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04. 상상하는 모든 이야기는
아테올은 키스하면서 능숙하게 내 몸을 살짝 들어 옷을 벗겨냈다. 바지까지 벗기곤, 자신도 하체에 매고 있던 가운을 풀어 바닥으로 던졌다. 어느덧 둘 다 알몸이었다. 그 사실이 순간 생생해져서 아테올을 밀치며 침대 한쪽으로 굴러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타조가 머리만 숨기는 행위랑 똑같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연히 아테올이 따라왔다. 그는 이불을 들추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조금 어두운 편이 좋으신 거라면, 원하시는 대로.”
어둠이 아니라 도망칠 공간이 필요했던 거라고. 힘껏 버둥거리려 했던 두 다리가 아테올에게 잡혀 벌어졌다. 가장 겉 겹의 얇은 이불이었기에 안에서도 시야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래가 아테올의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그에 흠칫 놀라며 밑을 본 순간 그의 것 또한 적나라하게 보였다.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 크기 뭐냐고…….
저런 걸로 지금 나랑 하겠다는 건가?! 신기하게도 머리가 자연스레 그런 과정을 알고 있었다. 원래 유리의 기억인지, 아니면 내가 기억 못 하는 내 과거 어떤 상대의 기억인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저 크기는, 진짜…….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왜 갑자기 긴장하셨습니까.”
아테올이 내 허벅지 안쪽을 스윽 쓸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소름이 쭉 끼치는 듯했다. 순간 멍해진 머리가 멋대로 입을 열었다.
“네, 네가 너무 커서.”
“하하……. 그런 말씀은 이 상황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보다, 이쪽을 쓰는 게 역시 좋으신 겁니까?”
‘이쪽’이라고 말하며 아테올의 손끝이 다리 사이의 좁게 다물린 부분을 스쳤다. 흠칫 놀라 물러나려 했으나 엉덩이가 약간 꾸물거렸을 뿐, 아테올에게서 벗어나진 못했다.
“너는, 어떤데……. 써본 적 있어?”
주어는 없었으나 아테올은 잘 알아들었다. 어깨를 으쓱한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런데 뭘.”
“저는 항상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는 편이라서요. 아무도 제게 박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지.”
“박…….”
역시 언사가 품위 없다.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진 나를 보며 웃던 아테올이 내 발목을 꽉 쥐더니 발가락을 입에 넣었다.
“읏……!”
발볼을 따라 슥 내려왔던 혀가 발바닥을 누르며 올라와, 발가락 사이사이를 핥았다. 발가락을 입 안에 물어 굴리고 깨물기도 하면서 가지고 노는 동안 시선은 줄곧 나를 향해 있었고, 내 얼굴은 점점 더 달아올랐다. 몸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 거기 그만해. 간지러워.”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야……!”
발에 설마 성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배로 흘러든 간질간질한 느낌은 열로 바뀌어서 온몸에 퍼졌다. 흘끗 내려다본 아래가 점점 힘을 받고 있는 게 보였다.
혀끝은 발을 지나 종아리, 허벅지로 이어졌다. 다리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아테올이 내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반쯤 일어서 있던 성기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축축한 입 안의 점막이 성기를 감싸고 거세게 빨아들였다. 갑작스레 강렬한 자극을 받은 온몸의 신경이 짜릿하게 일어나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거센 전류가 내달렸다.
“흐윽……! 아, 아…….”
그는 한쪽 뺨이 불룩해지도록 성기를 물었다가, 빼내어 기둥을 핥아 올리면서 귀두를 입술로 문질렀다. 배가 묵직했다. 일부러 그렇게 빠는 건지, 이불 속이라서인지 난잡한 물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발로 시트를 연신 밀어내며 몸이 호소하는 대로 신음했다. 내가 절정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정액이 쏟아지기 직전, 아테올은 내 성기를 손으로 쥐며 입을 떼어냈다.
파도처럼 몰아친 절정에 온몸에 땀이 배어났다. 얇은 이불인데도 더위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숨을 몰아쉬는 내 몸을 아테올이 휙 뒤집었다. 그대로 다리가 벌어지고는 엉덩이 골 사이로 질척한 액체가 떨어진다. 내가 내보낸 정액이었다.
“읏, 뭐, 뭐 하려고…….”
아직 거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몸 어딘가가 근질근질한 게 기분이 이상했다. 흘끗 시선만 돌려 아테올을 보자, 그는 내 머리 옆에 손을 짚고는 고개를 숙여 내 관자놀이에 입 맞췄다.
“당연히 처음은 아니시겠지만……. 그래도 저는 천천히 익숙해지게 하는 편을 좋아해서요.”
당연히는 뭐야, 처음일 수도 있지. 근데 뭔가 어렴풋이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언젠가 한 번 술 먹고 했든 뭘 했든 해보긴 한 것 같다. 아테올이 벌렸던 내 다리를 다시 오므리고는 허리를 살짝 들게 했다. 천천히 익숙해지게 한다더니 이대로 하려는 건가. 긴장하며 시트를 쥐는데 성기가 닿은 것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른 위치였다.
“꽉 조이고 계세요.”
아테올은 내 허벅지 양쪽을 밀어 꾹 오므리더니,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다리 사이의 틈새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뜨겁게 발기한 그것은 미끌미끌하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게 단숨에 위에서부터 나를 찍어 누르듯 하며 내리박혔다. 딱딱한 기둥이 엉덩이 사이와 회음부, 고환과 성기 아래쪽까지 마찰했다.
“더 조여요.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으읏…….”
열띤 목소리가 이상하게 내 흥분까지 자극했다. 허벅지에 힘을 주어 조이자, 아테올이 탄식 같은 숨결을 내뱉으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그냥 허벅지 사이였다. 그런데도, 그곳을 마찰할 뿐인데도 낯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테올이 허리를 밀칠 때마다 몸이 위로 밀렸다. 그러면 그는 내 골반을 잡은 채 제 쪽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하, 읏……, 흐윽……, 으응…….”
아테올의 손이 내 턱 아래를 간지럽히다가 자기 쪽을 보도록 돌렸다. 몸은 자꾸만 떠밀리고 다시 끌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불 속이 참을 수 없이 더웠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다. 점점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아득해졌다.
“아으, 응, 응, 흐으……!”
내 것이 침대 시트에 꽉 눌린 채 쓸리고 있었다. 끝에서는 벌써 방울방울 물이 흐른다. 기분 좋았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안에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쪽이, 분명 낯설어야 할 쾌감이 마치 익숙하고 잘 아는 것처럼 내 기대를 자극하며 움찔거렸다.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배가 빳빳하니 굳으며 퍼뜩퍼뜩 몸이 떨리더니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내 낌새를 알아챘는지 아테올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이불이 그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주위가 밝아지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하윽, 아, 아!”
내가 사정한 것과 동시에 아테올은 내 허벅지 사이에서 성기를 꺼내더니, 엉덩이 틈새를 벌리고 구멍에 귀두를 살짝 걸치듯 집어넣었다. 그곳으로 정액이 쏟아졌다.
정액은 좁게 다물린 안쪽 틈새로 약간 흘러들고, 나머지는 뭉글뭉글하게 뭉치며 입구에 고이거나 회음부와 엉덩이의 골을 타고 허벅지며 배로 줄줄 흘렀다. 울컥울컥 정액이 쏘아질 때마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허벅지 사이에 문지른 뒤 입구에 걸쳐놓고 사정했다. 당한 건 그것뿐인데 온몸이 진짜 섹스라도 한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배가 뜨끈하게 떨렸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아직 예민하다. 잔열이 남아 맴도는 몸을 아테올이 위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나는 무방비하게 몸을 늘어뜨리며 가만히 호흡했다. 아테올 역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좋아하시는군요.”
“…….”
꽤 만족한 듯한 목소리였다. 무심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그는 그걸 부정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정이 아니긴 했지만. 특별 호감도를 확인하자 50%로 올라 있다. 대체 호감도랑 특별 호감도 차이가 뭔지. 호감도 생각을 하니 곧바로 시우가 떠올랐다.
“시우는 어쩌고 있어?”
그날 이후로 시우를 만난 적이 없다. 날 안고 있던 아테올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고 난 직후에 침대에서 다른 남자 이야기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 그냥 지금 갑자기 떠올랐어. 다른 생각 하다가.”
“이 상황에 다른 생각을?”
다분히 장난스러웠으나 약간은 진심 같기도 했다.
“네, 네 생각 한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다. 아테올의 호감도를 생각한 거니까 그를 생각한 건 맞지 않는가. 아테올은 이번엔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없이 내게 키스했다.
[특별 호감도]
55%
……정말 알 수가 없다. 아무 말이나 한 건데. 그 후 아테올은 지쳐서 늘어진 나를 씻기고 다시 옷을 입혀서 침대에 눕힌 뒤 자신도 옷을 챙겨 입었다.
“가려고?”
“이 상황에 제가 탑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제가 탑주님의 애첩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애첩…….”
그런 소문까지는 없는 걸로 아는데. 기껏해야 성혼 이야기지. 성혼이랑 애첩은 달라도 한참 다르잖아. 고개를 갸웃하자 아테올이 덧붙였다.
“칼레우스의 속셈이 빤히 보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여지를 더 줄 필요는 없습니다.”
“칼레우스의 속셈이 뭔데?”
안 그래도 오늘 마물을 처리하고 너무 산뜻하게 헤어져서 꿍꿍이가 궁금하던 차였다. 내게 도움을 청하려 한 건 맞겠지만, 아테올을 데려가서 마물 처치가 전부 아테올의 공이 되었으니까. 칼레우스 입장에서는 국립 병원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만 받게 될 거다.
“곧 국립 병원 사건이 제 자작극이었다는 소문이 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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