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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21화 (21/234)

21화

“오늘 할 일 정리하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그제야 민선우는 손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할 일? 오늘 뭐 다른 거 해요?”

입을 열자마자 나온 건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역시 최태혁이나 민선우나 범상치 않은 놈들이다. 최태혁은 아침에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내가 기분 좋은 줄 알더니, 민선우는 내 말 한마디에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걸 눈치챘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아니요, 그냥…. 아! 형, 오늘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먹고 싶은 거요?”

“네! 제가 오늘은 형이 원하는 거 뭐든 다 해드릴게요. 딱히 먹고 싶은 거 없으면 다른 심부름이나 뭐 그런 것도 다요!”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그래요?”

민선우가 활짝 웃었다. 남은 필사적으로 구직 활동 중이건만 네놈은 그게 웃긴가 보구나. 나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만물의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며 활짝 마주 웃어줬다.

“그냥 좀 좋은 날이에요.”

그러자 민선우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다며 나중에 생길 때까지 기회를 보류해 둬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쯧, 그냥 기분 좋게 해준달 때 해달라고 하지, 뭔 보류야 보류는. 내가 심부름 쿠폰이라도 발행해야 되냐?! …라는 말은 당연히 속으로만 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당연히 되죠~! 하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놈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일찍 나가봐야 합니다. 대신 저녁엔 좀 일찍 들어올 거니까 또 저번처럼 미리 말 안 해서 준비 못 해놨다고 의기소침해 하지 말아요.”

“네! 회사에서 출발하기 전에 메시지 주셔야 해요!”

“알았어요. 아! 최근 그 ‘착오’가 뜸했으니 아마 오늘쯤 또 이상한 게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네! 걱정 마세요! 잘 다녀오세요-!”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줬다. 이거 뭔가 대화가 신혼부부 같지 않나? …에이, 원래 가정부랑도 이런 대화하는 걸 거야. 얼른 청소나 시작하자. 나는 갑자기 드는 찝찝한 기분을 떨치며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 뒤론 똑같은 일상이었다. 충분히 깨끗하지만 혹시 먼지가 있을까 봐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았고, 매일매일 하는 덕분에 별로 할 것도 없는 빨래를 하고, 침대 시트도 갈 때가 된 것 같아 새 걸로 갈아 놓았다.

물론 하는 도중 틈틈이 최태혁에게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했다. 요즘 최태혁은 날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데리러 갈 테니까. 매 통화마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때마다 알았다고 하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날 어디로 데려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하나도 설명이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그래도 말하는 걸 봐선 나중에 사고가 터졌을 때 나만 두고 갈 걱정은 없을 거 같아 맘이 좀 놓인다. 이제 적어도 최태혁은 날 버리고 가진 않을 거다.

하지만 민선우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좀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 또 같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나는 불쑥 드는 우울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깡충깡충 뛰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비타민제입니다. 물에 풀어서 드십시오.]

나는 부엌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유리병을 하나 발견했다. 집사 할아버지가 민선우 먹으라고 놓고 가셨나? 싱크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부자들은 역시 이런 거까지 챙겨먹는구나 생각하고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뒀다.

그리고 집에서 적어온 메뉴들의 레시피까지 봐 가며 꼼꼼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 테마가 테마인 만큼 나의 사활이 걸린 문제기 때문에 이마에서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만들었다. 힘들이 땐 곧 통장에 들어올 돈을 떠올리면서.

오늘 받을 월급의 액수는 아무리 떠올리고 또 떠올려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렇게 편하면서 돈 잘 벌리는 직업을 놓치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다. 일자리 없다고 거절하면 저기 밖에 있는 대문 문지기라도 하게 해 달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 음식을 다 차려 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민선우가 보낸 메시지였다.

나는 현관에 와 있다는 내용을 보고 국을 마저 푼 뒤에 얼른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때 맞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활짝 웃으며 다녀오셨냐는 인사와 함께 민선우의 코트를 받아 들었다.

“가서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오세요.”

나는 민선우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며 이젠 익숙한 말들을 뱉었다. 신혼부부가 아니야. 그냥 가정부랑 집주인의 대화일 뿐이야. 계속 이상한 쪽으로 돌아가려는 머리를 나무라며 얼른 코트를 스타일러에 넣고 나오니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은 민선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국 식는데 먼저 가서 드시지…! 얼른 가요.”

나는 퍼 놓은 국을 떠올리며 민선우를 재촉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식탁에 앉기 전 앞치마를 벗으려다가 뭔가 들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머니를 열어 보니 아까 발견하고 넣어둔 비타민제가 보였다.

나는 이미 수저를 들고 있는 민선우에게 물을 떠오겠단 말을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일단 민선우가 주인이니까 삼분의 이를 넣고, 나는 고생했으니까 삼분의 일을 넣자. 멋대로 남의 비타민제를 먹는 셈이지만, 모르는 척 물을 들고 식당으로 갔다.

“여기 물이요.”

민선우의 옆자리에 물을 놓고 내 자리에 앉아 나도 수저를 들었다. 예상대로 민선우는 평소보다 배는 감탄하며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저래서 키가 저만큼 큰 거구나.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도 두 그릇이나 비우고 일어났다.

이상하게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았지만 뒷정리를 하는 데 여념이 없어서 배가 불러 그렇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쩐지 민선우의 표정도 좀 굳어 있었지만 내가 상을 다 치웠기 때문에 놈도 습관처럼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 설거지가 다 끝났을 땐 이미 내 숨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있었다.

“대체 뭘 가져다 놓은 거야!”

나는 식탁 유리에 뜨거워진 얼굴을 기댄 채 몽롱한 정신으로 통화 중인 민선우를 보고 있다. 내가 보여준 유리병을 쥔 손에 힘줄이 돋아 있는 걸 보니 엄청 화가 난 것 같았다.

통화 내용을 들어 봐선 비타민제가 아닌 게 분명한데…. 그럼 뭘까? 온몸에 끓어오르는 열이 머리 회전을 둔화시켰다.

거기가 아파. 민망해 죽겠지만 유두도 자꾸 옷에 쓸려서 간지러워. 생각만 했을 뿐인데 몸은 어느새 옷을 벗기 시작했는지 민선우가 통화를 하다 말고 급하게 내 쪽으로 왔다.

손 엄청 크다-. 내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아 버리네-. 결박당한 손목이 간지럽다. 숨이 더 거칠어졌다.

싫어, 만지고 싶단 말이야.

“젠장, 끊어!”

민선우가 거친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는 너무 꼿꼿해져서 아파 오는 거기를,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민선우의 손에다 문지르고 있었다. 가고 싶은데 내 손을 안 놔주니까 어쩔 수 없었어. 눈빛으로 호소해 봤지만 알아들을지는 미지수다.

아아, 가고 싶어. 갈래. 무슨 심산인지 엉거주춤하게 기울어진 자세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만 한 놈의 손에 더 세게 내 걸 비벼대니 금방 바지 앞섶이 진해졌다. 한차례 탈력감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그 비타민제 어쩌구 했던 게 원인인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많이 먹은 민선우는 왜 멀쩡해 보이지? 한 번의 사정으로 여유가 생기니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다시 뜨거워지는 몸을 상대적으로 차가운 민선우의 팔에 기대며 고개를 돌렸다.

멀쩡하지 않았다. 민선우의 면바지는 뚫릴 것 같이 부풀어 있었다.

“하아-, 하아-. 싸, 고 싶지 않아, 요?”

“…….”

“손…. 흐읏…. 손 놔줘요…. 나, 나는 또 싸고 싶어….”

매정한 민선우는 내 절박한 부탁에도 손을 놓지 않고 혀를 차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하필 독한 약을….”

독한 약이라니, 뭐가?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드는 호기심에 입을 열려 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만 냈다.

“흣…!”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방향을 바꿔 내 걸 콱 쥐었다 놓았다. 민선우는 바지 지퍼를 내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싸고 싶으면 입으로 물어.”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내 바로 눈앞에서 브리프를 내리는 놈 덕분에 뭘 얘기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순간 드는 거부감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민선우가 뒷목을 잡아채더니 강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의자에서 내동댕이쳐졌다.

“아파….”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려 봐도, 어느새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은 민선우는 내 턱을 들어 올리고는 제 것에 비벼 입술을 뭉갤 뿐이었다.

“말 안 들으면 더 아프게 할 거야. 하지만 말 잘 들으면 기분 좋게 해줄게.”

나는 흥분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어느새 놈의 발은 내 성기를 압박하고 있었다. 기분 좋게…. 안 아프고 기분 좋게…. 멍한 머릿속을 맴도는 말에 난 본능적으로 앞에 있는 걸 덥석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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