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저씨. 사람이랑 친해졌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갑자기 무슨…. 그건 왜?”
도대체 무슨 고민을 말할 거라 기대한 건지 아저씨는 진지한 내 질문에 잠깐 당황하는 듯하더니 흥미가 팍 식었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자기가 먼저 물어봐 놓고 귀를 후비다니. 매너 똥이네, 이 아저씨.
“아니, 그냥 이 사람이랑 나랑 친하구나. 이걸 언제 뭘 보고 확신하냐고요.”
그래도 일단 꺼내든 칼, 무라도 잘라야겠다는 심정으로 이어서 물어보자 아저씨는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자식 불알은 봤냐?”
“…예?”
이건 도대체 무슨 맥락 없는 질문이래? 나는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하며 조심스레 되물었는데, 아저씨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지 나한테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아저씨가 대신 대답을 해줬다.
“사내새끼들은 목욕탕 가서 서로 불알 깐 사이면 친하다 할 수 있지. 암.”
“미쳤네…. 아저씨, 친구 없죠?”
도대체 그게 무슨 신박하고 어이없는 기준이야.
“이 새끼가 말을 해줘도 지랄이네. 야, 실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내려가 밥이나 먹자.”
이 아저씨들을 믿고 고민을 말해본 내가 멍청이다. 아무리 뭘 모르는 나라도 그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 기준이 진짜라면 가끔 목욕탕 같이 다니는 사이인 아저씨들이랑 나는 절친이고, 씻을 때 매일 보조하면서 보는 최태혁이랑은 못해도 죽마고우라는 소리인데, 그게 말이 되냐고.
“이놈 새끼야. 아직도 그 생각이냐?”
후다닥 밥을 해치우고 캔커피 한잔하면서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대뜸 뒤통수를 때린다 했더니 아까 그 아저씨였다.
“아, 냅둬요, 좀! 저한테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라고요!”
“이 씨, 왜 애를 건드리고 그래. 넌 무슨 일인데 소리까지 질러?”
“어! 조 씨 아저씨! 아니, 고민 있냐 그래서 말했더니 별 이상한 소리만 하면서 잔소리하잖아요, 이 씨 아저씨가.”
뒤통수 맞은 게 영 기분이 나빴던 나는 마침 나타난 조 씨 아저씨에게 하소연하듯이 일러바쳤다. 현장 경력이 가장 많아서 아저씨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우두머리 취급받는 조 씨 아저씨는 이 씨 아저씨한테 한소리 하더니 옆에 앉으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 고민이 뭔데? 나한테 말해 봐봐.”
아, 이 아저씨도 한 오지랖 했었지. 나는 왜 나 혼자 멍 때리는 것도 못 하게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옆에서 낄낄대는 이 씨 아저씨를 한 번 째려봐줬다.
“후…. 아니, 제가 꼭 좀 친해져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동안 잘해줬거든요. 아,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세요. 형이에요, 형. 아무튼, 잘 보이려고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그 형이 워낙 무뚝뚝하고 그래서 친해진 건지, 아님 그냥 제가 사바사바 하니까 받아주는 건지 모르겠어서 미치겠어요.”
“야 인마, 그런 건 사우나-.”
“불알 얘긴 이 씨 아저씨가 이미 했습니다.”
“…그래? 흠흠, 내 얘긴 그게 아니라. 그 뭐냐, 그…. 아! 야 그거다! 남자라며? 요거. 요거 소개 해줘.”
냉정하리만치 단호한 내 반응에 머쓱해하던 아저씨가 별안간 새끼손가락을 세우더니 좌우로 흔들었다.
저게 뭔데. 새끼손가락을 왜 흔들…. 아, 설마 저거 그 뜻이야? 옛날에 질 나쁜 사람들이 자기 애인을 지칭하는 속어로 ‘깔’이라는 단어를 쓰며 저렇게 손짓하고는 했다는데. 와 씨, 저게 언제 적 속어야, 진짜.
조 씨 아저씨는 경악하는 내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요즘 애들은 알지도 못할 손짓을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하고 있었다.
“으, 아저씨! 그거 어디 가서 하면 진짜 기분 나쁜 아저씨란 소리 들어요.”
“거 말하는 것하고는. 좌우간, 남자는 다 똑같은 거 아니겠냐? 알고 있는 여자 있음 소개 해줘. 니가 중간다리 역할 하면서 그 여자애 정보도 알려주고, 술 마시면서 얘기도 좀 하고! 그러다 잘되면 너는 완전 은인으로 굳어지는 거지! 뭐, 안 된다고 해도 최악으로 헤어지지만 않으면 위로해주면서 술 한잔 사고. 그러면 게임 오버 아니겠냐?”
그… 런가? 처음엔 이건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했지만 듣고 보니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기적의 ‘사우나 불알론’보다 훨씬 그럴 듯했다. 역시 집단 지성인가. 나는 자기 여성 편력을 자랑하면서 밥을 먹는 아저씨를 보며 이 작전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소개해줄 사람인데…. 나는 여사친이 없다. 그리고 최태혁은 배경도 배경이고 생긴 것도 장난 아니라서 웬만한 여자는 눈에도 안 찰 것이 뻔했다.
하…. 그럼 이것도 안 되는 거잖아. 친구도 없는 놈이 뭔 소개는 소개야. 친구라고는 채예령 하나…. 아. 채예령! 맞네, 나 채예령 친구지? 예쁘고 뭐고 조건 따질 필요도 없이 최태혁이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내 친구잖아!
확실히 채예령에 관해서라면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정보 제공도 다 해줄 수 있고, 좋아하는 상대니까 그놈도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채예령의 의견은…. 뭐, 내가 억지로 사귀라고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정보만 좀 넘겨준다는 건데 큰 피해야 보겠어? 그리고 회귀 전엔 어쨌든 자진해서 형들이랑 남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었으니까. 만약 싫다면 알아서 상대방 기분 안 상하게 잘 거절하겠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 녀석은 착하긴 해도 은근히 고집 세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뭘 어쩌든 어차피 자기 주관대로 할 걸 알기 때문에 걱정이 되거나 죄책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론은 둘이 내는 거고, 나는 그 과정에서 최태혁한테 내가 ‘도움이 되는 녀석’이라는 이미지만 잘 심어주면 된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일단 최태혁에게 채예령과 엮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머지 네 놈이 왔을 때도 같은 작전을 쓰기로 했다. 다섯 중 누구랑 이어지든 그건 알 바 아니고, 나는 적당히 치고 빠지면 된다. 그 다섯이 나에게 고마워할 정도만 해주면 나중에 적당히 생색도 낼 수 있을 거다.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마워요, 아저씨!”
다들 부린 오지랖에 비해 도움은 정말 딱 한 톨 정도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아저씨!
“…뭐?”
“앞으로 저녁엔 예령이가 와서 도와드릴 거라구요.”
내 대답에 최태혁의 미간은 더 찌푸려졌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좀 황당할 것 같긴 하다. 저번에 채예령이 나서서 도와준다 했을 땐 그렇게 극구 거부했으면서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뀌었나 싶겠지.
“왜?”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너랑 조금도 친해지지 못했는데 걔가 끼어들면 그동안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초조한 마음에 거절했던 건데, 지금은 조금 친해진 것 같은 이 상태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채예령과의 관계 진전을 도와주고 생색내기 위함이지.
“아니, 딱히 이유는 없는데….”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기에 나는 더욱더 살벌해지는 녀석의 표정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싫어.”
미소 전략 실패.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내 퍼펙트 한 계획은 이러했다.
처음부터 ‘너 예령이 좋아하지?’라고 물었다간 미친 듯이 어색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자연스레 두 사람만 있을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알았다는 듯이 쿡 찔러 맞춘 다음 본격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고 했다.
그 첫 번째 단계인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최태혁의 저녁 식사를 채예령에게 맡기려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게 단숨에 거절당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저번에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이 녀석도 채예령이 와서 도와주는 게 그렇게 달가워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때도 쟤 왜 저래, 싶긴 했는데 어영부영 넘어가는 바람에 묻지를 못했다.
그래서 지금 묻는 건데. 아니, 너 이게 그렇게 살벌하게 인상 쓸 정도의 일이야? 왜? 도대체 왜! 네가 좋아하는 애랑 같이 있을 수 있다는데 반응이 왜 이따위야!
“왜… 싫으세요?”
하지만 최태혁은 괘씸하게도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얘랑은 언제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이 물어보면 인상만 찌푸리지 말고 좀, 대답을 해라 대답을!
나는 짜증을 내리누르며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를 그렸다. 너 오늘 반찬 없을 줄 알아. 진짜 유치한 거 아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복수가 이거밖에 없어서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사람이 말이야, 더럽게 무뚝뚝한 너랑 좀 더 친해져 보겠다고 사우나 불알론 같은 별 해괴망측한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방법을 찾아왔는데, 그걸 그냥 싫다는 한마디로 말짱 도루묵을 만들어?
“형 원래 대학 다닐 때 예령이랑 친하셨잖아요. 저보단 편하실 텐데…?”
“…….”
녀석이 고개를 돌린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달래듯 얘기했으나, 녀석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듯 미동도 없었다.
“아니, 이유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요. 제가 취직 준비 때문에 저녁에 공부를 좀 시작해보려고….”
결국 눈을 맞추는 걸 포기한 내가 거절할 것을 대비해 미리 마련해 놓은 핑계를 꺼내 들었다. 녀석은 그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인상은 한껏 찌푸려진 채였다. 그렇게 보면 뭐 어쩔 건데. 핑계긴 하지만 완전 거짓말도 아니거든?
“공부?”
“예? 아…, 네. 언제까지 일용직만 할 순 없으니까….”
죽기 전에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 급급해서 이것저것 할 의욕이나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졸업하고 1년이 지날 동안 취직은커녕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살겠다고 남 수발도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들고 있는데, 이왕이면 저번보단 제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무슨 공부.”
“어, 영… 어…?”
아니, 내가 공부를 하면 하는 거지 그걸 뭘 저렇게 살인자 추궁하듯이 하냐고. 내가 들어도 너무 찐따 같이 나오는 대답에 괜히 헛기침을 해봐도 긴장감은 풀리지 않았다.
“내가 봐주지.”
“네?”
“내가 봐준다고. 네 공부.”
미쳤냐?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순간순간 숨 막힐 것처럼 긴장되는데 무슨 공부를 봐줘.
“아니, 저 학원이랑 독서실 다닐 건데요. 이미 등록도 다 했는데….”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는데 최태혁은 저 혼자 생각에 빠졌다.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냐고…. 이 와중에도 놈의 외모를 보며 로뎅인가 루뎅인가 하는 놈이 만들었다던 생각하는 조각상도 이놈보단 덜 조각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다행히 최태혁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내 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란 뜻인가 보다. 뭐 때문에 싫은 건지는 몰라도 생각해보면 자기한테 절대 나쁠 건 없을 텐데, 냉큼 받아들일 것이지 빼기는. 까탈스러운 놈.
과정은 험난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얘기됐으니까 예령이한테 내일부터 오라고 해야겠다. 채예령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로 커다란 손이 들어왔다. 응? 하는 사이 최태혁은 내 턱을 잡아 올려 눈을 맞췄다.
“독서실은 안 돼. 학원 끝나면 바로 오도록.”
이건 또 뭔 소리야.
“아니, 독서실은 알바라서 안 되…, 지 않죠. 죄송하다고 연락해볼게요. 이해해주시겠죠, 아마. 아하하하….”
또, 또! 내가 진짜 언젠가는 저 미간에 테이프라도 붙여 놓든지 해야지,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진짜.
녀석의 눈빛에 쫄아 버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해버렸다. 그리고 녀석의 미간을 쓱쓱 문질러 펴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다. 물론 녀석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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