발랄하고 명랑한 목소리가 양쪽에서 터져 나왔다.
“오늘은 네가 우릴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안 가!”
…울어 버릴까?
나는 양손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숙였다. 잔뜩 웅크린 자세에 옆에 앉은 녀석들이 내 허리를 쿡쿡 찌르며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해 온다. 나는 제발 그냥 꺼져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참고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올 때마다 물어봐서 한 번이라도 맞히면 이 문제로는 더 이상 귀찮게 안 할게.”
왜 지들이 갑인 것처럼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쌍둥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며칠 동안 정말 말 그대로 생떼를 부렸다.
머리색, 헤어스타일, 입은 옷, 가방 등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모든 걸 통일 시켜 놓고 나보고 자꾸 맞혀보래서 난감해 죽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달리 보이고 싶으면 좀 다르게 하고 다니던가!
아까부터 계속 앞에서 알짱알짱 위치 바꿔 앉는 심보는 또 뭔데? 이 자식들이 누구 놀리나. 열심히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른 점을 찾을라치면 또 자리를 바꿔 앉…. 이 씹딱따구리 새끼들이!
“아 거, 좀 가만히 앉아 있어요, 가만히 좀!”
나는 정말 진심으로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러자 후, 호 형제도 놀랐는지 얼떨결에 냉큼 내 옆으로 착석했다. 나는 좀 조용해진 두 명을 옆에 끼고 진지하게 구분법을 생각해 봤다.
사실 편법을 쓰려면 충분히 쓸 수 있다. 둘은 겉모습은 똑같아도 서로 취향이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과의사인 형 남궁후는 칸쵸와 포테이토 스틱을 잘 먹으며, 내 피부가 부드럽다고 좋아하고 내과의사인 남궁호는 홈런볼과 포카칩을 찾고, 내 살이 말랑말랑 하다고 좋아한다. 성격 부분에선 남궁후는 상대적으로 과묵하고 무뚝뚝하고, 남궁호는 좀 더 유들유들한 성격이다.
문제는 이렇게 특징을 알아봤자 결국 그 남궁후가 누구고 남궁호가 누군지 눈이 구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목표는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도 누가 누군지 찍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 듯싶다. 에이 씨 몰라! 이젠 될 대로 되라지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진짜?”
…엄청난데. 눈이 초롱초롱해. 이럴 줄 알았으면 어차피 못할 거 더 빨리 포기할 걸 그랬나? 나는 그 부담스런 눈과 거리를 두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데, 형들이 이해해 줘야 할 게 있어요. 사뭇 진지한 어투로 말을 꺼낸 나를 올려다보며 형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
“네. 그게 말이죠, 사실 형들 성격이나 취향 같은 건 대강 파악했는데, 사실 외모 상으론 도저히 구분이 안돼요.”
“…그럼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게 왜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엄연히 구분하는 거라고요! 물론 예령이처럼 형들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돈 아니지만, 그래도 형들이 뭔가 행동하고 있을 땐 대충 맞힐 수 있다고요.”
사람의 정체성이란 게 꼭 외모적인 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몇 분 전까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쌍둥이들의 말이 내 양심을 건드리자마자 바로 반박하고 말았다.
오히려 내면으로 구분하는 게 맞지 않아?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얼마나 많고, 완전 다르게 생겼다고 해도 어쨌든 외모는 선천적인 거니까 그런 걸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외모는 말 그대로 겉모습만 보는 거니까, 성격이나 취향으로 알아보는 게 더 대단한 거라고!
이것저것 사족을 붙여 두두두두 내뱉었더니 후와 호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훗. 이겼다. 내가 의사를 말로 이겼어. 아싸!
그런데 말이지.
“근데 형들. 혹시 가르마 반대로 타볼 생각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나도 누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라는 생각에 물어본 건데, 쌍둥이들은 그 뒤 삼일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나쁜 새끼들. …아니지. 그 귀찮은 놈들이 안 오게 된 건 좋은 일이다. 아이고, 이쁜 놈들.
* * *
“아파….”
몸이 천근만근이다. 깬지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 일어나긴커녕 침대에서 팔 하나 떼기 어렵다.
쌍둥이들이 연락도 없이 안 오게 된지 이틀 째, 그러니까 바로 어제 나의 감기몸살이 시작됐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았던 탓인가? 별일도 없었는데 으슬으슬 추운가 싶더니 아침부터 이렇게 몸져누워 버렸다.
눈앞은 팽글팽글 돌고, 머리는 계속 누가 내려치는 것 같고, 콧물은 찍찍 나오고, 몸은 춥다고 난리다. 너무 이곳저곳 아파서 눈물이 슬금슬금 나오는 이 와중에도 심심한 나는 병신인가….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집이 갑자기 너무 조용하게 느껴져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어 보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의미 없이 끙끙 앓아 댄 것도 몇 분. 이젠 그냥 멍하니 천장을 보다 어지러우면 눈 감고, 그러다 선잠에 드는 걸 반복하고 있다.
씨발, 이래서 난 아픈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굳은살이 박일 대로 박인 내 가슴도 아플 때만은 물렁해져서 이렇게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는다.
나는 텅 빈 좁은 방안보다 찬 벽 쪽을 보기로 결정했다. 돌아눕는 데도 한참 걸렸지만 그만한 보람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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