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상관없었다. 거의 다 올라왔다. 내 발을 받쳐줄 면적이 좁았다. 정말 산처럼 정상에 올라오니 바닥이 좁아져 있는 그런 모양새였다. 거센 바람 때문에 비틀대며 겨우 섰다. 정말 영화 같은 타이밍으로 하늘에서 묵직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채원우가 보였다.
“솔직히 영화 속처럼 허공에 떠 있거나 그런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럼 분위기에 안 맞게 웃을 것 같았거든.”
나는 허세를 부리며 입꼬릴 끌어 올렸다. 채원우가 혼잣말에 불과한 내 목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빗소리가 컸다. 바닥에 깔린 철판과 철근들에 부딪치며 소음도 내고 있었고.
그리고 생각보다 작은 문으로 보이는 던전 구멍에서, 막 몬스터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끼엑―!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긴 목에 구멍이 뚫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제야 보였다. 채원우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물방울들이. 그 주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잠시 멈춰서 왈츠를 추는 것처럼 채원우의 주변을 돌다가 땅으로 추락했다.
자신의 몸도 파괴하고 주변도 파괴하는 헌터의 폭주. 그 폭주는 폭죽처럼 빛에 반짝이고 아름다웠다.
“채원우.”
얼음장 같은 빗방울이 턱에 고이며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다시 불렀다.
“채원우.”
그리고 천천히 초를 셌다. 네가 돌아보기까지의 영원 같은 찰나를.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시선만 교환했다. 먼저 적막을 깬 건 나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꼴이 그게 뭐야.”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만 들으면 정말로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동창을 만난 게 아닌가 싶을 그런 분위기였다. 나는 채원우의 귀와 눈썹을 가리켰다.
“구멍은 왜 그렇게 많이 뚫었어. 뚫리는 건 난데.”
저질스러운 농담을 건넸다. 비는 존나게 쏟아지고 바닥은 질컥거리고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 재꼈다.
채원우의 뒤, 던전의 구멍에는 물회오리 같은 게 쳐서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 정상에 올라온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채원우는 내 목소리도 들리고 나도 보이고 머리도 돌아간다. 너는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 내가 제때 도착한 것이다.
“잘 생각했어. 나는 네가 아이돌을 해도 될 얼굴이라고 생각했거든. 세상이 이 꼴만 아니었다면.”
“…….”
“그리고 네가 헌터만 아니었어도.”
“그러면 형을 못 만났잖아요.”
채원우가 겨우 한마디를 했다. 입이 꾹 붙은 줄 알았는데 말도 할 줄 아네, 하고 묻자 조금 웃었다.
“저 키 컸어요.”
“그래 보여.”
“형은 살 빠졌네요.”
“너도.”
“저 지금 잘못되고 있죠?”
“어.”
채원우의 몸에 빨간색 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조준경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단 뜻이었다. 여차하면 맞추겠다는 적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몸이 좀 피곤하긴 하지만, 폭주할 정도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고작 하루 싸운 건데요.”
하루……. 채원우는 하루 싸웠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넌 사흘 싸웠어. 3일 내내 밤낮으로.”
“아……. 제가 헷갈렸어요.”
“원우야. 아파?”
고갤 내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채원우는 환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고통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채원우의 손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채원우의 시선은 자기 신체의 일부인데도 인형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처럼 무감각해 보였다. 나는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는데.
채원우가 내려다보던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하……. 쪽팔린다.”
“그러게. 나 보내놓고 잘 살아야지, 개떡같이 살아서는. 그 노래도 몰라?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고.”
채원우가 고갤 숙이고 있을 때, 조금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아보니 채원우를 겨냥하고 있던 군인 하나가 뒤로 넘어갔다.
“죽인 건 아니에요.”
“미쳤어?! 저길 공격하면 널 죽여도 된단 빌미를 주는 거라고……!”
“제가 아니라 형을 겨누고 있길래. 형, 그냥 빨리 가요. 저 알아서 잘해요. 폭주 위험도 몇 번 겪어봤어요.”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채원우는 언제나 괜찮다고만 한다. 괜찮다고 하지 않으면 안 괜찮을 일만 가득했기 때문일 거다. 울어도 달래주는 사람 하나 없고 아파도 치료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나는 다짐했다. 만약 여기서 살아 나갔는데 강 팀장이 진짜로 채원우와 혈연관계면, 그 새끼를 죽여놓겠다고.
“형. 이제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안 아프고, 밤에 잠은 잘 자요?”
“어. 너 엄청 어렸을 때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네. 그런데 채원우.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물어봤어야지. 여전히 나가고 싶냐고.”
“제 곁에 있으면 다친다니까요.”
“지금 네 앞에 있는데 안 다쳤는데.”
하지만 곧 다치거나 곧 죽을 것 같긴 했다. 나는 점점 궂어지는 날씨와 당장에라도 뚫어버릴 듯, 채원우의 몸으로 향한 빨간 점들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채원우 역시 나를 초조한 눈빛으로 봤다. 입술을 혀로 쓰는 것이 입도 마르는 모양이다. 이제 보니까 입술에도 피어싱을 뚫었다.
“형, 이제 진짜로 가요. 이러다 진짜 형 죽일 것 같아.”
“그럼 안 되는데. 이제 목걸이도 없어서.”
“그러니까요.”
“근데 채원우. 나는 여기 둘 중 하나를 이루러 온 거야. 너랑 같이 살아서 가기 아니면 같이 죽기.”
“전 형만 살아도 되는데요.”
“해봤는데, 그거 별로야. 내가 죽고 너만 살아도 별로일 거야. 그러니까 어차피 목숨 걸고 할 도박이면 그냥 나한테 전부 걸어볼래?”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내 계획은 엉망이었다. 원래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었는데 그간 무리한 거였다.
러프하게 짠 기승전결의 끝이 얼마 안 남았다. 게다가 나한테 걸어보라는 사람치고 아주 무책임하게 결 이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엔딩을 내야 하는데 엔딩을 낼 자신이 없는 거다.
동화처럼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될지 우리의 장르인 호러 코미디처럼 ‘살았을지도 죽었을지도. 근데 죽는 게 낫지 않아요?’가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만 해……! 난 너한테 모든 걸 걸었단 말이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단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초조했다. 채원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번만 잡아. 널 포기하지 말고.
“내가 포기하려 했을 때 네가 날 멋대로 살렸잖아……!”
나는 너의 얼굴과 몸통을 겨냥한 빨간색 점을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래야 좀 덜 떨 테니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동안 차갑게 식은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너의 뒤로 수많은 건축물 자제와 사라지지 않고 늘어져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보였다. 못 본 사이에 귀를 좀 많이 뚫었고 또 자란 것 같기도 했다. 같이 지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키가 컸으니까 그사이 더 자라는 건 당연했다.
격한 전투 때문에 가로수로 심어둔 벚꽃 나무는 때 이르게 피운 꽃들이 무색하게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이런 재회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에 너랑 이곳에 왔을 때처럼 미지근한 맥주나 마시며 재미없는 농담에도 크게 웃고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
한참 나를 응시하고만 있던 네가 나를 불렀다.
“돌아가요.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네가 준 목걸이는 이미 부서졌고 나는 주어진 보너스 목숨을 다 썼으니까.
죽은 몬스터 사체에서 쉼 없이 핏방울이 솟구쳤고 부서진 수도관에서도 물이 줄줄 흘렀다. 이만한 수분이면 너는 여기 모인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을 거다. 폭주하는 능력이 너를 죽이고 있단 건 개의치도 않을 거다.
능력이 과다하게 분출되어서 보랏빛이던 손의 살점이 일어나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는,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만 돌아가요.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요.”
“평범하게?”
“…….”
“그럴 수 없는 거 알잖아. 이게 우리의 일상인데.”
내가 평생 부정하며 도망치려 했던 사실이었다. 돈을 모아서 이 바닥을 뜨겠다고 다짐했었다. 일평생 그것만이 목적이라고 여기며 헌터들과도 정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 역시 지나가는 경력 중 하나에 불과했어야 했는데.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예 계획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너라는 변수로 인해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형.”
내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있던 네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입술이 떨리는 게 보였다.
“미안해요. 정말로…… 이러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안다고 대답하려는 차에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져 있던 수도관이 아예 터지는 소리였다.
채원우가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너를 향해 달리는 순간 뒤에서 발사 명령이 칼날처럼 떨어졌다.
채원우에게 달려들었다. 빗방울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채원우의 목덜미까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엄청나게 느리게 느껴졌다.
확신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채원우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사람들이 모두 방아쇠를 당겼을 거라고.
다가올 수 없어서 저 멀리서 조준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공격이 채원우에게 통할까? 적어도 한 발 정도는 통할 수 있지. 나도 아주 어이없는 이유로 심장이 뚫렸으니까.
채원우를 덮치기 무섭게 엄청난 열감이 피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몸속은 너무 추워서 이가 절로 딱딱 부딪쳤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비가 너무 차가워서 오한이 들었다. 채원우가 팔로 나를 감쌌다.
“아…….”
절로 좋아, 감탄사를 뱉으며 나를 부서져라 껴안았다. 나는 겨우 뜬 눈으로 빗방울이 옆으로 퍼지는 걸 봤다. 마지막으로 발을 굴렀다.
채원우가 만들어두었던 물회오리는 내가 달려들며 사라졌다. 그 틈 사이로 나와 채원우 두 명의 몸을 모두 밀어 넣었다. 기다렸단 것처럼 던전의 구멍이 완전히 맞물렸다.
* * *
이세계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승규가 보던 만화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재라고 했다. 대충 줄거리를 들어보건대, 대체로 시작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각오하고 넘어왔거나 죽어서 넘어왔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는 거다.
채원우의 몸을 끌어안고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채원우나 나나 깨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껴안은 순간부터 서로 떨어질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고통에 앓고 있던 채원우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나도 채원우를 놓아선 안 된다는 본능만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여기서 채원우를 놓는다면 얘가 나를 죽이거나 둘 다 죽을 판이었다.
오한과 고열이 동시에 들었다. 어쩌면 이미 총을 맞아 온몸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내가 깨어나면 채원우가 기절했고 채원우가 기절할 때쯤 내가 깨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른 뒤에 일어나니 아주 평범한 공원이었다. 벤치와 가로등이 없을 뿐, 예쁜 수목원 같았다. 채원우와 마지막으로 함께 들어갔던 던전처럼 낙원이 아닌가 싶을 만큼 예뻤다.
“이미 죽은 건가……?”
얼떨떨해서 몸을 일으키니 몸에서 옷이 툭 떨어졌다. 채원우가 입고 있던 전투복 외투였다. 그리고 채원우는 보이지 않았다.
기운은 없었지만, 몸살을 앓다가 땀을 쪽 빼고 일어난 것 같은 상쾌함이 있었다. 채원우의 옷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이전의 던전처럼 몬스터들은 산발적으로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대관령 양 떼 목장 같은데. 부모님과 딱 한 번 가본 장소를 떠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은은한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불안하기보다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조금 걸었을까 싶을 때 건너편에서 채원우가 보였다. 채원우는 정강이까지 오는 풀을 헤치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몸에 붙는 반팔 티셔츠에 방검 및 유틸리티 조끼를 입은 채였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바닥에 시선을 둔 채 느릿느릿 걸어오던 채원우가 고갤 들었다. 시선이 딱 마주쳤을 때는 희열이 느껴졌다.
“채원우 헌터. 우리 죽었습니까?”
내가 묻자 채원우가 허벅지에서 칼을 꺼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칼끝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가볍게 그은 상처에서 선홍빛 피가 흘렀다. 그딴 기함할 짓을 하고 채원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픈데요.”
“…….”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채원우가 다시 내게 걸어왔다. 내가 있는 곳까지 완전히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꽃은 보랏빛이었다. 식물 이름 같은 건 잘 모른다. 뭔지 잘 모르지만 그나마 좀 아는 철쭉 모양새와 닮아 있었다. 내 앞까지 다가온 채원우가 꽃다발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