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03. 사실은 무척 간단한데
“…….”
이번엔 조금 표정이 굳는다.
“사실,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건 맞아. 하지만 내가 진짜 유리 아이엘레스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 그러니까 네가 진짜 유리를 찾아내서 나를 도와줘.”
“어떻게?”
“그냥…… 유리를 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조용히 풀어줘. 그거면 돼.”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테올이 천천히 턱에 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가늠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미친 건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쳤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계가 미친 거지. 애초에 빙의라는 말도 안 되는 세계로 끌고 온 트럭이 미쳤고, 거기서 회귀까지 시킨 시스템이 미쳤고. 나는 멀쩡하다.
그런데 아테올에게 이 말이 안 통하면 어쩌지. 그냥 내가 미친 줄 알면? 조마조마하며 보고 있는데 그가 나를 덮듯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뭐, 좋습니다. 저는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서요. 그때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제가 죽더라도 부하들한테 부탁해서 당신은 꼭 지켜주겠다고.”
“정말이지?”
“허언하지 않습니다.”
“알겠어…….”
갑자기 이성이 좀 돌아왔다. 대낮부터 무슨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아테올을 덮치려 했다는 걸 상기하자 얼굴이 벌게졌다. 꾸물대며 옆으로 물러나려 하는데, 아테올이 내 양쪽 손목을 꽉 잡았다. 그것만으로 몸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반사적으로 꾸물거리자 손목을 쥔 힘이 강해진다.
“어딜 가십니까?”
“아, 아니, 얘기 끝난 것 같아서.”
“보통 사람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죠.”
아테올이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불길한 미소였다.
“그리고 저는 보통 사람보다 망나니인 편입니다.”
키스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상당히 집요하고 끈질겼다. 아무래도 아테올의 원래 스타일인 듯했다. 키스하면서 그는 능숙하게 허벅지와 무릎을 내 다리 사이에 넣어 벌리고, 양 손목을 올려 한 손으로 붙잡았다. 한 손에 붙들렸을 뿐인데 여전히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자유로운 한 손으로는 아까 내가 직접 풀려 하던 허리끈을 잡아당겨 풀었다.
옷은 여러 겹이고 모양도 복잡했으나 아테올은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매듭 몇 개를 풀어 쉽게 벗겨놓았다. 겉옷이 흘러내리고, 그대로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몸을 몇 번 더듬는가 싶더니 옷깃이 죄다 넓게 벌어져 맨살이 드러났다. 망나니인 편이라더니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황하는 날 보며 웃은 아테올은 내 턱을 깨물더니 한 손으로 순식간에 몇 개나 되는 매듭을 풀어버렸다.
“……!”
눈 깜빡하는 사이에 옷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배까지 드러난 몸을 보고 놀라 옆으로 움츠리자, 아테올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꽉 눌렀다. 몸이 눌리면서 정면으로 아테올을 보게 되었다. 동시에 그의 손가락 끝이 말도 안 되는 부분을 툭 쳤다. 찌릿한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이 정도로 놀랄 거면서 먼저 올라타시는 건 뭡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자기.”
“그럼 하나씩 다 예고하고 해드릴까요? 스치기만 해도 좀 느끼셨던 것 같은데, 그럼 가슴을 좀 빨…….”
“하지 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버럭 소리치자 아테올은 능글맞은 얼굴로 웃었다. 잠시 그 얼굴에 눈을 빼앗긴 사이, 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방금, 방금 뭐라고 말했더라? 가슴을 빠, 빨.
“히익!”
“귀여운 소리를 내시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아테올이 내 젖꼭지 위에서 혀를 굴렸다. 손끝이 잠시 스쳤을 때 이상으로 온몸에 간질간질하니 이상한 느낌이 내달렸다. 발끝을 구부리며 도망치려 이리저리 애썼으나 손목을 잡히고, 다리도 어느새 아테올의 허벅지 사이에 갇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아니, 그야 가슴을 누구한테 빨려보긴……, 처음인가? 완전히 낯선 감각은 아닌 게 옛날에 누구한테 빨려보긴 했던 모양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젓자 아테올은 아예 내 유두를 입에 머금었다. 춥 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등골에 소름이 쭉 돋았다.
훤한 대낮에 침대에서 남자에게 가슴을 빨리고 있다니. 그러나 인지 부조화 같은 걸 느낄 틈도 없을 정도로, 아테올은 능란했다. 진짜로 망나니라는 게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는 혀끝으로 단 사탕이라도 굴리듯 유두를 핥으며 유륜에 쪽쪽 입 맞췄고, 남은 한 손으로는 살도 없는 반대쪽 가슴을 움켜쥔 채 둥글게 굴렸다.
“읏……, 으…….”
더욱 황당한 것은…… 기분이 좋았다. 가슴이 이렇게 기분 좋은 곳인 줄은 몰랐다. 손이 자유로우면 손으로 입을 가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슴이 원래 이런 곳인 건지 아테올이 잘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어째 떨떠름했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연애 정도가 전부여서 이 상황에 당황만 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아테올은 이렇게나 익숙하다는 게.
그는 내 유두를 혀로 핥다가, 입술로 꽉 물었다가, 입술을 깊게 묻어 빨았다. 손의 위치를 바꾸어 배를 쓰다듬거나 다른 쪽 유두를 입에 물고 젖어 있는 유두를 손가락으로 굴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래가 점점 반응하는 게 느껴져서 얼굴은 더욱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오랜만이십니까?”
“뭐, 뭐가…….”
뜬금없는 질문에 되묻자 아테올은 젖꼭지를 살짝 깨물었다. 찌릿, 하고 전류 같은 자극이 피부 아래를 스친다. 이런 행위? 오랜만이냐고? 당연했다. 기억도 안 나는 시절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근데 대체 언제였지. 정말 이런 걸 해봤다는 것만 떠오르고 나머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참으려 했지만 내 입에서 솔직한 말이 흘러나갔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자존심이 좀 상했으나 괜히 허세 부리다 서툰 태도에서 다 티가 나면 그게 더 창피하지 않겠는가. 아테올이 고개를 슥 들더니 자기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영광입니다. 기대되는군요.”
“뭐가? 너 말하는 거 진짜 느끼해.”
“많이 듣습니다.”
느끼한 것보단 능글거리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침대에 들어오자마자 이게 뭐야. 몸서리치며 고개를 돌리자 아테올은 내 허리띠를 마저 풀고 바지로 손을 가져갔다. 복잡한 모양의 바지 매듭도 아테올의 손에 닿자 무슨 작은 리본이라도 된 것처럼 쉽게 풀렸다. 속옷도 마찬가지로 벗겨지고 성기가 드러나고 말았다.
“……으…….”
성기는 반쯤 일어서서 질금질금 물을 흘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가슴만 빨리면서 지금 이 정도로 반응했다고? 아테올이 내 아래를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뭐, 뭐가.”
“이걸 넣는 것과.”
그는 말하며 손으로 성기를 감쌌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성기가 더욱 힘을 받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아테올의 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성기를 적시고 있던 물기를 손에 머금은 채 회음부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에…….”
아테올은 그다음 말을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인 채 속삭였다. 6년 동안 여기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저속한 언사였다. 당황해서 고개를 들자 아테올은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여기서 살면서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당연하게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건 익숙해졌다. 나 역시 만약에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상대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하지만 이만큼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거기로……, 써본 적도 없는 곳으로……. 거기에, 바, 박…….
“말 좀……!”
“예의를 차렸더니 느끼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갑자기 네발로 기지 말라고!”
“그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침대에선 흔히 쓰는 말 아닌가요?”
“난 안 썼어!”
“우아한 정사만 나누셨군요.”
우아고 나발이고 그것까진 기억 안 난다고. 가슴 빨린 게 낯설지 않은 걸 보면 그건 해본 듯도 한데 나머지는 암전이었다. 혹시 술 먹고 필름 끊어진 상태에서 해봤나? 그럼 연애할 시간도 없던 내가 누군가랑 잠자리를 가져봤다는 건 납득이 간다.
“몰라.”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좋으신지.”
“몰라!”
“모르면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흠.”
아테올이 다시 내 귀에 속삭였다. 이번엔 한층 더 저속한 말이었다. 한국에서도 좀처럼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적나라한. 손목을 잡힌 게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후려갈겼을지도 몰랐다.
“네가 무슨 시장통 불량배야?!”
“요즘 애들은 다 이런 말 씁니다.”
“천박해!”
“고상하신 분께는 그렇게 들리겠지만, 이것도 잠자리를 즐겁게 하는 요소 중에 하나라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과연 그럴까? 이를 꽉 무는데 아테올이 다시 내 성기로 손을 가지고 왔다. 성기 기둥이 그의 손에 쥐어진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모자라진 않은 압박이었다. 그대로 손이 오르내렸다. 젖은 성기의 윤활은 충분했다. 아테올이 내 축축하고 미끌미끌한 귀두를 문질렀다.
“아…….”
신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혼자 만질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아테올은 능숙했고, 내가 혼자선 해볼 생각조차 안 했던 수음을 했다. 커다랗고 굳은살이 박인 손이 기둥을 오르내리다, 뿌리 부분에 가서 손을 링 모양으로 해 쥐고 살살 흔들었다. 고환을 만지작거릴 때쯤엔 내 것이 완전히 발기해 뒤로 휘어지고 있었다.
“흣, 읏…….”
갑자기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졌다. 아테올에게 성기를 애무당하며 느껴서 끙끙거리고 있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다행인 건 본능적인 상황 앞에 놓이자 유리에 관한 생각이 흐릿해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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