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14/21)
  • 4.

    고비는 또 금세 찾아왔다. 실기와 면접을 위해 한국에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이렇게까지 오래 그와 연락하지 않은 적이 없어 갈증이 났다. 우영을 만날 생각이 없다고 다짐하면서도, 이상하게 들뜨고 설레는 마음뿐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태성은 그의 집 앞을 찾아갔다. 언젠가처럼 멀찍이 떨어진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언제 올지도 모를 그를 한참을 기다렸다. 그 행위만으로도 묘한 충족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보랏빛 하늘이 내려앉은 초저녁 밤길, 태성이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도 우영은 이수화와 함께였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퍽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웃고 있었다. 헛숨이 터지고 이가 바득 갈렸다. 제 빈자리를 모조리 이수화가 채웠으니, 공허를 견디는 역치가 높아진 듯했다. 정말로 제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씨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질 않았다. 끝내 그는 우영을 만나지 못했다. 일정을 마치는 대로 다시 새벽 비행기를 탔다.

    속으로는 지근지근 생각을 짓씹었다. 이수화만 떠올리면 쉼 없이 분노가 차올랐으나,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은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권우영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지금은 제 빈자리를 잘 느끼지 못한대도, 그를 용서하고 돌아가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 제가 없던 시간 동안 가장 친한 친구의 공석을 크게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평정심을 찾고, 대학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간의 거리를 좁히고 다시, 다시 전처럼 가까워지면 될 일이었다.

    입학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영과 함께 살기 위해 미리 봐 둔 오피스텔도 계약을 완료해 놓았고, 그와 이수화가 붙어 다닐 일도 이제는 없었다. 모든 것이 다시 완벽하게 갖춰질 일만 남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태성은 그 모든 계획이,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남기혁: ㅇ 15:30]

    [남기혁: 야야야ㅑ고태성 15:30]

    [남기혁: 권우영군대간다는데?얘기들었냐? 15:31]

    우영이 아닌 남기혁에게서 전해 들은 메시지로부터.

    태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별안간 거칠게 의자를 밀고 일어나, 성마른 걸음을 내디디며 남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개소리야?”

    연결되기가 무섭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수화기 너머에서는 늘어지는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 우영이 군대?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아……. 너도 몰랐어? 권우영 1학기 안 다니고 바로 군 휴학 할 거라던데.

    비상구 문을 열고 나온 태성이 등 뒤로 문을 탁 닫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뭐?”

    -몰라, 수능 보자마자 바로 지원했었나 봐. 애새끼 나한테도 얘기 안 했어, 존나 나쁜 새끼……. 나만 모른 줄 알고 존나 서운할 뻔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무슨, 말이 돼?”

    답지 않게 혀가 꼬였다. 태성은 초조하게 입가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의 속을 모르는 남기혁은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말은 될걸? 걔 어차피 군대 가긴 가야 하잖아. 우리처럼 국적 다른 것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 놈이 면제 판정받을 리도 없고…….

    하, 헛숨을 뱉은 태성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덜미가 뻐근하게 당겨 왔다. 귓가로 중얼대는 말은 더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씨이발…….”

    끓듯이 욕을 지껄이자, 남기혁이 구시렁거렸다.

    -……야, 뭘 그렇게 무섭게 욕하고 그러냐.

    “…….”

    -너네 진짜 화해 안 해? 솔직히 군대 얘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존나 소름……. 이게 몇 달째야.

    “언제 간다는데.”

    서늘한 계단참에 시린 음색이 울려 퍼졌다.

    -3월에 바로. 아, 근데 존나 힘든 곳 지원했대. 유디틴가? 특수 부대라 체력 검정도 빡세다는데 바로 통과했나 봐. 하여간 권우영 대단해.

    혀 차는 소리에 태성은 짙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언젠가 그를 군대로 보내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이렇게 급작스레 닥칠 일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통상 한 학기는 다니고 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먼 얘기라 생각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맞다, 거긴 처음에 면회도 안 된대. 들어가면 당분간 얼굴 보지도 못하겠더라. 그냥 그 새끼 입대하기 전에 화해하지? 내가 뭐 사랑의 비둘기냐? 양쪽에서 아주 지…….

    구시렁거리는 말을 더 듣지 않고 뚝 끊어 버렸다.

    태성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누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망설임 없이 우영의 번호를 눌렀다. 그간 버텨 온 것이 무색할 만큼 앞뒤 생각지 않은 행동이었다.

    뚜르르, 뚜르르…….

    단조로운 신호음이 이어졌다. 근 몇 달 만에 건 전화였건만 매정하게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체류 중인 저들과는 달리 한국 시각은 새벽 네 시쯤이었다. 당연히 자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툭 떨군 채 손바닥으로 눈가를 짓눌렀다. 전화기를 꽉 붙들고는 욕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하, 씨발. 씨발…….

    태성이 계획한 미래에 우영이 이런 식으로 떠나는 일은 없었다. 우영을 포함해 짜 놓았던 수많은 미래가 한순간에 전부 어그러지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폐가 쿡쿡 쑤셔 왔다. 지금 이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버럭 고함치며 꽉 쥔 주먹으로 벽을 콱 쳤다. 딱딱한 벽이 주먹 밑바닥에서 찬 기운을 뿜었다. 차곡차곡 쌓아 왔던 인내가 단번에 폭발할 듯 끓어오르고 있었다.

    태성은 거친 숨을 내쉬며 손등에 머리를 툭 기댔다. 초조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 곧 상체를 일으켰다. 지금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그대로 건물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인터넷으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한 후 대강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도중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랐을뿐더러, 지금 권우영을 만나야 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중에도 그는 잠들지 못했다. 우영을 만나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하기에도 바빴다.

    창밖으로 넘실대는 흰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

    낮에 집을 나섰는데 도착하니 또다시 낮이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미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걸려 온 전화는커녕 메시지 한 통 없었다.

    무언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급하게 공항 택시를 잡고 우영의 집 주소를 찍었다. 가는 길에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메시지 따위로 말하기도 싫어 그만두었다. 당장 제가 뭘 해야 하는지 감조차 오질 않았다.

    찌푸린 눈으로 차창 밖을 응시했다. 택시가 속도를 낼수록 창밖의 풍경이 휙휙 빠르게 지나갔다. 따라 우영과의 추억들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문득 입술이 따갑다. 저도 모르게 자근자근 씹고 있던 걸 깨닫곤,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택시에서 내린 태성은 우영의 집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옅게 심호흡하고는 인터폰을 눌렀다. 귀를 찢는 듯한 촌스러운 벨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려왔으나 문이 열릴 기미는 없었다. 정말 안에 아무도 없거나, 혹은 제가 온 것을 모른 척하는 걸지도 몰랐다.

    망할.

    낮게 욕을 지껄이곤 야트막한 담장 앞에 섰다. 손바닥으로 짚고 힘을 주어 훌쩍 넘었다. 오래된 주택이다 보니 보안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버석한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 섰다. 집 비밀번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외워 두었던 네 자리를 누르자 문이 철컹 열렸다.

    중문에 늘어진 흰색 커튼을 걷고, 불 꺼진 거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이 시간이라면 할머니는 약방에 나가 계실 터였지만, 연락이 끊긴 우영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익숙하게 우영의 방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벌컥, 문고리를 잡은 그의 눈동자가 찬찬히 안을 훑었다. 예상대로 방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늘 우영에게서 풍기던 옅은 향기가 났다. 어렴풋한 향기에 묘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태성은 뚜벅뚜벅 걸어가 책상 의자에 툭 걸터앉았다. 온몸이 물에 젖은 양 진득하게 늘어졌다.

    딱딱하게 굳은 시선이 잘 정리된 책상 위를 응시했다. 문득 책상 중앙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노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태성은 손끝으로 그것을 찬찬히 넘겨 보았다. 수학 방정식, 영어 단어, 문제 풀이. 흘려 쓴 우영의 흔적들을 쫓던 태성의 눈이 노트 끄트머리에서 멈췄다.

    ‘보고 싶다.’

    정갈하게 적힌 네 글자에, 빠르게 돌던 피가 미지근하게 식었다. 태성은 꾹꾹 눌러쓴 글자 위를 손끝으로 느리게 되짚었다.

    ……누가 그렇게 보고 싶은데? 난……. 난 안 보고 싶어, 권우영?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연락조차 막무가내로 무시 중인 그가 저를 보고파 할 리 없었다. 저도 모르게 매만지던 공책을 꽉 구겨 쥐었다. 신경질적인 손길로 노트를 덮고는 남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통화음이 또 길게 이어졌다. 시각은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지구 반대편의 그 또한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지금은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

    거칠게 끊고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잖아도 바닥을 구르던 기분이 차츰 더 저조해졌다. 권우영과 닿기 위해서 남기혁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좆같게만 느껴졌다. 전이라면 상상도 해 보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위액이 올라와 속까지 쓰려 왔다.

    털썩, 등받이에 등을 기댄 태성이 눈을 감으며 한숨처럼 웃었다.

    아……. 못 해 먹겠네.

    체념은 잠깐이었다. 그는 작정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수화기 너머 잠기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뭐냐……. 이 시간에…….

    “권우영 어디 갔어.”

    태성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단호한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꽉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미친, 어딨긴……. 한국에 있겠지.

    “그러니까, 한국 어디에 있냐고. 오늘 뭐 하는지 몰라?”

    -아……. 우영이.

    남기혁은 잠이 덜 깬 듯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걔……. 거기. 그거. 국……. 뭐…….

    “……똑바로 말해.”

    -국, 토 대장정. 어. 군대 가기 전에 한 바퀴 돈다고…….

    “씨발, 그딴 건 또 왜 가는데!”

    울컥 짜증이 솟구쳐 목소리가 커졌다. 아등바등 날아왔건만 당장 만날 수조차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까지 밀려왔다.

    -아, 씨…….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미친놈아.

    수화기 너머에서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조금 또렷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설마 한국 갔냐?

    “…….”

    -와……. 무슨 홍길동이냐? 어제 여기 있지 않았어?

    “……언제, 어디로 간 건데.”

    묻는 말에 답도 않고 다시 묻자, 귓가로 벌컥벌컥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성의 채근에 그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그저께인가? 무슨 해남 땅끝마을로 간다고 그랬는데……. 네가 연락해 보지 그냥?

    “누구랑?”

    -어, 혼자 갔을걸? 나도 같이 갈까 하다가 엄마가 안 된대서 그냥 있었는데……. 근데 넌 어쩌려고 그냥 갔어. 엄마한테 안 혼나냐?

    “하, 연락을……. 씨발, 됐다. 권우영 어딨는지 물어보고 나한테 연락해.”

    전화를 끊은 태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우영의 방을 노려보듯 주시하다 곧 집을 나왔다.

    대문 앞에 서서 제 이동을 도와주던 기사 아저씨에게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정 세단이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난데없는 호출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기사를 뒤로하고, 태성은 무작정 땅끝마을로 가자는 말을 했다. 내비게이션에는 약 5시간 8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요 시간이 떴다.

    가는 길에는 끊임없이 우영에게 전화했다. 하나 그는 정말 작정이라도 한 건지 절대로 받지 않았다.

    그제야 정말로 현실을 깨닫는다. 권우영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태성은 뻐근한 눈가를 문질렀다. 혹여 제가 참지 못하고 먼저 연락하게 된대도, 당연히 그는 저를 환영해 주리라 생각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관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왜? 뭐 때문에? 질리다 못해 이제 싫어져서? 목소리도, 얼굴도 보기 싫어져서? 정말 나랑 이대로 완전히 끝내 버리려고?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지금 당장 그의 입으로 아니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장난스레 미소 짓는 입꼬리와 따뜻한 눈빛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연락 없이 그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알면서도 무모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길고 길었던 주행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남기혁에게서 연락이 왔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는, 우영이 제 은신처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말만 전해 왔다. 아마 제가 묻고 있던 걸 눈치챈 듯했다. 아니, 여태 이렇게까지 연락을 해 댔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못 챘을 리도 없었다.

    갑갑한 마음에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자정이 다 된 시간, 한적한 시골 마을엔 듬성듬성 오래된 주택들이 보였고 짠 바닷바람과 시골 냄새가 물씬 풍겼다.

    태성은 그곳에 서서 철썩이는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귓가로 파도치는 소리가 철썩철썩 들려왔다.

    찬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흔들고, 적막 속에서 풀벌레가 약하게 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지독하게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하나 할 수만 있다면 전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괴팍한 충동을 느꼈다. 엉망으로 들쑤셔진 자신은 괴롭기만 한데, 현실은 너무도 평온해 괴리감마저 들었다.

    멍청한 새끼.

    태성은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린 바람에 손끝이 싸하게 얼어붙고,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시려 올 때쯤, 저를 부르는 기사의 목소리에 흠칫 시선을 옮겼다. 끝내 그는 우영을 만날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우영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권우영은 돌아올 것이다. 돌아온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불안할 것도, 초조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생애 이토록 안절부절못한 적도 없었다.

    태성은 빈 손바닥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무엇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돌아가는 마음은 참담했다. 비참하고 속이 상했다. 어느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

    불행 중 다행히도, 태성은 남기혁에게 우영이 집에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대강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 정도 후였다.

    돌아오는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태성은 늘 느지막한 시간에 우영의 집을 찾아가 그가 돌아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미친 듯이 아까웠고 턱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지옥 같은 나날들이 지나갔고, 끝내 당일이 찾아왔다.

    태성은 새벽같이 일어나 샤워를 했다. 여느 때보다도 고심해 머리를 만졌고, 가장 단정해 보일 옷을 고른 뒤 우영이 좋아했던 향수를 뿌렸다. 그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각도 못 한 채로, 마치 이별 통보를 받으려 약속 장소에 나가는 남자처럼 굴었다.

    태성은 일찍부터 우영이 걸어올 골목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이 늘 등교하고 하교하던 익숙한 골목길이었다. 찬 기운에 발이 어는지도, 딱딱하게 손이 시린지도, 추위에 뺨이 붉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는 우두커니 우영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었다. 마침내 골목 끝에서부터 기다리던 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견한 찰나 태성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우영아.”

    한참 멀리에 있는데도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그를 불렀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어오던 우영이 인기척에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권우영.”

    태성은 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재차 부르는 목소리에 우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어쩐지 전보다 수척해진 듯, 더욱 날렵해진 얼굴이 냉한 기운을 뿜었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원하던 그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갑갑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태성은 그의 앞에 우뚝 섰다. 박힌 듯 멈춰 섰던 우영이 자연스레 한 걸음 뒷걸음질했다. 칼같이 거리를 두는 모습에 울컥, 뜨거운 감정이 목 뒤로 넘어왔다. 태성은 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탁 붙들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 제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도망가 버릴 것만 같았다.

    “우영아.”

    태성은 손바닥에 감겨 오는 따스한 온기를 꾹 감싸 쥐었다. 찌푸린 눈매 속 절절한 눈빛이 우영에게로 쏟아졌다. 하나 근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임에도 상대의 낯엔 반기는 기색조차 없었다.

    “……어. 왔냐.”

    그는 전과 다름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전에 없이 그늘져 있었다. 종일 붙어 다니다 늦은 밤 헤어진 뒤, 다음 날 새벽같이 만날 때도 오래전 만난 이를 대하듯 반기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발밑이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태성은 찌푸린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말간 달빛 아래 우영이 기다란 눈을 내리깔았다. 시선은 붙들린 손목에 닿아 있었다. 몇 달 만의 만남임에도 태성에게 돌아오는 눈길은 없었다. 깨닫는 순간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바닥만 보지 말고 날 좀 봐.

    달싹거리던 입술이 열리려는 순간, 우영이 먼저 말했다.

    “다음에 얘기하자.”

    “…….”

    “나 피곤해서 그래.”

    지친 듯 낮은 음색이 흘렀다. 태성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시선을 들었다. 살짝 찡그린 채 고개를 숙인 우영에게 피로한 기색이 엿보였다. 축구부 시절 종일 토할 만큼 운동장을 뛰었을 때도, 하루 세 시간 자며 공부할 때도 보인 적 없던 표정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생애 처음 몇 달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 후로 첫 재회였다. 이런 반응은 말이 되질 않았다.

    진짜 힘들어서 그러는 거야?

    열흘 넘게 전국을 돌다 왔으니 피로할 것은 당연했다. 알면서도 괜스레 초조해졌다. 그에게서 느끼지 못하던 이질적인 분위기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득한 기분이 스며들었다.

    “다음에, 언제?”

    “…….”

    “우영아.”

    돌아오지 않는 답에 태성은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다음에. 다음에란 말은 기약 없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이따가, 한 시간 뒤에, 내일, 늘 그렇게 기한을 두고 미루던 약속과는 달랐다. 하루가 될 수도, 한 달이 될 수도, 그보다 훨씬 더 멀어질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는 제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연락할게.”

    우영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쥐고 있던 손목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은 채 틈새로 전부 흘러 나가 버렸다.

    태성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다시 손을 뻗어 우영의 손등 위를 꽉 감싸 쥐었다. 별안간 맞닿은 살갗에 우영의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 작은 떨림에도 놓칠세라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맞잡은 손에서 뜨거운 체온이 번졌다.

    “너…….”

    태성은 신음처럼 목을 울렸다.

    “너, 군대 가?”

    물음과 동시에 미간이 좁아진다.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건만, 나오질 못하고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행동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물음에 우영이 찬찬히 고개를 들었다.

    “……어.”

    “왜……. 왜 갑자기.”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다시 시선을 내린다. 그는 원하는 답을 주지 않고서 침묵만 지켰다. 숨을 들이켠 태성은, 다시금 그의 손등 위를 쥐며 채근하듯 끌어당겼다.

    “언제 가는데.”

    억눌린 물음의 끝이 살짝 떨렸다. 우영은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내리깐 시선은 흙바닥을 응시한 채였다.

    “……다음 주에.”

    “뭐?”

    태성의 눈이 벌어졌다. 틈 없이 묻는 말에 우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음 주에 간다고.”

    피로 섞인 낯빛에 태성의 눈가가 굳었다.

    곧 3월의 시작이었다. 3월은 그토록 고대해 오던 대학교 입학을 시작하는 달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잡아 놓은 일정은 이상하리만큼 빡빡했다.

    “……왜 그렇게 빨리 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왜…….”

    도망가는 사람처럼 굴어.

    저도 모르게 욕을 짓씹었다. 이럴 때가 아닌 걸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가지 말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그동안 뭘 하고 살고 있던 거냐고 물어야 했다. 울컥울컥 넘어오는 구질구질한 질문들이 자꾸 제멋대로 튀어 나갔다.

    “내 연락은 왜 그렇게, 다 씹었는데.”

    “…….”

    “응? 우영아. 왜 그랬어?”

    다시금 그의 손을 잡아당기는 태성의 눈이 흔들렸다.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던 우영이 잡힌 손을 홱 빼냈다. 짧은 정적이 지나간 후였다.

    “뭘 왜 그래.”

    삽시간에 그가 냉랭한 눈빛을 했다. 태성은 눈가를 찌푸렸다. 어딘가 달라진 그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너 안 그랬잖아, 갑자기 왜…….”

    “뭘 안 그랬는데. 뭐가 갑자기인데.”

    우영은 말꼬리를 잡아 물며 삐뚜름한 얼굴을 했다. 그의 눈동자에 짙은 반항의 빛이 어렸고, 곧 하아, 느린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따라 칠흑 같은 정적이 흘렀다.

    “야.”

    우영이 차갑게 내뱉었다. 고태성, 태성, 태성아. 늘 들어 왔던 것이 아닌 낯선 호칭이 귓가에 박혀 들었다.

    “먼저 무시한 건 너잖아.”

    그제야 우영은 시선을 똑바로 맞춰 왔다. 건들면 부러질 듯, 딱딱한 얼굴을 하고서 저를 보고 있었다.

    “네가 이름도 부르지 말라며. 말도 섞기 싫다며. 하다못해 수능 날까지 내 연락 씹은 건 너 아니었냐?”

    “……그건.”

    “아. 네가 무시하는 건 되고, 내가 하는 건 안 돼? 왜. 씨발, 나는 그냥 좆밥이라서?”

    무표정할 때 더 냉랭해지는 눈매가 차갑게 식었다.

    “넌 하자는 대로 다 하니까 내가 만만하지? 너야말로 나 무시하는 게 재밌었냐? 즐거워? 그래? 네 좆대로 하니까 좋아 죽겠어?”

    그는 조금 전까지 푹 가라앉아 있던 사람답지 않게 폭발하듯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억누르듯 떨리는 숨을 길게 뱉은 우영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거친 언행에 태성이 입매가 꿈틀 움직였다. 시선은 우영에게서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은 채였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닌데. 이딴 식으로 나올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그랬어야지. 나라고, 나라고 자존심 없어서 먼저 빌빌 기었는지 아냐?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씨발, 여기까지 찾아와서 또 네 멋대로 구는 건데!”

    막혔던 댐이 터져 나오듯 쏟아지는 분통에 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다.

    입술을 꽉 다문 우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쓸어 올리던 머리를 꽉 쥐며 먼 곳을 노려보았다. 그의 언행은 참고 있지 않았음에도 참는 듯이 보였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다시금 긴 숨을 내쉰 우영이 낮은 신음을 냈다.

    “너는……. 넌, 사람을 존나 힘들게 해.”

    마치 아픈 사람처럼,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네가, 끝까지 네 생각밖에 안 하는 이기적인 새끼라서.”

    “…….”

    “그래서 내가 힘든가 봐.”

    욱신, 날카로이 벼린 말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싸하게 굳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빈틈없이 마주쳤고, 다 식어 버린 낯선 얼굴에 눈조차 깜박할 수 없었다.

    우영은 그를 툭 밀며 거칠게 스쳐 지나갔다. 자꾸만 호흡이 가빠 와 일부러 느린 숨을 들이쉬었다.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제 생각만 한 적도, 이기적으로 군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걸 견뎌 온 건 고태성 자신이었다. 그가 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능은 이성보다 빨랐다. 조급히 뒤를 쫓은 태성이 우영의 어깨를 덜컥 붙들었다. 하나 붙들기가 무섭게, 팽개치는 손길에 의해 거칠게 튕겨 나갔다.

    “잡지 마.”

    “…….”

    “이제 너한테 휘둘리기 싫으니까.”

    싸늘하게 노려본 그가 다시 등을 돌렸다. 가슴이 덜그럭 소리를 냈다. 경직된 태성은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번도 권우영을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다. 다시 바로 잡아야 했다. 그를 눈앞에 두고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우영아.”

    태성은 멀어지는 그를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데도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이대로 영영 그를 놓쳐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얘기 좀 해.”

    쫓아가던 태성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망연하게 우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지 마, 우영아.”

    혼란에 휩싸인 채 고개를 툭 떨구었다. 찰나에 그는 절망을 느꼈다. 두손 두발을 전부 묶이고서 목이라도 졸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푹 젖은 목소리에 우영이 걸음을 멈춰 섰다. 찬찬히 고개를 돌리자, 망연히 멈춰 선 태성의 모습이 보였다.

    사방이 적막으로 둘러싸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우영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이내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뭐가 미안한데.”

    “…….”

    “네가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 오는 말에 태성이 눈가를 찌푸렸다.

    뭐가 미안하냐고?

    너를 가장 소중한 친구라 여긴 것. 도를 넘는 소유의 욕망과 집착을 느낀 것. 질린다는 말에 혼자 상처받은 것. 멀어지기 싫어 더 멀리 도망친 것. 이미 가까웠음에도 더 가까워지길 바란 것.

    어느 것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뱉는 순간 그에게는 기만이 될 말들이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우영이 하, 헛웃음을 흘렸다.

    “간다.”

    다음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거칠 것 없는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한참을 돌아와 만난 이인데,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이인데, 또다시 저를 떠나가고 있었다.

    멀어지기 싫은데.

    멀어지기 싫다.

    우두커니 선 태성은 그를 잡지도 못한 채 막연하게 서 있었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태성은 고개를 툭 떨궜다. 손바닥으로 건조한 눈을 꾹 누르며 뜨거운 숨을 느리게 뱉었다.

    실수다. 모든 게 실수였다. 이 관계는 완전히 잘못되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되돌리고 싶었다. 꼬여 버린 매듭을 풀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나 풀어내려 할수록 속절없이 엉켜들고만 있었다. 그는 이제 망설임 없이 저를 싹둑 잘라내려 했다.

    이를 드러내고 적의를 보일 것이 아니라, 병든 닭처럼 앓는 모습을 보여 줬어야 했다. 권우영이 목숨 거는 그 새끼처럼 차라리 나약한 척 내숭이라도 떨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이런 식으로 저를 내팽개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성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네모난 창에 환한 불이 깜박거렸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다시 소등되었다.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맹렬한 화재의 시초가 안일한 습관에서 피어오른 것처럼, 이 또한 필연적 인과에서 온 일이었다. 다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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