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의 원수를 공략합니다-45화 (45/93)

45화

04. 상상하는 모든 이야기는

조용히 굴러가는 마차 안에서 아테올이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탑주님.”

“뭘.”

“저는 무척 가벼운 놈이라서 이런 식의 초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시간도 늦었고요.”

또 놀리는 말.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대꾸했다.

“그게 뭐?”

“흐음.”

“탑에서 머물고 가. 아침에 마차를 내줄 테니까.”

“……진심이십니까?”

정말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지 오히려 내 말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테올을 탑에 머물도록 하는 건 거의 결혼 발표에 가까웠다. 그건 당연히 아테올에게 도움이 될 거고.

하지만 아테올이 놀란 건 그쪽이 아닌 듯했다.

“설마 손님방을 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나는 흘끗 아테올을 보았다. 그게 무슨 ‘우리 집 비었어. 와도 돼!’ 해서 갔더니 진짜로 집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상황이냐. 웬만한 거 다 한 사이에 집으로 초대해 놓고 손님방에서 자라고 하는 거.

“당연히 손님방이지.”

“실망스럽군요.”

“설마 거기서 내 침실로 오는 길을 못 찾는다면 할 말 없고.”

“…….”

아테올이 입을 다물었다. 말로 아테올을 이기다니 엄청난 쾌거였다. 그는 그대로 탑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 없었다.

클로든은 놀라지도 않고 나와 아테올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손님이었지만 저녁 식사도 술도 모자람 없이 준비되었다. 아테올은 드물게도 예의 바른 소리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황실의 망나니라는 별명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이.

그리고 새벽.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 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데 문고리가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빛이 가늘게 들어왔다. 빛은 서서히 커지더니 한 사람의 그림자에 가려지고 이내 탁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닫힌 문을 등진 채 조용한 발소리가 여유롭게 다가왔고, 이내 침대가 삐걱 기울었다.

“다행히 중간에 길을 잃진 않았습니다.”

말과 동시에 뺨에 입술이 닿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고 홱 돌아누웠다. 침입자가 재미있는 것이라도 본 듯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는 나를 따라오는 대신 튀어나온 목뒤 쪽의 뼈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너무 의미심장한 손길이라 몸이 저절로 움찔했다.

“침대 속에 있었는데 왜 이렇게 몸이 차가우십니까?”

“…….”

실제로 내 몸은 복도를 걸어온 아테올의 손보다 차가웠다. 원래 체질이 이런 걸 어쩌겠는가. 대답하지 않고 몸을 웅크리자, 그의 손은 슬며시 옷깃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나마 옷 안쪽은 아테올의 손과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의 체온이 있었다.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뭐?”

“당신은 진짜 유리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제가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아, 그런 문제가 또 있었군. 나는 눈을 반짝 떴다. 침대 머리맡에 켜둔 미등의 불빛이 어슴푸레했다.

“유리.”

뒤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똑같은 이름을 대는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내 진짜 이름도 유리야. 그러니까 그냥 유리라고 부르면 돼.”

“아하……. 공교로운 우연이군요.”

“글쎄, 이름이 같아서 내가 이 몸을 차지하게 된 건지도 모르지.”

“그것도 설득력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테올이 아예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향수 냄새가 옅게 풍기면서 커다란 몸이 완전히 나를 감쌌다. 아테올의 코끝이 목덜미에 눌렸다.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구석구석 씻었으니 이상한 냄새는 안 나겠지. 그래도 왠지 민망해서 몸을 비틀려 했더니 그는 내 몸을 더욱더 세게, 거의 옥죄다시피 했다.

“놔, 답답해…….”

“명령에 따를까요? 제 생각엔, 당신도…….”

불쑥 아테올의 손이 내 앞으로 왔다. 흠칫 놀라 피하려 했으나 피할 길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옷 위에서 내 것을 가볍게 만졌다. 희미하게 오르고 있는 열기가 스스로도 느껴지고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아테올을 밀어내려 하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고쳐 안고 제 몸에 더 착 달라붙게 했다.

다리와 다리가 겹치다시피 한 순간 내 얼굴은 더 붉어졌다.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아테올의 것은 단단해진 채였다. 대체 뭘 했다고? 고개를 돌리자 아테올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이가 없었다.

“뭘 했다고 이렇게 됐어?”

“오늘 내내 상상했거든요. 당신을 이렇게 안는 것 말입니다.”

“머, 멀쩡한 얼굴로…….”

“망나니가 그렇죠.”

아테올을 후려치려 했으나 내 두 손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 가슴팍에 둘린 그의 굵은 팔을 꽉 쥐었다. 아테올의 손이 꾹 다물린 내 다리 사이로 솜씨 좋게 파고들었다. 얇은 침의 자락이 잡아당겨져 말려 올라가고 손바닥이 맨살을 감쌌다.

그 손이 살을 움켜쥐자 말랑한 허벅지 안쪽 살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아테올은 촉감이라도 즐기는지 한참이나 내 허벅지를 주물렀다. 다른 한 손은 가슴 위에 있었다. 침의 위에서 가슴을 살짝살짝, 놀리듯이 만질 듯 말 듯하면서. 나는 가슴에 올라온 손을 팍 잡았다.

“만지려면 만지고 아니면 마.”

“흠……. 만져달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헛소리도 하지 말고.”

아테올이 은근하게 내 귀에 입술을 붙이곤 바람을 불어 넣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장난은 진짜 싫다. 내가 파르르 떨자 그가 큭큭 웃으며 속삭였다.

“만져달라고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

괴상한 부탁 조였다.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그래, 만져줘.’라고 할 뻔했을 정도로. 하지만 아니다. 나는 웅크리며 손으로 내 가슴을 가렸다. 웃긴 짓인 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테올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러곤 겹친 채 내 손을 움직여 옷깃 사이로 집어넣었다. 긴장과 이불이 걷혀 느낀 추위 때문인지 유두가 조금 곤두서 있었다. 아테올은 내 손으로 내 유두를 건드렸다.

“하지 마!”

“스스로 만지는 걸 더 좋아하시는 걸까 해서.”

“좋아하겠냐고…….”

나를 놀리려던 아테올의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손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나는 얼른 내 손을 잡아 뺐다. 아테올은 무언의 허락이라도 얻은 것처럼 재빨리 가슴을 손으로 덮었다. 커다란 손에 내 마른 가슴은 절반이 넘게 감싸였다. 한쪽 엄지손가락이 유륜을 살살 문지르다가 튀어나온 유두를 쿡 눌렀다.

“읏…….”

참을 틈도 없이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테올은 퍽 즐거워했다. 아래를 만지는 손길도 더 깊게 들어오면서, 동시에 몸이 뒤로 당겨져 완전히 아테올과 밀착한 상태가 되었다. 엉덩이 사이로 단단하고 뜨거운 물체가 느껴졌다. 민망함에 피하려 해보아도 그의 것을 내가 문지르는 꼴밖에 되지 않아 곧 그만두어야 했다.

아테올은 천천히 내 몸의 열을 끌어 올렸다. 손가락이 속옷 끈에 걸리고 매듭이 풀리면서 스륵 벗겨졌다. 속옷에 눌려 있던 것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아테올의 손이 내 것을 감싸 쥐고는 가볍게 흔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느릿하고도 부드럽게 애무했다.

“……읏, 으응…….”

온몸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나른하고 몽롱한 쾌감이 피부 아래를 샅샅이 맴돌며 배에 무거운 덩어리를 고이게 했다. 숨결이 한계까지 가빠졌을 때, 머리가 하얘졌다. 첫 번째 절정은 금방 찾아왔다. 울컥거리며 쏟아진 정액이 아테올의 손과 침대 시트를 더럽혔다.

하, 생각해 보니 시종들이 이 시트를 다 볼 텐데……. 갑작스러운 민망함이 들었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아테올이 젖은 손을 닦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시선이 저절로 그를 따라갔다.

그는 아직 내 방에 오기 위해 걸쳤던 겉옷까지 그대로 입은 채였다. 침대에 무릎으로 앉은 그는 로브와 허리에 감은 천, 얇은 윗옷을 천천히 하나씩 벗었다. 천이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그의 유려하고 단단한 몸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침의 한 장이 남았을 때,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스르르 허리끈을 풀었다.

그의 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등의 불빛을 머금은 그의 육체는 섬세하게 짜인 근육으로 촘촘히 덮여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유연하게 꿈틀거렸다. 침의 소매를 빼내는 팔뚝의 근육이 일자로 길게 파였다. 이어 옷을 전부 벗고 옆에 내려놓는, 팔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라인과 힘줄이 도드라진 단단하고 커다란 손. 말의 것처럼 단단한 허벅지. 라인이 선명한 종아리와 발목. 정말 감상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몸이었다.

헛. 너무 쳐다봤나 싶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침이라도 흘린 건 아니겠지. 그러나 아테올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다 보셨습니까? 저는 아직 덜 봤는데요.”

“뭐? 뭘?”

뭘 보고 있었는데, 하고 돌아보자 그는 까딱 눈짓했다. 시선이 내 몸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심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가슴팍은 죄다 벌어지고, 아래는 다리 선을 따라서 말려 올라가고, 속옷은 없고, 배며 다리 사이는 젖어 있고, 다 벗은 것보다 오히려 못 한 꼴이었다. 순간 이불이라도 뒤집어써야 하나 고민했지만, 차라리 벗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침의를 벗어버렸다. 손이 약간 떨렸다.

그런 날 감상하듯 보고 있던 아테올이 자신이 벗어둔 옷가지 사이에서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4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