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읍-.”
“자세.”
굳이 성적 취향을 정의하자면 선우는 가학 성애자, 흔히 말해 사디스트다. 선우가 유일하게 그의 완벽주의를 남에게 적용하는 순간이랄까, 서브를 그의 입맛에 맞춰 교육 시키는 것을 즐긴다. 하드한 플레이부터 소프한 것까지, 특히 미개발된 서브를 취향에 맞게 길들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선우가 가장 추구하는 이상형을 말하자면 작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이쪽 계열에 완전히 무지한 새끼 고양이이다. 그가 대학 시절 잠깐 노렸던 예령도 그런 스타일이었다. 재미로, 혹은 약간의 진심을 섞어 일반인들 몇을 이 세계로 끌어들여 본 적이 있던 선우에겐 그 아이가 일반인이라는 사실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놓고 유혹하지는 못하고 밝은 쪽의 자신만 드러내야 했던 이유는 친구들과 했던 암묵적 약속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선우는 아직도 가끔 아쉬운 마음에 생각하곤 했다. 그냥 낚아채야 했었다고.
“정확히 15분 지났지만, 감히 자세를 흐트러트렸으니 시간 추가다.”
“우-, 아으아아-.”
“…5분. 나도 시간이 없으니 그쯤에서 봐주도록 하지. 한 번만 더 참을성 없는 모습을 보이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교육 시키는 건 좋지만, 성과가 없는 녀석은 쓸모없거든. 구속구를 입에 물고 있는 예쁘장한 서브가 덜덜 떨며 몸에 힘을 주었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대단한 스펙을 가진 선우는 성향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기에 파트너가 아쉬운 적은 없었다. 언제나 그에게 교육 받고 싶어 하는 귀여운 아이들이 여러 경로로 그에게 접근을 해 왔다. 그는 그중 마음에 드는 아이를 선택하여 만나기만 하면 됐다.
만나는 기간은 그가 내키는 대로 짧기도, 길기도 했고 한 번에 한 명을 만나기도, 여러 명을 관리하기도 했다. 성별 또한 가리지 않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같은 수컷에게 눌릴 때 본능적으로 짓는 수치스러운 표정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남자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긴 했다
“다,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까요?”
“미안해요. 당분간은 파트너를 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플레이 후 안아서 달래주고, 손수 씻겨주고 약까지 발라준 것이 감동이었는지 상대가 반했단 얼굴로 귀엽게 매달려 온다. 플레이 스타일도 잘 맞는 편이었고, 이 바닥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외모를 감안해서 예전 같으면 이쪽에서만 쓰는 연락처 정도는 알려 줬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선우의 관심은 한군데에 쏠려 있었다. 지금쯤 요리를 하며 본인이 작사 작곡한 정체불명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길고양이, 진호에게.
대학 동아리 후배였다던 그는 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던 선우가 기억을 못할 만큼 굉장히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다. 선우는 진호를 얼핏 고등학생이라 생각할 정도로 동안이라는 것을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정말 길고양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그의 스트라이크 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부류였다.
선우가 그런 진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픔을 느꼈을 때의 표정이었다. 고통에 약한지 아프면 금방 눈꼬리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서도 애써 괜찮은 듯 넘기려고 하는 고집스런 모습이 의외로 귀여웠다. 그래서 일부러 상처 부분을 꾹 잡아 그 반응을 살폈었다. 그리고 터지는 신음을 속으로 삼키며 질책하듯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그의 스위치가 켜졌다.
다행히 좀 둔한 편인지 진호는 선우의 말투와 분위기가 바뀌었음에도 그저 아픔에만 신경 쓰는, 귀엽고도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부리는 심술에 격한 반응을 하는 걸 보는 것도 즐겁긴 했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약을 발라 주는데도 쓰라린지 움찔움찔 몸을 떠는 모습에 그는 참지 못하고 반쯤 세울 뻔했었다.
선우는 처음 느끼는 격한 흥분에 감정을 갈무리할 필요를 느끼고 진호를 옆방으로 보냈으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 장본인이 와서 그럴 기분을 완전히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선우는 분명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저질러 버렸을 거다.
“메이드복이라…. 하하, 아쉽네.”
진호를 돌려보내고 난 후 선우는 이 저택에서 저런 장난질을 칠 유일한 녀석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취향의 옷이었다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의향이 있었으나 이번 건 아쉽게도 전혀 아니었다.
그가 아까 봤던 광경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것은 김진호의 표정이었다. 선우는 그 표정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오랜만에 맘껏 웃었다. 아아-, 진짜 볼만한 표정이었는데. 그런 노골적인 뭐 씹은 표정이라니.
그날 이후로도 선우가 생각했던 ‘그 녀석들’의 장난은 끊이지 않았지만, 의도한 것인지 옷은 하나같이 선우의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들이었던지라 착오라고 둘러대며 버리게끔 했다. 그리고 선우는 그럴 때마다 첫날 그를 크게 웃게 만들었던 표정을 보여주면서 순순히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진호가 귀엽고도 신기했다.
“나비는 그 말을 다 믿는 걸까나….”
비슷한 일이 그 정도로 반복되면 의심이라도 가질 법 하건만, 진호는 뭐 씹은 표정으로 따지러 오기만 할 뿐, 벌어지는 일 자체에 대한 의문은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순진해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영리해 보이는 면이 선우로 하여금 그에게 더 흥미를 가지게 하고 있었다.
사실 진호는 객관적으로 볼 때 선우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이상해서 처음엔 최근 풀지 못해서 그러나 싶었던 선우는 한동안 뜸했던 클럽을 방문하는 것부터, 전 파트너들과 만남을 가지기까지 하며 오랜만에 문란한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신기하고 당황스럽게도 꼭 7시쯤이 되면 첫날 메이드복장을 하고 그를 맞이했던 진호의 모습이 떠오르며 모든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흉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울린다고 보기엔 좀 어폐가 있었음에도, 창피해 미치겠다는 그 표정이 그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날은 유난히 부산스러웠지. 내가 그 옷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막으려는 듯이.
그 뒤에도 진호는 선우가 간혹 그 얘길 꺼내면 얼굴을 붉히고 눈에 힘을 주며 그 얘긴 이제 그만하라고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선우는 마냥 귀여워만 보이는 겁주는 표정을 보며 저렇게 하면 내가 무서워서 그만 둘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어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선우는 점점 진호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만큼 교육도 받지 못해 모든 것이 어설프고 모자란 길고양이. 이건 그냥 그의 감이지만, 그가 어느 순간부터 나비라고 부르는 진호는 타인의 애정에도 굶주려 있는 것 같았다.
그 추측은 강압적으로 말하면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반박을 하다가도, 다정하게 어르는 말엔 얼굴을 붉히고 고분고분 듣는 진호를 보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런 타입의 사람에게 관심 가져 본 적이 없었던 선우는 진호의 반응이 생소하면서 재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하나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펫 같았다. 진호는 머리가 나쁜 건 아닌지 한 번 얘기하면 잘 잊는 법이 없었고, 잘 안 되거나 불편해서 짜증나 하는 게 보이는 일도 눈치를 보며 지적대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세 보이는 것에 비해 뻣뻣한 성격도 아닌 것이, 도저히 못하겠는 건 슬그머니 와서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선우는 스스로 다정한 편임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냥 너그러운 성격은 아니었는데, 전 애인들이나 서브를 대할 때와는 달리 그런 진호의 소심한 어리광은 받아 주게 되었다.
‘입을 삐죽 내밀며 손을 내미는 나비가 귀엽다고는 하지만, 펫에게 휘둘리는 주인이라니. 너무 볼품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우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무르게 시작하긴 했지만, 진호는 어차피 어디 갈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선우는 하우스키퍼 고용 계약서를 떠올리며 하루 8시간은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가 보기에 진호는 길고양이처럼 외롭고 애정에 굶주린 삶을 살아온 것 같아서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초반에 다혈질 성격을 눌러놓아야 했는데, 나비는 그 고민도 참 쉽게 해결해 줬다. 적절한 타이밍에 첫 반항을 해온 것이다.
선우가 보기에 진호는 스스로를 굉장히 강한 수컷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나비는 역시 같은 수컷에게 돌봄 받는다는 사실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반항을 해왔다.
자기주장을 펼치면서도 눈치를 보는 진호는 귀여웠지만 선우는 기회를 잡은 이상 그걸 놓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처음부터 다정하게 얘기했으면 진호 역시 별 거부감 없이 그의 말대로 했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일부러 ‘해고’라는 단어와 함께 강압적인 어투를 썼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나비는 욱해선 되도 않는 오기를 부려 왔다.
선우가 표정을 굳히자 진호는 집어먹은 겁을 숨기려는 듯 조금 더 거칠게 끈을 풀어내었다. 그 모습을 위압감을 주며 바라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던 선우는 그의 바로 앞까지 걸어가 섰다. 키 차이를 이용해 위에서 내려다보니 역시 더 긴장이 되는지 진호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다시 하세요.’
선우는 만족스러운 기분을 내리누르며 일부러 더 차가운 말투로 지적했다. 그러자 진호는 처음 들어봤을 냉정한 목소리에 몸을 크게 움찔하더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손을 바들바들 떨며 헛손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선우는 조금 더 강하게 몰아붙이면 못하겠다고 어리광을 부려올까 싶어 진호의 손등을 약하게 때렸다. 그러나 고통에 약한 점을 공략하려던 행동은 오히려 진호의 오기를 더 자극했고, 결국 진호는 손이 발갛게 부을 때까지 고집스럽게 입을 앙 다물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다 곧 물방울들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잘못했어요, 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하는 법을 물어보기만 했어도 원하는 대로 다정하게 대해줬을 텐데. 선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입술을 꼭 깨문 채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진호를 내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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