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85화 (8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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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좀 있어 보이게 썼는데, 더 고쳐야 하나?

고민하다가 쉼표와 띄어쓰기를 좀 더 넣었다.

<이제 저도 던, 전으 은ㄴ혜를 믿습니다. 종 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허나 종말이 오,기 전 에 고백하 고 싶은 게 있습니다. 뵙 고 싶어요.

추 신. 색이 너무 진 하네요, 조금 부드러운 색은 어 떠실는지……>

‘과한데.’

그런데 더 고치긴 싫었다. 눈을 꾹 감고 보내버린 뒤에야 박선행 씨가 잘못 보낸 줄 알고 삭제하면 어쩌지 싶었다.

다행히도 새벽 감성으로 인한 과한 걱정이었다. 곧 주소가 하나 왔다. 던멘이라는, 별 이상한 인사를 덧붙이면서.

‘진짜 그냥 사이비 종교에 빠지신 거 아냐?’

뒤늦은 걱정을 하며 주소를 어플로 옮겨봤다. 성당이 하나 떴다.

* * *

아주 작은 성당이었다. 고즈넉하다면 고즈넉하고 을씨년스럽다면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딱히 종교가 없던 터라 아무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늘 신기했다. 던전이 터지고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몬스터들이 세상에 나타나도 여전히 종교는 성행한다는 점이.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기도를 하고 있는 박선행 씨가 보였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옆에 가서 자릴 잡았다.

“그, 경고문 같은 거라도 넣으셔야겠어요. 화면이 번쩍거리니 조심하라고.”

“어차피 조회수가 엉망이라 상관없습니다. 보라고 찍는 것도 아니고.”

하긴. 조회수가…… 세 자릿수였나 그랬지.

“그럼 왜 만드시는 건데요?”

“마인드맵 같은 거죠.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은 그걸 보며 믿느라 진짜 알짜 정보는 못 보고 제정신인 사람들은 10초가 지나기 전에 영상을 끄거든요.”

“전 끝까지 본 적 있어요.”

“…….”

순식간에 박선행 씨가 나를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이 새끼, 제정신인가? 하는 눈빛이었다. 서둘러 오해를 고쳤다.

“아. 웃긴 영상 찾다가요. 약간 도전 같은…… 끝까지 눈 안 돌리고 보는 사람이 이기기 이런 거요.”

“……그 정도로 엉망이긴 하군요. 이것 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튼 제 숨겨둔 암호를 찾으셨다니 일단은 믿겠습니다.”

박선행 씨에게는 옅은 홍삼 냄새가 났다. 그가 피운다는 담배 특유의 냄새였다.

“헌터청의 인기가 상당한데 아십니까? 섣부르게 건들면 매장만 당해요.”

“인기요? 거기가 인기가 있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전부터 인기는 있었죠. 요즘 세상에 믿을 게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이런저런 종교들도 인기가 많던데요.”

“무서울수록 온갖 것에 매달리는 게 사람 아닙니까. 그나저나 정말 모릅니까? 허어. 요즘 헌터청이 아이돌 회사 못지않아요.”

“아니. 진짜 모른다니까요.”

박선행 씨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화면을 보는 순간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시 카테고리를 확인했다. 진짜로 연예야? 연예란에 있다고?

연예 톱에 걸려 있는 기사 속 사진의 주인공은 분명히 채원우였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채원우가 그곳에 있었다. 댓글에는 모두 하트와 찬사가 가득했다. 내렸다가 올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다시 본 채원우의 눈썹에는 피어싱이 하나 더 뚫려 있었다.

“아, 아이돌 같네요.”

“요즘 가장 눈에 띄는 헌터예요. 눈에 띌 수밖에 없죠. 거의 모든 던전에 나타나고 매번 선봉대로 들어가서 맨 마지막으로 나오니까.”

“……모든 던전에요?”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지방을 포함하면 던전의 발생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던전 열 개 중 세 개는 공략되지 않고 있고요. 저는 말입니다, 헌터청이 이미 던전을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에 고글을 건 채,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모래 먼지를 뒤로한 채원우의 찌푸린 얼굴, 아름다운 얼굴을 보다가 찬물을 맞은 것 같았다.

“포기했다고요?”

“던전이라는 것과 공생해야 할 단계가 언젠가 오지 않겠나, 늘 생각해 왔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박선행 씨는 조금 흥분된 모습이었다.

“……진짜 사이비 아니시죠?”

“사이비가 아니라 진화론을 믿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 예.”

“아무튼 헌터청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도 슬슬 낌새를 눈치채야 할 때인데, 보세요. 이 톱스타의 등장으로 이목이 모두 쏠리지 않았습니까? 던전은 뒷전이 되고 만 거예요.”

“그야 얘가 워낙 잘 생겼으니까…….”

“아잇, 지금 그 말이 아니라.”

뭐. 일단은.

나는 핸드폰을 돌려주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제가 고발하려는 게 바로 이 톱스타 이야기라면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채원우를 구하기 위해 채원우를 팔아야 했다. 아무리 종교인이 아니라 해도 예수가 팔렸단 것쯤은 알고 있다. 지금 난 채원우를 팔고 있었다. 그러니 이 죗값을 어떻게든 치러야 했다.

치룰 거다. 내 모든 걸 채원우에게 줄 거다.

“3-1 레드존에 무너진 건물이 있습니다.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출입을 막아둔 상태입니다. 거기에…… 자료를 묻어뒀습니다. 미리 경고하는데, 개인 차원에서는 터뜨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개인으로 움직이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특종 욕심보다 목숨 욕심 내실 거라면 말씀드릴게요. 정확한 위치를.”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보았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 함박눈이었다.

* * *

폭설 경보가 내렸다. 눈은 정말 말 그대로 푸지게 내렸다. 삽으로 몇 번이나 마당을 치우다가 결국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야, 똥 좀 그만 싸질러라!”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고 있다. 쓰레기가 내리고 있어.

이를 갈면서 바닥을 북북 쓸다가 삽을 내던졌다. 나도 모르겠다. 여기서 고립이 되든 말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라도 마시기 위해 따뜻한 물을 올렸다. 손때 묻은 오래된 주전자였다.

물이 끓는 동안 잠시 티비라도 볼까 하고 틀었다.

그리고 주전자에서 새된 김 소리가 나며 뚜껑이 덜컥거리도록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심지어 뚜껑을 비집고 나온 물 때문에 가스 불이 꺼질 때조차도.

던전이 열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내 보고된 사례 중 가장 큰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든 방송에서 경고를 내보내는 이유는, 던전 내에서만 있던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어서였다.

모든 던전에서 선봉대로 서는…….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네가 저곳에 있을 게 분명해서.

* * *

채원우가 있는 걸 알았지만, 달려갈 순 없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지만, 달려서 한 시간 거리 내에 있는 시민들은 모두 실내에 대기하다가 방송에 따라서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미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노인정으로 쓰이던 마을 회관에 모였다.

“우리는 상관없지만, 우리 손주들은 어쩐단 말이에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종말이 온 게지.”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어요. 그러라고 제사라도 지내지 그래? 아주 망하라구.”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줄 알어?!”

조용히 구석에 있던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싸우시다 다친다면 병원은 물론이고 보건소도 못 모셔간다…….

“잘 막고 있을 거예요. 잘 막고 있는 게 아니면 진짜 여기 김 씨 할아버지 말씀처럼 이미 종말이었죠. 대기하라는 건 좋은 거예요.”

“……어떻게 그리 잘 알아?”

미심쩍은 눈빛으로 보시는데 제가 왕년에 저기서 일했거든요, 말하기가 눈치가 보였다. 한마디라도 했다간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실 기세였다.

“인터넷이요!”

그래서 얼른 대답했다. 인터넷으로 최근 본 거라곤 박선행 씨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온갖…… 형형색색의 찌라시 영상이 다인데.

“그래.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 때하구 달라. 인터넷인가 뭔가로 다 안다니까? 잘됐어. 이 총각 말만 믿자구.”

큰일 났다. 오히려 더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마당에서는 각자 데려오신 강아지들끼리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로 평화로워 보였다. 보기로는 여기야말로 그린존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에 새로 들였다는 커다란 TV 화면 속은 분명 달랐다. 헬기로 찍는 건지 아니면 드론을 띄운 건지 모르겠지만, 공중에서 조망해 주는 현장은 언뜻 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개장을 준비하던 둔 공원을 모두 헤집으며 나왔다는 던전은 정말 컸고, 던전을 감싸고 있는 자기장은 더 컸다.

헌터청이 총동원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헌터들이 많았다. 에스퍼들은 뒤에서 튀어나오려는 몬스터들을 막을 영역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고 전투 헌터들은 그들을 보호하며 몬스터들을 없애고 있었다.

엉망진창이 따로 없어서 능력도 한데 뭉쳐 보였다. 게다가 범위가 큰데 찍고 있는 부분은 일부분이라 채원우를 찾느라 초조한 내 마음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제발 좀 보여라.’

채원우는 섣부르게 죽지 않을 거다. 채원우는 내가 아는 그 어떤 헌터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한 능력이 양날의 검이 되어 채원우를 해치고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던전 부산물로 만든 피어싱, 한결 날렵해진 턱 선과 잠을 얼마나 못 이룬 건지 추측도 힘든 피곤한 눈.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제발. 채원우.”

그리고 채 팀장이 맞는 건지 강 팀장이 맞는 건지 모를 그 또라이. 둘이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욕하면서도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하는 막장 드라마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전남편의 새 여자의 친구’ 할 때 됐어.”

뉴스고 나발이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다음 방송 때까지 살게 하는 막장 드라마인 할머님께서 채널을 바꾸셨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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