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예?!”
…뭐지.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녀석의 반응에 사고가 정지했다.
“좀 쓸어주면 나아질 거다.”
최악이다.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재빨리 괜찮다고 말해봤지만 최태혁은 막무가내였다. 온 힘을 다해 버텼으나 내가 놈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결국 타의에 의해 몸을 펴고 똑바로 눕게 됐다. 이 상황을 차마 눈 뜨고 볼 용기가 없어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정적이 이어졌다. 일련의 소동 속에 기가 죽을 만도 하건만, 건강해서 그런 건지, 오랜만이어서 그런 건지 조금도 수그러드는 느낌이 없었다. 씨발. 조용한 걸 보면 발견한 거겠지?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주라, 제발.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 가주라, 좀.
“…섰군.”
나는 사람이 쪽팔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꿎은 입술만 꽉 깨물었다. 이렇게 된 거 이젠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 쟤도 달려있으니까 이런 상황이 아예 이해가 안 가지는 않을 거야.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결연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쿨하게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남의 바지를 슬쩍 들어 올리고 있는 최태혁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힉! 혀… 형?!”
“음?”
최태혁은 거리낌 없이 내 바지를 내렸다. 나는 녀석의 돌발 행동을 저지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건 어버버 소리뿐이었다. 최태혁은 당황한 내 표정은 보지도 않고 기어이 나의 주니어를 공기 중에 노출 시켰다. 바지도 팬티도 벗겨진 내 하체는 볼품없이 떨고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타인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본능적 두려움 때문도 있었다.
그때까지 내 걸 쥐고 보고만 있던 놈의 고개가 움직였다. 나지막이 젖었네, 하는 소리에 패닉에 빠져 입만 벌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놈은 자비로운 웃음을 띠었다.
“내가 빼주지.”
“아… 아니잇…. 괘, 괜찮은…. 흐악!”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건만, 최태혁은 그 말을 듣기는커녕 손에 힘을 주어왔다. 나는 녀석의 손목을 그러쥐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지만 최태혁은 여전히 웃기만 할 뿐 손을 떼지 않았다.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답이라고 생각해.”
무슨 놈의 보답이 됐다고 극구 거절하는 사내새끼 정액 빼주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저렇게 즐겁다는 눈빛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힛… 하으윽…. 자, 잠깐…, 만…. 웃….”
다시 한번 녀석을 말리려던 나는 선단을 문지르는 최태혁의 손가락 때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곧이어 부드럽게 기둥을 쓸어내리는 감각에 발가락이 곱아드는 것을 느끼며 잡고 있던 최태혁의 손목을 꽉 그러쥐었다.
이거 뭐야, 이상해. 나는 조금이라도 자극에서 도망치고 싶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걸 본 최태혁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깨물면 상한다.”
장난치듯 약하게 귓불을 깨물며 속삭이는 낮은 저음. 나는 참지 못하고 매달리듯 최태혁의 앞섶을 말아쥔 채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둥을 쓸어내리던 손이 움직이더니 회음부를 강하게 꾹 눌러왔다. 나는 전기가 통하는 것만 같은 감각에 살짝 허리를 들고 바르작댔다. 자극을 받은 성기는 쿠퍼 액을 뱉어냈고, 덕분에 방안에는 질척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상한 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면 최태혁은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기다란 손가락을 이용해 뿌리 쪽을 지그시 누르며 선단을 문질러 내가 입을 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눈을 치켜뜨고 녀석을 보니 녀석은 씨익 웃으며 내 이마에 슬쩍 입술을 부볐다.
나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냥 빨리 빼버리자는 생각에 눈을 꼭 감고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덮쳐오는 쾌감은 지금까지 스스로의 손으로 빼는 것이 다였던 나에겐 너무 거대했다. 좀 무섭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살짝 눈물이 나왔다. 그러자 최태혁의 혀가 눈가를 쓸었다. 나는 최태혁이 이상할 정도로 다정하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그에게 매달려 사정했다.
“진해.”
여전히 딱 붙어 있는 최태혁이 무언가를 말했으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후우….”
귓가에 삐- 하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다. 멍한 정신으로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는데 커다란 손이 내 턱과 양 볼을 감싸 잡아 위를 보게 만들었다.
“여자는 없나 보지?”
“하아…. 네?”
“아니, 질감을 봐선 여자는커녕 스스로 한 지도 꽤 된 것 같아.”
당연히 여자는 없고, 나는 누군가 있는 집에서 자위를 할 만큼 성욕이 강하지도, 요령이 있지도 않아서 녀석이 온 뒤론 혼자 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오랜만의 모닝 발기는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라면 저 놈과 한 침대에 있을 때 그랬다는 것 정도.
최태혁이 없었으면 주기적으로 알아서 해결했을 테니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고, 일어나더라도 그냥 뭐야, 나 건강하네- 하고 웃으며 넘어갔을 일이었다. 결코 이렇게 수치심을 느끼고, 남 앞에서 신음… 을 흘리면서, 진하니 뭐니 여자가 있네 없네, 하는 소리를 들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아, 현타 와. 아아 짜증 나! 내가 왜 이런 현타를 느끼고 있어야 하냐고!
또 다시 속으로 놈을 열심히 씹어대며 바지와 팬티를 주섬주섬 올렸다. 손에 가득한 내 정액을 보며 이것저것 추리하던 놈도 옆 탁자에 있던 휴지를 뽑아 꼼꼼히 닦았다.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어 힐끔대니 그런 나를 보며 놈이 피식 웃었다.
그래. 웃겨 죽어라….
“나 때문이겠지.”
“…….”
나는 그냥 좀 갔으면 좋겠는 마음에 힐끔대던 것도 멈추고 아예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래도 최태혁은 꿋꿋하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온몸으로 대화하기 싫다고 표현하는데, 너 때문이고 나발이고 가서 손이나 좀 씻었으면 좋겠다.
“흠…. 그래. 내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 이렇게 진해질 때까지 못 하고 있었겠지. 여기서 더 신세를 질 순 없으니, 앞으로는 내가 매일 저녁 도와주겠다.”
“…네? 뭐, 뭐를….”
뭘 해. 뭘 도와주는데. 들리는 내용이 어이가 없어서 결국 고개를 들어 녀석을 올려다보고 말았다. 그러나 최태혁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원래 하루 한 번 정도는 빼주는 것이 좋다. 내일부턴 걱정 말아라.”
내가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무슨 하루에 한 번이야! 아니, 것보다 그런 게 걱정되면 자기가 빨리 나가면 될 것을….
아, 아니구나. 태풍의 눈. 태풍의 눈 작전 중이었잖아, 나. 최태혁이 있는 곳이 그나마 안전해 보이니 최대한 오래 우리 집에 머물게 하자고 마음먹었잖아, 김진호. 새삼 내 처지를 자각하고 울고 싶어졌다.
최태혁은 이미 지 맘대로 결정했는지 내 대답은 아예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놈은 나를 내려다보며 그저 한 번 씨익 웃더니 태연히 화장실로 향했다. 근육이 꿈틀대는 등이 나를 향해 웃는 것 같아 울컥 짜증이 솟았다.
베개 던지면 주먹이 날아오겠지? 참자. 참자. 나는 조금 우울해진 마음으로 침대를 벗어났다.
지이이잉-.
방에서라도 벗어나서 생각을 환기하려고 했는데 침대 저 구석에 던져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무시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친구가 없는 나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무슨 일이 터졌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대로 올라가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에이씨, 채예령이잖아.
“네….”
-여보세요-. 진호야?
“왜.”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있어. 매우 있어. 아주 있어.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꿀꺽 삼켰다.
“…별거 아니야. 그보다 왜 전화했냐?”
나는 닫혀있는 화장실 문을 힐끔대며 거실로 나왔다. 저 방 안에 있으면 무슨 말을 듣든 집중을 못 하고 아까 전 사태만 계속 떠올릴 것 같아서였다. 집중하자 집중. 일단 지금은 채예령 말에 집중하자, 뇌야.
-별건 아니고. 너 혹시 단기 알바 뛸 생각 없어?
다행히 채예령은 내가 매우 흥미 있어 하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친구도 친구지만 집안에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녀석은 이렇게 한 번씩 일자리를 물어다 줄 때가 있었는데, 인맥으로 얻어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보다 시급도 조건도 좋은 경우가 많았다.
“시급 세? 아니, 그것보다 나 요즘 학원 다녀서 시간 맞춰봐야 하는데.”
-시급은 센데 시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6시에 끝난다고 들었던 거 같아.
“시간은 맞네. 근데 갑자기 무슨 알바…. 어, 잠깐.”
나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 대화가 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자식이 알선하는 아르바이트라….
-너 우리 큰아버지 회사에서 잠깐 알바했던 적 있잖아. 거기서 이번에 무슨 일이 있는지 갑자기 일손이 부족한데, 고객이 경력 있는 남자 하우스 키퍼를 요구하나 봐. 혹시 진호 너 다시 한번 해볼 생각 없어?
생각났다. 회귀 전 이 제안을 받았을 때, 난 채예령네 가족이랑 더 이상 엮이기 싫은 마음에 거절했었다. 그리고 그 자릴 메우기 위해 채예령이 팔자에도 없는 알바를 했었다.
-별로 어렵지는 않을 거래. 집 전체는 아니고 한 고객한테 배정돼서 전담으로 일하는 건데, 원래 일하던 사람이 좀 쉰다고 그래서 그동안만 해달라는 거야. 담당하는 사람이 하라는 것만 잘하면 되는 거라 일 자체는 많지 않은가 봐. 중요한 건 보수가 엄청 높아. 시급 5만 원이래. 어때, 완전 높지?
근데 그 집이 알고 보니 동아리 선배였던 재벌 민선우네 집이었다.
굉장히 다정했던 그 선배는 알고 보니 가정적인 분위기에 굶주려 있었고, 그래서 채예령이 가정부 일을 하며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모습에 훅 빠져들었다고 알고 있었다.
-진호야? 진호야!
“아…. 아, 응!”
-별로야? 하긴 보수가 높은 만큼 뭔가 조건이 많은 것 같긴 하더….
“아니! 아니, 해. 해! 할 거야!”
나는 어느새 씻고 나와 나를 지그시 보고 있는 최태혁을 눈치채지 못하고 큰 소리로 수락했다.
그래, 두 번째는 민선우였어. 상황이 좀 어렵긴 하지만 그놈은 기본적으로 다정한 놈이니까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다.
거기다 시급이 5만 원이었다. 아니 시급 5만 원이 웬 말이야. 과거의 나는 이걸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했다고? 미쳤었네, 김진호. 가서 민선우랑도 친해지고 돈도 벌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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