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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120화 (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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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1

한겨울이었는데도 창문을 모두 열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는데도 채원우에게 바람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연신 나와서 창을 닫아뒀다면 창문에 김이 서리지 않았을까 할 정도였다.

채원우는 뒤척이는 와중에 옷을 훌훌 벗었다. 알몸이 된 채로 벽에 들러붙어 조금의 냉기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애쓰다가 겨우 잠들었을 때, 꿈속의 풍경은 가본 적도 없고 갈 수도 없을 하와이였다.

하와이인 걸 안 이유는 주변의 풍경이 휴게실 TV에서 봤던 예능의 한 장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와이 특집이라며 패널들이 방문했던 바다 그대로.

“또 바다네.”

채원우는 능력이 물인 만큼 물이 많은 곳에 가면 편안함을 느꼈다. 원하는 대로 무기로 쓸 수 있는 재료가 압도적으로 많은 바닷가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어앉은 채원우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이라 그런지, 인기 최고의 관광지인 하와이 해변가가 텅 빈 지구 멸망 이후의 해변가가 된 것이다.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만 나는 와중에 그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앉았다.

“저번에 했던 뽀뽀 어땠어?”

“…….”

양백겸이었다.

채원우는 이게 꿈인가 했다가 자조했다. 꿈이지 그럼 현실이겠어?

“왜 알몸이에요?”

“네가 알몸이잖아.”

그 말에 제 몸을 보니 정말로 홀딱 벗고 있었다. 양백겸의 나신을 본 적은 없으니 이번에야말로 상상으로 똘똘 뭉쳐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낸 양백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채원우는 좀 화가 나기도 했고 무모해지기도 했다.

화가 난 이유는 일단, 이렇게 보고 싶은데, 이렇게 만나고 싶은데 꿈에서나 상상으로 만나는 상황이 엿 같아서고, 무모해진 이유는, 어차피 환상인데 뭐 어떠냐 싶어서였다.

“뭐 하는 거야?”

“몰라요.”

양백겸의 어깨를 밀쳐 뒤로 눕히고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채원우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둘 다 알몸이었기 때문에 장애물 한 겹 없이 완전히 서로 맞닿았다.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많이 뜨거웠다. 절로 숨이 헉헉 차올랐다. 채원우는 자신의 성기가 발기하는 걸 느꼈다. 양백겸이 고개를 살짝 들더니 아래를 내려보고는 히죽 웃었다.

웃는 모습도 제 상상이지만, 양백겸은 웃을 때 지나치게 소년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게 내 취향이었나? 채원우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양백겸이 슬그머니 다리를 옮기더니 무릎을 들어 반쯤 발기한 채원우의 성기 아래를 눌렀기 때문이다.

“윽……!”

“동정이야?”

“네?”

갑자기 성기가 눌린 채원우가 화를 내듯 되물었다. 양백겸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놀려댔다.

“동정 맞구나.”

채원우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욱한 이유는 그가 정말 동정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그쪽은 아니에요?”

양백겸은 이미 이런 걸, 다른 사람들과 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질문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꿈속의 양백겸이다. 그의 상상에 불과하단 뜻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화가 치솟으며 채원우의 성기도 같이 욱하고 솟구쳤다. 완전히 발기한 것이 꺼덕이면서 양백겸과 자신의 배꼽을 건드렸다.

“넌 가이드가 어떻게 일하는지 몰라?”

씨발. 알고 있다. 채원우가 입술을 세게 씹었다. 자신의 입술이 아니라, 얄미운 소리를 해대는 양백겸의 입술을 말이다.

“아!”

“알아요. 아니까 굳이 말하지 마요.”

“뭘. 내가 가이드로 오래 일해 왔다는 걸? 그런 거로 질투하는 애였어?”

“아뇨. 이해해요. 만약 내게 맞는 가이드가 있었으면, 나도 마찬가지로 이 사람 저 사람과 자야 했을 테니까.”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듣기 싫어요. 머리로 아는 걸 마음으로도 납득하기 전까진 좀 조용히 해달라고요.”

“와우.”

양백겸이 얄밉게 감탄사를 뱉었다. 그가 시선을 두고 있는 건 채원우의 어깨 너머였다. 덩달아 고갤 돌리니 뒤 쪽에서 온통 단검 모양이 되어 이쪽을 겨누고 있는 바닷물이 보였다. 소금기와 파도 때문에 생긴 하얀 거품이 칼자루가 되어 꽤나 아름다웠다.

“근데 저 칼끝이 날 겨눌 일인가? 방향이 잘못된 거 아냐?”

시근덕대는 채원우에게, 무수한 칼끝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와중에도 여유로운 양백겸이 느물대며 물었다.

“화난 건 너 자신에게 아니야? 날 데려갈 명분은 부족하고, 아직 힘도 부족한 너 자신한테 화가 난 거 아니냐고.”

“…….”

“이제 스무 살 됐나? 주변 사람들은 다 너보다 나이가 많고 속은 검고 더 똑똑한데, 대기실 앞 벤치에서 기다리던 어린애에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어?”

“양백겸 씨.”

“너, 나 가지고 싶잖아.”

채원우가 입을 딱 다물었다. 이를 꽉 깨물어 턱의 교근이 올라섰다.

양백겸은 너무나 쉽게 채원우를 쥐락펴락했다. 가지고 노는 꼴이었고 채원우는 그 장난질에 속수무책으로 놀아났다. 심지어 이건 자신의 꿈인데도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로 이길 순 없어도, 지금 다른 걸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채원우가 발기한 성기를 양백겸의 다리 사이로 지그시 눌렀다. 아는 것 별로 없이 치기만 넘치는 채원우는 다짜고짜 거칠게 맞닿은 페니스끼리 비비기만 했다.

자존심 상하게도 양백겸의 것은 발기하지 않았고, 마른 살끼리 비벼지는 것으로는 흥분을 이끌어 내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에 대고 자위를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비참한 건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흥분하는 자신이었다.

“왜 흥분, 안 해요?”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물었다. 양백겸은 채원우의 어깨 너머에 즐비한 칼을 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대로 반응하듯 칼끝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칼의 개수가 많은 만큼, 마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밤이었다면 오로라처럼 보였을 것 같다.

“왜 흥분을 안, 하냐고요…….”

“원우야.”

양백겸은 조금 씁쓸한 목소리를 했다. 날 놀리려고 장난치는 걸까? 채원우가 비참한 마음으로 사정을 했다. 그의 정액이 양백겸의 허벅지와 아랫배를 적셨다.

씨발, 하고 중얼거리는 자신의 욕설이 낯설었다. 당혹감이 섞여서 아마추어에 풋내기 그 자체 같았다. 이런 방면에서는 아마추어에 풋내기가 맞긴 하지만…….

“가이딩에 가이드의 흥분 상태는 중요하지 않아.”

양백겸이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액을 만지는 게 아니라 밀가루 반죽이라도 만지는 양 서슴없었고 무감했다.

“네가 진정하면 됐어.”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온몸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덩달아 뒤로 곤두서 있던 칼들이 비가 되어 쏟아졌다. 헐떡거리는 호흡이 가라앉는 동안 양백겸은 채원우의 가슴을 손으로 쓸었다.

“헌터들이 폭주하지 않고 아프지만 않으면, 가이드는 흥분하든 말든 발기를 하든 말든, 사정을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고.”

“……그러면 난 그쪽이랑 가이드 헌터 사이 안 할래요.”

“뭐?”

채원우가 아직 흥분이 찬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양백겸이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럼 우리 사이에 뭘 해?”

“할 게 가이드 헌터만 있어요?”

채원우의 성기는 다시 발기하고 있었다. 반쯤 일어난 양백겸의 어깨를 밀어서 다시 눕힌 채원우가 이번엔 양백겸의 골반 위로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양백겸의 몸에 대고 비비며 자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바닥으로 성기를 문질렀다.

“가이딩하기 위해서 섹스하는 거 말고, 다른 거 할래요.”

“그거 말고 너랑 나랑 섹스를 왜 하겠어.”

“글쎄요.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야죠.”

“생각도 안 해보고 말해?”

“아뇨. 양백겸 씨가 생각해 보라고요.”

성기를 주무르고 위아래로 텁텁 쓸어내리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졌다. 순식간에 성숙해지는 것처럼 눈빛이 변해, 꿈속의 출연자에 불과한 양백겸이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난 이미 마음 정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채원우가 양백겸의 입술 끝에 선단을 겨누었다. 경악과 짜증에 찬 표정이 보기 좋았다. 나 이런 취향이었나? 채원우가 소년처럼 웃었다.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났다.

* * *

깼을 때 느껴진 건 추위였다. 채원우는 오들오들 떨면서 일어나 열려 있던 창문을 모두 닫았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와선, 창문을 닫는 동안에도 발기해 있던 성기를 움켜쥐었다.

약이 들지 않아 고통 속에 버텨야만 했는데, 꿈을 꾸고 났더니 모든 신경계가 놀라울 만큼 진정되어 있었다. 꿈에서 한 접촉이 영향이 있었을까? 꿈이 현실 세계에 그만큼 영향을 준다고?

채원우는 낭만주의자가 아니었고 이상주의자도 아니었다. 판타지나 망상을 즐기는 사람도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상상력은 빈약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이건, 우연에 불과할 거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겨울밤에 창문을 모두 열어둔 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오히려 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아…….”

채원우가 뜨거운 신음을 뱉으며 제 성기를 조금 아플 정도로 움켜쥐었다. 신경계의 통증이 가라앉은 게 무색하게 흥분은 식지 않았다. 세 번을 연거푸 싸도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밤이, 혹은 이런 낮까지 포함해서 이제 시작이 될 거란 사실이다.

채원우는 옆으로 쓰러지며 베개에 코를 묻었다. 양백겸의 향기는 어떨까? 그 몸에서 나는 냄새는 뭘까. 가이딩할 때 정말 흥분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건 그냥 내 희망 사항일까?

마구 피어오르는 궁금증 속에 채원우는 끝내 사정했다. 드디어 사정했고, 그 이후로 그는 양백겸을 생각하며 자위를 했다.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심지어 동성이고, 그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그를 떠올리며 흥분하고 자위하는 게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다. 안다고 안 했을 것 같지도 않고.

아무튼 헌터청에서 필요로 하지 않기에, 그에게 가장 부족한 도덕, 양심 부분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원우는, 양백겸과 드디어 매칭 테스트를 하게 될 기회를 잡은 날. 전날 밤까지 침대에서 그를 생각하며 흥분하고 뺐다.

그리고 정말로 양백겸이 새로 빨래를 해서 널어두며 온갖 기원을 다 한 그 침대에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땐, 꿈과 현실이 완전히 뒤바뀐 줄만 알았다. 창문을 열면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수도 없을 하와이 해변이 펼쳐져 있을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 이불, 제가 쓰던 건데. 이런저런 일도 하고.”

이제부터 채원우는 단단히 정신이 나가야만 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서. 꿈처럼 현실을 살기 위해서. 당신이 내 꿈에 영영 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냥 가이드와 헌터 사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지만 일단 가장 바라는 건…… 이번에야말로 당신이 나를 잊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지금껏 만난 헌터와 다른 존재로 당신에게 남는 거였다. 그게 설령 나쁜 감정이어도 양백겸이 채원우를 오롯이 기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실, 자신이 사회성과 사교성이 좋지 않다는 것은 채원우도 알았다. 스무 살의 그 꿈 이후로 정신 차리고 한 일은, 사교성 훈련이 아니라 양백겸을 만날 기회를 얻기 위해 힘과 영향력을 늘리는 것뿐이었으니까.

이상하리만큼 강하고, 이상하리만큼 사회 규범과 어우러지지 않는 채원우와, 꿈속의 모습보다 더 거칠고 더 지쳐 있는 양백겸의 만남은, 이렇게 재회 전부터 온갖 일이 벌어진 그 침대 위에서 시작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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