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04. 상상하는 모든 이야기는
“아읏……! 아, 아! 아아아!”
아까 아테올이 손가락으로 실컷 문지른 그 부분은 부어오르고 딱딱해져 있었다. 그곳을 성기가 마구 자극하니 거의 미칠 것 같았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터뜨리며 버둥거렸다. 땀 때문에 두 다리가 자꾸만 어깨에서 미끄러졌고, 나중엔 버티고 있을 힘도 없었다.
아테올은 다리가 툭툭 떨어지자, 내 오금을 끌어안고 몸을 더욱 바짝 붙이며 허리를 쳐댔다. 살 부딪치는 소리, 찰박찰박 물 튀는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나는 발끝을 잔뜩 오므리며 두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짐승이 우는 소리 같은 신음이 스스로 부끄러운데도 참기 어려웠다.
“흐읏, 그, 그만, 그……, 만……!”
몸이 시트를 구기며 위로 떠밀렸다. 내 몸이 밀려 올라가면 아테올은 다시 날 붙들고 자기 쪽으로 끌고 갔다.
눈앞이 온갖 색으로 번쩍거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성이 아테올의 움직임에 따라서 점점 녹아내리듯 흩어졌다. 구멍을 꽉 채우며 내벽을 짓뭉개고 들어오는 성기의 압박감, 아픔이 잊히고 혼절할 듯한 쾌감만이 몸을 지배했다.
“유리 님.”
“으응, 읏, 아, 아아! 아……!”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두 손으로 아테올의 팔을 붙들었다. 매달릴 곳이라고는 거기밖에 없었다. 아테올이 팔을 뻗더니 아예 내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하며 다리를 꽉 눌렀다. 입술이 맞닿았다. 내뱉은 신음이 아테올의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질척한 키스를 나누며 아테올은 내게 몸을 딱 붙인 채 말했다.
“안에 해도 됩니까?”
거친 숨결이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테올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차린 건 배 속으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으읏, 흑……. 아으으…….”
“크윽…….”
정액은 끈적했고 양도 많았다. 사정한 아테올은 몸을 조금 떼고 안에서 빠져나가, 제 손으로 성기를 쥔 채 남아 있던 정액을 좀 전까지 자신이 있던 구멍 위로 쏟아냈다. 성기가 빠져나가자 안에서 질척하게 덩어리진 정액이 뭉텅뭉텅 흘러나왔다.
나는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었다. 온몸에 쾌감의 잔열이 남아서 탄산의 기포처럼 싸하게 터지고 있었다. 배 속은 멍이 든 것처럼 뻐근하면서도 뜨겁게 달아오른 채 간질거렸고 머리는 몽롱했다.
“……유리 님.”
힐끗 아테올을 보자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욕실에 데려다주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는 날 자기 위에 앉히면서 그대로 제 성기를 정액이 고스란히 남은 안에 꽂아 넣었다.
“으읏, 이, 렇게 바로, 못 해……!”
“한참 부족한데요.”
그건 네 사정이고.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테올은 나를 제 위에 앉힌 채 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헝겊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아테올의 손안에서 흔들려야 했다. 불씨가 채 꺼지지 않았던 안은 금방 발화했고, 아테올을 밀어내던 손이 어느새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앉은 채 하는 행위는 누워서 할 때와 달랐다. 아래에서부터 꿰뚫린 채 몸이 무력하게 흔들렸다. 앞으로 무너진 상체가 아테올에게 온전히 기대어진 채였다. 팔로 와락 끌어안은 몸은 땀에 젖어 미끄럽고 뜨거웠다. 내 다리는 그냥 축 늘어지다시피 했고, 아테올이 내 골반을 두 손으로 틀어쥔 채 나를 흔들었다.
커다란 성기가 밑에서 위로 몸을 파고들었다. 안쪽에 잔뜩 든 정액이 성기가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줄줄 흘러내리며 아래를 적시고, 민망한 소리와 함께 거품을 만들어냈다.
이미 한 차례 달큰함을 맛본 내벽의 점막이 움찔거리며 기꺼이 기둥에 달라붙었다. 몸이 들썩일 때마다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이 함께 나풀거렸다.
“하아, 아, 아……! 으응……!”
아테올이 나를 콱 끌어안더니, 이번엔 직접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자기 체중을 실어 찍어 내릴 때보다는 조금 얕았지만 여전히 배 속, 인식도 못 하던 부분까지 이물이 들어와 있었다. 내 몸속에 나조차 알지 못한 곳이 존재했고, 그곳은 지금 아테올의 것을 따라서 모양을 잡으며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중이었다.
그대로 앉은 채 한 번을 더 하고 난 뒤, 아테올은 또다시 내 안에 사정했다. 배가 부른 게 눈으로 보일 것 같아 일부러 아래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테올은 천천히 내 안에서 빠져나오더니 나를 엎드리게 했다.
“뭐야, 또……, 하려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테올이 대답했다.
“정액을 빼드리려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도 나 못지않게 낮아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내벽을 살살 긁었다. 가득 고여 있던 정액이 물처럼 툭툭 쏟아졌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심지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액을 다 빼낸 아테올은 은근하게 내 엉덩이를 쥐더니 위로 올라탔다. 거짓말쟁이라며 바락바락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한 번, 그러곤 씻겨주겠다며 욕실에 데리고 가서 기어이 또 한 번을 더 했다. 욕실에서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을 한 순간 짜각, 하고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상태창 소리인데. 불길함에 상태창을 확인하자 체력 표시가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체력: 0]
모든 체력을 소진했습니다.
“…….”
뭐야, 씨……. 체력 소진됐다고 죽는 건 아니겠지, 설마……. 거기서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는 기절했다.
***
다음 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깨끗한 상태로 깨어났다. 물론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피로감은 어제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었다. 침대 옆에 당연한 듯이 앉아 있는 아테올도.
“깨어나셨습니까? 곧 시종장이 식사를 들일 겁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하며 아테올이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무의식 속의 기억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 심오한 책인지 단순한 심리 에세이인지 모르겠다. 한국이었다면 장정으로 구분할 텐데 여기 책은 대부분 문고본 아니면 가죽 장정이라 중간이 없다.
“계속 여기 있…… 크흠, 었어?”
말을 꺼냈는데 엄청나게 쉰 목소리가 나왔다. 어제 얼마나 소리를 지른 거지. 아테올은 다른 말 없이 물을 따라 내게 건넸다. 물을 마시고 몇 번 목을 가다듬었으나 목소리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런 걸 받았습니다.”
“……?”
눈빛으로 ‘그게 뭔데?’ 하고 물었다. 아테올의 손에 들린 건 서신이었다.
“제가 여기 있어서 여기로 보냈다고 하더군요. 누구에게서 온 건지 아십니까?”
고개만 젓자 아테올은 대단한 비밀을 말한다는 듯이 몸을 굽혀 입가에 손까지 대고 내 귀에 속삭였다.
“칼레우스입니다.”
음……. 속삭일 만도 했군.
“내용은 짧습니다. ‘논의할 게 많으니 궁으로 돌아오시면, 전령을 보내주십시오. 칼레우스 올림.’ 어떻습니까?”
“흠.”
칼레우스는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곧 황제도 불명예스럽게 양위를 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 당연히 아테올이다. 둘째와 셋째 황자가 있긴 해도 그들은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물을 한 컵 더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도둑고양이에서 황제 폐하가 되니까 기분이 어때?”
좀 전보다는 나은 목소리였다. 아테올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웃었다.
“황홀합니다.”
“그래…….”
“몸은 괜찮으십니까?”
나는 몸을 괜찮지 않게 만든 범인을 노려보다가 돌아눕는 척 상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체력이 아직도 4였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다.
tip: 체력이 0이 되면 기절합니다! 조심하세요.
빨리도 알려준다. 그럼 내 체력은 언제까지나 12야? 이거 비정상적인 거 맞지?
tip+tip: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죠…….
허, 소리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이 자식 진짜 은근히, 아니 대놓고 사람 열받게 한다. 홀로그램처럼 떠 있어서 칠 수도 없고.
[이벤트 발생!]
달콤한 하루가 지나고 여전히 단둘만의 시간. 아테올은 뭔가 기대하는 눈치……?
그 창을 보고 나는 경악해서 아테올을 돌아보았다. 어제 그렇게 해놓고 아직도 뭘 기대한다고? 이 자식 양심 있나? 털 북실북실 나 있는 거 아니야? 내 눈빛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아테올은 슥 몸을 일으켜 내게로 기울였다. 아니, 그거 아니야!
입술이 맞닿았다. 키스……, 키스까지는 괜찮았다. 그렇게 힘도 들지 않고. 그러나 아테올의 손이 슬그머니 옷 속으로 들어오려 했다. 매몰찰 정도로 세게 손을 쳐내자 그는 키스하면서도 웃더니 거기서 더 이상 뭘 하려고 하진 않았다.
아니, 키스는 괜찮다고 한 거 취소. 아테올이 나를 놓아줬을 때 체력은 1 깎여 있었고 나는 기진맥진해서 풀썩 드러누웠다. 클로든이 먹을 걸 가지고 온다고 했지. 식사랑 단것으로 체력이 채워지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나저나 정말 아테올이 황제가 되는구나. 너무 쉽게 해결돼서 미심쩍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우의 존재가 있다. 빨리,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도망치지 않으면.
천장을 본 채 눈을 감고 누워서 아테올에게 말했다.
“아테올.”
“네.”
“황제가 됐으니까, 뭐 아직 된 건 아니지만 될 테니까…… 약속 지킬 거지?”
“무슨 약속 말씀이십니까?”
어, 이 자식 설마 은근슬쩍 발뺌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테올을 째려보았다.
“도망치게 해준다고 했잖아. 진짜 유리가 나타나기 전에.”
“네, 그랬죠. 잊지 않았습니다.”
아테올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어 말했다.
“이 제국에 필요한 건 진짜 유리 아이엘레스니까요.”
“…….”
그래, 맞다. 제국이 필요로 하는 건 가장 높은 탑의 주인, 마법사 유리였다. 내가 아니라. 그런데 왜지. 아테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걸 들으니까, 분명 내가 원하는 일이고 최대의 목표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벤트 실패…….]
흐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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