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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04
최소 B급 이상인 헌터들은 D급 이하의 이능력자들을 부를 때 마술사라고 비아냥거렸다. 어린애들 생일파티에 가서 우와,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만의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 백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채원우는 그런 백겸을 보며 묘하게 웃고는 손을 휘둘렀다. 이전의 그였다면 하지 않을 과한 제스처였다. 그 제스처 덕에 백겸은 앞으로도 한동안 더 속을 거다. 채원우가 고작 마술사 수준이 되었을 거라고.
그거야말로 채원우가 바라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도 찔리지 않는 양심이 있으니 선물을 좀 해주고 싶었다. 채원우가 사랑하는 양백겸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서 맺혀 있던 물방울이 둥실 떠올랐다. 바로 어제 내렸던 라벤더색 비였다. 그것들이 커다란 꽃잎 사이에 숨어 있다가 채원우의 능력에 허공에 별처럼 맺혔다.
“우와…….”
할머니와 승규는 물론이고 통화를 하던 형민이마저 허공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형민이가 허둥지둥하며 영상 통화로 바꾸려 하길래 백겸이 다가가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민간인한테 이런 거 보여주지 마라.”
엄하게 타박하는 말에 형민이는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곧바로 이해했다. 아무리 중간에 그만뒀어도 4년 등록금은 넉넉히 번, 한때 가이드였던 녀석이다.
“이 정도는 해줄게요.”
채원우가 싱긋 웃으며 손님들을 향해 손짓했다. 백겸은 채원우의 몸 상태를 걱정해서 능력을 거의 쓰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니 괜히 걱정하지 말라는 투였다. 사실 손가락을 까딱한 수준밖에 안 되면서.
뭐가 어찌 되었든 백겸 역시 이번에는 괜한 짓을 했다고 혼낼 수가 없었다. 그 역시도, 공중에 생긴 꽃봉오리 같은 보라색 물방울에 홀릴 수밖에 없으니까.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백겸에게 채원우가 다가왔다. 툭 떨어진 백겸의 손에 자기 손을 꽉 끼고는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댔다.
“형. 저 열나는 것 같아요.”
뻥. 고작 물을 들어 올린 정도였다. 만든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가볍기까지 한 물이었다. 닿은 입술 온도는 평소랑 별다르지도 않았다.
그래도 백겸은 이 여우 짓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세상에서 고작해야 두 명 정도에게밖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행동이니까. 자신이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받아줄까. 백겸은 채원우의 볼을 감싸고 자신의 어깨에 꾹 눌렀다.
“예쁘네. 잘했어.”
허공에서 천천히 돌며 왈츠를 추는 라벤더색 물방울과 따뜻한 햇살이 끝내주게 잘 어울렸다. 바깥은 가을, 이곳은 봄. 현실에 어울리지 못하는 괴물들이 누리기에 완벽한 평화였다.
외전 04 - 2. 엉망이지만 정상영업중입니다
채원우와 양백겸은 방독면을 쓴 채로 쪼그려 앉아 개구리를 10분째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개구리가 아니라 개구리 모양의 몬스터였다. 겉은 반들반들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윤기가 돌고 색은 누가 봐도 수상할 정도로 알록달록했다.
“독 있겠지?”
“없을 리가 없죠.”
이곳은 채원우와 백겸이 명명한 토끼굴 no. 14로, 갯벌 옆에서 발생했고 던전 안은 습지로 발현된 곳이었다. 습지인 만큼 양서류와 흡사한 몬스터가 많았다.
“만져 볼까요?”
“미쳤어?”
채원우가 섣부르게 손을 뻗으려고 하기에 백겸은 황급히 제지했다. 이제 옛날 같지도 않은데 채원우가 여전히 겁이 없고 몸을 안 사리니 그것이 백겸의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독을 뿜는 놈이면 어쩌려고. 우리가 근처에 있는데도 안 피하는 거 봐. 여간 미친놈이 아닐 거야.”
“그럼 이렇게 해요.”
“어떻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봤다. 채원우는 백겸의 뒤로 손을 뻗더니 강아지풀처럼 생긴 풀을 하나 뜯었다.
던전 내에서, 채원우와 함께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내세울 수 있는 습지의 장점은, 습하다는 거다. 습하다는 건 물이 많다는 거고 물은 채원우의 필드였다. 채원우가 비록 힘은 약해졌어도 어느 정도 허공에 띄우는 것과 목표물로 보내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채원우는 풀의 솜털 부분을 떼어내선 배처럼 핀 물방울 위에 태워 보냈다. 모양이 좀 투박했다. 역시 예전 같진 않은 모양이다. 백겸은 조금 씁쓸해졌고 채원우는 태연했다. 풀은 둥실둥실 멀어졌다.
“너무 흔들리는데……?”
“형 지금 저 꼽 주세요?”
“아, 아니.”
백겸이 얼른 채원우를 띄워줬다. 우리 원우가 최고지, 우리 원우 능력 너무 좋지, 우리 원우 대단해 하면서. 채원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그리고 곧, 술 취한 행인처럼 갈지자로 허공을 떠간 풀 쪼가리가 드디어 몬스터 바로 위로 떨어졌다.
“오!”
작게 터지는 백겸의 탄성과 동시에 물이 사라졌다. 풀이 아래로 툭 떨어지고 개구리가 펄쩍 뛰었다. 그러고는 동시에 혀를 쭉 빼선 덩달아 허공에 뜬 풀을 쏘아 맞췄다.
풀은…… 순식간에 녹아 연기만 남았다.
“…….”
“…….”
“그냥 저런 몬스터가 있다고 보고만 하자. 채취까지는 굳이.”
저건 까딱 잘못 건드리면 죽겠다. 채원우가 예전처럼 물방패막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백겸은 생포해 보려 했던 작전을 취소하고, 대신 사진기를 꺼내서 한껏 줌인하여 찍었다. 그리고 셔터를 겨우 몇 번 누른 순간이었다. 갑자기 개구리가 고갤 홱 돌렸다.
눈알이 두 쌍, 그러니까 네 개의 눈알이 백겸과 채원우 쪽을 봤다. 그냥 이쪽을 본 게 아니라 분명히 눈이 마주쳤다. 본능과도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한 발 늦었단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뷰파인더 안에는 이미 쭉 뻗어진 혓바닥이 있었다.
“숙여요.”
작은 속삭임과 함께 백겸의 머리와 카메라가 아래로 훅 눌렸다. 채원우의 손이었다.
“됐어?”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현장을 나가지 않고 백수로 너무 오래 쉬었나 보다. 채원우가 손을 떼고서야 고갤 드는데 여전히 가슴이 펄떡거렸다. 한숨 돌리는데……
“뭐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데, 고갤 드니 개구리가 없었다. 개구리가 있던 자리에는 무엇인가 삼키는 것처럼 뻐끔대는 습지 바닥밖에 없었다.
“갔어요. 조금 전에.”
어리둥절한 백겸에게 채원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개구리니만큼 한 번 뛰면 사라질 건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존재를 발견했으니 떠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얼떨떨한 상태로 고갤 끄덕이는 백겸을 채원우가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제 가요. 여기 습해서 싫어요. 저 이제 연약하잖아요.”
눈썹을 아래로 끌어 내리고 한껏 순한 척하는 채원우가 재촉했다. 채원우가 앞장서고 그 뒤를 백겸이 따랐다.
아무리 독자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던전이라 해도 바깥의 영향을 받기는 하는 듯했다. 갯벌에 생성된 던전이라 그런지 썰물과 밀물 때 차이가 있었다. 밀물 때면 습지가 한층 더 질퍽질퍽해졌다.
저번에는 이걸 모르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갔다가 바다에 빠져서 곤혹을 치렀었다. 둘 다 수영을 할 줄 알아서 다행이지.
지금도 밀물 때가 된 건지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장화가 바닥에 푹푹 빠졌다. 돌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겨우 빠져나와서 던전 출입구인 막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였다.
“어?”
채원우가 작게 탄성을 뱉더니 검지를 세워서 입술에 댔다.
“무슨 소리 안 나요?”
덩달아 백겸도 숨죽였다.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백겸은 인상을 찌푸리고 불길함에 고갤 내렸다. 채원우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습지의 뻘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원우야……. 빨리 문 여는 게 좋겠다.”
백겸의 말에 채원우도 동의했다. 세 걸음 정도만 더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습지가 한층 더 질퍽거리게 변하며, 질퍽 수준이 아니라 질뻑 수준이 되었다.
발을 뽑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뒀을 때, 두 사람은 진동의 정체를 알았다. 진동은 말 그대로 지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커다란 진흙파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열어!”
백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채원우는 출입구의 막을 찢으며 앞으로 굴렀다. 물론 백겸의 손목을 잡고.
막이 닫히기 직전까지 보인 건 집채만 한 진흙파도였다. 말만 막이지, 상성이 비슷한 이능력자들이 찢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는 던전 문이 꽉 닫히며 그걸 막았다. 다 막은 건 아니었고…….
“……빨리 집에 가자.”
백겸이 얼굴과 몸 앞판을 잔뜩 더럽힌 진흙에 욕을 삼켰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긁듯 쓸어내리니 진흙이 한 움큼 떨어졌다.
“던전 말고 형이 산 우리 집 말이죠?”
채원우의 꼴도 백겸과 다르지 않았다. 얼굴만 조금 멀쩡했다. 그래도 볼에 진흙이 남아 그걸 손등으로 훔쳐낸 채원우가 한숨과 함께 던전을 평가했다.
“거주 및 개발 불가로 보이네요.”
“내 생각도 그래. 개발은 몰라도 거주는 진짜 안 되겠다.”
습한 건 딱 질색이다. 갯벌도 원래는 이 일이 아니면 오지도 않았을 거다. 백겸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no. 14 토끼굴, 부적격 판정 땅땅.
* * *
어쩌다가 불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방수포를 사서 택시 좌석에 깔고 벌받는 것처럼 각 잡힌 자세로 앉아 돌아오는 꼴을 생각하니 백겸은 계속 웃음이 났다. 자신들의 꼴이 우스워서 그랬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토끼굴을 찾아가서,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둘만 남게 된 집까지 오는 내내 괜히 엉망이고 더러운 서로의 볼이나 코에 뽀뽀를 했다. 그러다가 불꽃이 튄 거 같다.
마을은 이미 텅 비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거침이 없었다. 마당에서 서로에게 물을 뿌렸다. 흙탕물이 한참 흘렀고 차가운 물을 맞는 내내 냉수를 핑계로 서로 몸을 비비고 입술을 비벼대고 그랬다.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마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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