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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원수를 공략합니다-92화 (92/93)

92화

06. 기억이 없으면 사람은 미궁에 빠진다

“으우, 으, 흐, 으응……!”

정신을 제대로 잡고 있기조차 어려웠다. 빠듯하게 들어찬 아래가 퍽 하고 떠밀렸다가 아테올의 몸을 따라서 다시 끌려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속살은 스치기만 해도 온몸으로 열을 퍼뜨렸다. 아랫배가 터질 듯한 감각에 슬쩍 내려다보니 배가 성기의 모양대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겨우 가누며 허공을 더듬다 아테올의 어깨를 간신히 잡았다.

“으응, 조금만, 천천히이……, 으앗……!”

목소리까지 죄 뒤집어지게 만드는 움직임은 전혀 느려질 기미가 없었다. 아테올은 오히려 내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 올려서 삽입이 더욱 깊어지도록 했다. 나는 마구 몸을 비틀며 괴로움인지 무언인지 모를 감각에 벌벌 떨었다. 아래로 피가 몰리는가 싶더니 말간 액체가 성기 끝에서 툭툭 떨어져 배를 적셨다. 융기된 뱃가죽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흐르는 액체가 유달리 야하게 보였다.

“아흑……!”

힘을 잔뜩 실은 허리 짓과 함께 몸이 흔들렸다. 떠밀리지는 않았다. 아테올이 두 팔로 내 몸을 껴안고 있어서. 대신 그만큼 성기가 더 깊은 곳을 찔렀다. 체중이 온통 실린 강한 삽입에 나는 목을 뒤로 젖히며 넋을 놓고 신음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테올은 나를 꽉 안은 채 하반신을 더욱 붙여 문지르듯 움직였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속살을 찌르는 성기에 일순 귀가 멍해질 정도로 짜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아흣, 으, 그, 그마, 아……, 아……!”

내 목소리는 거의 우는 것에 가까웠다.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벌벌 떨리고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치뜬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입술 사이로 침이 흐르는데도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격랑 같은, 또는 전기 충격 같은 감각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할 뿐. 그러나 아테올은 들어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히아, 악, 아, 아테올, 제발, 제발, 나 죽을 것, 같아…….”

“싫습니까?”

“싫어어…….”

“그런 것치곤 무척 조이는데요.”

그의 손이 내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아니 때렸다고도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머리가 또 팽팽 돌았다. 휘청거리는 몸을 아테올이 두 팔로 옭아매듯 꽉 껴안았다. 코피가 터질 것처럼 콧잔등이 찌잉 울리더니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다. 파악, 하고 성기 끝에서 물이 터졌다. 또다시 사정이 찾아온 줄 알았건만 느낌이 달랐다. 맑은 물은 끝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읏, 아아, 앗, 흐윽……! 아, 앗, 아!”

아테올은 날 붙들고 다시 허리를 치대기 시작했다. 허리 아랫부분만 끌어안긴 탓에 상반신은 속절없이 뒤로 넘어갔다. 여전히 나오고 있던 액체가 빠른 움직임에 사방으로 튀었다. 접합부에서는 아테올이 이전에 쏟아놓은 정액 때문에 찔꺽거리면서 거품이 일었다. 나는 이제 신음도 아니게 된 울음소리를 내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발에 쓸리는 까슬한 시트가 이곳이 익숙한 장소가 아님을 다시 알려주는 듯했다. 손에 탄탄한 등이 잡혔다. 움직일 때마다 등 근육이 유연하게 꿈틀거리며 손을 자극했다. 매달리듯 붙잡고 있다가 자꾸만 손이 미끄러져 손톱이 단단하게 다져진 피부를 파고들었다. 조금 상처가 생긴 것도 같지만, 지금은 아테올에게 생긴 상처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몸이 뒤집혔다. 이제 내 입에서 나오는 건 거의 비명이었다. 엎드려서 허리만 높이 올린 채 안쪽 깊이 들어오는 뜨거운 것을 받아내야 했다. 침대가 시끄럽게 삐걱거렸다.

“그, 그만, 그만……, 흐윽, 으, 앗, 아파! 아……!”

빡빡하게 들어찬 아랫배가 뻐근하고, 점막은 하도 쓸려 아릿아릿했다. 성기가 절반쯤 빠져나갈 때마다 안에서 쏟아지는 액체 때문에 허벅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등을 둥그렇게 굽힌 채 후들후들 떨고 있는데 아테올이 내게서 툭 빠져나갔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서 도망치려 앞으로 기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테올의 입술이 내 발꿈치에 닿았고, 발바닥을 핥았고, 발목을 깨물었다. 멈칫한 사이 그는 그대로 내 발목을 잡아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직도 빠끔하게 벌어져 달싹거리는 입구에서 정액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아테올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으응……!”

아픈 곳을 달래주듯이 아테올의 혀가 얕은 점막 곳곳을 부드럽게 핥았다. 하반신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한참 혀와 입술로 아래를 빨던 아테올이 다시 몸을 일으켰고, 미끄러운 귀두가 입구에 눌렸다. 내 등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더는 못 버티겠다. 나는 아테올이 내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순간 내던져지듯 정신을 잃었다.

“……유리 님. 유리? 이런.”

얼핏 그렇게 말하는 아테올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

아테올은 침대 머리맡에 앉은 채, 깊이 잠든 유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언뜻 부스스하게 보이지만 결이 좋고, 항상 좋은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이다. 어두운 곳에선 새카만 색이지만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다갈색이 도는. 몸을 굽혀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닿는 간질간질한 감촉은 무척 익숙했다.

“유리…….”

그가 잠들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이름을 불러보았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자신 때문에 유리가 정신을 잃었는데도,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기절한 몸을 붙든 채 기어이 몸속에 파정까지 했다. 유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감았을 뿐, 깨끗이 씻겨 새 시트 위에 눕히고도 지금까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 그 약……, 먹기 싫어.’

아테올은 이를 악물었다. 혹시나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들어갈까 얼른 거두어 주먹을 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약. 그날.

“……당신은 그런 약을 먹는다고 해서 죽지 않아요.”

작게 속삭였으나 유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깊이 잠들어 있을 뿐이다.

“고작해야 조금 길게 잠드는 정도겠죠. 그러니 그런 걸 무서워할 필요는 하나도 없는데.”

말을 멈춘 아테올은 꽉 쥐었던 주먹을 펼쳐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유리의 뺨을 만졌다. 섬세한 설탕 세공을 만지듯 스스러운 태도였다. 실제로 아테올에게 있어 유리는 그러했다. 아무리 유리가 자신의 걱정 따위는 필요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가만히 유리의 뺨을 따라 내려오던 손끝이 입술에 이르러 멈칫했다. 이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무엇이 흘러들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아테올은 잘 알고 있다. 아테올은 형형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노려보는 것에 가까웠다. 이 손에 들렸던 것.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 지금은 곤란하겠지만, 언젠가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물론 손 하나만으로 행한 일이 아니다. 생각을 한 머리, 말을 내뱉은 혀, 말할 수 있도록 호흡을 모은 폐와 심장, 그 자리에 서 있게 한 두 다리와 발……, 끝이 없다. 차라리 바닥에 촘촘하게 가시를 깔고 그 위로 떨어지는 게 빠를지도.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부족하다.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겁에 질린 얼굴의 유리를 생각하면.

그에게 독을 내밀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서. 아테올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나비 날개 같은 유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다시 꾹 감긴다. 천천히 몸을 굽혀 눈가에 한 번, 입술에 한 번, 공들여 입을 맞췄다.

“유리.”

유리는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그만의 호칭을 부르며.

***

삐걱, 경첩이 뻑뻑한 문이 열리고 대공이 안으로 들어섰다. 공책의 내용을 중얼중얼 읽고 있던 시우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대공 전하.”

집중하고 있었기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대공의 방문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구금 중임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황제는 대공과 시우에게 서로 붙어 있는 방을 주고 그 두 방을 오가는 것만은 자유롭게 하기를 허락했다.

“잠시 얼굴을 보려고 왔다.”

“네…….”

엉거주춤한 시우의 맞은편에 서서 대공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알현에서 마법진 이야기를 할 거야. 기억은 얼마나 돌아왔지?”

“아직은 그때 말씀드린 정도가 전부예요.”

“뭐……. 그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니까.”

잠시 서 있던 대공이 시우에게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우는 가만히 그 손길을 받으며 공책을 품에 꽉 안았다.

“널 믿은 게 잘한 결정이었으면 좋겠군.”

“……걱정하지 마세요.”

차분한 대공의 목소리에 시우가 대꾸하고, 고개를 들었다. 유리와 닮은 시우의 두 눈이 자신감을 가득 담고서 대공을 바라보았다. 시우가 대공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대공 전하는 황제가 되실 거예요. 제가…….”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황궁 한복판에서.”

말을 끊으면서도 대공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시우는 웃음을 지으며 하려던 말을 속으로 이었다. 제가…….

‘그렇게 바꿔 썼으니까요.’

대공이 나가고 난 뒤 시우는 공책을 펼쳤다. 공책에는 낯선 언어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은 모르는 언어. 그러나 유리가 이 공책을 보았다면 공책 제일 앞장에 쓰인 글귀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높은 탑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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