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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107화 (10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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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08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사진 진짜 아니시죠……?”

직원의 물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웃으며 대답했다.

“네.”

직원은 아쉬움이 떨어지는 얼굴로 결제를 해주고는, 그래도 정말 잘 어울리신다고, 재미있게 놀다 오시란 말을 건넸다. 출입문까지 두 사람을 배웅하던 그녀가 갑자기 한마디 더 보탰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두 분 형제세요?”

채원우가 동글동글 빛나는 눈으로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겸은 채원우가 무슨 말을 할 줄 빤히 알았지만 막지 않았다.

“아뇨. 애인이요.”

어머, 하는 감탄사와 함께 직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백겸과 채원우를 번갈아 보더니 ‘너무 잘 어울려요!’ 했다. 백겸도 모르는 사이 한국 사회가 많이 열린 모양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생각해 보니 저 직원의 말이 자신들이 들은 순수함 100퍼센트의 덕담으로는 처음이라는 걸 깨닫고, 백겸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내 머리 웃겨요?”

“아, 아니. 아니아니. 아하하. 좋아서. 좋아서 원우야.”

네 머리도, 내 일상도. 좋아서. 백겸이 부드러운 마음을 삼켰다.

“머리 어색한데.”

“처음 해봐서 그래. 괜찮아.”

“진짜로 우리 놀이공원 가요?”

“당연하지. 가서 우스꽝스러운 머리띠 쓰고 사진도 찍자.”

“좋아요.”

백겸과 원우, 두 사람은 어느덧 길가에 나와 여전히 서로를 보며 좋아 죽겠단 눈빛을 보냈다.

채원우가 백겸을 향해 픽 웃었다. 그 웃음이 놀랄 만큼 성숙해 보였다. 언제 채원우가 이렇게 어른스러워졌지? 백겸의 가슴팍이 뜨거워졌다.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 있는, 채원우의 곱슬거리는 새로운 머리와 부쩍 성숙해진 얼굴에 백겸은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꼈다.

* * *

버스를 타고 놀이공원에 오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런 보람이 있게 날씨가 화창했다. 평일인 만큼 놀이공원은 한산했다.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지라 평일인 것도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두 사람은 입장권과 자유이용권 가격을 물끄러미 보았다. 백겸은 그사이에 가격이 훅 오른 것에 놀라서, 채원우는 백겸이 보고 있기에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비싸졌네.”

“저게요?”

“그럼 비싸지…….”

“회복석에 비하면 티도 안 날 가격인데요?”

값어치를 책정할 수조차 없는 회복석을 원석째로 백겸에게 줬던 채원우답게, 금전 감각이 약간 고장 난 발언을 했다. 백겸은 채원우가 어디 가서 금전적으로 사고를 칠까 봐 걱정하며, 옆에서 떨어지면 안 되겠단 다짐을 새롭게 했다.

“일단 자유이용권 사자.”

“네.”

대답과 동시에 채원우가 지갑을 꺼냈다. 둘은 카드를 쓰지 않고 현금을 써서 채원우의 지갑은 뚱뚱했다. 좋은 지갑이 아니라 길에서 막 산 것 같은 찍찍이 지갑이라서 다행이었다.

채원우가 외모에 신경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란 것이 이런 점에서 티가 났다. 채원우는 오직 백겸이 신경 쓰는 부분만 관리했다. 백겸이 지갑이나 옷, 브랜드 같은 것에 관심이 없으니 자연히 이런 부분에서도 허술했다.

“현금 되죠?”

당당하게 말하며 채원우가 현금을 다발로 촤라락 꺼냈다. 자본주의에 제대로 적응해서 살아갈 뿐인데 왜 부끄럽지. 백겸은 괜히 다른 곳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형. 샀어요.”

부끄러움에 대한 역치가 높은 채원우가 팔찌 두 개를 팔락거리면서 왔다. 표정이 참 밝았다.

백겸과 채원우는 팔찌를 보여주고 통과할 때 잠깐 난관을 겪었다. 직원이 자신의 손목을 잡자, 채원우가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거세게 뿌리쳐 버린 거다. 뒤에서 보고 있던 백겸이 당황해서 그 사이로 팔을 뻗었다.

“아, 죄송해요. 저, 정전기가 일어났나 봐요, 얘가.”

정전기가 일어났다면 둘 다 느껴야 할 텐데 직원은 짜릿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처음 채원우와 양백겸이 시야에 들어올 때 돈 많이 내고 100미터 밖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잘생긴 남자 둘이 코앞에 있네, 해서 짜릿했던 거 말곤.

하지만 한 쪽이 하도 상냥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정전기예요, 정전기’라고 해서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얘가 좀 피부가 건조해서.”

백겸의 눈은 웃을 때면 한쪽 이 좀 더 찡그려지는데 그게 윙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과를 하며 팔찌를 보여주고 스스로 채우는 일련의 과정이 참 빠르기도 했다.

얼떨떨한 직원이 행복한 시간 보내시라며 의례적인 인사를 하자, 백겸은 몸을 다시 돌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반복했다. 덕분에 채원우가 손을 뿌리친 건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둘이 되게 다르게 생겼는데 둘 다 지인짜 잘생겼네.”

하나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긴 속눈썹, 촉촉하고 도톰한 입술 때문에 천사처럼 예쁘게 생겼고, 하나는 짧게 자른 직모에 눈매도 길고 날렵해서 좀 차갑게 생긴 미남인데 하는 행동은 서로 바뀐 것 같았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직원은 퇴근하면 친구들한테 말해야지, 하며 텀을 두고 들어오는 다음 손님 맞이에 집중했다.

“왜 그랬어.”

등을 보이는 직원을 배경으로 한 백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만지는 거 싫어요.”

채원우는 백겸의 어깨에 자기 뺨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행동하고 하는 말이 하나도 안 맞았다.

“형 말고 다른 사람은 질색이라서. 만지는데 파충류가 팔을 기는 거 같았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슬포슬해 보이는 외모에 차가운 인간 혐오적 발언이라니. 백겸은 채원우의 곱슬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고는 옆으로 조금 밀어냈다. 타인을 너무 안 만나서 그런지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에 거침이 없어서 큰일이다.

“좀 참지. 헌터청 연구원들보단 덜 조몰락거리잖아.”

“근데 그래서 더 싫은데요. 그때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 나한테 뻗어지는 손가락 보면 다 무슨 촉수나 외계인 손가락 같아요.”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정말로 할 말이 없어진다. 둘 다에게 헌터청은 역린이었다. 애써 추억이라고 뽑아낼 것도, 둘이 함께하며 투닥거렸던 게 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백겸은 주변이 한산한 걸 확인하고, 고갤 돌려 원우의 머릴 잡아 관자놀이에 쪽 뽀뽀를 했다.

“화내는 거 아니야.”

“…….”

“나 너한테 화 안 내.”

“형, 그런 거 치고 헌터청에 있는 동안 저한테…….”

“지난 일은 지난 일로 하자, 원우야.”

“알았어요.”

채원우는 밀린 성장을 하는 중이었다. 백겸은 요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 자란 줄 알았던 자신도 성장 중이었다.

자신은 그저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급급했던 것 같다. 채원우는 외로움도 아픔도 남의 일처럼 방치하고 살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고, 아직까진 이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로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단 뜻이었다.

“일단 우리 뭐 좀 사자.”

오는 길 내내 계획했던 게 있던 백겸이 원우를 잡아끌었다.

채원우의 머리 위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는 스프링과 반짝이가 마구잡이로 붙은 뿅뿅이가 달려 있는 머리띠, 얼굴에는 별 모양의 알에 테는 기린 얼룩무늬로 장식된 선글라스가 올라가 있다. 양백겸의 눈에는 핫핑크의 하트 모양 선글라스, 머리에는 뒤집어써서 턱에서 고정시킬 수 있게 되어 있는 기린 모자가 푹 눌러 써져 있었다.

“가자.”

비장하게 말하는 백겸의 말에 원우가 고갤 끄덕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놀이기구가 아니라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해.”

“나 퍼레이드도 보고 싶어요.”

애인이라기보다 애기 같은 말투의 채원우를 끌고 백겸은 자신만 믿으라며 호언장담했다. 이래봬도 던전이 터지기 전에는 매년 두 번씩은 이곳에 왔던 백겸이었다. 비록 10년도 훌쩍 지나 오게 되었지만 효율적으로 놀 전략쯤은 쉽게 짤 수 있었다.

미리 검색해 봤는데 사파리 구역에 3년 전에 던전이 터져서 놀이공원은 잠시 폐쇄되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리모델링이 진행되었고, 1년 만에 다시 열렸다.

놀이공원은 이용객이 거의 없던 놀이기구들을 벙커로 바꾸고 지반이 흔들릴 때를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더욱 철저하게 설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이 무색하게,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던전이 터지거나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 되었고.

백겸은 머릿속에 있는 이곳의 가상 지도에서 사파리를 지웠다. 그래서 일단 가장 안쪽까지 가기로 했다.

첫 번째는 클래식하게 바이킹이고 다음은 내려와서 시간이 짧아 순식간에 탈 수 있는 롤러코스터, 다음은 그 건너편에 있는 마구잡이로 도는 도끼 모양의 놀이기구……. 중간에 밥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 비싸고 맛없는 음식도 추억이다.

“형. 눈이 엄청 빛나는데요. 몬스터 죽일 때보다 더 신났네요.”

“어. 당연하지. 원우야, 형 믿지?”

“저야 형만 믿죠.”

“그래. 그럼 가보자.”

점점 비명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백겸이 씩씩하게 거대한 배를 향해 걸었다.

일은 후룸라이드를 타고 난 뒤에 터졌다. 일이라고 유난을 떨며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백겸에게는 나름 충격적이었다.

“메슥거려요.”

채원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좀 쉴래요.”

사람들에겐 모두 약간씩 나쁜 심보가 있는지, 백겸은 못되게도 놀이기구 네 개 연달아 탔다고 맥이 빠진 채원우를 보고 즐거워했다.

“너는 나한테 손으로 뜯은 몬스터 폐까지 보여줘 놓고 고작 놀이기구에 하얗게 질리냐?”

“그렇다고 선로를 부술 순 없었잖아요.”

“그, 그러면…… 안 되지.”

<[속보] 이능력자가 롤러코스터의 선로를 부수어 사상자 발생, 이능력자는 반년 전 폭주 후 탈주한 헌터청 소속으로 밝혀져……>

백겸의 머릿속으로 속보 제목이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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