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04. 상상하는 모든 이야기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만질 거야? 그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아테올의 손은 이미 내 가슴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손을 미끄러뜨려 판판한 가슴을 꽉 쥐었다. 몸이 움찔했다. 고작 한 번 해본 것뿐인데 몸은 이미 익숙해진 것만 같다.
가슴까지 차는 물속에서 아테올은 한동안 찰박거리며 내 가슴과 배를 만지고 더듬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참았지만, 점점 배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신음이 올라왔다.
“으, 응…….”
그 소리를 들은 아테올이 웃더니, 내 관자놀이에 입술을 붙였다 떼며 귀에 장난치듯 훅, 바람을 불어 넣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부르르 떨렸다.
“뭐, 뭐 하는 짓이야!”
“지금부터 더한 짓도 할 텐데 이 정도로.”
“더한…… 앗!”
더한 짓이 뭔데, 라고 외치려던 질문도 무의미해졌다. 아테올은 커다란 손으로 살도 없는 내 가슴을 힘껏 모아 그러쥐었다. 아픔과 동시에 찌릿찌릿하니 이상한 느낌이 머리를 관통했다. 그는 그 손 그대로 배를 더듬으며 내려가 허벅지를 문지르더니, 반쯤 일어선 성기를 물속에서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어깨가 움찔 솟았다 내려갔다. 게다가, 다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아테올의 것도 분명히 부피를 키워가고 있었다.
“너, 너는 왜 커지는…….”
“사실 아까부터 꽤 꼴렸거든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 책에 빙의하고 나서는 한 번도 다른 사람 입에서 들어본 적 없는 저속한 언사였다.
“황자씩이나 되어서……, 그런 말을 써?”
“제가 원래 입버릇 더럽기로는 황궁에서 알아주는 편이지 않습니까.”
자랑이다. 게다가 사실이었다. 황궁에 4황자처럼 예의를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니까. 막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데 반박할 수 없었다. 아니, 근데 아까 언제?
“아까라니, 언제?”
“당신이 그 촉수들한테 불경한 짓을 당할 뻔한 후에 말입니다. 당시엔 당신이 위험하다는 생각만 했지만, 그 후에 당신 모습을 보고 나서 꽤나 당황했습니다.”
“…….”
나는 아까 거울에서 본 내 모습을 떠올렸다. 너절너절하게 몸을 겨우 감싼 젖은 옷이며, 반투명에서 희부연 색에 가까운 체액이며……. 확실히 못 볼 꼴이었다. 그걸 보고 꼴……, 성적인 자극을 느꼈다니 아테올은 미친놈인가?
어쨌든 이 품에서는 좀 벗어나야겠다. 손이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가려 하고 있었고, 다리 사이에 느껴지는 존재감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아테올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어 확 떼어내며 벌떡 일어나 두어 걸음쯤 떨어졌을 때였다. 몸이 뒤로 휘청 기울어지더니 가볍게 끌려갔다. 물속인지라 어떤 저항도 없었다.
시야가 빙글 돌았다. 아테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유히 웃는 그의 얼굴,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금빛 속눈썹 아래 보석 같은 새빨간 눈동자, 오뚝한 코, 잘생긴 입매. 물을 머금어서인지 과할 정도로 색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 얼굴로 웃으며 빤히 나를 보다가 그대로 끌어당겨 키스했다. 처음엔 저항했다. 첨벙, 첨벙, 물소리가 한참 들리다가 잦아들었다. 혀가 입 안을 파고들었다. 입천장을 간지럽히는 혀끝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자, 그는 자연스럽게 내 혀를 얽으며 혀뿌리가 얼얼하도록 한참 가지고 놀더니, 입술을 거의 붙인 채 말했다.
“혀 좀 내밀어 보세요.”
뭐에 홀린 것처럼 혀를 내밀었다. 아테올은 내밀어진 내 혀를 입술 사이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점점 머리가 아찔해졌다. 마지막으로 그가 내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날 놓아줬을 때,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키스하면서 숨을 못 쉬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터질 것 같았다.
혹시 아테올에게도 나를 공략하는 창 같은 게 있는 걸까? 그래서 호감도가 갑자기 올라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가. 이상한 일이었다. 왜 아테올이 나를 만지는 게 이렇게, 좋을까.
아테올은 제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나를 바짝 당겨 안았다. 배에 닿을 것처럼 단단하게 일어서 휘어진 서로의 성기가 멈칫멈칫 닿았다. 나는 난처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테올이 내 팔을 잡아 자기 목에 두르고는 손을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여기서 처음을 해버리는 건 내키지 않으니, 조금만 하죠. 저는 분위기를 꽤 따지는 사람이라서요.”
“조, 조금만이 어떤 건데?”
“이런 겁니다.”
“흐읏……!”
그가 성기 두 개를 한 손에 잡았다. 손이 커다래서 무리 없이 손안에 들어갔다. 그대로 그는 두 기둥을 비비며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후으, 으, 응…….”
“좀 더.”
아테올의 목소리에도 떨림과 숨결이 가득했다.
“소리를 내주세요.”
“읏, 싫어……, 응……, 으읏……!”
엄지손가락이 귀두의 미끈미끈한 부분을 문지르자 쾌감이 한층 커졌다. 나는 두 팔로 아테올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신음했다. 반사적으로 싫다고 말했지만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팔과 손 아래에서 단단하게 짜인 근육이 들썩였다. 땀과 습기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아, 아……, 앗!”
“잠깐, 조금만 참아보십시오. 같이…….”
“싫……, 으읏, 놔아…….”
배 속이 뭉근하게 뜨거워지며 사정감이 치민 순간, 아테올이 내 성기 뿌리를 한 손으로 꽉 쥐었다. 사정 직전에 가로막힌 열기가 갈 길을 잃고 몸속을 마구 떠돌았다. 나는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놔, 놓으란……, 시, 싫어.”
“잠깐이면, 됩니다.”
아테올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그가 내뱉는 숨이 고스란히 내 귀로 들어왔다. 너무 단것을 먹었을 때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온몸을 채웠다. 빨리 내보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참다못해 아테올의 등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그가 내 것을 풀어주고는 성기를 한데 모아 빠르게 오르내렸다. 나와 아테올의 신음 섞인 숨소리가 축축한 공기를 온통 물들였다. 이어 머릿속이 하얘지나 싶더니, 아래가 짜릿짜릿하면서 확 하고 절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아……, 읏, 흐…….”
“후우…….”
그대로 진이 빠졌다. 물이 뜨거운 것도 모르고 한참을 열이 오른 채 헐떡인 탓이었다. 축 늘어진 나를 아테올이 받아 안고는 물에서 나와, 시원함에 가까운 미지근한 물을 발끝부터 조금씩 끼얹었다. 그래도 정신은 들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상태창을 보자 체력이 3이었다. 게이지는 절반이고. 그래서 이렇게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
4황자가 마물을 퇴치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번졌다. 그 자리에 내가 동행했다는 말도 함께였다. 지금까지 탑주가 제위 다툼에 개입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번만큼 적극적이고 갑작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탑과 황실의 진정한 결합이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너무 나간 추측이었다. 진정한 결합……. 즉, 결혼. 아테올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 몸의 안위만 챙기면 곧바로 도망칠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진짜 유리한테 아테올과 결혼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그만큼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아테올의 이미지는 변방의 망나니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황제로 바뀌어 갔다. 아테올이 그간 해온 행적들도 묘하게 포장되기까지 했다. 자신이 황제가 될 걸 알고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 의견에 아테올은 어깨만 으쓱했을 뿐이다.
황제와 황후는 거의 매일 찾아왔다. 와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예 없거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는데 상당히 절박한 모양이었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 때문에 게이지는 자꾸만 오르락내리락해서 여전히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빨리 안정권으로 가고 싶은데.
그런 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황태자?”
“예. 미리 말하고 온 게 아니어서 돌려보내도 괜찮습니다만, 어찌할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빙의 한 달 차(+조금). 민주주의 국가 26년 차로서 아직은 황제, 황후, 황태자 같은 게 무서웠던 때였다. 불쑥 찾아온 거라 해도 드러누워서 ‘가라 그래.’라고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만날게.”
“어디에 준비할까요.”
“클로든이 알아서.”
준비를 마치고 나가자 클로든이 탑 뒤편 정원에 자리를 준비해 둔 후였다. 속으로 몰래 웃었다. 뒤편 정원은 손님 중에서 비교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대접하는 곳이었다. 그늘진 곳이라 여름엔 시원하다는 핑계가 있긴 해도 칼레우스가 기분이 좋진 않을 듯했다. 너는 갑자기 찾아왔고 환영받지 못한다는 티를 클로든이 대신 내준 것이다.
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칼레우스가 나를 보자 일어나 예를 취했다. 내 뒤로는 세르타와 클로든이 대놓고 섰고, 칼레우스의 뒤에는 벨이 자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칼레우스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역시 아테올과 많이 닮았다. 열 살쯤 많은 아테올처럼 생겼는데, 실제로 그보다 열두 살이 많으니 어쩌면 아테올의 미래 모습인지도 몰랐다. 흠, 왠지 아테올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더 먹는 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러고 보니 6년 후에도 거의 변한 게 없었네. 그래도 그때면 30대인데 얼굴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그건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높은 탑의 주인을 뵙습니다.”
칼레우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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