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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1화 (1/234)

1화

“김진호!”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왔나 보네.

“진호야! 어딨어! 제발 아무 소리나 내줘, 진호야. 응?”

녀석들은 내 이름을 외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는 게, 퍽 절박해 보였다.

“진호야 제발. 제발 진호야.”

그러나 나는 이미 한계였다. 억지로 잡고 있던 정신이 점점 더 흐릿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있다! 진호야! 이게 무슨…!”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던 나는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렸다. 씨발,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구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 * *

“…아침…?”

나는 분명 죽었다.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살아가던 27살 김진호는 분명 죽었었다. 그것도 진짜 개 같은 상황 속에서.

정리를 해보자면, 나는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다. 키 178, 뱃살은 없지만 근육도 없는 몸, 평범한 외모.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한 덕분에 명문대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점은 엉망이었고, 토익이니 토플이니 하는 스펙도 못 만들었다. 그냥 졸업시험 치고 교수님께 빌고 빌어서 논문 통과해 졸업만 간신히 한 케이스. 그렇다 보니 졸업 후 바로 백수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대학 때부터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거기에 지금은 학자금 대출까지 쌓여서 급여가 높은 알바를 여러 개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집에서 머무는 것에는 별말을 하지 않아 지낼 곳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평생 그렇게 평범한 듯, 모자란 듯 살아갈 줄만 알았다. 아니, 알았다가 아니라 그럴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항상 특별한 일만 겪는 특별한 녀석과 같이 있다가 이상하게 엮이는 바람에 지금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게 된 것 같다.

그놈이 누구냐면, 옆집에 사는 내 불알친구 채예령 님이시다. 이름도 주인공처럼 특별한 게 얼굴은 기생오라비처럼 이쁘게 생겼고, 머리도 오질나게 좋고.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커서 어두운 면도 없고, 착하긴 또 뒤지게 착해서 인기도 많고, 운도 드럽게 좋았다. 나랑은 정반대인 그놈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옆집이었기 때문이다.

뭐…. 결정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긴 하지만…. 아무튼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옆집에 사는 사이였고, 놈이 착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놈이 왜 내 죽음이랑 연관이 있냐.

말했듯 그놈은 인기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사랑을 휩쓸 듯 받은 그 녀석은 예쁘장한 외모 때문인지 남자들한테 더 인기가 좋았는데, 그것은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졸업한 대학에는 최고 엘리트만 모아놨다는 스키 동아리가 있었다. 채예령은 입학하자마자 그 동아리에 홀랑 채였다. 나 또한 그 손에 이끌려 함께 입부했지만 왕자님 대접을 받는 채예령과는 완전히 대우가 달랐다.

그놈을 왕자님 취급하는 엘리트 오인방은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학과가 다르긴 했지만 자주 함께 다녔는데, 예령이한테 듣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친해서 소꿉친구로 자랐다고 했다.

채예령은 그런 선배들의 빽으로 학교를 참 쉽게쉽게 다녔다. 그리고 어딜 가든 나를 잡아끄는 채예령 탓에 어쩌다 보니 나도 그 무리에 끼게 되었다.

그 여섯 명 사이에 이상하게 섞여든 나는 미칠 듯한 소외감을 느꼈지만, 그런 감정에 아파하기엔 내 마음은 이미 강철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어색해지는 것만 어떻게 해보자 마음먹었던 것도, 나의 휴학과 예령이의 입대, 선배들의 졸업으로 생각보다 마주칠 일이 많이 없었기에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졸업을 하고 일어났다. 사실 채예령은 몰랐겠지만, 몇 년간 지켜본 내 눈엔 다섯 명이 채예령에게 가지는 관심은 친한 후배를 향한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예령이가 눈치채거나 누구 한 명이라도 직접 말하는 순간 사달이 나겠구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예령이가 제대 후 여자 친구를 사귄 시점부터 그런 종류의 관심 표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과 그저 친한 선후배 사이로 남을 것만 같았던 내 친구는, 사주에 본인은 원치 않았을 도화살이 껴있었는지 졸업하자마자 오히려 더 깊게 엮이기 시작했다.

그 다섯은 졸업 후 각자의 분야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일반인이 10년 숨만 쉬어가며 일해도 이룰까 말까 한 스펙을 쌓은 대단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리고 연애 분야에서도 노련함이 생겼는지, 예령이를 그렇게까지 구슬리는 게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전보다 훨씬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제는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평소 지내는 모습을 듣거나 본다면 누구나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할 만큼.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일반인의 세계와 달라서 위험 요소가 넘쳐났던 것이다.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수가 미칠 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 마수는 놈들에게 특별한 채예령의 옆에 있던 나에게마저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납치. 27년 살면서 성인 남성이 당할 거라곤 생각도 안 해봤던 건데, 놀랍게도 나와 채예령은 그 다섯 명 집안의 ‘적’ 세력에 납치당했다. 옆에서 채예령이 울며 떨어댔지만, 난 그 다섯이 평소에 놈에게 했던 행동들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러 올 것이라 믿었기에 최대한 침착하려 애를 썼다. 멍청하게도 내가 그들에게 있어 엑스트라나 다름없다는 걸 까먹고 말이다.

뭐, 결과만 말하자면 그들은 왔다. 새까만 창고 문을 열고 빛을 등진 채 기사처럼 등장한 그들은, 구해갔다. 그들의 왕자님을.

진짜 억울한 게, 나는 그날 그놈 어머니가 가지고 가라는 반찬을 받으러 갔다가 휘말린 거였는데 납치한 놈들은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나만 두들겨 팼고, 구하러 왔다는 놈들이 돌려 달라 요구한 것은 채예령뿐이었다.

납치한 놈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너무 맞아서 몸을 못 가누고 있던 나를 툭툭 차며 이 새끼는 안 데려갈 거냐고 물었다. 다섯 명은 그제야 나를 발견한 듯이 아-하더니 나도 이쪽으로 던지라고 했다.

잔뜩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던져져서 아플 법도 했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그런지 뭘 느낄 새도 없이 죽을힘을 다해 벌떡 일어나 그놈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취해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린 순간. 순식간에 녀석들의 얼굴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뒤에서 천둥 치는 듯 큰소리가 났다.

총소리. 내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뒤를 돌아보는데, 나를 넘겨줬던 납치범이 진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총이라니. 장난감은 아니겠지?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내 배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진호야!’ 하는 외침에 움직여지지 않는 몸 대신 고개만 옆으로 돌리니, 누군가에게 안겨 멀어지고 있는 채예령과 그를 엄호하듯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가 보였다. 나는 점점 더 커지는 고통에 못 이겨 주저앉으면서 생각했다. 와, 씨발 진짜 치사한 새끼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엄청나게 익숙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자연스럽게 알람을 끄고 평소와 똑같은 패턴으로 짜증을 내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습관처럼 일어나 양치질을 하다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대다 치약 거품을 모조리 삼킨 다음에야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봤는데, 첫 번째는 ‘그때 기적적으로 살아서 치료를 받았고, 지금 막 깨어났다.’였다. 그러나 아픈 곳도 없고 일어난 곳도 집이었기 때문에 기각되었다.

두 번째는 나를 구한 그들이 친절하게 집에 데려와 치료까지 해준 후 침대에 눕혀놓고 갔다는 건데, 이건 아예 말이 안 되었다.

세 번째는…. 씨발. 이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거 아는데! 진짜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생각이라고 자각도 하는데!

아무리 핸드폰을 껐다 켜봐도 캘린더 어플에 오늘 날짜라고 표시되어 있는 날짜의 연도가 1년이 모자라는 걸 봐선 이게 제일 유력한 거 같았다.

…진짜 회귀라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그대로 다시 누워 자버렸다. 일어나 보니 사방이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잠투정을 심하게 부렸는지 핸드폰이 저 멀리 던져져 있었다. 기어가서 화면을 켜보니 여전히 날짜는 그대로고 시간만 달랐다.

뭘까? 아침에 놀랄 걸 다 놀라서 그런가, 더 이상 놀라워할 마음도 남아있지 않아 그냥 멍하니 있었다.

나 진짜 과거로 돌아왔나? 핸드폰 어플과 인터넷, 텔레비전까지 켜서 확인해 봤지만, 도저히 인정을 할 수 없었다. 가만있어봐.

“생각을 해보자 생각…. 아!”

걔한테 전화해보면 되잖아! 채예령! 아니, 나 진짜 멍청하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통화목록에 들어가 녀석의 이름을 찾았다. 소름 끼치게도 통화목록엔 1년 전쯤에 일을 받곤 했던 인력사무소 실장님의 번호가 찍혀있었다. 무시. 일단 무시하자.

얼마 내리지 않아 발견한 채예령의 이름을 터치하자 바로 신호음이 울렸다. 곧 놈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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