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03. 사실은 무척 간단한데
“……아! 아, 아읏…….”
참으려 해봐도 신음이 자꾸 흘러나왔다. 몸속에서 기포가 톡톡 터지는 것 같았다. 아테올은 손에 강약을 주어 계속 내 성기를 문질렀고, 이내 배가 뻐근해졌다. 허벅지에 힘이 팽팽하게 들어가면서 바르르 떨리더니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사정할 것 같다.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이 풀어져 팔이 자유로워지자 나도 모르게 아테올을 밀어내며 버둥거렸다. 어쩌면 매달려서 더 해달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두 손으로 시트를 움켜쥐었다가 결국에는 아테올의 목을 끌어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긴 신음을 토해 내며 아테올의 손에 사정했다.
“…….”
“꽤 오래 안 하셨던 모양이군요.”
아테올이 손에서 진득하게 흐르는 정액을 내게 보여주었다.
사정을 하고 나니 몽롱하던 정신이 한순간 또렷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도 깨달았다. 잠시 입을 뻐끔거리던 나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아테올이 다시금 내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놔, 놔! 이거 놔!”
손목을 잡았던 손은 쉽게 풀어졌다. 나는 후다닥 옆으로 기어가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직도 사정의 여운으로 성기와 그 주변이 얼얼하고 저릿저릿했다. 배 속도 근지러운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든 건 내 눈앞에서 손에 흰 액체를 묻힌 채 날 보고 있는 아테올이었다. 또, 그렇게 해달라고 한 건 바로 나였고.
미쳤다. 미쳤어. 미친 게 분명했다. 아무리 유리를 마주쳐서 정신이 나갔다지만, 그렇다고 냅다 아테올한테 올라타? 미친 거 아니야? 내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며 아테올을 쳐다보자, 그는 씩 웃더니 자기 손바닥을 핥았다.
“그……! 그걸 왜 핥아!”
“이러면 당신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요.”
“…….”
정말이지 이 인간은……. 다행히 그는 손수건을 꺼내 남은 정액을 닦았다. 퍼뜩 아테올이 앞을 쓰는 게 좋은지 뒤를 쓰는 게 좋은지 물었던 게 떠올랐다. 난 대답 안 했고. 앞, 뒤? 내, 내가 아테올한테, 그렇게 하는 건 어째 좀 별로였다. 내키지 않았다. 그럼 자동으로.
‘……자, 자동으로 그렇게 되네.’
설마 지금 당장 하는 걸까?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이미 수음 한 번으로 나는 한계였다. 몸이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가 엄청 소모되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테올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노려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테니까요.”
“안 노려봤어.”
“그래요? 제법 눈길이 따가운데요.”
노려보긴, 내가 언제. 그나저나 꽤 진한 접촉을 했다. 나는 흘끔 상태창을 보았다가 대놓고 실망하고 말았다. 호감도는 0.1%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였다. 인상이 팍 찡그려지자 아테올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셨습니까?”
“기분 안 좋지 않아.”
“제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요?”
아테올이 갑자기 애교 섞인 어조로 말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전혀 애교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뺨을 꾹 눌러 밀어냈으나, 그는 내 손목을 잡아서 손바닥에 키스하는 것으로 돌려주었다.
“이래 봬도 침대에서 뺨 맞아본 적은 없는데……. 당신의 수많은 경험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을까요?”
“누가 내가 수많은 경험이 있대?”
“뭐, 그 긴 시간 동안 동정을 유지했다는 게 이상하니까요.”
유리의 나이가 몇 살이더라. 얼굴을 보면 원래 나보다 어린 건 확실했다. 내 나이가 몇 살인지는 차마 묻지 못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22대 탑주 계승식이 열렸던 날짜로 추측하면 스물세 살, 그쯤이다. 생일에도 나이를 안 알려줘서 스물셋이 맞는지 애매한 건 사실이어도 그 긴 시간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냐고.
“그렇게 길지도 않았다고……. 동정이라는 건 아니지만.”
“당신께는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지는 시간인 거군요.”
아테올이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 말 진짜 이상하게 하네. 아테올은 스물여섯 살이었다. 저쪽 세계에 있을 때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스물셋(추측)한테는 길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 스물여섯 눈에서 보니까 그게 신기한가?
“어쨌든 이다음은 다시 기회가 오면.”
“기회가 올 것 같아?”
나는 호감도가 안 올라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제가 만들면 됩니다.”
“흥…….”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예 끝까지 가면 오르려나? 어떻게 해야 나머지 2%가 오르는 거지. 100%를 채워야만 아테올은 완전히 나를 좋아하게 되고, 나도 전생처럼만 행동해야 한다는 제약에서 벗어나는 건데. 이거 은근히 귀찮단 말이야. 그 때 상태창이 또 반짝거렸다.
[Tip! 다른 공략캐의 호감도를 올리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공략캐가 있다고?!
금시초문이다. 분명히 공략 대상은 아테올 하나뿐이었는데. 내가 뭘 잘못해서 다른 사람들 공략이 안 뜬 건가? 헉, 그럼 지금까지 한 달이 넘게 손해 본 거야? 아니다.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공략 루트가 안 열렸다. 그럼 지금까지 안 나온 제3의 공략 캐릭터가 있는 걸까. 아테올만 해도 설마 내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존재로 끼어들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뭐, 뭘?”
“가끔 그렇게 허공을 빤히 보시더군요. 유령 본 동물처럼.”
“동물이 유령을 본다는 건 미신 아니야?”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는데요.”
그도 그렇군. 어쨌든 인간도 동물이고 남들 눈에 안 보이는 뭔가를 보고 있으니까 썩 틀린 말도 아닌가. 대답하지 않고 아테올만 흘끔거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사실 다듬을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나였으니까. 나도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며 애써서 옷을 바로 입고 이불을 젖혔다.
“…….”
그런 날 빤히 보던 아테올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겨드랑이로 손을 집어넣어 안아 올렸다.
“뭐 하는 거야?”
“이 모습으로 나가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가 날 내려놓은 곳은 거울처럼 사물이 매끈하게 비치는 벽 앞이었다. 수수깡 인형처럼 들려온 입장에서 썩 기분이 좋진 않았으나, 아테올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나갔다간 곧바로 엄청난 소문에 휩싸였을 것이다. 탑주가 4황자의 방에 들어가더니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뛰쳐나왔다고.
내 꼴은 엉망이었다. 모양을 맞춰야 하는 옷깃은 전부 제멋대로에 허리띠는 엉켰고, 장식이 절반은 떨어진 채였다. 도망간 장식은 물론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은 아테올이 침대로 가서 장식을 하나하나 주워 오더니 내 옷을 바로 입히기 시작했다. 벗길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어느샌가 빠졌던 귀걸이 한 쪽까지 차고 나자 나는 방에 들어올 때와 똑같이 말끔한 차림이 되었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됐어.”
내 거절에도 아테올은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 아테올의 말을 거절하는 것도 안 될 일이긴 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외출했다가, 그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 혼자 돌아가는 게 되니까. 누가 보기라도 했다간 얼마나 이상하냐고.
그 때 불현듯 당연한 의문이 떠올랐다.
“너는?”
“예?”
“넌…… 아무것도 안 했잖아.”
“뭐, 혼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재료도 있고.”
아테올은 끈적거리는 눈으로 나를 스윽 훑더니 자기 입술을 핥았다. 내가 돌아간 다음에 자위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딘가 처량한 듯하면서, 그 재료가 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정작 그의 손안에서 사정했으면서 말이다.
“아니면, 도와주시겠습니까?”
“…….”
그건 또 부끄러웠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날 의자에 앉히고 사라졌다가 얼마 후 돌아왔다. 사라지기 전과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뭘 하고 왔는지 알기에 보는 내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테올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했지만.
“가시지요.”
그가 물방울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손을 내밀었다. 궁 바깥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가 황궁 안 대로를 느리게 굴러가는 동안, 아테올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슬슬 한마디라도 하려고 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탑주님.”
“왜.”
“제 침대 시중이 별로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
입이 딱 벌어졌다. 어떻게 이 인간은 이런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지?!
“나보고 지금 대답하라는 거야?”
“흠……. 서툴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다음번에는 좀 더…….”
“…….”
“정신이 쏙 빠지게 해드리지요.”
“너 진짜 느끼하다니까.”
쏘아붙이자 아테올이 유감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탑에 돌아와서 나는 지난번에 했던 것처럼 공략 대상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이번엔 게이지가 많이 깎이지 않도록 몸을 사리면서. 결과는 그저 그랬다. 탑 안에 내가 공략할 대상은 없거나, 최소한 루트를 찾지 못한 거다.
‘역시 공략 대상은 아직 안 나타난 건가?’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공략 대상을 발견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황궁의 연회에서.
***
“탑주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조용한 편이었다.
“저, 대공 전하가 안부를 부탁드린다고…….”
아테올의 흥미 섞인 시선이 느껴진다. 그의 것뿐 아니라 연회장 내 모든 사람들이 날 보고 있음을 아는데도 나는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저기……, 탑주님…….”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점점 어쩔 줄 몰라 했다. 검은 머리, 갈색 눈. 다소 음울한 기색. 마치 물에 비친 상처럼 나와 닮은 얼굴.
유리.
그가 눈앞에 있었다.
로아네스 대공을 대신해 참석했다는 명분으로.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