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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주제가 바뀌어서 지난주에 그년이 그 호래자식과 어쨌네, 저쨌네, 차라리 트럭에 치이는 게 낫겠네, 근데 걔가 쟤 딸 아니니 맞니, 하는 살벌한 대화로 넘어갔다.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내용 전개였다.
살면서 본 적도 없는 이상한 게 땅에서 솟아나서는 광견병 걸린 개처럼 생긴 괴물들이 나온다는 것보다, 어르신들께 출생의 비밀이 더 흥미로운 게 당연했다.
칼같이 채널 돌리는 타이밍에 막 오프닝 시퀀스가 올라가고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나는 슬쩍 일어나서 조용히 노인정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기 직전에 ‘저 노망난 새끼! 주책이 나발이고 염병이야!’ 하는 걸쭉한 욕설이 들렸다.
걸어서도 가까운 거리인데 내렸던 폭설이 무색하게 금세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바닥이 질퍽거렸다. 가는 길에 터줏대감처럼 길거리에 앉아 있는 작은 강아지―사람 나이로 치면 나보다 한참 어르신일 테지만―과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젖어서 푹푹 빠지는 마당을 지나서 들어가자마자 리모컨을 찾았다. 실시간으로 던전 소식을 알려주는 헌터청 전용 채널을 들어가니 방송국에서 하는 것보다 더 자세한 실황이 나왔다.
그래도 헌터청의 기본 규율 중 하나가 ‘국민에게 지나친 공포심을 조장하지 않는다’인 만큼 적당히 프레임을 잘라낼 수 있는 각도였다.
화면에 거의 빠질 정도로 붙어서 눈이 시리도록 샅샅이 파헤쳤다. 손톱을 씹으면서.
색 보정을 하고 있는 데다가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사체는 잘 보이지 않지만, 대충 알 수 있다. 수가 상당히 많았다. 그렇지만, 이보다 수가 적은 전투 때보다 폭력성은 덜했다.
몬스터들이 사회로 나올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공격적인 것 같진 않았다. 방심할 수 없게 온갖 방향으로 아주 빠르게 뛰쳐나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이제 끝났나 싶으면 또 나왔다. 처음에는 엄청 많던 헌터의 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한 그릇으로 끝낼 수 있는 밥을 만들어 계속 화면 앞에서 먹었다. 헌터청 안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열심이었다.
교대제로 바뀌었는지 수가 준다.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꺼진 줄 알았는데 몇 시간 후 다시 타오르는 집요한 불씨처럼 꾸준히 몬스터가 나왔다. 크기부터 종류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전투는 사흘 동안 이어졌다.
자다 깨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완전히 깬 건 화면에서 퍽 소리가 나서였다. 커다란 소리였다. 겨우 깊게 잠든 잠에서 벌떡 깰 정도였으니까.
화면은 까맣게 암전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지지직대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마침 핸드폰에서 재난 문자가 울렸다.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알림이었다. 바깥은 어슴푸레한 새벽인데, 불길함이 온몸에 들러붙었다.
겉옷도 챙기지 못하고 일어났다. 충전기 잭에서 핸드폰을 뽑아 들고 신발도 짝짝이로 신은 채 뛰쳐나왔다. 뉴스로는 뜨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 동영상 플랫폼에 들어가 던전이 터진 장소의 이름을 쳤다. 오타가 났는데도 용케 나왔다. 아주 먼 곳에서 찍는 게 분명한 라이브 영상이 겨우 하나 떴다.
―현장에 있었는데요! 분명히 이 지역 근방 거주민들이 다시 와서 생필품을 챙길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완화되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더니! 소화전이 모두 터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두서없이 상황을 알려줬다. 소화전이 터진 것 같다는 정보값 말고는 사실 거의 다 횡설수설한 소리였는데 뒷골에서 예감이 번뜩였다. 소화전에서는 물이 터져 나온다고……? 뒷골에서 번뜩이던 예감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채원우의 폭주.
나는 근처에 살고 있는, 이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달려갔더니 그분 역시 막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보따리를 안고 있는 노부부를 보자마자 그들이 ‘얼른 가자!’ 하고 외치셨다.
가야죠, 가야 하는데…….
“영감님 저 차 좀 빌려주세요.”
“차?! 걸어서 갈 수 있어. 저쪽이야.”
“아니에요. 전 그쪽으로 안 가요.”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른 뒤에 허리를 폈다. 평소처럼 연기를 하지 않아도 간절함이 단전에서부터 깊게 흘러나왔다.
“차…… 물어드릴게요.”
“곱게 돌려주면 되는데 왜 물어줘!”
“그러면 빌려주신 대가로 그냥 사드릴게요.”
“돈이 남아서 썩어나?!”
“네. 애인이 돈이 많거든요.”
“으엉?”
“돈 많은 애인 구하러 가야 해요. 차 빌려주시면 정말 이 은혜 꼭 갚을게요.”
내가 코앞까지 다가가서 거의 협박하듯 부탁하니 기백에 눌린 영감님이 주섬주섬 차 키를 꺼냈다. 뽑은 지 얼마 안 된 건데…… 하며 우물쭈물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로 갚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서약서도 쓸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 거지.
“근데……. 양백겸이 너 면허는 있어……?”
“…….”
대답하지 않고 차고로 향했다.
“얼른 대피소 가 계세요!”
“양백겸이! 면허 있냐고!”
“꼭꼭 숨어 계시고요!”
죄송하지만 면허는 없습니다. 하지만 카트 게임은 진짜 많이 했거든요. 그거 F1 선수들도 트레이닝용으로 하는 게임이거든요. 트럭 모는 게임도 했어요. 핸들도 있었어요.
재난 문자가 다시 한번 요란하게 울림과 동시에 차고 문이 열렸다. 새파란 색의 지프차가 있었다. 야한 색깔이네. 영감님도 참 멋쟁이라니까.
운전석에 올라타면서 핸드폰 거치대에 라이브 영상을 띄워놓았다. 이곳은 구름 한 점 없는데 해가 뜰랑 말랑 하는 저곳에는 서서히 구름이 끼고 있었다. 그 규모가 상당했다. 불안의 완벽한 전조였다.
시동을 걸고 기어를 바꿨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능력이 폭발한다고 하는데, 평소에 사람은 자기 뇌 능력의 2퍼센트도 못 쓴다고 하는데, 1퍼센트라도 쓰면 없던 면허도 어떻게 대체되지 않을까.
감옥에 가고도 남을 짓을 저지르면서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꼴이었다. 그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 * *
헌터들이 폭주하는 이유를 대부분 가이드의 상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얼추 맞고 얼추 틀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했다.
1. 가이드와 헌터 사이에 엄청난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헌터들과 가이드들은 성격이 더럽게 맞지 않는 이상 서로에게 끌리는 게 당연하긴 했다. 서로가 상호 보완적 관계니까. 헌터는 던전 내에서 가이드를 지키고 가이드는 던전 내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능력을 쓰는 헌터들이 능력 과부화에 걸려 죽지 않도록 보조한다.
가이드와 엄청난 유대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가이드를 잃었을 때 심리적 폭주가 있을 수 있지만, 헌터에 따라 진정할 수 있거나 기절시키는 것으로 잠시 막을 수 있다. 기절시킨 채로 헌터청에 데려가면 우수한 브레인들이 또 어떻게든 안정을 시키고.
2. 사실 이게 대부분의 절대적 이유인데,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자신의 한계치를 넘게 되며 폭주하는 경우다.
헌터란 피로가 쌓일수록 조용히 망가져 가는 간과 같다. 바로 이 때문에 가이드가 필요한 거고, 이런 존재가 없으면 폭주에 이르게 도달한다. 그래서 1번과 같은 사회 통념이 생기는 거다.
채원우는 오랜 시간 가이드 없이 활동해 왔다. 단연코 특이 케이스였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가이딩 약이 잘 들었고 자신이 잘 조절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내가 제대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약 다음 단계인 기계(피어싱)의 부착 등을 보아서는 나를 만난 이후로 약이 안 듣거나, 아니면 채원우가 무리하는 모양이었다.
그 상태로 사흘 밤낮을 교대 없이 전투에 임했다면?
“멍청한 새끼가!”
뻥 뚫린 도로를 신호도 무시하고 달리며 핸들을 내리쳤다. 채원우에게 이렇게 심한 욕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애새끼나 마찬가지였다. 봐달라고 사고 치는 꼴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지만 정작 속사정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헌터청이 계속 돌렸을 수도 있고……. 그랬겠냐? 애가 한계치인 건 내가 봐도 알겠구만.
그 때 전화가 울렸다. 스피커폰으로 사납게 받았다.
“여보세요!”
―아. 저, ‘던전이 새로운 에덴이다’ 채널 계정주입니다.
박선행 씨였다. 나는 핸들을 돌리며 ‘네!’ 하고 쏘아붙였다.
―최근 며칠째 전투가 이어지는 던전에서 폭주한 헌터가 있다는 거 아십니까? 계시가 온 거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암호처럼 써먹는 박선행 씨의 선무당 소리도 짜증 났다. 그래도 채원우 이야기인 건 분명해서 이를 갈며 참았다.
―보아하니 옆에 가이드가 없더라구요. 헌터청이 어째서 가이드도 없는, 어림짐작해도 등급이 A는 넘는 헌터를 계속 현장에 보냈을까 생각했는데요.
“네.”
―제 추측이지만요, 용도를 폐기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뭐요……?”
―헌터청에서 노선을 던전과의 공생으로 바꿨다면 지나치게 강한 헌터는 위협밖에 되지 않습니다. 헌터청에서 헌터들의 보호에 언제나 미온적이었고 대중들 역시 떨떠름했단 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얼굴마담처럼 인기를 끄는 헌터가 있고, 마침 그 헌터가 폭주해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다면, 여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 나가셨네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앞이 반짝거렸다. 아직 갈 길이 남았는데도 눈앞이 반짝거리는 걸 보니 이번 던전이 심상치 않은 새끼인 건 분명했다.
―국회에서는 종종 나오던 말입니다. 헌터들을 더 확실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이게 거의 소유권 문제라 여론을 보고 있던 건데…….
“저기요. 저 지금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요. 끊겠습니다.”
―네?
“다음에 연락드릴게…….”
순간 핸들을 잡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이 빠졌다. 운이 안 좋았다. 하필 코너링 중이었고 거기엔 횡단보도를 표시하기 위한 안전바가 있었다. 영감님의 멋진 코발트색 신식 지프가 그곳과 제대로 부딪쳤다. 찐하게.
* * *
‘형 파트너는 멍청해요.’
미친놈이 뭐라고 하는 거야.
가이딩 봉사를 하다가 갑자기 섬망처럼 죽은 파트너의 모습이 보여서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왔다. 눈물이 쏙 빠지게 토하고 세면대만 겨우 붙잡고 서 있는데 착한 건지 싸가지가 없는 건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아니면 내게 관심이 많은 건지 모를 꼬마가 또 날 쫓아왔다. 대뜸 저러는 거다. 미친 앤 줄 알았다.
‘나라면 형 두고 안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