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04. 상상하는 모든 이야기는
“……그건 뭐야?”
“좋은 거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의 분위기와 아테올의 능글거리는 목소리가 어우러져 지극히 음흉한 말로 들렸다. 그가 병의 뚜껑을 열더니 손가락으로 입구 둘레를 한 번 훑어 그대로 내게 내밀었다. 냄새라도 맡아보라는 건가 싶었는데, 그의 손은 내 입술을 눌렀다. 장미 비슷한 향이 희미하게 나는 것과 동시에 입술에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었다. 향유였다.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를 리가 없다. 내가 잠시 멍청했다. 아테올이 손에 향유를 덜었다. 옅은 향기가 주위를 떠돌았다. 한 번 사정하고서 달아오른 몸은 놀랍게도 이다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의 경험이 엄청 좋았던 건가? 근데 왜 기억을 못 하지?
생각이 더 뻗어 나가기 전에 아테올이 다가왔다. 다리가 크게 벌어지고 그 사이에 아테올이 자리를 잡는다.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내 다리가 한 쪽씩 올라갔다. 부끄러운 자세였다. 아테올은 향유 병을 기울여 천천히 내게 떨어뜨렸다. 점성이 있는 투명한 액체가 주룩 흘러 내 성기와 회음부를 타고 흘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지난번처럼 허벅지 사이로 하려나……. 아니겠지. 그러려고 향유까지 준비해 오진 않았을 것이다. 예상대로 아테올의 손은 엉덩이 사이, 좁게 다물린 부분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향유가 주르륵 떨어졌다. 허벅지가 움찔 떨렸다.
아테올의 손끝이 그곳을 천천히 더듬었다. 그러곤 주위의 향유를 그러모아 안을 살짝 벌리며 조금씩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에 대고 정액을 쏟았을 때만큼 벌어지진 않았지만, 그때보다 얕고 잘게, 그리고 더 깊이 들어오려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향유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으, 응……, 읏…….”
겨우 손가락 한 마디인데 벌써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테올은 차분하게 손에 계속 향유를 묻혀가며 조금씩 더 안을 더듬었다. 평소에는 인식해 본 적 없는 구멍 안쪽의 속살이 움찔움찔 떨며 손가락을 밀어내듯, 혹은 감싸듯 조여들었다.
“읏, 아아……!”
향유를 덧바른 아테올이 한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었다. 굵직하고 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은 그것만으로 굉장한 압박감을 안겼다. 이마에 땀이 배어나고 허벅지와 아래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테올이 내 배와 허리를 어루만졌다.
“여기가 작아서 안도 좁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더 좁군요.”
“…….”
“입 안도 좁고, 아래도 좁으시고…….”
별것 아닌 말에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테올은 내 한쪽 다리를 들어 무릎에 키스하더니 느리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살이 휘감긴 손가락이 향유의 윤활을 받아 미끄럽게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배가 땅기는 듯한 느낌, 그리고 점막이 마찰하면서 점점 야릇한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테올은 내 안을 정말 세심하게 만졌다. 내벽 하나하나를 누르고 문지르며 천천히 손가락을 돌리기도 하고 꾹 누르듯 벌리기도 했다.
“하아, 아……, 읏…….”
성기가 일어서서 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걸 만질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만져주는 감각에 집중하면 뭔가 더 달콤한, 강렬한 것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려 해도 어느새 멍하니 벌어져 신음하게 되었다. 쫀쫀한 내벽이 점점 부드럽게 풀어져 가서 손가락 하나를 더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테올은 향유를 더한 손가락을 좁은 틈새로 꾹꾹 밀어 넣었다. 늘어난 압박감에 나는 끙끙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하나에서 두 개가 되었을 뿐인데 두 배 이상으로 빠듯했다. 하지만 그만큼 안을 세게 누르고 문지르는 감각에 쾌감도 커졌다. 아테올은 두 손가락을 번갈아 안으로 삽입하고 빼내면서 점막을 문질렀다. 점점 그 움직임이 빨라지고, 아래는 그만큼 벌어졌다. 아테올은 향유로 질척하게 젖은 구멍 안에서 두 손가락을 위아래로 벌렸다.
“아읏……!”
손가락에 딱 달라붙어 좁아져 있던 구멍 입구에 틈이 생겼다. 아테올이 그곳에 향유 병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미끄럽고 차가운 액체가 주르륵, 안으로 흘러들어 촘촘하게 다물어진 사이사이로 스민다. 내가 진저리 치는 사이 손가락은 세 개로 늘어났다. 손가락이 굵은 뱀처럼 함께 움직이며 안을 치댔다. 꼭 뭔가 찾는 것처럼 깊게 들어와 더듬거리고 있다. 작게 신음하던 나는 어느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퍼드득 떨었다.
“히익……! 아, 아, 바, 방금…….”
“생각보다 깊지 않은 곳에 있군요.”
“뭐가……, 읏, 으응, 하, 하지 마아아……!”
아테올의 손가락이 안쪽 어딘가를 스친 순간 배 속에 불이 이는 듯이 강렬한 감각이 온몸을 뒤덮었다. 쾌감이라는 걸 인지도 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쾌감이었다. 아테올은 그곳을 세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문지르고 짓누르기 시작했다. 뱃가죽이 바르르 떨리더니 이내 온몸으로 경련이 퍼졌다.
“하아, 아, 앗, 아! 그, 그만, 아, 으응……!”
내몰리듯 빠르게 감각이 고조되었다. 온몸에 땀이 배어나고 벌벌 떨렸다. 머리가 아득할 정도로 띵해져서 신음하고, 몸을 비틀어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감각과 신경이 그곳에 몰려버린 느낌이었다. 아테올은 계속해서 그곳을 문질러댔다. 이제 삽입의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쾌감을 더 느끼고 싶은지, 도망치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흑, 읏, 싫어, 싫어, 그만해애, 아, 아윽!”
안이 물결치듯 떨렸다. 배가 잔뜩 빳빳해지더니 허벅지 안쪽에도 힘이 들어갔다. 손과 발은 여전히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배를 누를 듯 휘어져 있던 성기가 정액을 쏟아냈다. 나는 사정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언제부터 눈에 눈물이 맺혔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정하는 동안 뒤가 저절로 좁아져 아테올의 손가락을 꽉 조였다.
아테올이 그때 조금만 더 움직였더라면 아예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는 내가 정액을 다 쏟아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얼마 후 내가 축 늘어지자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빼냈다. 아래는 손가락이 빠져나가도 금방 다물어지지 않았다. 빠끔하게 벌어진 입구가 흐물흐물 풀어져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테올이 내 다리를 들어 자기 어깨에 걸쳤을 때, 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짐작도 금방 했다.
“…….”
멍하니 아테올을 올려다보자 그는 웃었다. 붉은 눈동자가 열기에 젖어 있었다.
“그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뭐, 가 안 돼…….”
“거울이라도 보여드리고 싶군요.”
몰골이 말이 아닐 텐데 이 상황에 거울을 보는 건 사양이다. 고개를 돌리자 아테올은 내 다리를 꽉 잡았다.
“땀 때문에 미끄러질 테니 잘 버티고 계셔야 합니다.”
“몰라, 네가 알아서 해.”
“그럴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아테올이 내 몸을 자신에게 바짝 붙였다. 얼굴이 다시 확 달아올랐다. 미끈미끈한 귀두가 아직 말랑하게 풀어져 있는 구멍에 닿아서였다. 둥글고 딴딴한 귀두는 부드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수월한 건 거기까지였다. 아테올의 것은 손가락 세 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굵었다. 잔뜩 벌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읏, 아파…….”
작게 호소했지만 아테올은 고개를 돌려서 내 발에 입을 맞출 뿐이었다. 향유가 더해졌다. 그는 윤활된 성기를 천천히, 나를 살살 달래가면서 밀어 넣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의 것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신음했다. 귀두 아래 가장 굵은 부분이 입구를 빠듯하게 벌리며 들어오고 나자 그다음은 비교적 수월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흐읏, 으, 아아……, 아파, 숨 막혀…….”
끙끙대다 아테올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금발을 흐트러트린 채 열에 들뜬 눈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섹스할 때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일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그 사실에 묘한 뿌듯함인지 쾌감인지 모를 게 느껴졌다. 눈을 마주친 채 얼마나 있었을까.
“……흐윽……!”
아테올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것을 끝까지 욱여넣었다. 힘으로 때려 박듯 들어온 성기에 배가 꽉 들어찼다. 얇은 뱃가죽 아래로 동그랗게 융기된 성기의 모양이 고스란히 보였다. 눈이 거의 넘어갈 듯했다. 벌벌 떨며 숨조차 쉬지 못하는 내게 아테올이 몸을 굽혀 키스했다. 다리가 툭 떨어졌으나, 키스한 후 그가 다시 들어 올려 어깨에 얹었다.
무서울 만큼 벌어진 입구와 안쪽이 잘게 경련했다. 아래의 힘이 도무지 풀어지지 않는다. 아테올이 입술을 깨물더니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조이지 마십시오. 못 움직이지 않습니까.”
“……으읏……, 그게, 맘대로, 아……!”
못 움직인다고 하더니 거짓말이었다. 아테올은 내 다리를 틀어쥐더니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그대로 세게 쳐댔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퍽, 퍽, 살 부딪치는 소리를 내가며 아테올이 몇 번 더 움직였다. 굵은 성기는 내벽을 고루 마찰하며 짓눌렀다. 머리가 선뜩해질 정도의 쾌감이었다. 그가 나를 조금 더 들어 올리더니 성기를 뺐다가 다시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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