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내가 패닉에 빠지든 말든 네 명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최태혁과 민선우는 쌍둥이를 혼내는 와중에 서로를 열심히 디스하고 있었다.
경쟁적으로 쏟아 내는 말들은 민선우네 집을 변태가 살기 때문에 경비가 철통같을 수밖에 없는 현대판 괴물 우리로 만들었고, 최태혁네 조직을 힘만 쓸 줄 알지 멍청하기 그지없는 사회 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만들었다. 뒤로 갈수록 왠지 쌍둥이들을 추궁하는 것보다 저희들끼리 깎아 내리는 걸 중요시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틈틈이 쌍둥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하려 했느냐, 이 정신연령 초딩 같은 것들아, 같은 꾸중은 잊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손 안에서 과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좀 있으면 민선우랑 최태혁이 서로 싸울 거 같다.
“정말 화내기 전에 말하고 몇 대 맞는 게 좋을 거다. 내 옆에 구제할 길 없는 변태가 있는 게 기분이 영 더러워서 갈수록 힘 조절이 안 될 것 같거든.”
“지금 얘기하면 간단하게 석고대죄 정도로 끝내 줄 테니 어서 불어. 사회 쓰레기가 풍기는 악취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아 진심으로 불쾌해지기 시작했거든.”
드디어 클라이맥스의 삘이 왔다. 최태혁의 눈썹이 격한 웨이브를 추고 있었고 민선우의 입가가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만화였다면 분노의 십자표시가 백만 개는 있었을 법한 표정들이었다.
그러자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내 억울하다, 무슨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울먹거리기까지 하던 쌍둥이들도 진지하게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두 놈의 달싹거리는 입이 금방이라도 뭔가 폭로할 것 같아서 나는 땀에 전 과자들을 놓고 좀 더 가까이 가서 앉았다.
그 뒤 이어지는 침묵. 입만 달싹일 뿐 소리를 내지 못하는 둘의 모습에 급기야 최태혁은 꽉 주먹을 쥐어 올렸고, 민선우의 입꼬리는 완전히 일자가 됐다. 나는 또 실망한 마음에 투덜거리며 뒤에 있는 과자를 집으려고 등을 돌렸다. 그때였다.
“그래! 우리가 그랬다! 민선우네 집에 이상한 물건 갖다 놓고 쟤 골탕 먹인 것도 우리고! 대기실에 도청기 달아서 저 음치 새끼가 흥얼거리는 되도 않는 노래 엿들은 것도 우리고! 흥분제를 비타민제로 속여서 변태 민선우 브레이크 망가질 뻔하게 만든 것도 우리고! 최태혁네 멍청한 깡패들 경계망 뚫고 이 집에 CCTV랑 도청기 몇 개 설치해 놓은 것도 우리다! 됐냐?!”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저렇게 재밌는 걸 너희만 독식하려고 했냐?! 우리도 재미 좀 보자, 이 치사한 새끼들아! 그리고 도대체 저놈이 누구길래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데?!”
…응? 거대한 폭탄이 연달아 떨어졌다. 이번엔 말도 나오지 않아 네 명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누구냐니. 설마 너희들도…”
그 정적을 깬 것은 최태혁이었으나 녀석도 당황했는지 뒷말을 흐렸다.
“기억 못 하는 거야…?”
그리고 말을 이어 끝맺은 것은 민선우였다. 나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서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내 쪽으로 고개 돌리지 마. 쳐다보지 마. 넷 다 눈 돌려.
“우리가 저 놈을 어떻게 알아!”
씨발. 이번엔 더블이라 짜증도 곱빼기로 난다.
* * *
살심이 끓어오른다.
“야. 노래 불러봐.”
“싫어요.”
“너 맨날 부르던 거 있잖아. 나는 천재인가 봐~, 하는 이상한 노래.”
나는 내 양쪽으로 서 있는 이 기둥 같은 놈들을 진심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정말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툭툭 건드리는 남궁 형제 덕분에 매일매일 도 닦는 기분이다.
어떻게 하면 얘네를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할 수 있을까? 최태혁이랑 민선우한테 전화로 이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은 자존심 상해서 그것도 못해먹겠는데, 문제는 그 방법 말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타파할 길이 없다는 거다.
지금도 쌍둥이는 양쪽에서 내 볼을 번갈아 찌르는 고단수의 수법으로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고 있다. 큰 키만큼이나 손가락은 또 얼마나 길고 단단한지, 부셔버리고 싶은걸 가까스로 참았다. 여기서 좀만 더 하면 김진호 인생 최초로 강자에게 대드는 사태가 일어나 버릴 지도 모른다. 내 처지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쌍둥이들은 역시나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역시나는 빼자. 내가 슬프니까. 어쨌든 나는 둘의 반응에 무심코 인상을 확 구겨 버렸다. 최태혁과 민선우는 지들도 날 알아보지 못했던 게 기억났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날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버렸고, 쌍둥이들은 내 표정이 웃겼는지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설명이고 뭐고 빈정상해서 과자를 내팽개친 후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지네들끼리 알아서 하라지. 그런 마음으로 문밖에서 시끄럽게 날 불러대는 개새끼 사인방을 싹 다 무시했다. 미안하다, 같은 정상적인 말들이었으면 반응해줬겠지만 이건 뭐 대놓고 사람 정신을 후벼 파는 내용들이었다.
최태혁, 민선우는 그렇다 치고 어느새 나에 대한 걸 들었는지 쌍둥이 놈들까지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속을 박박 긁어댔다. 내가 존재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느니, 예령이가 워낙 화려한 애라 네가 가려졌다느니, 넌 너무 평범해서 다른 애들이랑 구분하기가 어렵다느니, 처음부터 예령이 친구였다고 얘기해주면 알았을 거라느니. 얘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조금 울어 버렸다.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바꿔 말하고 다르게 말하고 순하게 말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서 말한들, 어쨌든 내용은 그랬으니까.
나도 다 알고 있고,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진실들이라 더 가슴이 아팠다. 백 번 말하지만 나라고 엑스트라 인생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다. 나도 인기인들처럼 모든 걸 다 갖추고 싶었다. 똑똑하고 싶었고, 매력적이고 싶었고, 유머러스하고 싶었고, 호감형이길 바랐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무엇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평범하다거나 존재감이 없다는 꼬리표를 붙여 날 더 아프게 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데 왜 몰라줄까? 나도 알고 보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 왜 내보일 기회가 없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생각밖에 없다는 게 참 슬펐다.
그리고 네 사람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내보이듯, 저 딴엔 변명이겠지만 이쪽이 받아들이기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들의 나래를 이어갔다.
나는 끝까지 문을 안 열어 주려고 했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흥분해서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도대체 도청기는 뭐고 CCTV는 뭔지, 아까 다 들었으니 제대로 설명해!’
내 외침에 소란스러웠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그들이 볼 순 없었겠지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 말문을 연 건 민선우였다.
‘대기실에 계속 이상한 물건들이 있다는 것이 수상해서 알아보니, 모두 이 녀석들이 한 짓이었어요. 나중에는 물건을 뒀을 뿐 아니라 도청기까지 설치한 걸 알게 됐고.’
‘대기실 말고, 우리 집에 도청기랑 CCTV 설치해놨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다음 타자는 최태혁이었다. 녀석은 웬일로 달래는 말투로 얘기했다.
‘나는 외부 침입이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현관과 대문에만 설치했다. 도청기나 실내 CCTV에 대해선 모르는 일이야.’
나는 그에 대해선 나름대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집에서만 생활하게 된 것도 모두 나의 안전을 위한 거니까 그 정도는 설치해놓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쌍둥이들을 향해 물었다.
‘그럼 선배들이겠네요. 실내 CCTV랑 도청기. 어디 설치하셨어요, 그거?’
화를 숨기지 않고 말했기에 조금은 쩔쩔 매면서 얘기할 줄 알았건만, 쌍둥이는 매우 뻔뻔하게 나왔다.
‘야, 귀찮아서 거실에만 달아서 뭐 들은 것도 본 것도 없으니까 호들갑 그만 떨고 나오지? 너 때문에 우리 지금 맞아 죽게 생겼거든? 얘네가 우리 때리면 네가 책임질 거야?’
둘 중에 누가 그렇게 떠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주둥이를 잡고 세계 일주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이 솟아올랐다. 밖의 두 사람도 그랬는지 곧이어 엄청 아플 것 같은 퍽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건 알았지만 너무 고소해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문을 향해 가운뎃손가락도 쭉 펴줬다. 녀석들은 못 보겠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아이 씨, 그만 때려! 알겠다고! 지금 다 떼 가면 되잖아!’
밖의 두 명 덕분에 CCTV와 도청기 문제도 바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일주일. 빌어먹을 쌍둥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왜 안 부르는데?”
불만이 가득 섞인 목소리였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이 씨불놈들이 간접적으로 관찰할 도구가 없으니 직접 관찰하겠다며 우리 집을 아주 제 집 드나들 듯이 한다. 그것도 꼴에 일하는 티 낸다고 시간도 아주 지 멋대로 아침에 왔다 저녁에 왔다, 난리블루스였다.
제일 열 받는 건 돈도 안내면서 우리 집 식량을 축내고 있단 거다.
“야, 넌 왜 칸쵸랑 홈런볼만 먹냐? 포카칩도 좀 사 놔!”
“응응. 참고로 나는 포테이토 스틱을 좋아해.”
나도 그거 좋아해. 그런데 그런 거 말고 던지기 딱 알맞은 과자를 사둔 이유는 너희를 진짜 무기로 때릴 수는 없으니 여차하면 이거라도 던져서 기분 나쁘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왜 너희들 좋아하는 과자를 사다 바쳐야 하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포카칩 같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지 말고 제발 너희 집으로 좀 꺼져주지 않겠니?
“그건 비싸단 말이에요.”
…반항한 거다. 내 딴엔 큰맘 먹고 대든 거다. 근데 쌍둥이들은 나의 이 호기로운 일갈을 개그로 받아들였는지 가난뱅이, 구두쇠라며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두 사람이랑 같이 있어보면서 느낀 건데 얘넨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대폭소를 해 대는 경향이 있다. 세상천지 사람들이 다 놈들 같았으면 난 개그맨으로 대성했을 거다.
나는 뒤에서 자꾸 매달리는 한 놈을 질질 끌며 가까스로 소파에 가서 앉았다. 다른 한 놈은 옆에서 배를 잡고 웃으며 따라오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아 입을 벌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과자 상자 두 개를 무릎에 놓고 각자 하나씩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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