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5. 활자가 움직이는 모습으로
아테올은 인상을 찌푸렸다.
“금서라고?”
“예.”
“황실 도서관으로 간다.”
마차는 즉시 황실 도서관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당연히 도와주기 위해 가는 건 아니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마차 안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아테올이 등장한 순간, 그 소란은 배로 커졌다. 잘 훈련된 기사들이라 해도 황제의 갑작스러운 행차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어디에 있지?”
“아…….”
위병들 사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시우가 손을 슬쩍 들었다. 아테올은 그리로 시선을 옮겼다. 뭘 기대하는지 시우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애초부터 아테올은 시우가 싫었다. 유리는 그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고 하는데, 글쎄. 이목구비와 체격이 닮았긴 하다. 외모로 보아서는 꽤 비슷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다르다. 분위기부터 눈빛, 풍겨오는 느낌에 이르기까지.
그는 예의를 모르고, 어리석고, 행동에 생각이 없었다. 이딴 게 진짜 탑주라면 없는 게 낫겠다 느껴질 정도로. 다만…… 조금 의문이긴 했다. 원래 시우 같은 부류의 인간을 안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혐오감마저 든 적은 없었는데. 지금도 저를 올려다보는 시우의 모습에 불쾌감이 치민다. 저 구명줄이라도 만난 얼굴이라니.
‘대체 뭘 기대하는 거지?’
자신이 도와주러 왔다고 아는 건가?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런 착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아테올은 위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자가 무슨 책을 가져가려 했지?”
“이것입니다.”
위병이 공손히 책을 내밀었다. 책 표지를 본 아테올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시우가 빼내려 한 금서는 탑주의 사생활을 기록한 책이었다. 대단한 기밀이 담겼다기보다는 탑주가 자신의 사생활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이는 게 싫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한 것이었으나, 하필 이것을 시우가 읽으려 했다는 게 신경을 거슬렀다.
“네가 이걸 왜 읽으려고?”
싸늘한 태도에 주눅이 든 시우가 웅얼거렸다.
“타, 탑주님이 허락하셨어요.”
“질문도 못 알아듣는 건가? 왜 읽으려고 했는지 물었는데.”
“그냥, 궁금해서요…….”
아테올은 가만히 시우를 바라보았다. 유리의 말로는 진짜 탑주. 유리는 말했다. 자신이 아닌 시우가 탑의 진짜 주인이며, 대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은 기억을 잃은 상태지만, 그가 대공과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여 자신을 내쫓고 탑으로 돌아올 거라고. ……유리의 그 주장은 허점이 너무 많았다. 아테올도 대공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저어, 폐하…….”
시우가 아테올을 올려다보며 손을 뻗으려 했다. 아테올은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손목을 잡아채 휙 들어 올렸다. 아얏, 하고 작게 신음하며 비틀거리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유리와 닮아 더욱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이건 금서이고, 네가 궁금할 이유가 없다. 그럴 주제도 못 되고. 대공을 믿고 너무 기어오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내팽개치듯 손을 놓자 시우는 새파래진 얼굴로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휘청거렸다.
“금서 밀반출은 중죄다. 구금하도록.”
“예, 폐하.”
“저는 정말, 그냥 궁금해서……!”
상대해 주는 것도 지겹다. 아테올은 손짓해 시우를 끌고 가게 하고는 손에 든 책을 내려다보았다. 유리가 시우에게 황실 도서관 출입을 허락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금서의 열람과 반출까지 허락했을 리는 없다. 시우는 그를 핑계로 몰래 들고 나가려다가 발각된 듯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부감……, 그래, 거부감이란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시우의 모든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싫을까.
아테올은 시우가 끌려 나간 자리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
시우가 황실 도서관에서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열람이 금지된 금서를 몰래 가지고 나가려다가 들켰다나. 혹시나 한다며 내게 그런 일을 허락했는지 묻기에 고개를 저었다. 금서는 나와 아테올을 비롯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열람이 허락되었다. 나도 다 읽은 건 아니기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모르는데, 설마 시우에게 그걸 읽게 할까.
그 일로 시우가 구금된 지 이틀.
대공은 빠르게 황궁을 찾아왔다.
“조카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형식적인 사과였고 아테올은 만족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시우에게는 기억 상실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게다가 시우가 가져가려 한 책은 금서로 분류는 되어 있지만 도서관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접근 가능한 구역에 있었고, 내용도 예전 탑주의 사생활 기록물로 별로 대단치 않았다. 진짜 국가 기밀에 손을 댄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정색하며 시우를 구금해 두거나, 실질적인 처벌을 내리기 애매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대공이 직접 와서 황제 앞에 고개까지 숙이지 않았는가.
“이 이상 황궁에 머물게 하는 것도 면목이 없으니, 이대로 제가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대공이 이렇게까지 조카에게 무를 줄은 몰랐군. 공부는 집안에서 시켰어야지.”
“……송구합니다.”
교육도 안 된 사람을 함부로 내보냈다는 질타였다. 대공은 표정을 숨긴 채 그저 고개만 숙였다. 대공의 성격으로 보아 지금 상당한 굴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황권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으나, 대공령이라는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왕에 가까웠으므로.
그리고 시우를 상당히 아끼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를 무시하는 듯한 아테올의 말이 거슬릴 수도 있겠고.
“감시인 몇을 함께 보낼 것이다. 부족함 없이 대우해 주면 좋겠군. 구금은 대공령에 돌아가서도 따로 명이 있을 때까지 유지하도록. 집에 돌아가는 것은 벌이 아니니.”
“……알겠습니다.”
대공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자리가 정리되는 듯싶었는데, 다음 순간 대공이 시선을 흘끔 들었다. 나를 향해서였다.
“탑주님께도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갑자기 나에게로 돌아온 화살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시우의 호감도를 올려야 하는데 그가 돌아가 버린다니 우선 당황스러웠고, 감시인들이 붙는다고는 해도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니 걱정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시우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속 편하기도 했다.
대공이 말을 이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듯하니, 시우를 충분히 가르쳐 다시 탑주님께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
순간 등골이 얼어붙는 듯했다. 찰나 스쳐 간 대공의 눈빛을 본 건 나뿐인 듯하다. 때가 아니었다, 라. 무슨 때를 말하는 걸까. 대공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테올도 시우가 힘을 되찾기 전에 그를 찾아냈으니 뭔가가 있었겠지. 시우를 충분히 가르치겠다는 말도…….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을 거쳐 그 말은 내게 ‘다음에 올 때는 각오해라’ 정도로 들렸다.
“……시우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데.”
아테올에게 작게 속삭였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신 듯합니다.”
네가 뭘 알아. 떠나기 전에 호감도 더 올려야 한다고. 인상을 찌푸리자 아테올이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그를 만나신다면, 당신이 이번 사건을 용서해 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아.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 나는 얌전히 수긍했다. 대공은 한 번 더 사죄의 말을 올렸고, 그제야 아테올이 손짓하며 물러가라고 말했다.
대공이 나가고 난 뒤 나는 아테올을 보았다. 날 마주 본 아테올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을 뻗었다. 눈가에 손끝이 닿아 내가 움찔거리자, 그는 피식 웃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얼굴인데.”
“불안해 보이십니다.”
“……대공이 이상한 말을 했잖아.”
“때가 아니었다는 말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만. 당장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로요. 뭔가 할 수 있었다면 이미 했겠지요.”
“……뭐…….”
그것도 그렇긴 했다. 때가 되지 않았다, 즉 아직 유예 기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결국 끝까지 저는 시우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칭찬해 달라는 뜻입니다.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는 중이니까요.”
그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더니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왜 돌아가는데?”
솔직히 말해서 아테올이 정말 시우를 죽이지 않은 건 뜻밖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칼레우스도 아직 그대로 두고, 황제와 황후도 유폐만 했을 뿐 다른 짓은 하지 않았다. 의외로 자비로운 성격인 건가? 뭐, 신탁으로 양위를 받은 이상 부모와 형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게 이미지로 보나 뭐로 보나 이득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하지만 시우는 다르다. 그는 시우를 ‘정당하게’ 처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지난번, 마물 앞에 시우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라든가, 시우가 내 방에 몰래 들어왔을 때라든가.
“당신이 싫어할 것 같아서입니다.”
“…….”
“제가 시우를 죽이면 당신이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아서요. 몇 번이나, 그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그러자 아테올은 다소 유감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 진심인 걸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아테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다만, 붉은 눈동자가 묘하게 깊게 느껴진다. 그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입니다. 믿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왜 내 말에 그렇게까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느낌?”
“이 행동을 하면 이 사람은 분명 내게 실망하고 나를 싫어할 것이다.”
아테올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건 제가 원치 않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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